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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179화 (179/425)

레스큐 시스템 179화

“잠시 위층에 다녀와야 할 것 같습니다.”

수혁이 김강식과 신재식을 향해 말했다.

“무슨 방법이라도 생각났어?”

“네, 확실하진 않지만요.”

김강식은 수혁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방법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수혁이 이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면 뭔가 괜찮은 방법을 생각해 낸 것 같았다.

“그렇게 해.”

김강식의 허락이 떨어지자 수혁은 뒤쪽으로 이동하려다 잠시 멈칫- 했다.

‘같이 갈까?’

두 사람만 이곳에 두고 혼자 움직이려니, 괜히 불안했다.

그 둘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신재식은 말할 필요도 없었고, 김강식 역시 뛰어난 소방관이었으니까.

하지만 수혁이 자리를 비운 사이, 둘의 힘으로는 막아낼 수 없는 일이 발생한다면?

수혁이 미리 알고 대비할 수도 없고, 둘을 보호할 수도 없는 상황이니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그냥 다녀와, 인마. 여기는 걱정하지 말고.”

그런 수혁의 마음을 눈치챈 김강식이 픽- 하고 웃으며 수혁의 등을 밀었다.

“내가 애도 아니고, 여기 선배님도 계시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둘이 합치면 짬밥이 얼만데.”

김강식의 말대로 둘의 힘이라면 웬만한 일은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그것은 수혁도 알고 있었다.

다만 수혁이 걱정하는 것은 그 웬만한 일을 넘어서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었다.

‘괜찮겠지.’

7층은 화재가 크게 번지고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별다른 위험 요소가 보이지 않았다.

굳이 불 쪽으로 다가가지만 않으면 괜찮을 것 같았다.

“알았어요, 그럼 빨리 다녀오겠습니다.”

수혁은 그 말을 끝으로 다시 계단 위로 달려갔다.

‘산소통을 어디다 치웠더라?’

혹시라도 불이 옮겨붙을까 싶어 구석에 숨겨두었더니, 잘 기억이 나질 않았다.

‘가다 보면 나오겠지.’

수혁은 왔던 길을 되짚어 빠르게 되돌아갔다.

조금 전 셋이 함께 이동했을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속도였다.

마치 평지를 달리는 것처럼 거리낌 없이 움직이던 수혁의 눈에 뭔가가 들어왔다.

‘찾았다!’

수혁이 빠르게 움직이던 다리를 멈춰 세웠다.

그러곤 한쪽 구석에 놓여 있는 산소통을 향해 걸어갔다.

1m가 조금 안 되는 크기에 팔 두 개를 합쳐 놓은 것보다 조금 더 큰 굵기.

‘이 정도면 될까?’

확신이 들지 않았다.

수혁이 생각한 것은 아직 한 번도 시도해 보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에 제대로 가늠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생각처럼 된다면…….’

앞을 가로막고 있는 불길을 뚫고 원하는 장소까지 빠르게 갈 수 있을 것이 확실했다.

‘한번 해보자.’

안 되면 다른 방법을 또 생각해 내면 된다.

수혁은 고민을 멈추고 마음을 편히 먹었다.

산소통을 들자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돌아가자.’

다른 사람이었다면 산소통을 들고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힘들었겠지만, 수혁에겐 아니었다.

마치 비닐봉지라도 든 것처럼 가벼운 몸놀림으로 김강식과 신재식이 기다리고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타타탓-!

중간중간 위험 요소가 보이긴 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것들은 수혁에게 별다른 위협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혁은 조금 전보다도 훨씬 빠른 속도로 7층으로 내려갔다.

“응? 벌써 왔어?”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피고 있던 김강식이 수혁을 발견하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위로 올라간 지 몇 분이나 됐다고 벌써 돌아왔단 말인가?

혹시 위쪽 상황이 그리 좋지 못해 그냥 포기하고 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수혁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산소통이군.”

“네, 맞습니다.”

신재식 역시 수혁이 가져온 것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산소가 얼마 남지 않았던가?”

대충 계산해 봤지만, 아직 산소 잔량은 충분했다.

“아니요, 그것 때문에 가지고 온 건 아니고……. 잠시 제 뒤쪽으로 물러나 주시겠습니까?”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의문스럽기는 했지만, 두 사람은 일단 수혁의 말에 따랐다.

수혁은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 혹시 모르니 더 멀리 떨어지는 게 좋겠네요.”

“어느 정도나?”

“음, 8층까지?”

마음 같아선 그보다 더 멀리 떨어뜨려 놓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 멀어지면 제때 맞춰 이곳을 빠져나갈 수 없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생각한 마지노선이 계단 바로 위쪽이었다.

“대체 뭘 하려고?”

“올라가 계시면 알 거예요.”

궁금함을 참지 못한 김강식이 물었지만, 수혁은 대답을 회피했다.

만약 자신이 지금 뭘 하려는지 안다면, 김강식은 몰라도 신재식은 반대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곳에서 괜히 시간 낭비할 생각은 없었기에, 수혁은 자신의 생각을 숨겼다.

김강식은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시간이 그리 여유롭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지라, 더는 묻지 않고 신재식과 함께 위로 올라갔다.

두 사람이 멀어진 것을 확인한 수혁이 심호흡을 했다.

‘잘돼야 할 텐데.’

생각대로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긴 했지만, 수혁이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생길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진 않을 수가 없었기에 수혁은 망설이지 않고 움직였다.

가장 먼저 한 것은 산소통의 밸브를 여는 것이었다.

붕괴의 충격으로 인해 밸브 손잡이가 떨어져 나가 있었지만, 그것은 수혁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꼭지만 남은 밸브를 붙잡고는 힘을 주자, 마치 스패너를 사용한 것처럼 밸브가 돌아갔다.

푸쉬이이익-!

동시에 산소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수혁은 급히 손바닥으로 산소통의 입구를 막았다.

‘이렇게 낭비할 순 없지.’

그렇지 않아도 산소통의 크기는 별로 크지 않았기에, 조금이라도 산소를 아껴야만 했다.

산소통을 꽉 붙잡은 수혁이 천천히 뒤로 물러서다, 어느 순간 불길을 향해 산소통을 집어 던졌다.

그러곤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산소가 뿜어져 나오는 압력 덕분에 뱅글뱅글 돌며 허공을 날아간 산소통이 불길에 닿았다.

불은 순식간에 산소에 옮겨붙으며 그대로 산소통 안으로 끌리듯 번졌고, 그대로 폭발했다.

콰아아아앙-!

터져 버린 쇳조각과 화염이 주변을 쓸어버렸다.

수혁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폭발의 충격을 눈으로 보며 속으로 속삭였다.

‘실드.’

투명한 막이 수혁을 향해 달려드는 위험들을 허공에서 모조리 차단했다.

‘제발.’

수혁은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은 채 정면을 주시했다.

생각대로라면 이 폭발 뒤에 뭔가 변화가 생겨야만 한다.

“김수혁! 이게 무슨 소리야! 너 괜찮냐?”

[김수혁, 응답해, 김수혁!]

김강식과 박상태의 음성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갑작스런 폭발에 모두가 깜짝 놀란 것이다.

하지만 수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 건 나중에 해도 된다.

지금은 결과를 확인해야만 한다.

사람들의 외침을 무시하고 앞을 확인한 지 수십여 초.

수혁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됐다!’

불길이 사그라지고 있었다.

수혁조차도 스킬을 사용하지 않으면 뚫고 지나갈 수 없을 정도로 활활 타오르던 화염이, 마치 다 쓴 성냥불처럼 시들해지더니 꺼지기 시작한 것이다.

수혁은 자신의 생각이 정확히 들어맞았다는 것에 기뻐하며 계단 위를 향해 소리를 쳤다.

“내려오세요!”

위쪽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던 김강식은 수혁의 음성이 들리자 화들짝 놀랐다.

“야, 이 새끼야! 괜찮으면 괜찮다고 말을 해야 될 거 아니야!”

“죄송해요! 그런데 지금 내려오셔야 돼요!”

수혁의 말에 김강식은 신재식을 부축한 채로 빠르게 계단을 내려왔다.

그러고는 깜짝 놀랐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활활 타오르고 있던 불의 벽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이, 이게 대체?”

“지금 설명할 시간 없어요. 일단은 여기서 벗어나야 해요.”

수혁은 어리둥절한 김강식을 재촉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반면 신재식은 수혁이 무슨 짓을 했는지 눈치챈 기색이었다.

‘허허허.’

수혁이 산소통을 가져왔을 때까지는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지 짐작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 자신들이 피한 사이, 밑에서 폭발이 일어난 것을 보곤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정말일 줄이야.’

이런 진화 방법은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가끔 화재 현장에 출동하면 불이 인화 물질에 옮겨붙으며 커다란 폭발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런 폭발이 일어난 후에는 불길이 잦아든다.

폭발적으로 커진 화재가 주변의 산소를 모두 연소시키며, 더는 제 몸집을 유지할 수가 없기에 꺼지는 것이다.

신재식은 그런 광경을 수도 없이 많이 봤었다.

하지만 그것을 이용해 불을 진화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었다.

가능하냐, 불가능하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냥 너무 위험했기 때문이었다.

완벽하게 계산된 상황에서 만약의 상황에 대비한 뒤 실험을 한다면 모를까, 이런 현장에서 그런 것이 가능할 리가 없었다.

폭발로 인해 어떤 변수가 일어날지도 모르고, 더 좋지 않은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아니, 사실 불이 꺼질 확률보단 커질 확률이 더 높았다.

폭발의 충격에 붕괴가 일어날 수도 있었고.

그렇기에 생각조차 해보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수혁은 시도했고, 성공했다.

‘이걸 과감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무모하다고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신재식도 이제 구조 3팀에 있는 수혁의 선배들이 항상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쨌든 덕분에 이곳을 벗어날 수가 있게 됐군.’

수혁의 무모함이 아니었더라면, 여기서 언제까지고 고민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봄베의 산소가 다 떨어질 때까지 말이다.

신재식은 그런 면에서 수혁의 행동을 높이 평가했다.

자신은 생각지도 못한 발상을 한 점.

그리고 그것을 곧바로 실행에 옮기는 결단력.

구조대원으로서 나무랄 데 없는 것들이었다.

많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긴 했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보다 나은 방법이 없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으니까.

* * *

“무슨 소리야?”

전승철은 앞을 막고 있는 화염을 뚫으며 힘겹게 전진하다,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폭발음과 진동에 깜짝 놀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폭발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특수 구조대 대원 중 한 명이 위쪽을 가리키며 대답을 했다.

“젠장, 무전 쳐봐.”

생각보다 안쪽의 상황이 심해 이동속도가 더뎠다.

본래 생각대로라면 지금쯤이면 수혁이 있는 위치에 도착했어야 했는데…….

이제 고작 3층에 올랐을 뿐이었다.

이대로라면 언제 도착할지 알 수가 없었다.

‘더 늦으면 곤란한데.’

수혁이 병원 안쪽으로 진입한 지 시간이 꽤 흘렀다.

산소 잔량이 그리 많지는 않을 터.

그 안에 구조해야만 했기에 마음이 급해졌다.

“7층에서 폭발이 일어났고, 원인은 아직 불명이랍니다.”

무전을 통해 상황을 대충 알아낸 대원이 보고했다.

“7층?”

전승철은 층수를 듣자마자 본능적으로 수혁이 뭔가를 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신일서 구조대원들과 요구조자는?”

“무사하다고 합니다.”

무슨 짓을 한 건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일단 그들이 무사하다는 소식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대원의 보고는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대원이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이자 전승철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렇지 않아도 시간이 없는데 저렇게 시간을 끄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빨리 말해.”

전승철의 음성이 심상찮다는 것을 느낀 대원이 더는 주저하지 않고 빠르게 입을 열었다.

“김수혁이라는 대원이 전해달라고 했답니다. 자신들은 그냥 알아서 탈출할 테니, 신경 쓰지 말라고.”

“뭐?”

전승철은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대원이 같은 말을 다시 한 번 반복하자, 전승철의 입에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 새끼가…….’

수혁에게 갖고 있던 호감이, 불쾌감으로 변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자신들이 안쪽 상황을 과소평가하고 있었다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수혁의 발언은 자신과 특수 구조대를 무시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도 있는 내용이었다.

뼛속까지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 있던 전승철에게는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서둘러. 알아서 탈출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구조한다.”

“알겠습니다.”

특수 구조대의 움직임이 더욱 빨라졌다.

전승철이 고개를 들어 천장을 쳐다봤다.

‘후회하게 만들어주마.’

이를 갈며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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