레스큐 시스템 180화
수혁은 일행을 데리고 앞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불길은 이미 사그라져 길을 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중간중간 작은 불씨들이 남아 있긴 했지만, 일행에게 그리 위협이 되진 않았다.
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
수혁은 자신이 봐둔 장소에 거의 도착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고개를 돌려 뒤를 쳐다봤다.
“이쪽입니다.”
수혁과 일행이 도착한 곳은 무슨 검사실 중 하나처럼 보이는 장소였다.
천이나 종이와 같은 불이 옮겨붙을 만한 물질이 거의 없어, 화재가 크게 번지지 않은 상태였고.
하지만 불길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어서, 수혁은 소화기를 들어 잔불을 껐다.
수혁은 검사실 내부의 안전을 확인하고는, 이번엔 창밖을 확인했다.
“음.”
사다리차가 접근하기엔 최적의 위치였다.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도 없었고, 높이 역시 적당했다.
하지만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다.
바로 연기.
화재로 인해 아래층에서부터 올라오는 시커먼 연기는, 시야 확보를 힘들게 만들었다.
‘이건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수혁이 직접 내려가서 화재를 모두 진압한다면 모를까, 여기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잠시 주변을 확인한 수혁은, 일단 무전기를 들어 박상태에게 연락을 취하기로 했다.
“상태 형.”
수혁이 박상태를 부르자, 몇 초의 시간이 흐른 뒤 무전기가 지직- 거리며 박상태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모두 괜찮은 거 맞냐?]
박상태의 음성은 다급하기 그지없었다.
갑작스런 폭발이 일어난 이후, 연락이 되질 않았으니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수혁이 잘못됐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두 명은 아니었다.
김강식과 특히 신재식은 그런 폭발에서 무사할 것이란 보장이 없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별일 아니었으니까. 모두 무사해요.”
[걱정을 어떻게 안 해, 이 새끼야! 갑자기 엉뚱한 곳에서 폭발이 일어났는데!]
그렇지 않아도 생각보다 진화가 되질 않아 갑갑하던 차에, 수혁이 있는 곳에서 폭발이 일어났으니…….
게다가 옥상이 붕괴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은 시점이었다.
걱정하지 않으려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수혁은 박상태의 욕설이 웃음이 새어 나왔다.
박상태 특유의 거친 말투를 들으면 괜히 마음이 편해졌다.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해드릴게요. 그보다는 지금 사다리차 댈 수 있어요?”
[사다리차?]
도착하긴 했다.
옥상이 무너져 내리는 바람에 쓰지는 못했지만,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아직 대기 중이었고.
박상태가 사다리차는 왜 묻느냐는 듯 말하자, 수혁은 지금 자신들의 상황을 대충 설명해 주었다.
[그래서? 지금 네가 있는 정확한 위치가 어디인데?]
“7층이요. 좌측에서 다섯 번째 창문일 거예요.”
수혁이 ‘미니 맵’을 통해 자신들의 위치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찾았다, 저기군.]
박상태는 수혁의 설명을 듣고 정확히 수혁의 위치를 특정했다.
[연기가 너무 심한데?]
솔직히 말하자면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아마 아래층의 화재가 심한 것 같아요.”
그래도 지금 수혁이 있는 곳이 그나마 나은 것이었다.
다른 쪽은 불길도 치솟아, 제대로 된 방수를 하지 않으면 사다리차가 접근조차 하지 못할 정도였으니까.
[잠깐 기다려 봐라. 가능한지 얘기를 좀 해봐야 할 것 같으니까.]
“서둘러 줘요. 아직 안전하긴 한데, 언제 또 무슨 일이 발생할지 모르니까.
[알고 있으니까, 괜히 허튼짓하지 말고 가만히 연락 기다리고 있어.]
박상태는 그 말을 끝으로 무전을 끊었다.
“그럼 잠깐 기다리면서 쉬죠.”
수혁은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의자를 하나 가져와 그 위에 신재식을 앉혔다.
“잠깐 좀 살펴보겠습니다.”
그러곤 신재식의 몸을 확인했다.
신재식은 잔뜩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땀에 환자복이 흠뻑 젖어 있었고, 체력 역시 바닥이 났는지 손을 덜덜 떨고 있었다.
사실 이 정도면 평범한 사람은 진즉에 주저앉고 말았을 것이다.
‘대단하다.’
아무리 훈련이 되어 있는 소방관이라고는 하지만, 암이라는 병에 걸린 데다 나이도 있어 체력이 예전 같지 않을 텐데…….
지금까지 신재식은 정신력 하나로 버티며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은 것이었다.
수혁은 신재식의 인내심에 감탄하며 확인을 끝마쳤다.
“다행히 이상은 없는 것 같군요.”
체력적으로 지친 것을 제외하면, 눈에 외상을 입었다거나 하는 문제는 없어 보였다.
물론 수혁이 의학적 지식이 뛰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그랬다.
“나는 괜찮네.”
신재식이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몸은 자신이 가장 잘 알았다.
조금 힘이 든다는 것만 빼면 몸 상태는 괜찮았다.
걱정되었던 신재식에게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 수혁이 긴장을 풀었다.
꽤 신경쓰긴 했지만, 그래도 수혁 역시 사람이었는지라 실수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긴장했던 것이다.
“자네들도 좀 쉬지.”
신재식의 말에 수혁과 김강식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이고, 죽겠다.”
김강식이 앓는 소리를 냈다.
수혁과 함께 병원 내부를 뛰어다녔으니, 지치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었다.
“넌 대체 어떻게 그리 멀쩡한 거냐?”
몇 번이나 봤고, 몇 번이나 물었던 말이다.
그리고 항상 돌아오는 대답은 같았다.
“훈련 열심히 하면 돼요.”
“퍽이나.”
수혁의 대답에 김강식이 코웃음을 쳤다.
김강식은 수혁이 체력 단련하는 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서에서는 물론이고, 따로 무슨 운동한다는 얘기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수혁은 구조 3팀 내에서 그 누구보다도 강한 체력과 근력을 지니고 있었다.
신기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뭐, 신기한 걸로 따지면 다른 게 더하지.’
수혁이 이상한 게 한두 가지던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회복 능력과 요구조자의 위치를 마치 처음부터 알고 있다는 듯한 모습까지.
이상하긴 이쪽이 더 이상했다.
이제 와선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고 있지만 말이다.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
“글쎄요. 사다리를 대려면 일단 연기부터 어떻게 해야 하니…….”
금방 해결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연기를 잡기 위해 일제 방수를 한다 해도, 준비 시간이 필요하니까.
“그래도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겠죠.”
길어야 10분이면 된다.
수혁이 예상한 시간은 그랬다.
“특구 애들이 먼저 도착하면 어떡하지? 꽤나 민망할 것 같은데.”
수혁이 박상태에게 한 말을 기억하는 김강식은 괜히 민망한 상황이 만들어질까 걱정이 되었다.
“특구가 여기까지 오려면 꽤나 고생할 걸요?”
‘미니 맵’으로 본 아래층은 말 그대로 불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입원실과 휴게실들이 집중적으로 모여 있는 곳이었는지라, 아무리 특수 구조대라 하더라도 절대 쉽게 그곳을 뚫지는 못할 것이다.
수혁이 직접 구조 3팀을 이끌고 간다고 해도 10분 안에는 불가능했다.
“그래도 만약에 오면?”
김강식이 집요하게 묻자 수혁이 웃으며 대답했다.
“사다리나 타고 같이 내려가자고 하면 되죠, 뭐.”
수혁의 대수롭지 않은 대답에 김강식이 낄낄- 거리며 웃었다.
“우리나라에서 특구 애들을 그렇게 대하는 놈은 너밖에 없을 거다.”
사실 특수 구조대와 일반 구조대와의 사이는 그리 좋지 않았다.
특수 구조대의 대원들은 일종의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고, 일반 구조대원들은 그들에게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사이가 그리 좋은 게 아닌 것만은 분명했다.
김강식 역시 특수 구조대에 그리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진 않았다.
그들 덕분에 일이 조금 편해진 것은 인정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니까, 별일은 없을 거예요.”
고생이야 많이 하겠지만, 그들은 장비도 좋았고, 신체 능력도 월등했으니 괜찮을 것이다.
그렇게 대화를 하며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였다.
[김수혁.]
기다리던 박상태의 무전이 왔다.
“말씀하세요.”
[지금 사다리차 댈 거다. 일단 창문에서 떨어져 있어.]
“방수부터 해요?”
[그래. 사다리만 대서는 도저히 각이 안 나온다. 연기부터 잡고, 그다음에 사다리 댈 거니까 준비하고 있어.]
“네, 알겠어요.”
무전을 끊은 수혁이 둘을 쳐다봤다.
김강식과 신재식 모두 무전의 내용을 들었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뒤로 물러나 있죠.”
펌프차에 연결된 호스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의 위력은 일반 사람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다.
관창수가 제대로 고정하지 않으면 사람의 몸이 허공으로 떠오를 정도로 말이다.
괜히 창문 근처에 있다가 물줄기에 정통으로 맞기라도 하면 부상 입을 확률이 높았다.
수혁은 신재식을 데리고 김강식과 함께 검사실 문밖까지 이동했다.
복도에는 아직 꺼지지 않은 불길이 남아 있었지만, 수혁이 살펴본 결과 당장 위험한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수혁과 일행이 멀어지자, 몇 초 후 방수가 시작됐다.
콰아아아-!
아래에서부터 위로 치솟아 오른 물줄기가 벽에 부딪히며 굉음을 냈다.
그와 동시에 연기가 사방으로 흩어지는 것이 보였다.
워낙 연기의 양이 많았기에 쉽사리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조금씩 연기가 줄어들며 시야가 확보되고 있었다.
“금방 되겠군.”
그것을 본 신재식이 중얼거렸다.
굳이 경험을 들먹이지 않아도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였다.
5분 정도의 방수가 이어졌다.
그러자 마스크가 없어도 사람이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연기가 줄어들었다.
[올라간다.]
박상태의 무전과 함께 위이잉- 하는 기계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사다리가 올라오는 소리였다.
“움직이시죠.”
수혁은 일단 신재식을 부축해 창가로 이동했다.
천천히 그곳으로 다가가는 동안 사다리는 빠르게 올라와 창가 근처에 멈춰 섰다.
“이쪽으로!”
낯익은 음성이 들렸다.
“상태 형?”
사다리 위에는 박상태가 서 있었다.
“빨리!”
지금은 연기가 사라졌지만, 아직 화재 진압이 완료된 것은 아니었다.
언제 또다시 연기와 불길이 살아날지 모르는 일이었기에, 박상태는 다급히 안쪽을 향해 손을 뻗었다.
수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대로 신재식을 안아 들었다.
“실례 좀 하겠습니다.”
신재식이 직접 움직이는 것보다, 이편이 훨씬 빠르고 정확했다.
신재식 역시 그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수혁의 품에 안겨 사다리 쪽으로 넘어갔다.
“먼저 내려가서 기다리겠네.”
신재식은 그렇게 박상태와 함께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휴…….”
큰 산을 하나 넘었다.
요구조자인 신재식을 구조했으니, 이제 김강식과 함께 내려가기만 하면 이번 현장도 끝이었다.
‘그런데 왜 계속 불안한 건지 모르겠네.’
더는 사고가 터질 일이 남아 있지 않았다.
지금 뭔가가 터진다 해도, 김강식 한 명뿐이라면 어떻게든 살릴 수 있는 자신도 있었고.
그럼에도 수혁은 계속해서 불안한 마음에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 불길한 예감은 이번에도 빗겨 나가지 않았다.
[구조 요청! 구조 요청!]
무전기에서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전승철의 음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