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169화
‘특수 구조대라…….’
서로 복귀한 수혁은 책상에 앉아 조금 전 본 특수 구조대의 모습을 떠올렸다.
‘아직은 잘 모르겠네.’
확실히 인상적인 모습이긴 했다.
전승철뿐만이 아니라, 대원들 모두 노련했고, 빨랐으며, 프로다웠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지금의 자신은 그들보다 훨씬 더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이전 생에서 처음으로 특수 구조대를 봤을 때의 충격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들어가는 게 좋겠지?’
지금은 모집도 하지 않고, 자리도 없었기에 무리겠지만 언젠가는 특수 구조대에 지원해야 할 것이다.
신일서의 동료들과 떨어지는 것이 좀 아쉽긴 하지만, 이건 기회나 다름없었다.
더 넓은 현장으로 향하고,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는 기회.
자신이 알고 있는 구조 3팀이라면 분명 응원을 해줄 것이다.
‘뭐, 그래 봐야 나중 일이긴 하지만.’
수혁이 피식- 웃었다.
떡 줄 놈은 생각도 하지 않고 있는데 혼자 김칫국 드링킹을 원샷으로 하고 있었으니…….
“뭐가 그렇게 웃겨?”
수혁의 앞에서 서류 작업을 하고 있던 박정우가 그 모습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싱겁기는.”
박정우는 좀이 쑤시는지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기지개를 켰다.
“그나저나 특구 대단했지?”
아니나 다를까, 박정우가 더는 입을 쉬지 못하고 특수 구조대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러게요.”
“멋있기도 했고, 이제부턴 저희가 맡겠습니다! 파바밧! 구조 끝! 이야, 무슨 영화 보는 줄 알았다니까?”
‘그 정도는 아니었지 않나?’
무슨 영화까지야.
하지만 박정우는 특수 구조대 뽕을 제대로 맞았는지, 눈에서 하트가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나도 들어갈 수 있을까, 응? 지금부터라도 준비를 좀 하면 될 것 같지? 어떻게 생각해?”
“음…….”
수혁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박정우는 좋은 소방관이다.
아직 경력이 그리 오래되진 않았지만, 나름대로의 노하우도 갖고 있었고, 현장에서도 제법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특수 구조대에 들어갈 수 있겠냐고 물어본다면…….
‘무리지, 지금은.’
힘들 것이다.
아니, 불가능하다고 봐도 좋았다.
사실 박정우 정도의 실력을 지닌 소방관은 많았다.
BEST OF BEST.
최고 중 최고들만 갈 수 있다는 특수 구조대에 들어가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넌 인마, 수혁이 난감하게 만들지 말고 조용히 해.”
이야기를 듣고 있던 김강식이 혀를 차며 박정우를 말렸다.
“뭐가요? 야, 너 나 때문에 난감하냐?”
“아, 아니요. 괜찮은데.”
“괜찮다잖아요.”
박정우가 그것 보라는 듯한 표정으로 김강식에게 말했다.
“저게 괜찮은 표정이냐? 애초에 너한테 특구가 가당키나 하겠냐.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차마 수혁이 하지 못한 이야기를 김강식이 대신해 주었다.
그 소리에 박정우가 상처받은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노력하면…….”
“너 지금부터 공부 다시 시작할 자신 있어?”
김강식의 물음에 박정우는 입을 다물었다.
특수 구조대는 체력만 좋다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시험도 봐야 했고, 경력도 일정 이상 쌓아야만 했다.
지금도 틈만 나면 치즈와 빈둥거리며 노는 박정우가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며 특수 구조대 지원을 준비한다?
지나가던 개도 믿지 않을 소리였다.
“안 해요, 안 해.”
박정우가 삐쳤는지 책상에 고개를 묻으며 퉁명하게 대꾸했다.
그 모습이 귀여웠는지 김강식이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그냥 여기 있어. 너한텐 여기가 더 나아. 특구는 수혁이 같은 애들보고 하라고 하고.”
갑자기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수혁이 눈을 돌려 김강식을 쳐다보았다.
“가고 싶지? 특구?”
“아, 네. 뭐…….”
왠지 자신의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민망해졌다.
“뭐? 너 특구 가려고?”
박정우가 묻고 있던 머리를 번쩍- 들며 수혁에게 물었다.
“아, 좀 조용히들 일 안 해?”
멀리서 일을 하고 있던 박상태가 결국 소란을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팀장님! 수혁이 특구 간대요!”
“아니, 제가 언제 간다고 그랬어요?”
느닷없는 고자질에 수혁이 당황했다.
그러면서 다른 대원들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박정우의 말에 크게 신경을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저놈이 특구를 가든, 어디를 가든, 네가 왜 호들갑이야?”
박상태 역시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박상태는 수혁이 특수 구조대를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수혁이는 특구에 가는 게 낫지.”
“그렇지.”
김강식과 이재한도 수혁이 특수 구조대에 간다는 것을 두 팔 벌려 환영하고 있었다.
“와, 너무들 하시네. 나는 어림도 없다고 그랬으면서.”
“너랑 수혁이랑 같냐?”
박정우가 좋은 소방관인 것은 맞았지만, 그렇다고 수혁과 비교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구조 3팀이 생각하는 수혁은, 대한민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 내놔도 탑 급에 속할 것이 분명했으니까.
그런 실력을 지닌 구조대원을 이런 작은 서에 처박아두고 사용하는 것도 낭비나 다름없었다.
수혁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언젠간 가기야 하겠지만, 그것은 나중 일이었다.
그런데 대원들은 당장에라도 수혁이 특수 구조대로 떠나기라도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저 아직은 못 가는데요?”
“뭐, 그렇긴 하지. 이제 막 설립됐으니 당분간은 모집 공고가 뜰 리도 없고.”
“그러니까 다들 설레발치지 말고 일이나 해. 박정우, 너 일지 다 썼어? 지금 그게 며칠째 밀려 있는 줄 알아?”
박상태의 말에 박정우가 뜨끔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일이 밀려 있다는 얘기까지 나왔으니, 더는 잡담하고 있을 순 없었다.
그랬다간 박상태에게 눈물이 쏙 빠질 때까지 혼이 날 테니까.
순식간에 사무실 안이 조용해지자 수혁이 작게 웃었다.
이전 생에서부터 느껴온 것이었지만, 참 좋은 사람들이었다.
‘특구라…….’
잠시 특수 구조대에 대한 생각을 떠올렸던 수혁이 고개를 저었다.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지금은 일을 할 때였다.
일이 밀리면 혼나는 것은 수혁 역시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며칠간 평범한 일상이 이어졌다.
출동을 나가고, 사람을 구하고.
특수 구조대가 생긴 덕분인지, 조금은 한가한 느낌도 들 정도였다.
“매일 이랬으면 소원이 없겠네.”
저녁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향하던 이재한이 중얼거렸다.
“저도요.”
요즘엔 밥을 먹다 뛰쳐나가는 일도 드물었다.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예전과 비교해 보자면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다른 건 몰라도 밥 먹을 시간이 있으니까 훨씬 낫네.”
때를 맞추지 못해 현장에 나가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운 적이 한두 번이던가?
그렇지 않아도 체력소모가 많은 일이었는데, 고작 컵라면을 먹으면서 버티려니 죽을 맛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식당 아주머니가 해주는 밥을 든든하게 먹고 일을 하니, 체력 부담도 훨씬 줄어든 느낌이었다.
“오늘의 메뉴는 뭘까?”
이재한은 콧노래까지 부를 정도였다.
“와! 제육볶음!”
밖까지 풍겨오는 매콤한 냄새에 박정우가 메뉴를 눈치채고는 후다닥 달려서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박정우가 말한 것처럼 메뉴는 제육볶음이 맞았다.
다른 대원들도 웃으며 식판에 밥과 제육볶음을 담았다.
예전 같으면 감탄할 시간에 밥 한 숟가락이라도 더 욱여넣었겠지만, 지금은 여유롭게 식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너무 여유를 부렸던 탓일까?
하늘이 더는 구조 3팀이 한가하게 밥을 먹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화재 출동, 화재 출동.]
“아니!”
경건한 모습으로 첫 쌈을 싸고 있던 박정우가 절망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입에 쑤셔 넣고 뛰어!”
“아직 마늘밖에 못 넣었다고요!”
박정우는 울상을 지으며 마늘쌈을 입에 넣고는 달리기 시작했다.
수혁 역시 급히 집어 들었던 제육볶음을 입에 넣고는 달렸다.
실로 오랜만에 식사 중 출동이었는지라, 수혁도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아쉬운 마음과는 달리, 몸은 이미 구조차에 탑승한 뒤였다.
뒤따라 온 대원들이 모두 탑승을 완료하자 구조차가 출발했다.
“상황 부탁드립니다.”
[신일동에 있는 단독 주택에서 화재가 일어났다는 신고입니다. 요구조자는 두 명으로 파악이 되었고, 한차례 가스 폭발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단독 주택.’
딱히 기억에 남는 화재는 아니었다.
별다른 일이 없이 구조에 성공한 현장이었거나, 아니면 이전 생에선 일어나지 않았던 화재일 수도 있다.
수혁으로 인해 바뀐 것이 많았으니, 아주 가능성이 없는 일은 아니었다.
“들었지?”
박상태가 고개를 돌리며 대원들에게 물었다.
“네.”
“화재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진입할 수 있을 것 같으면 바로 들어갈 테니까. 내리자마자 준비해.”
“알겠습니다.”
수혁과 대원들은 방화복을 챙겨 입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현장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기에 구조차는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할 수가 있었다.
구조차에서 재빨리 내린 수혁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눈앞이 붉었다.
‘위험 감지Ⅲ’가 발동된 것은 아니었다.
단순히 타오르고 있는 불길의 빛이 주변을 밝히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규모가 생각보다 훨씬 컸다.
수혁의 뒤를 따라 차에서 내리던 다른 대원들의 표정 역시 굳어졌다.
“심한데?”
신고를 받자마자 5분도 되지 않아 도착했음에도, 단독 주택은 이미 불길에 대부분 집어 삼켜진 채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이건 바로 못 들어가.”
불길이 어느 정도 잡혀야 한다.
대체 어디가 입구인지도 알 수 없을 정도였으니, 이대로 들어갔다간 통구이가 될 판이었다.
“일단 대기하고 있어.”
박상태도 현장을 확인하고는 화재 진압팀장과 이야기를 하러 자리를 옮겼다.
수혁은 ‘생명 감지Ⅲ’을 사용했다.
이전보다 업그레이드가 되어서인지, 이제는 단순히 느낌이 아닌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가 있었다.
푸른 점 두 개가 건물 안에 선명히 찍혀 있는 것이 보였다.
‘아직은 무사하다.’
상황실에서 가르쳐 준 것처럼 요구조자는 두 명이었다.
둘은 한 곳에 모여 그나마 불길에서 가장 안전한 곳에 피신해 있는 것 같았다.
‘서둘러야겠는데.’
지금은 무사하지만 위태로웠다.
불길은 심했고, 저 안에는 불을 피할 곳이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다.
“5분간 기다린다. 그 후에 길이 뚫리면…….”
박상태가 말을 하며 수혁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 눈빛을 받은 수혁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대충 무슨 의미인지 알아차린 것이다.
‘요구조자 위치를 알고 있냐고 묻는 거겠지.’
시장에서 수혁은 귀신같이 요구조자들의 위치를 찾아냈다.
예전에도 그런 식이긴 했지만, 그때는 정말 놀랍다는 말밖에는 나오지 않을 정도로 정확했다.
박상태는 혹시 이번에도 그런지 확인한 것이었고.
수혁이 고개를 끄덕이자 박상태가 조금은 안도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나랑 김수혁, 둘이 들어간다. 나머지는 화재 진압 도와.”
“알겠습니다.”
요구조자는 두 명.
그들의 위치를 알고 있다면 굳이 많은 사람이 들어가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었다.
수혁이 장비를 챙기며 안으로 들어갈 준비를 했다.
그런데 또 다른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고개를 돌리자, 눈에 익은 구조 차량이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또 특구가?’
특수 구조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