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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172화 (172/425)

레스큐 시스템 172화

남보다 자신을 먼저 챙겨라.

지극히 이기적인 말처럼 들릴 수도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 말을 한 주체는 신재식이다.

평생을 바쳐 다른 사람을 돕고,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으며 남을 구한 영웅.

그런 사람이 한 말이었다.

때문에 그 말은 이기적으로 들리지가 않았다.

그저 병든 소방관의 후회와 회한으로 얼룩진 넋두리.

“……노력해 보겠습니다.”

이전에도 수도 없이 많이 들었던 말이다.

박상태에게도 들었고, 친구인 고승우에게도 들었고, 수혁이 구조하는 모습을 본 이들은 항상 그런 말을 해왔다.

“몸을 사려라.”

“살아서 돌아와야 할 것은 요구조자만이 아니다.”

“자신을 소중히 여겨라.”

머릿속으론 알고 있는 이야기였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들의 걱정이 마음속에 와닿진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신재식의 말은 수혁의 마음을 묵직하게 울렸다.

그것이 신재식이 한 말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죽을 뻔한 부상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번에는 그 말이 절대 가벼이 들리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수혁이 진지한 얼굴로 대꾸하자 신재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수혁이 자신의 말을 허투루 듣지 않은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무거운 얘기는 여기까지만 하지.”

괜히 분위기가 가라앉은 것 같자, 신재식이 껄껄- 웃으며 이야기를 돌렸다.

대화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신재식의 영웅담으로 흘러갔고, 박상태와 신재식은 웃으며 그날의 추억들을 회상했다.

수혁 역시 웃고 떠들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지만, 사실 머릿속은 복잡했다.

‘‘회복Ⅱ’이 나 말고 다른 사람에게도 사용이 될 수 있는 거면 좋을 텐데.’

혹시나 하는 생각에 신재식을 향해 사용해 봤지만, 발동 자체가 되질 않았다.

‘하긴, 그게 가능하면 소방관보단 의사를 하는 게 낫겠다.’

수혁이 피식- 웃고는 다시 대화에 집중했다.

아쉽지만, 수혁에게는 저 병든 영웅을 도와줄 방법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하늘에 기도하는 수밖에.

* * *

“벌써 몇 번째냐?”

박상태가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네 번……. 아니, 다섯 번째네요.”

“오늘 역대급 아니냐?”

“네, 오늘이 최고인 것 같네요.”

박정우 역시 잔뜩 찡그린 얼굴로 박상태에게 대답해 주었다.

“대체 왜들 이러는 건지 알 수가 없네, 정말. 이러다 다른 곳에서 정말 사고가 터지면 어떻게 하려고.”

구조 3팀은 현재 비철(현장 도착 전 출동이 취소되는 상황) 중이었다.

단순히 오인 신고나 상황이 종료되었다면 이렇게 짜증이 나질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큰일이 없어 다행이라며 안도했으면 했지.

하지만 이건 명백한 허위 신고였다.

그것도 악의가 가득한.

평소였다면 그냥 웃고 넘어갔을 일이었지만, 두 시간 동안 다섯 번의 장난 전화를 받고 출동과 복귀를 반복하고 있었으니 짜증이 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수혁 역시 마찬가지였다.

헛걸음을 한 것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박상태의 말처럼, 만약 이런 상황에 정말로 다른 곳에서 사고가 일어난다면?

정말로 도움이 필요한 곳에 늦어 소중한 생명을 잃을 수도 있었다.

수혁은 그것이 화가 났다.

“도착하면 상황실에 얘기해 놓는 게 좋겠어요.”

“이미 했다. 경찰에 신고해 놓으라고. 이건 장난을 넘어섰어.”

119에 장난으로 허위 신고를 하면, 경범죄로 처벌을 받는다.

처벌 수위 60만 원 이하의 벌금 정도.

경범죄 중에서는 처벌 수위가 가장 무거운 수준이었다.

하지만 수혁은 그 정도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지금보다 처벌이 강해져야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않을 테니까.

짜증과 분노가 가득한 분위기 속에서 구조차가 신일서에 도착했다.

구조 3팀은 투덜거리며 차에서 내려 사무실로 돌아갔다.

“한 번만 더 해봐라. 아주 그냥 공무집행방해로 쳐넣어 버릴라니까.”

이재한이 이를 갈며 말하자, 박상태가 그의 뒤통수를 살짝 쳤다.

“네가 소방관이지 경찰이냐?”

“비슷하지 않습니까? 경찰은 민중의 지팡이. 우리는 뭐, 민중의 도끼 정도?”

애써 불쾌감을 털어내려는지, 이재한이 썰렁한 농담을 했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는 집어치우고, 일이나 해.”

며칠 전, 신재식을 보고 온 뒤로 박상태의 심기는 매우 좋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 이런 일까지 생기니 까칠하기 그지없었다.

이재한이 머쓱한 표정으로 자신의 책상으로 가서 앉았다.

이럴 때는 아무런 말도 하지 말고 그냥 조용히 일이나 하는 게 상책이었다.

하지만 그때였다.

[화재 출동, 화재 출동.]

“아오 씨. 앉아 있을 틈이 없네, 틈이 없어!”

이재한이 소리를 지르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수혁 역시 재빨리 뛰며 생각했다.

‘이번에는 아니겠지.’

왠지 불안했다.

혹시 또 장난으로 한 허위 신고라면, 정말 화를 참을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구조 3팀은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며 구조차에 탑승했다.

“출발하겠습니다.”

이윽고 모두를 태운 구조차가 출발을 했다.

상황실을 통해 상황을 전달받던 박상태가 짜증이 가득한 음성으로 물었다.

“혹시 이번에도 허위 신고인 건 아니겠죠?”

[아닐 겁니다.]

“확실합니까?”

이미 다섯 번이나 연속으로 출동하며 시간을 허비했다.

이번에도 장난이 아니라는 법은 없었다.

박상태의 물음을 들은 상황실의 대원은 머뭇거리며 잠시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 조심스러운 음성으로 대답했다.

[확실한 건 현장에 도착을 해봐야 알 것 같습니다.]

그것을 들은 박상태는 하마터면 욕을 할 뻔했다.

하지만 상황실에서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그들은 그저 성실히 자신의 일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알겠습니다.”

심호흡하며 화를 다스린 박상태는 그렇게 대답을 하고는 무전을 끝냈다.

“결국 가봐야 알 것 같다.”

신고받은 내용은 한 상가건물 지하에서 화재가 일어났다는 것이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심각한 일이었기에 대원들은 잔뜩 긴장하며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현장에 도착했다.

“내가 이놈의 새끼를 잡으면 가만히 안 둔다.”

박상태가 이를 악다물었다.

화재는커녕 작은 연기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하로 내려가 봤지만, 노래방 하나가 멀쩡히 영업하고 있었다.

또다시 이어진 허탕에 짜증과 화를 넘어, 장난 전화를 한 놈을 죽여 버리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화재 진압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도 질렸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복귀 준비를 하고 있었다.

“돌아간다.”

박상태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을 한 채 차로 돌아갔다.

대원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도 화가 났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서로 복귀를 하려 하는데, 마침내 우려하던 일이 터졌다.

[XX 병원에 화재가 일어났다는 신고입니다.]

“……뭐요?”

[갑작스런 폭음과 함께 불길이 일어났고, 지금 병원에선 환자들을 대피시키고 있는 중이라고 합니다.]

“이번엔 확실합니까?”

[확실합니다. 중복된 신고가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런 썅!”

박상태가 무전기를 집어던지다시피 내려놓고는 욕을 했다.

화재가 일어난 병원은 지금 자신들이 출동한 곳과는 완전 정반대에 위치해 있는 곳이었다.

서에서 바로 출동을 하는 것보다 최소한 5분 이상 더 걸린다는 뜻이었다.

장난 전화 한 통 때문에 현장 도착 시간이 늦게 생겼다.

고작 5분 가지고 너무 흥분하는 것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현장에서의 5분은 생각보다 크다.

그 짧은 시간 때문에 구할 수 있는 생명을 잃을 수도 있었으니까.

거기다 그 병원에는…….

‘그분이 입원해 있지.’

바로 며칠 전 문병을 다녀온 신재식이 있는 병원이었다.

“빨리 출발해!”

박상태의 외침에 기관원이 허겁지겁 차를 출발시켰다.

차는 그야말로 쏜살같이 도로를 질주했다.

그렇지 않아도 늦은 판에 여유 있게 이동을 할 틈이 없었다.

펌프차와 구조차, 구급차가 모두 사이렌을 울리며 병원으로 이동했다.

그렇게 10분.

속이 바짝 타들어가는 사이, 앞쪽에 병원이 보이기 시작했다.

‘젠장.’

그것을 본 수혁이 속으로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었다.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절대로 작은 불이 아니었다.

주변은 소란스러웠고, 간호사와 의사들이 환자들을 끊임없이 내보내고 있는 것이 보였다.

‘퀘스트는?’

뜨지 않았다.

퀘스트가 안 떴다고 해서 얕볼 수 있는 현장이 아니라는 것은 그동안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기에, 수혁은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이재한, 강효상, 박정우, 김수혁, 너희 넷은 도착하자마자 안으로 들어가서 환자들을 데리고 나와라. 나랑 강식이는 일단 상황설명 듣고, 그 후에 지시를 내려줄 테니까.”

연기의 양으로 보나, 현장의 규모로 보나.

가만히 앉아서 상황 설명을 듣고 있을 시간은 없어 보였기에, 박상태는 일단 그렇게 지시를 했다.

“알겠습니다.”

대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도착하자마자 뛰쳐나갈 준비를 했다.

잠시 후, 구조차가 도착했다.

수혁은 차가 멈춰 서자마자 문을 열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일단 정문을 향한 수혁은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 사이로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아비규환(阿鼻叫喚).

조금이라도 빨리 밖으로 빠져나가려는 사람들과 질서유지를 위해 애쓰는 병원 관계자들로 인해, 병원 안쪽은 난리도 아니었다.

“우리 아버지부터 내보내 달라고!”

이십대 청년 한 명이 소리를 질렀다.

“우리 애부터!”

소리를 지르는 것은 대부분 홀로 거동할 수 없는 환자의 보호자들이었다.

온갖 의료 장비를 달고 있었기에 의료진의 도움 없이는 이동할 수도 없는 환자들.

간호사들은 열심히 환자들을 옮기고 있었지만, 환자에 비해 너무도 수가 부족했다.

위급한 사람들부터 순차적으로 대피시키고 있었지만, 필연적으로 순서가 뒤로 밀려난 이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들의 보호자들은 간호사들의 멱살까지 잡고 화를 내는 상태였고.

“주목해 주세요!”

병원 로비에 들어선 수혁이 크게 소리를 질렀다.

어찌나 크게 외친 것인지, 순간적으로 적막이 찾아올 정도였다.

“지금부턴 저희 지시대로 움직여 주십시오.”

사람들의 이목이 자신에게 집중이 되자 수혁은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는 이재한과 강효상을 쳐다봤다.

둘은 고개를 끄덕이며,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간호사에게 다가갔다.

“누구부터 옮기면 되겠습니까?”

간호사 인력이 부족하니 자신들이 나서서 돕는 수밖에 없었다.

의학적인 지식은 거의 없었지만, 나름대로 짬밥이 있었는지라, 지시만 정확히 내려주면 대피시키는 데는 크게 문제가 없었다.

고작 네 명에 불과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는 큰 도움이 될 터였다.

“이, 이분들부터…….”

혼란에 빠져 있던 간호사는 이재한의 말에 정신을 차리며 대원들이 대피시켜야 할 환자들을 지목해 주었다.

‘서둘러야 돼.’

수혁은 간호사의 지시대로 환자가 누워 있는 침대를 밀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병원 안으로 들어온 순간부터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이곳은 굉장히 위험하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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