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스큐 시스템-173화 (173/425)

레스큐 시스템 173화

‘위험 감지Ⅲ’는 특별히 위험한 것을 감지하지 못했다.

위험 요소라고 불릴 정도의 뭔가는 딱히 보이지도 않았고, 붉은 표시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수혁은 계속해서 불안했다.

‘이런 적이 예전에도 한 번 있었지. 빌라 화재였던가?’

아이를 안은 채 사다리를 이용해 옆 건물로 이동하려다 떨어졌을 때.

그때도 이런 불안감을 느꼈었다.

스킬은 발동하지 않았지만, 수혁의 육감이 먼저 알아차린 것이다.

수혁은 쉴 새 없이 주변을 살피며 환자들을 대피시켰다.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곧장 대응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렇게 한참 동안이나 환자들을 대피시키고 있는데, 대충 상황파악이 끝난 박상태와 김강식이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안쪽은 어떠냐?”

“복잡해요. 그래도 어느 정도는 질서가 잡혀서 앞으로 10분 정도면 거의 다 대피를 완료할 수 있을 것 같아요.”

“10분…….”

수혁의 말을 들은 박상태가 잠시 계산해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화재가 일어난 곳은 기계실 쪽인 것 같다. 원인은 아직 모르겠지만, 그쪽에서 폭발과 함께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고 하니까.”

“규모는요?”

“이제 가서 봐야지. 확인하고 온 관계자 말로는 아직 그리 크지 않다고 하는데, 언제 또 폭발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단다.”

폭발이 한 번 일어나면, 언제든 추가 폭발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만 했다.

그리고 두 번째 폭발은 처음보다 강할 확률이 높았다.

“너도 같이 간다.”

“저는 지금 환자를…….”

“잔말 말고 따라와.”

로비는 어느 정도 질서를 되찾고 빠르게 환자들을 대피시키고 있었다.

수혁이 빠진다고 해도 별 지장이 없어 보였다.

수혁은 잠시 로비의 상황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얼른 이 불안함의 정체를 확인하고 싶었다.

수혁과 박상태, 김강식.

그리고 화재 진압대의 대원들이 기계실로 향했다.

“음…….”

박상태의 말대로 화재는 그리 심하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수혁은 속으로 신음했다.

‘위험하다.’

주변이 온통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너무도 선명한 붉은색.

수혁은 조금 더 다가가 보려는 박상태의 어깨를 붙잡았다.

“물러나죠.”

박상태는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뒤를 돌아봤다가, 수혁의 굳어진 얼굴을 확인하고는 걸음을 멈추었다.

“지금 진화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만?”

뒤따라온 화재 진압대 대원 한 명이 박상태를 향해 말했다.

아직 화재의 규모가 크지 않은 지금 진화를 시작해야 빨리 끌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박상태는 고개를 저었다.

“물러난다.”

화재 진압대 대원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쳐다봤지만, 박상태는 자신의 명령을 철회하지 않았다.

“일단은 내 말대로 해. 지금은 물러난다.”

박상태의 단호한 명령에 대원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소속팀은 달랐지만, 어쨌든 박상태가 그보다는 상급자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수혁의 말 한마디에, 박상태와 김강식이 모두 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바로 여기서 물러나야 한다는 것.

수혁은 대원들을 데리고 붉은 표시 밖까지 뒤로 물러났다.

“여기 정도면 안전할 것 같네요.”

수혁의 말에 박상태가 조용히 속삭였다.

“무슨 일인데 그래?”

“위험해서요.”

“위험하다고?”

불길은 그리 크지 않았다.

한차례 폭발이 있었기에 주변이 엉망이긴 했지만, 화재 자체만 본다면 호스 하나로도 금방 끌 수 있는 정도에 불과했다.

그런데 위험하다니?

“혹시 또 폭발할 거 같냐?”

“네.”

“언제쯤?”

박상태가 혹시나 하며 물었다.

수혁이라면 그 폭발이 언제 일어날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웃기지도 않은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 말도 안 되는 질문에 수혁이 대답을 했다.

“그러니까……. 지금요.”

콰과과광-!

기계실이 폭발했다.

너덜너덜하게 걸려 있던 철문이 뜯겨져 나가며 한쪽에 처박히고, 벽이 무너져 내렸다.

거대한 화염이 치솟아 오르며 주변을 뜨겁게 달구고, 사방팔방으로 퍼져 나갔다.

화르르륵-!

불길은 복도를 따라 이동을 하며 위쪽까지 뻗어나갔다.

엄청나다고밖에는 할 말이 없을 정도의 위력이었다.

그럼에도…….

불길은 수혁과 일행이 있는 곳까지 닿지 않았다.

박상태와 다른 대원들이 눈을 부릅떴다.

만약 진화하겠다고 기계실 앞에서 알짱거리고 있었다면, 저 폭발에 그대로 휩쓸려 버리고 말았을 테니까.

벽이 무너질 정도의 폭발이다.

그런 것을 맨몸으로 견딜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만약 죽지 않고 살아난다고 해도, 절대로 평범한 부상에 그치지 않을 것이 확실했다.

박상태는 자신도 모르게 수혁을 쳐다봤다.

‘분명 지금이라고 했지?’

수혁이 말을 하는 것과 동시에 폭발이 일어났다.

그 말을 들은 것은 자신밖에 없는 것 같았다.

만약 모두가 들었다면, 지금 저들이 보고 있는 것은 저 앞이 아니라 수혁이었을 테니까.

반면 수혁은 심각한 표정으로 폭발 현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까부터 들었던 불안감의 정체가 이 폭발 때문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추가적인 폭발이 일어났음에도, 여전히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욱 짙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실체를 확인할 수가 없었고, 그저 느낌에 불과했는지라 수혁은 일단 뒤로 미뤄두기로 했다.

“상태 형.”

박상태는 수혁이 자신을 부르자 깜짝 놀랐다.

그러곤 정신을 차리며 재빨리 명령을 하달했다.

“화재 진압팀 더 불러. 김강식, 너는 수혁이랑 위쪽 확인해. 폭발 여파가 어느 정도나 퍼졌는지 확인하고, 도움이 필요한 요구조자 있으면 곧장 구조 실시하고.”

“알겠습니다.”

대원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화재 진압대는 주변의 소화전을 찾아 호스를 연결하며 무전기로 지원을 불렀고, 수혁은 김강식과 함께 위층으로 달려 올라갔다.

“큰 피해가 없어야 할 텐데.”

“아마 괜찮을 거예요.”

폭발은 강했지만, 화재가 발생한 곳 주변이었는지라 환자들을 미리 다 대피시켜 놓은 후였다.

걱정되는 것은 중환자실에 있는 환자들이었다.

그들은 아직 대피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동 자체가 힘든 상황이었으니, 최대한 조치를 취하고 난 후에야 대피를 시킬 수 있었다.

그래서 아직까지 대피를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폭발의 영향권에서는 조금 떨어져 있어 지금은 안전했지만, 방금 폭발로 화재가 번지기 시작했다.

서두르지 않으면 화재가 중환자실이 있는 곳까지 덮칠지도 모른다.

‘그전까지 불을 잡아야 할 텐데.’

충분히 가능해 보이긴 했다.

소방관들이 이미 출동해 있는 상태인 데다, 폭발로 인해 망가져 버린 아래쪽의 스프링클러와는 달리 위는 정상 작동을 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수혁은 영 안심이 되질 않았다.

정체불명의 불안감.

그것이 상황을 어떻게 악화시킬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빠르게 계단을 올라 위층에 도달한 수혁은 주변을 살폈다.

복도에 불길이 옮겨붙어 타오르기 시작하고 있었다.

수혁은 밖에서 들려오는 비명을 들으며 ‘생명 감지Ⅲ’를 사용했다.

‘사람이…….’

주변에서 사람이 가장 많은 곳은 중환자실의 환자와 의료진들이었다.

그들은 폭발을 느끼고는 혼비백산해서 다급히 움직이고 있었다.

‘아직은 괜찮아.’

저렇게 서두르고 있으니 불길이 도달하기 전까지는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른 곳은?’

수혁이 스킬을 사용한 상태로 주변을 살펴보았다.

‘……어?’

분명 이 주변은 모두 대피를 했을 터였다.

그런데 사람이 남아 있었다.

그것도 네 사람이나!

어딘가 부상을 입은 것인지, 아니면 원래부터 거동이 불편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넷은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아, 이런…….’

그런데 위치가 좋지 않았다.

그들이 향하는 방향은 이미 불로 길이 막혀 있었고, 뒤쪽 역시 이번 폭발로 인해 불길이 옮겨붙는 중이었다.

“이쪽이요!”

수혁은 다급히 외치며 요구조자들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렸다.

“야, 어디 가!”

김강식이 깜짝 놀라며 수혁의 뒤를 따랐다.

“요구조자가 있는 것 같아요.”

“요구조자? 어디?”

“위층이요.”

수혁은 그 대답을 끝으로 입을 다문 채, 계단으로 향했다.

‘뭐가 이렇게 복잡해?’

병원 내부는 미로 같았다.

만약 수혁에게 ‘미니 맵’이 없었다면 한참을 헤맨 후에야 계단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수혁은 속으로 투덜거리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여기서 꺾으면…….’

김강식과 함께 위층으로 올라간 수혁이 모퉁이를 돌아 앞을 확인했다.

그리고 의외의 사람을 발견했다.

“……신재식 대장님?”

놀랍게도 네 사람 중 한 명은 신재식이었다.

그는 환자복을 입은 채로, 다른 환자 세 명을 이끌고 있었다.

“김수혁?”

신재식 역시 수혁을 발견하고는 눈을 크게 떴다.

그러다 곧 이 병원이 신일서의 관할구역이라는 것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리 와서 나 좀 도와주지.”

“아, 알겠습니다.”

수혁과 김강식은 당황한 표정으로 그들을 향해 달려갔다.

“대체 왜 여기 계신 겁니까?”

신재식이 입원해 있는 병실은 여기와 한참 떨어진 곳에 있었다.

대피해도 한참 전에 대피했어야 할 사람이 왜 이런 곳에서 요구조자들을 구조하고 있단 말인가?

게다가 몸도 성치 않은 사람이…….

“불이 났는데 가만있을 수가 있어야지. 혹시나 하고 와봤다가 아직 대피 못 한 사람들을 발견했지.”

그러니까 사람을 구하다 혈액암에 걸렸음에도, 또 이렇게 사람을 구하러 왔단 말이다.

바로 며칠 전에는 수혁에게 남보단 자신을 챙기라고 했던 사람이 말이다.

‘이분도 천생 소방관이구나.’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런 상황에 다른 사람을 구하러 움직일 생각 따위는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남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평생을 바쳐 사람을 구한 대가가 이런 식이었으니 회한이 들 만했다.

그리고 분명 며칠 전에는 그런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막상 화재가 일어나자 언제 그런 말을 했냐는 듯, 이렇게 사람을 구하기 위해 나섰다.

이런 사람이 진짜 소방관이었다.

‘안타깝다.’

수혁은 요구조자 한 명을 부축한 채로 이동하며 신재식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봤다.

‘이렇게 희생적이고, 헌신적인 분을…….’

국가가 내다 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마치 헌신짝처럼 말이다.

이런 대한민국의 현실도 안타까웠고, 어떻게 도와줄 수도 없는 신재식의 상황도 안타까웠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겠네만, 그런 눈으로 보지 말게.”

갑작스러운 신재식의 말에 수혁이 뜨끔한 표정을 지었다.

“이 노인네가 죽으려면 시간이 아직 한참 남았으니, 그리 안타까운 눈으로 쳐다볼 것 없다는 말이네.”

신재식이 고개를 돌려 수혁을 쳐다봤다.

“이전에 자네에게는 그리 말을 했네만……. 평생을 해온 업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움직이고 말았지. 머릿속은 가지 말라고 소리를 치는데, 몸이 제멋대로 움직이더라 이 말이야.”

신재식이 허허- 하고 웃었다.

“버릇인지, 아니면 본능인지.”

자신이 부축하고 있는 머리가 희끗한 노인을 한번 힐끔 쳐다본 신재식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어쩌겠나, 이 지경이 되어서도 나는 소방관인 것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