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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176화 (176/425)

레스큐 시스템 176화

안전하다의 기준은 무엇일까?

평범한 사람이 맨몸으로 저곳으로 간다면, 그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저 연기는 한 모금만 들이마셔도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유독 가스였으니까.

하지만 세 사람은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 호흡할 수 있는 마스크가 있었고, 연기 속에서 움직일 수 있는 훈련을 받아온 전문가들이다.

그것을 고려하면 생각보다 그리 위험한 장소가 아니었다.

당분간은 말이다.

적어도 봄베의 산소 잔량이 모두 떨어지기 전까지는 안전했다.

“굳이 저곳으로 가려는 이유가 뭔가? 붕괴를 피하려면 차라리 저쪽으로 가는 것이 낫지 않겠나?”

신재식이 한쪽을 가리켰다.

균열이 있는 곳과 멀찍이 떨어져 있으며, 주변에 구조물도 없어 몸을 피하기에도 용이했다.

특히나 사다리차가 도착하면 구조되기도 쉬운 위치였으니, 신재식이 저곳을 고른 것도 충분히 납득이 되는 선택이었다.

수혁 역시 동의했다.

만약 수혁에게 스킬이 없었다면, 무조건 저곳을 골랐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수혁은 다른 선택을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저곳은 위험하니까.’

붉은색이 퍼져 있었다.

아니, 사실 이 옥상 위에서 붉은색이 표시되지 않은 곳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했다.

조금씩 짙어지며 영역을 넓혀가던 붉은 표시는, 어느새 옥상 대부분을 물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붉은 표시가 없는 곳들도 모두 두 사람 이상은 서 있기도 힘들 정도로 좁았다.

오직 수혁이 선택한 장소만이 세 사람이 몸을 피하기에 충분한 넓이였다.

“저쪽이 더 나을 것 같습니다.”

수혁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하자, 신재식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유는?”

그 질문에 수혁이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왜 저 질문이 안 나오나 했다.’

지금까지 신재식은 수혁의 말을 잘 따라주었지만, 이번만큼은 순순히 따라주지 않았다.

‘하긴 나라도 돌았다고 생각하겠지.’

수혁이 신재식의 입장이었더라도, 똑같이 생각했을 것이다.

아마 미쳤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저도 수혁이가 말한 쪽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때 김강식이 끼어들며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신재식이 그런 김강식을 쳐다봤다.

이번에도 그 이유를 묻는 듯한 표정이었다.

김강식은 잠시 고민하다 적당한 말을 찾지 못했는지, 머리를 긁적이며 머쓱하게 말을 이었다.

“그냥 이 녀석이 이런 감은 좋거든요. 게다가 확신이 없으면 이런 식으로 말을 하지도 않고…….”

김강식도 정확히 설명할 순 없었다.

그저 지금까지 수혁의 말을 들어서 잘못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에, 이번에도 따라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경험상, 수혁이 이런 식으로 나올 때면 그냥 따르는 것이 안전했다.

하지만 그런 두루뭉술한 말이 신재식을 설득시킬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니까 그냥 감이라는 말이지?”

“……굳이 따지자면 그렇습니다만.”

신재식이 굳은 표정으로 수혁과 김강식을 번갈아 쳐다봤다.

‘시간이 별로 없는데.’

지금도 1초가 다르게 위험 신호가 강해지고 있었다.

이렇게 시간 낭비를 하고 있을 리가 없었다.

“저 환풍기 아래는 공간이 비어 있다는 것 알고 있겠지?”

환풍기 자체가 통로를 통해 공기를 순환시키는 구조물이었으니, 당연히 그 아래쪽에는 공간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공간이 있다는 것은 붕괴에 더 취약하다는 것도?”

“물론입니다.”

“그런데도 저곳으로 가겠다고?”

연기는 둘째 문제였다.

수혁이 생각했던 것처럼 산소의 잔량이 남아 있는 이상, 자신들이라면 충분히 버틸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저곳이 붕괴에서 안전하다는 수혁의 말에는 동의하기가 힘들었다.

그동안 자신이 쌓아온 경험을 생각해 보면, 저곳은 절대로 안전한 장소가 아니었다.

게다가 저곳은 사다리차가 와도 쉽게 빠져나갈 수 없었다.

만약 정말로 수혁의 말대로 저곳이 안전하다고 해도, 다른 곳이 붕괴된다면 난간까지는 갈 방도가 없었던 것이다.

신재식은 고민했다.

웬만해선 자신과 수혁의 입장을 고려해 말을 따르고 싶었다.

그런데 위험할 게 뻔히 보이는 곳으로 피한다는 것이 내키질 않았다.

어차피 살 날이 그리 많지 않은 자신은 둘째 치고, 아직 앞길이 창창한 두 사람이 위험에 빠지는 꼴은 도저히 볼 수가 없었다.

신재식은 그렇게 판단을 하고는 이번에는 수혁의 말을 거부하기로 결정했다.

요구조자의 입장에서 선배의 권위를 내세우고 싶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그렇게 해야 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신재식은 거부의 말을 꺼낼 기회조차 없었다.

수혁이 갑자기 신재식을 둘러업고는 소리를 질렀기 때문이었다.

“강식 선배! 뛰어요!”

김강식은 수혁의 말을 듣자마자, 1초의 고민도 없이 휴게실의 문을 박차고는 냅다 달렸다.

“자, 잠깐! 지금 뭐 하는……?”

당황한 신재식이 수혁을 향해 물으려다 입을 다물었다.

콰지지직-!

바닥이 갈라지는 섬뜩한 소리가 명확하게 들려왔다.

아니, 소리뿐만이 아니었다.

붕괴가 시작됐다.

균열은 순식간에 그 크기를 더해갔고,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아래로 푹 꺼졌다.

고작 3초도 되지 않는 시간 사이 방금 전까지 자신들이 있던 휴게실이 사라졌다.

바닥이 무너지며 그대로 아래로 추락한 것이다.

그것을 본 신재식은 식은땀이 주륵- 하고 흐르는 것을 느꼈다.

‘조금만 늦었다면.’

정말이지 몇 초만 더 피하는 것이 늦었다면, 자신들은 휴게실과 함께 그대로 매몰되고 말았을 것이다.

‘어떻게?’

붕괴의 조짐은 아까부터 계속 있었다.

자신도 그것을 느끼고는 예의주시하고 있었고.

그런데 수혁은 그것을 넘어 정확히 붕괴가 되는 시점을 예측했다.

이건 수많은 경험을 쌓으며 베테랑 중 베테랑이라 불리는 자신이라 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쓰세요.”

수혁이 어깨 위로 마스크를 건네자, 신재식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것을 받아 얼굴에 썼다.

그것을 확인한 수혁은 김강식과 함께 환풍기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연기가 자욱한 곳에 그곳에 도착한 수혁이 들고 있던 신재식을 내렸다.

그리고 신재식은 다시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안전한 곳이라고 주장했던 곳이 무너지고 있는 것을 본 것이다.

반면 이곳은 조용했다.

술래잡기를 하듯 따라오던 붕괴가 어느 지점에서 멈추며, 여기까지는 미치지 못한 것이다.

신재식은 마른침을 삼켰다.

수혁이 옳았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는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확실한 것은 자신이 틀리고 수혁의 말이 맞았다는 것이었다.

햇병아리에 불과한 수혁이 수십 년 경력의 신재식보다 더 정확한 ‘예측’을 해낸 것이다.

소름이 돋았다.

죽을 뻔했다는 사실보다, 수혁의 능력에 더 큰 충격을 받았다.

[김수혁! 괜찮냐?]

그때 수혁의 무전기에서 박상태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상태 형.”

[방금 무슨 소리가 났는데, 뭐야?]

옥상 대부분이 무너져 내렸다.

당연히 굉음이 울렸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뭔가 큰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옥상이 붕괴됐어요.”

[뭐? 거기가 갑자기 왜?]

폭발이 일어난 곳은 지하다.

붕괴가 돼도 1층이 붕괴되어야지, 왜 갑자기 뜬금없이 옥상이 무너져 내린단 말인가?

폭렬 현상이 일어났다고 보기엔, 불이 바로 아래층까지 퍼진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다.

‘그냥 날림 공사를 한 걸 수도 있고.’

우리나라가 그런 적이 한두 번이던가?

본래 튼튼하지 않았던 구조가 폭발의 충격을 견디지 못하며 무너졌을 확률이 컸다.

[괜찮냐? 다친 사람은 없고?]

박상태가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딱히 수혁을 걱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수혁이라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선 어떤 상황에서도 무사할 것이란 믿음이 있었으니까.

수혁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걱정이었다.

“네, 저흰 괜찮아요. 아직까지는.”

지금은 붕괴를 피했다.

하지만 여기라고 언제까지나 안전하진 않았다.

붕괴의 여파로 주변 구조가 취약해졌고, 언제든 또다시 붕괴될지 모르는 상황이었으니까.

[사다리차 도착했으니까 몇 분만 버텨.]

때마침 수혁의 요청으로 출발한 사다리차가 도착했다.

하지만 조금 늦은 감이 있었다.

“저희 사다리차 못 타요.”

[무슨 말이야?]

“주변이 모두 무너졌어요. 사다리가 걸려도, 거기까지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수혁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부분이 무너져 있었다.

유일하게 무너지지 않은 쪽의 난간은 불길이 치솟아 사다리를 댈 수 없는 상황이었고.

그러니 이제 와 사다리차가 도착했다고 해도 그리 의미가 없었다.

“몇 분만 빨리 도착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붕괴가 시작되기 전에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방법은 있냐?]

“글쎄요, 생각을 좀 해봐야 할 것 같아요.”

무너져 내리며 뻥 뚫린 아래쪽의 광경이 보였다.

“지옥이구만.”

김강식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지옥.

그 말이 가장 어울리는 것 같았다.

붕괴의 잔해 사이사이로 불길이 새어 나오며, 마치 불구덩이를 연상시키고 있었다.

[일단 지원을 보내마.]

“이쪽에서도 방법을 찾아볼게요.”

무전을 끊은 수혁이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일단 눈앞에 닥친 위험을 피하긴 했지만,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여전히 옥상에 고립되어 있는 상태였고, 상황은 좋지 않았으며, 결정적으로 불안감은 여전했다.

‘이게 아니었다고?’

당연히 불안감의 정체가 붕괴 때문이라고 생각했던지라, 수혁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계속해서 뒷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이 기분 나쁜 느낌은, 앞으로 이것보다 더 심한 것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듯했다.

수혁의 안색이 그리 좋지 못하다는 것을 알아차린 신재식이 입을 열었다.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인가?”

일단 당분간 주변은 안전할 것 같았다.

바닥이 붕괴되며 연기가 그곳으로 향한 덕분에 환풍기에서 뿜어져 나오던 연기도 옅어졌고, 당장 또 붕괴가 시작될 것 같지도 않았다.

수혁은 잠시 생각을 하다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대장님 도움을 좀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마땅한 방법이 생각나질 않았다.

‘미니 맵’을 사용해 봤지만, 안전하게 빠져나갈 수 있는 경로 따위는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럴 때는 혼자 고민하기보다는, 신재식에게 조언과 도움을 구하는 것이 나았다.

그에게는 스킬과 같은 능력이 없었지만, 경험이라는 값진 보물이 있었으니까.

수혁이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신재식이 헛웃음을 지었다.

“나보다 더 뛰어난 것 같은데, 괜히 노인네를 위한답시고 겸손 떠는 것 아닌가?”

반쯤 농담처럼 건넨 말이었지만, 신재식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절대 아닙니다. 정말로 저 혼자서는 못 할 것 같습니다.”

수혁은 말도 안 된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그 모습에 신재식이 미소를 지었다.

당황한 수혁의 모습에서 그 말이 진짜임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신재식이 주변을 한번 살펴보았다.

확실히 이곳에서 벗어나는 일이 그리 쉽지 않아 보였다.

잠시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주변을 살펴보던 신재식이 수혁과 김강식을 쳐다보았다.

“한 번 머리를 맞대보지. 이런 건 원래 혼자보다 여러 사람이 같이 생각하는 것이 나은 법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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