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171화
“같이 일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군요.”
전승철의 말에 수혁이 어색하게 웃으며 박상태의 눈치를 살폈다.
특수 구조대에 오라는 말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말을 박상태 앞에서 하다니…….
어지간히 눈치가 없는 건지, 아니면 그만큼 수혁을 탐을 내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다행히 박상태는 별다른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그저 덤덤한 눈으로 전승철을 쳐다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뭐, 기회가 된다면요.”
수혁은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해 주었다.
물론 언젠가는 특수 구조대로 옮길 생각이긴 했지만, 그것을 박상태 앞에서 대놓고 내색을 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박상태가 수혁과 같은 마음이라고 해도 그것은 예의가 아니었으니까.
전승철도 그제야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박상태에게 고개를 살짝 숙였다.
“이거, 제가 실언을 했군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 녀석은 특수 구조대에 어울리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박상태는 신경 쓰지 말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전승철은 고맙다는 표정으로 잠시 둘과 대화를 더 나누다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복귀를 해봐야겠군요, 언제 또 출동이 떨어질지 모르니. 애들도 좀 쉬게 해야 하고.”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에 또 뵙죠.”
전승철은 수혁과 박상태를 한 번씩 번갈아 보고는 몸을 돌려 자신의 대원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우리도 정리하자.”
화재는 아직 진압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처음 거세게 타오르던 것에 비하면 꽤 규모가 줄어들었다.
이대로면 10분 이내에 진압이 가능할 것 같았다.
화재는 화재 진압팀에게 맡기기로 하고, 구조 3팀은 일단 복귀를 위한 정리를 시작했다.
전승철이 했던 말처럼, 언제 또 출동 명령이 떨어질지 알 수 없었으니 미리미리 준비를 해두는 것이 좋았다.
특수 구조대 덕분에 조금 한가해지긴 했다지만, 그래도 다른 지역에 비하면 여전히 출동이 잦았다.
“가고 싶냐?”
“네?”
장비를 정리하던 수혁이 갑작스런 박상태의 질문에 시선을 돌렸다.
“특구, 가고 싶냐고.”
“그렇긴 하죠.”
수혁이 그런 것은 왜 묻냐는 표정을 짓자, 박상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라면 가는 게 맞지. 한 번 알아봐 줄까?”
박상태의 말에 수혁이 웃었다.
그런 것이라면 박상태보다 짐 머레이를 통하는 것이 훨씬 빠르고 쉬웠다.
그럼에도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더는 빚을 지고 싶지 않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지금 당장 급하게 움직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더 컸기 때문이었다.
과거로 돌아온 지 이제 고작 1년 남짓.
그마저도 꽤 오랜 시간을 병원에만 누워 있었으니…….
신일서 구조 3팀 동료들과 조금 더 함께하고 싶었다.
지금처럼 웃고 떠들며, 이전 생에서의 향수에 젖어들고 싶었다.
그 시간이 그리 오래 가진 않겠지만.
억지로 특수 구조대로 가기 위해 손을 쓸 생각은 없었다.
“괜찮아요. 나중에 공고 뜨면 가면 돼요. 아직은 여기서 더 있고 싶네요.”
수혁의 대답에 박상태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라, 그럼.”
박상태는 무심한 듯 말하며 장비를 들고 구조차로 향했다.
그런 그의 입가에는 아주 작게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 * *
“얘기 들으셨습니까?”
평범한 날의 오후.
조금 전 교통사고 현장에 다녀와 복귀한 구조 3팀이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뭔가 떠올랐다는 듯한 표정의 박정우가 입을 열었다.
“또 뭔데?”
이재한이 의자에 앉아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로 물었다.
“조연서에 신재식 대장님 아시죠?”
“알지. 이 동네에서 그분 모르면 간첩 아니냐?”
구조 경력 33년.
베테랑 중 베테랑.
그 기간 동안 신재식이 구한 인명은 그야말로 셀 수도 없을 정도였다.
지금은 일선에서 물러나 현장 출동을 그리 자주 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이 지역 소방관들에게는 존경스러운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분이 왜?”
“암이시랍니다.”
이재한의 고개가 돌아갔다.
만사가 다 귀찮다는 듯 심드렁했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눈이 커져 있었다.
그것은 다른 대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수혁만 제외하고.
‘아, 그때가 됐구나…….’
이전 생에서도 벌어진 일이었다.
소방관들의 공분을 사고, 언론에까지 보도되며 이슈가 되었던 일.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잊힌 그 일.
“암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박상태가 얼굴을 찌푸리며 물었다.
실제로 같은 현장에서 일을 해봤던 경험도 있어 서로 알고 있는 사이인 박상태는 조금 더 충격을 받은 듯했다.
“조연서에 있는 친구가 얘기해 준 건데……. 혈액암이시랍니다.”
혈액암이라는 소리에 박상태가 눈을 질끈 감았다.
혈액암은 소방관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질병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공상은?”
“불승인이요. 혈액암 발병 원인이 소방관 업무와 뚜렷한 인과관계가 없다면서.”
“아, 이런 미친…….”
드물지 않은 경우다.
겉으로 보이는 외상은 공상 처리가 수월했다.
하지만 암과 같은 질병은 달랐다.
방금 박정우가 말한 것처럼, 암에 걸린 이유가 소방관 일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병원에서는 분명 그럴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얘기를 함에도, 공무원 연금 공단에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화재 현장에서 사람을 구하다 벤젠이나 폼알데하이드 같은 물질에 노출이 되면 그것들은 곧장 혈액으로 녹아 들어간다.
혈액암에 원인이라 볼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증명이 부족하다며 공상 불승인을 내린다.
소방관과 그의 가족들은 그것을 인정받기 위해 자비로 치료하며, 소송까지 불사하는 경우가 허다했고.
“제발 미국의 반만이라도 닮았으면 소원이 없겠네.”
김강식이 마른세수를 하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우리나라는 소방관들이 병에 걸리면, 직접 인과관계를 증명해야만 한다.
정말 그 현장에 나갔는지, 유해물질 노출량이 얼마나 되는지.
공상을 신청한 당사자가 직접 입증을 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달랐다.
아니, 정반대였다.
일단 미국에선 혈액암을 포함한 호흡기 관련 질병을 모두 공무상 상해로 인정한다.
소방관 경력 5년 이상이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고,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만약 불승인을 내리려면, 소방관의 업무와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는 것을 관할 기관에서 직접 증명해야 한다.
달라도 너무 다른 처우.
막대한 보상금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치료비와 가족들을 위한 연금 정도만 나오면 더는 바랄 게 없을 텐데…….
이 나라는 그마저도 해주지 않는다.
이럴 때면 자신의 생명을 걸고 사람을 구하는 것에 회의감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어떻게 하신다디?”
“저도 그것까진 아직…….”
사무실 안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1년에도 몇 번씩 들려오는 이야기이긴 했지만, 같은 지역에서 수십 년간이나 애써온 사람이 그런 일을 당하니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지금 병원에 입원해 계신가?”
“네, 아무래도 일을 계속하실 순 없는 상태이시니까요.”
박상태는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오늘 퇴근 후에 시간 되는 사람?”
박상태가 무슨 말을 할지 이미 짐작한 구조 3팀은 전원 시간이 있다고 대답했다.
“그럼 끝나고 문병이나 다녀오자.”
“알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꽤나 피곤했다.
꽤나 힘들었던 구조 현장만 다섯 번 이상 나갔고, 화재 출동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이런 자리를 빠질 순 없었다.
다음 차례는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구조 3팀은 잔뜩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 각자 생각에 잠겼다.
“뭐 하러 왔어?”
“뭐 하러 오긴요? 잘 계신가 한번 보러 온 거지.”
“그 시간에 쉬어라, 인마. 오려면 혼자 오던가. 뒤에 있는 애들 표정 썩어가는 거 안 보이냐?”
“다들 자발적으로 온 겁니다.”
신재식은 8인 병실 안에서 홀로 누워 멍하니 천장만을 바라보다, 박상태를 보고는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
입 밖으로 나온 말은 퉁명스러웠지만 말이다.
“여긴 뭐 음료수도 없습니까?”
“니가 사온 거 마셔라, 그냥.”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습니다.”
수혁을 비롯한 대원들은 신재식에게 인사를 건네고는 침대 옆에 섰다.
8인 실이었는지라, 장소가 협소해 모두가 앉을 만한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사람들 불편하게 우르르 몰려와서는.”
신재식이 혀를 차며 박상태를 흘겨봤다.
“원래 문병은 이렇게 시끌시끌해야 되는 겁니다.”
박상태는 본인이 한 말대로, 자신들이 사온 음료수를 꺼내 마셨다.
“몸은 좀 어떠세요?”
“아직은 괜찮다. 정말 암인가 싶기도 하고…….”
다행이라고 해야 할는지.
신재식의 안색은 그리 나빠 보이지 않았다.
회한이 조금 서려 있는 것을 제외하면 크게 어두워 보이지도 않았고.
“그러니까 몸 좀 사리시라니까.”
박상태의 말에 신재식이 픽-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인마, 내가 몸을 사렸으면 구할 사람도 못 구했어.”
“다른 사람 그렇게 많이 구하면 뭐합니까?”
‘본인이 죽게 생겼는데’라는 뒷말은 삼켰다.
하지만 충분히 의미는 전달이 됐는지, 신재식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나.”
“하여간…….”
박상태는 신재식과 시답잖은 대화를 이어나갔다.
일부러 예민한 주제는 꺼내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힘들 신재식의 기분을 다운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참 동안이나 이야기하던 신재식의 시선이 문득 수혁을 향했다.
“자네가 소문의 그 젊은이구만?”
“저 말입니까?”
“그래, 이름이 뭐였더라…….”
“김수혁입니다.”
“그래, 김수혁.”
신재식이 새삼스러운 눈으로 수혁을 쳐다보았다.
“듣던 것보단 평범하게 생겼는데?”
“뭐라고 들었는데요?
신재식이 웃으며 말하자 박상태가 물었다.
“난 무슨 헐크 같은 사람을 예상했는데 말이지.”
박상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수혁의 활약상만 듣는다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었다.
“저래 봬도 피지컬이 엄청난 놈입니다.”
“내가 듣기도 그랬어. ……무모하다는 얘기도 들었고.”
신재식은 수혁을 똑바로 쳐다봤다.
“나는 원래 이런 꼰대 짓을 별로 안 좋아하는데 말이야.”
“그 말부터가 꼰대 같은데.”
박상태가 옆에서 중얼거렸지만, 신재식은 그것을 무시하며 말을 이었다.
“나도 원래 자네처럼 사람을 구하려고 물불 안 가리며 달려들었거든.”
신재식은 젊을 적 꼴통으로 유명했다.
지금의 수혁과 같은 포지션을 선점한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정도로 말이다.
“그때는 그게 옳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사람을 구하면 뿌듯하기도 했지. 그래서 더 내 몸을 사리지 않고 구조에 열을 올렸는지도 몰라. 그런데 말이지.”
신재식은 잠시 숨을 골랐다.
그러곤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지 말게. 자네 몸을 소중히 해. 나중에 나처럼 후회하고 싶지 않다면.”
부질없다.
그렇게 보람차고 자랑스러웠던 일이, 지금은 후회로 얼룩진 상처가 되었다.
신재식은 후배가 자신과 같은 길을 걷길 바라지 않았다.
“남보다 자신을 먼저 챙기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