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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174화 (174/425)

레스큐 시스템 174화

‘소방관이라…….’

신재식의 경력은 30년이 넘는다.

수혁의 이전 생과 이번 생의 경력을 다 합쳐도 신재식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수혁이 수많은 사람을 구하며 많은 위기를 넘었지만, 신재식은 수혁보다도 더 많은 사선을 넘어왔다.

그런 사람의 입에 오른 소방관이라는 단어는, 그 무게감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이걸 존경스럽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미련하다고 해야 하나.’

수혁이 보는 신재식은 미련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의 모습과 자신의 모습이 닮아 보이는 것 역시 사실이었기에, 수혁은 조금 답답해졌다.

혹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볼 때도 이런 느낌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서두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왠지 모를 답답함에 한숨을 내쉰 수혁이, 신재식을 향해 말했다.

“지금보다 더 속도를 내기는 조금 힘들 것 같네만.”

요구조자들은 노쇠한 육신을 이끌고 힘겹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매우 느린 속도였지만, 이 정도가 그들의 최선이었던 것이다.

“업고 가겠습니다.”

시간이 없었다.

이대로 가다간 대피를 해야 할 계단 쪽도 불길에 집어삼켜질 수도 있었다.

그러면 그때부턴 힘들어진다.

요구조자가 한 명 정도라면 수혁이 안고 창문 밖으로 뛰어내려서라도 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요구조자는 세 명.

김강식과 신재식까지 합치면 다섯 명이다.

그들 모두를 데리고 빠져나갈 순 없었다.

수혁의 신체 능력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불가능했다.

신재식은 그런 수혁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러다 문득 입을 열었다.

“이쪽은 위험한가 보군.”

“네. 올 때 봤는데, 이미 화재가 진행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사실은 못 봤다.

그때는 그냥 달리기에도 바빴으니까.

하지만 ‘미니 맵’에 표시된 것을 보면, 이미 불길은 꽤나 퍼진 상태였다.

조금만 더 지체된다면 고립될지도 몰랐다.

신재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업고 가도록 하지.”

그 말에 수혁이 봄베를 벗어 손에 들고는, 가장 먼저 자신이 맡고 있던 요구조자를 업었다.

김강식 역시 둘의 대화를 듣다 요구조자를 업었고.

문제는 신재식이었다.

“으윽.”

신재식의 몸은 현재 정상이 아닌 상태였다.

체력은 약해졌고, 근력 역시 예전과는 많이 달랐다.

“설마 사람 한 명도 업지 못할 줄이야.”

신재식이 허허- 웃으며 자조 섞인 웃음을 내뱉었다.

지금껏 셀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을 업었던 등이다.

그만큼 많은 사람을 구한 등이었고, 요구조자들이 의지를 했던 등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는 단 한 명의 사람도 구할 수 없었다.

신재식은 머쓱하게 웃고 있었지만, 그 눈동자에는 슬픔이 가득해 보였다.

“제게 맡기시죠.”

수혁은 손에 들고 있던 봄베를 내려놓고는 신재식이 부축하고 있던 요구조자를 향해 손을 뻗었다.

신재식을 향해 등을 내밀었다.

“할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수혁에게 두 사람을 드는 것 정도는 힘든 일도 아니었다.

“대신 이것 좀 들어주십시오.”

수혁은 신재식에게 봄베를 가리키며 부탁했다.

자괴감을 느끼고 있을 신재식이 뭔가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해준 것이다.

“……고맙네.”

수혁의 배려를 눈치 챈 신재식이 미소를 지으며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고맙긴요. 제가 힘들어서 부탁드리는 건데, 제가 감사한 거죠.”

수혁 역시 웃으며 그렇게 대꾸하고는 남은 한 명의 요구조자를 안아 들었다.

“가시죠.”

수혁이 걸음을 서둘렀다.

‘늦겠다.’

수혁은 살짝 후회했다.

처음부터 이들을 업고 달렸으면 시간이 충분했을 텐데, 신재식을 보고 당황하는 바람에 생각이 짧았다.

‘이대로면…….’

아슬아슬하다.

신재식뿐만이 아니라 김강식조차 제시간 안에 도착하지 못할 것 같았다.

‘먼저 뛸까?’

고민이 됐다.

일단은 자신이 맡은 요구조자 두 명의 안전부터 확보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다 같이 이동해야 할지.

잠시 고민하던 수혁이 결정했다.

“제가 먼저 나가야겠습니다.”

“……뭐?”

숨을 헐떡이며 달리던 김강식이 수혁을 돌아보며 물었다.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아무래도 조금 늦을 것 같아요. 이 두 분 먼저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킨 후에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야, 김수혁!”

잘못 들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김강식이 얼굴을 찌푸렸다.

이대로 수혁이 먼저 사라진다면, 남은 요구조자 한 명과 신재식을 김강식 홀로 맡아야만 했다.

김강식은 수혁이 아니다.

한 명이라면 모를까, 둘을 책임질 자신은 없었다.

“그렇게 하게.”

하지만 신재식은 수혁의 의견에 동의했다.

“상황이 급박하다면, 일단은 구할 수 있는 사람을 먼저 구하는 것이 우선이지.”

신재식이 그렇게 말을 하자 김강식은 입을 다물었다.

“이곳은 걱정하지 말고 먼저 가게. 여차하면 내가 있으니 괜찮을 게야.”

육체는 노쇠했지만, 무려 33년에 달하는 경력의 소방관이다.

지금 당장 위급한 상황도 아니었고, 옆에는 김강식도 있었으니, 수혁이 돌아올 때까지 버틸 자신은 충분했다.

“알겠습니다, 금방 돌아오겠습니다.”

수혁은 신재식에게 다시 봄베를 받아 들고는 곧바로 땅을 박찼다.

그러자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속도로 앞으로 치고 나갔다.

그냥 혼자 뛰는 것도 아니고, 앞뒤로 두 명이나 들고 있는 상태로 말이다.

“허허.”

그것을 본 신재식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김강식이야 하도 많이 봐서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신재식은 이런 수혁의 모습을 처음 봤으니…….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속도에 놀라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것이었다.

“듣던 대로 엄청나구만.”

소문으로만 들었던 수혁의 능력.

도저히 사람 같지도 않은 소방관이라고 했던가?

수혁의 일화는 믿기에는 너무 허무맹랑한 것이 많아 단순히 헛소문이라고 치부를 했었는데, 이렇게 직접 눈으로 보니 전부 거짓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대단하죠?”

김강식이 어느새 사라져 버린 수혁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물었다.

“저게 사람이 낼 수 있는 속도이던가?”

“아마 보통 사람은 불가능할 겁니다.”

“그럼 저놈은?”

“보통 사람이 아니거든요, 저놈.”

두 사람과 장비를 합치면 100㎏이 훌쩍 뛰어넘는 무게다.

그런 것을 짊어지고 단거리 육상 선수 만큼의 속도를 내는 사람이 어찌 보통 사람일 수 있겠는가?

“대체 왜 소방관을 하고 있는 거지? 차라리 올림픽이라도 나가는 게 낫지 않겠나?”

“제 말이요.”

김강식이 웃으며 대답했다.

* * *

‘역시.’

불길은 빠른 속도로 번지고 있었다.

‘불이 퍼지는 속도가 지나치게 빨라.’

박상태와 화재 진압대가 초기 진압에 실패한 듯싶었다.

이대로라면 불길은 정말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퍼지며 주변을 초토화시킬 것이 뻔했다.

‘더 서둘러야겠어.’

집어삼켜지기 직전인 계단을 빠르게 통과한 수혁은 곧장 로비로 달려갔다.

로비 안에는 아직도 사람들이 남아 줄을 지어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워낙 큰 병원이었기에, 입원 환자와 관계자들의 수가 너무도 많았던 탓이다.

그래도 처음 수혁이 봤을 때보다는 훨씬 줄어들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잠시만 비켜주세요!”

수혁은 소리를 지르며 사람들 사이로 질주했다.

“어, 어어?”

소방관 한 명이 두 명을 든 채 달리자, 사람들이 당황해하며 다급히 길을 터주었다.

이렇게 급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면 위급한 환자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순식간에 로비 밖으로 나간 수혁이 두 명의 요구조자를 구급대에 맡겼다.

그러곤 숨을 돌릴 틈도 없이 다시 안쪽으로 뛰어들어 갔다.

다급해 보이는 수혁의 모습에 사람들이 궁금한 표정을 지었지만, 차마 붙잡고 물어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덕분에 빠르게 로비를 통과해 다시 계단으로 돌아온 수혁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젠장.”

이미 계단 쪽은 불길로 가로막혀 있었다.

‘어쩌지…….’

스킬을 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생명이 경각에 달한 상황도 아닌데, 괜히 스킬을 사용했다가 김강식이나 신재식의 눈에 띄는 것을 원치 않았다.

짐 머레이가 그동안 애를 써서 입막음해 놨던 것이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강식 선배.”

수혁은 무전기를 들어 김강식에게 말을 걸었다.

[말해.]

“계단 막힌 거 확인하셨어요?”

[그래, 안 그래도 지금 막 확인했다.]

김강식의 음성에는 낭패가 서려 있었다.

“일단 제가 뚫고 갈게요. 그쪽에서 섣불리 움직이지 말고 기다려 주세요.”

[알았다.]

불길을 뚫고 온다는 말에도 김강식은 별다른 반대를 하지 않았다.

수혁은 그 엄청난 화재 속에서도 말끔하게 살아 돌아온 사람이다.

불길이 거세긴 했지만, 이 정도는 충분히 통과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수혁은 잠시 심호흡을 한 뒤, ‘실드’를 사용했다.

예의 투명한 막이 수혁의 몸을 감싸 안으며 외부의 위험을 완벽하게 차단했다.

‘가자.’

수혁은 일말의 두려운 기색도 없이 불길 안으로 뛰어들었다.

화르르륵-!

‘실드’에 가로막힌 불길을 뚫고 순식간에 계단을 오른 수혁의 앞에 김강식과 신재식의 모습이 보였다.

“야! 너 괜찮냐?”

이렇게 빨리 저 안을 통과해서 나타날 줄은 몰랐던 김강식이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네, 멀쩡해요.”

숨소리 하나 흐트러짐 없는 수혁의 모습에 김강식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신재식은 다시 한 번 헛웃음을 지었다.

‘말이 되나, 저게?’

아무리 방화복을 입었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불을 완벽히 차단할 순 없었다.

불길에 휩싸이면 방화복 내부의 온도는 급격하게 상승하고, 인간의 육체는 그것을 견딜 도리가 없었다.

큰 부상은 입지 않는다 하더라도, 최소한 그 뜨거움에 엄청난 통증을 느끼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그것은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자신이 수도 없이 많이 겪어보았기에,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수혁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이쪽 길은 막혔어요.”

여긴 못 지나간다.

신재식이나 요구조자들은 물론이고, 김강식도 불가능했다.

억지로 움직인다면 어떻게든 빠져나갈 수야 있겠지만, 그 대가로 꽤나 큰 화상을 입거나 트라우마에 걸릴 것이다.

그런 위험부담을 안을 필요가 없었다.

“일단 위로 올라가요.”

병원은 총 8층.

위로 다섯 개 층만 더 올라가면 옥상이다.

일단은 옥상에서 상황을 보며 밑에 지원을 요청하는 것이 가장 나은 선택이었다.

‘사다리차를 부르든, 아니면 화재가 진압되기를 기다리든.’

병원의 크기는 꽤 커서 옥상 역시 넓었으니, 연기나 불길을 피할 공간 역시 충분했다.

“그게 좋겠군.”

김강식과 신재식도 수혁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사실 그 외의 다른 방법은 없었으니 말이다.

수혁은 김강식에게서 요구조자를 받아 들고는 함께 옥상으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후.

옥상에 도착한 수혁은 얼굴을 굳혔다.

아까부터 느껴지던 불안감이 이전보다 훨씬 더 거대해졌던 것이다.

어찌나 불안하고 불쾌한지.

수혁은 하마터면 헛구역질을 할 뻔했다.

재빨리 주변을 둘러보았다.

‘위험 감지Ⅲ’는 그 어떤 위험도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게 대체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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