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175화
위험해 보이는 것은 없었다.
물론 화재 현장이었는지라 아주 안전하다고는 말할 수 없었지만, 최소한 수혁이나 다른 두 명이 위험에 빠질 요소는 보이지 않았다.
“일단 이쪽으로.”
불안함에 휩싸인 수혁은 일단 이곳에서도 가장 안전해 보이는 곳으로 향했다.
“음…….”
수혁의 뒤를 따르던 신재식이 살짝 신음했다.
“어디 불편하십니까?”
그런 신재식을 부축하고 있던 김강식이 얼굴을 굳히며 물었다.
신재식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네만…….”
몸이 좋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기분 문제였다.
“영 느낌이 좋지가 않군.”
신재식의 말에 수혁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수혁이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묻자, 신재식은 잠시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그러다 결국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이 생활을 오래하다 보면 가끔 이상한 것이 느껴지는 경험을 하고는 하지. 나도 그리 많이 경험해 본 것은 아니네만……. 그럴 때는 항상 좋지 않은 일이 터졌다네.”
수혁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리고 지금 그런 불안감이 드는군.”
신재식은 수혁과 같은 느낌을 받고 있었다.
뭐라고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분명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는 강한 느낌.
그것을 육감이라고 부르든, 아니면 수많은 경험을 바탕으로 한 예측이라 부르든.
확실한 것은 수혁과 신재식.
둘 모두가 똑같은 불안감을 느끼며 긴장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수혁은 다시 한 번 주변을 둘러보았다.
‘역시 별다른 건 없어.’
혹시 화재로 인해 또 한 번의 폭발이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고개를 저었다.
화재가 일어난 기계실과 옥상까지는 거리가 꽤 있었다.
기계실은 8층짜리 건물의 지하에 있었으니, 폭발이 일어난다고 해도 옥상까지 그 여파가 미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럼 뭘까?’
그냥 기분일 뿐이라며 지나치기엔, 너무도 찜찜했다.
이전에도 한 번 느꼈었고, 이번엔 신재식도 같은 느낌을 받고 있었으니 말이다.
김강식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지만, 수혁은 확신할 수가 있었다.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난다.’
아직은 그것이 뭔지 확실하게는 알 수가 없었지만…….
수혁은 앞으로 어떤 일이 발생해도 곧바로 대처할 수 있도록, 단 한순간도 긴장을 늦추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이곳이 좋겠군요.”
수혁이 둘을 데리고 간 곳은 옥상 정원 한복판에 있는 휴게실이었다.
유리로 된 벽으로 만들어져 있어 시야 확보에 용의했고, 연기에서도 안전했다.
“여기라면 당분간은 괜찮겠군.”
신재식이 주변을 살펴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인가?”
“일단은 사다리차가 오기를 기다려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지원은 요청했고?”
“네, 지금쯤이면 사다리차도 이쪽으로 출발했을 겁니다.”
“음…….”
신재식이 더는 묻지 않았다.
수혁은 현재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행동을 하고 있었다.
자신이라고 해도 수혁과 똑같이 행동했었을 테니, 딱히 조언이나 참견이 필요가 없었다.
‘나이나 경력도 많지 않은데 상황파악이 빠르군.’
신재식은 속으로 수혁에게 감탄했다.
망설임 없는 결단력과 행동력.
그리고 순간적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최선의 결정을 내리는 판단력까지.
아직은 조금 어설프고, 무리한 면이 보이긴 했지만, 최소한 10년 이상은 소방관 생활을 해온 베테랑의 느낌이 물씬 풍겼다.
‘아니면 타고난 것이던가.’
이십대 중후반의 나이로 10년 이상의 경력을 쌓았을 리가 없었으니, 타고난 것이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좋은 소방관이 되겠군.”
“예?”
주변을 둘러보고 있던 수혁은 신재식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아무것도 아닐세.”
지금도 이렇게 뛰어난데, 앞으로 경험이 더 쌓이면 얼마나 더 뛰어난 실력을 갖출 수 있을까?
신재식은 그 모습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못 보겠지.’
자신에게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몸이 좋지 않다는 것을 익히 눈치챘음에도, 일에 치여 병원에 너무 늦게 방문했다.
병원에서는 최대한의 노력을 하겠다며 약속했지만, 그 말은 사실상 치료할 수 없다는 말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앞으로 1년, 길어야 2년.’
의사들은 말을 해주지 않았지만, 신재식이 느끼고 있는 한계는 고작 그 정도였다.
그마저도 대부분의 시간을 고통과 싸우는 것에 모든 것을 집중해야 할 테고.
‘아쉽구나.’
조금만 더 빨리 수혁을 만났더라면, 그랬다면 자신이 그동안 쌓아왔던 지식과 경험들을 전해줄 수 있었을 텐데.
왜 조연서가 아니라 신일서로 배치를 받은 것인지, 아쉽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것을 안타까워 해봐야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이었기에, 신재식은 한숨을 내쉬며 주변을 살피는 것에 집중했다.
‘딱히 위험해 보이지는 않는데…….’
그 역시 수혁과 마찬가지로 별다른 위험 요소를 발견하지 못했다.
화재로 인해 병원 주위로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것을 제외하면, 옥상 정원의 풍경은 평온해 보이기까지 했다.
“어? 저게 뭐지?”
그때 김강식이 뭔가를 발견하고는 의문성을 터트렸다.
수혁과 신재식의 시선이 동시에 돌아갔다.
김강식이 손가락을 들어 가리킨 곳을 쳐다보자, 뭔가가 보였다.
“……연기?”
그것은 연기였다.
지금도 사방에서 볼 수 있는 연기.
그럼에도 김강식이 이상하게 생각한 것은, 그 연기가 난간 밖에서부터 올라오는 것이 아닌, 바닥에서 피어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음.’
수혁이 눈매를 좁혔다.
바닥에서 연기가 새어 나온다는 것은, 그곳에 균열이 생겼다는 뜻이었다.
‘안 좋은데.’
아직 ‘위험 감지Ⅲ’스킬은 반응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리 위험하지 않다는 뜻…….
“응?”
수혁이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상황이 변했다.
아무런 색도 없었던 바닥이 조금씩 붉게 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은 그리 짙지 않은 붉은색이었지만, 일단 스킬이 감지한 이상 위험하다는 뜻이었다.
‘이건가?’
불안함의 정체.
지금까지 그 어떤 위험 요소도 발견하지 못해 더욱 불안했던 것의 정체가 바로 저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닥에 금이 갔나 보군.”
신재식이 중얼거렸다.
“그런 것 같습니다.”
“이거 위험할지도 모르겠어.”
“제 생각도 같습니다.”
단순히 연기가 새어 나오기 때문에 위험한 것은 아니었다.
연기가 옥상을 채운다 해도, 휴게실 안에 있는 이상은 안전했고, 아직 봄베에 있는 산소량은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수혁과 신재식이 위험하다고 한 것은, 그 균열로 인해 붕괴가 시작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아래층의 연기가 바닥을 뚫고 위로 올라올 정도면 절대 작은 틈이 아니었다.
안쪽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심각할 수도 있었다.
“어느 정도로 위험한지는 모르겠네만, 아무래도 멀리 떨어지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은데.”
연기가 새어 나오는 곳과 휴게실까지 거리는 고작해야 15m 정도였다.
만약 붕괴가 저곳에서 시작된다면, 휴게실 역시 그 범위 안에 들어갈 가능성이 농후했다.
그렇게 되면 피할 시간도 없었다.
사람이 아무리 빨리 뛴다고 해도 바닥이 무너져 내리는 것보다 빨리 달아날 수는 없으니까.
“괜찮을 겁니다.”
하지만 수혁은 괜찮다며 고개를 저었다.
확실히 붕괴가 시작되고 나면, 수혁 역시 완벽히 피할 수 있을 것이라 장담은 할 수 없었다.
혼자라면 모를까, 김강식과 신재식을 데리고 피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수혁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수혁에게는 ‘위험 감지Ⅲ’스킬이 있었으니까.
붕괴가 시작되기 전에 알 수 있었으니, 그전에 피하면 되었다.
“……괜찮다고?”
“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수혁의 표정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정말로 그리 문제가 되지 않을 거란 확신이 있는 것 같았다.
신재식은 그런 수혁을 가만히 쳐다보다 어깨를 으쓱했다.
수혁에 대해 그리 많이 알지는 못했지만, 지금까지 봐온 모습으로 봐선 허튼소리를 할 사람 같진 않았다.
게다가 지금 자신은 요구조자.
구조대원인 수혁의 말을 따르는 것이 맞았다.
“알겠네, 자네 말대로 하지.”
“감사합니다.”
수혁은 신재식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30년이 넘는 경력을 지닌 대선배가 새파란 후배의 의견을 존중해 주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나 계급제인 소방기관에선 더욱 그랬다.
만약 신재식이 반발한다고 해도 이해할 수 있었는데, 오히려 믿어주자 수혁은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긴장을 늦추지 말자.’
수혁은 계속해서 주변을 살펴보는 것에 집중했다.
그러면서도 균열에 신경을 쓰는 것을 잊지 않았다.
문제가 될 소지가 가장 높은 곳은 바로 그곳이었으니까.
‘다른 곳은 괜찮아.’
아무리 둘러보아도 마찬가지였다.
지금껏 확인했던 것처럼, 위험한 요소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역시 저기라는 건데…….’
수혁이 다시 균열을 쳐다봤다.
붉은색이 아까보다 조금 더 짙어져 있었다.
아직까지 크게 위험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저렇게 계속 짙어지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여기서 피해야 할 것만 같았다.
“연기가 조금씩 더 많이 새어 나오고 있네.”
“그렇군요.”
김강식과 신재식은 오직 그곳만을 예의 집중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무리 수혁이 괜찮을 것이라 말을 했다지만, 자신들의 목숨이 달린 일인지라 완전히 믿고 있을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붉은색이 짙어지며 새어 나오는 연기의 양 역시 많아지고 있었다.
“연기가 늘어나는 모양을 보니, 상황이 조금씩 안 좋아지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나?”
신재식이 이번에는 수혁에게 물었다.
그의 표정은 지금이라도 피해야 하지 않겠냐는 듯한 모양새였다.
“아직은 괜찮습니다. 만약 피해야 할 때가 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신재식은 불안한 기색이었음에도, 수혁의 말을 따랐다.
‘휴…….’
수혁이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부담스러웠다.
자신을 전적으로 믿고 있는 신재식의 모습도 부담스러웠고, 계속해서 가슴속을 채우고 있는 불안감도 부담스러웠다.
어차피 터질 일이라면, 차라리 지금 터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게 가장 좋겠지만.’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아하니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음?’
그때 수혁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붉어졌어.’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붉은색이 확연하게 짙어졌다.
그 짧은 순간 상황이 급변한 것이다.
이 정도로 짙은 붉은색이라면 꽤 위험했다.
지금은 아니더라도, 수 분 내로 무너져 내릴 가능성이 높았다.
‘길어야 5분? 아니, 3분.’
그 후에는 바닥이 붕괴되던지, 아니면 다른 무슨 일이 일어나던지.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 것이다.
“이제 여기서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수혁이 벗어두고 있던 마스크를 집어 들며 두 사람에게 말을 했다.
“나도 마침 그 생각을 하고 있었네.”
연기의 양이 갑자기 확 늘어났다.
실낱처럼 피어오르던 연기가, 이제는 공장 굴뚝의 연기처럼 뭉게뭉게 올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어디로 가는 것이 좋겠나?”
붕괴의 범위는 아무도 모른다.
김강식은 물론이고, 수십 년의 경력이 있는 신재식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수혁은 알고 있었다.
점점 짙어지며 영역을 넓혀가던 붉은색이 닿지 않는 곳.
“저쪽으로.”
수혁이 가리킨 곳을 본 신재식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저긴…….”
연기가 가득했다.
벤추레이터(옥상 환풍기) 주변이었는지라, 그곳에서 흘러나온 연기가 마치 구름처럼 모여 있었다.
누가 봐도 절대 안전해 보이지 않는 곳.
“저곳으로 가겠다고?”
신재식은 그 말이 정말이냐는 듯 다시 물었다.
그리고 수혁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네, 저기가 가장 안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