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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168화 (168/425)

레스큐 시스템 168화

특수 구조대 차량에서 내린 사람은 한눈에 봐도 ‘크다’라는 느낌을 받을 정도의 거구였다.

그는 대원들에게 뭔가를 지시하고는 이쪽으로 다가왔다.

“수고하십니다.”

‘어?’

그의 모습을 확인한 수혁의 눈이 살짝 커졌다.

수혁이 알고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번 생이 아니라 이전 생에서의 일이긴 했지만 말이다.

‘저 사람이 왜?’

수혁이 기억하는 저 사람은 중앙청 소속 특수 구조대의 대장이었다.

뛰어난 구조 실력과 압도적인 피지컬로 구조대원들 사이에서는 명성이 자자했다.

그런데 이번 생에서는 중앙청이 아닌, 이곳으로 발령이 난 것 같았다.

“특수 구조대 1팀의 팀장인 전승철이라고 합니다.”

“특구가 여기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박상태에 비해 전승철이 훨씬 젊어 보이는 인상이었지만, 같은 팀장인 데다 계급이 같았기에 정중하게 되물었다.

“복귀하던 중에 출동 내용을 듣고 들렀습니다. 여기는 이제 저희가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흐음.”

이곳은 엄연히 신일서의 관할 구역이었다.

게다가 지원 요청을 한 적도 없는데 와서 다짜고짜 구조는 자신들이 하겠다니…….

사람을 구하는데 누가 나선들 무슨 상관이겠냐마는,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것은 분명 예의가 아니었다.

박상태는 기분이 살짝 상하기는 했지만, 딱히 그것에 반대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관할로 다툴 때가 아니었으니까.

그럴 시간에 저 어린아이들을 구하는 것이 시급했다.

“그렇게 하시죠.”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승철은 박상태에게 고개를 한 번 숙여 보이고는 다시 대원들에게 돌아갔다.

“……선배들 부를까요?”

전승철의 뒷모습을 잠시 쳐다보던 수혁이 물었다.

“그냥 둬.”

특수 구조대가 구조한다고는 했지만, 그렇다고 손을 놓고 구경만 할 생각은 없었다.

반대쪽으로 건너간 대원들이 미리 준비해 둔다면 조금이라도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으니, 굳이 불러오기보다는 그냥 지금 상황을 가르쳐 주고 돕게 하는 편이 나았다.

“넌 여기서 잠시 대기하고 있어.”

박상태는 무전을 들고는 김강식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혼자 멀뚱히 남게 된 수혁은 뺨을 긁적이며 특수 구조대가 움직이는 것을 쳐다보았다.

‘다들 크네.’

재난 현장의 가장 최전선에서 싸우는 이들이라 그런지, 체격이 장난이 아니었다.

겉으로는 수혁보다 훨씬 믿음직스러워 보였다.

‘움직임도 빠르고.’

대원들 모두 최소한 5년 이상의 경력이 있는 이들 같았다.

움직임은 자연스러웠고, 익숙한 듯 모든 준비가 빨랐다.

박상태를 제외하면 구조 3팀에서 가장 경력이 오래된 김강식도 저 정도는 아니었다.

순식간에 준비를 끝마친 그들은 로프를 들고 하천으로 달려왔다.

하천의 폭은 대략 20m가량.

평소에는 깊이가 허리 정도의 위치에 불과했지만, 비로 인해 불어난 지금은 가슴팍까지 도달해 있었다.

게다가 물살의 세기가 너무도 강해 아무리 특수 구조대라 하더라도, 그 안에서 가만히 서서 버틸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로프 연결 준비해!”

하천 반대편에 있는 구조 3팀의 대원들을 본 전승철은 소리를 지르며 그대로 로프를 집어 던졌다.

한쪽 끝에 가벼운 무게추가 달려 있는 로프는 허공을 날아 정확히 반대편에 안착했다.

박상태에게 상황 설명을 듣고 있던 김강식이 급히 로프의 끝을 붙잡았다.

그러곤 미리 준비해 두고 있던 지주대에 로프를 묶었다.

곧 팔을 들어 완료되었다는 신호를 보냈다.

“도하한다.”

전승철은 다른 대원 한 명과 함께 하천 안으로 들어갔다.

물살이 얼마나 빠른지 전승철의 몸이 순간 휘청거릴 정도였다.

연결된 로프를 잡고 간신히 균형을 잡은 전승철은 빠르게 하천 중앙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았다.

발을 떼는 것과 동시에 물살에 몸이 밀렸기에, 제 속도를 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수혁은 감탄했다.

‘빨라.’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답답하다고 느껴질 정도의 움직임이었지만, 사실 전승철만큼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그의 뒤를 따르고 있는 대원과도 거리가 점점 벌어지고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양보하길 잘한 것 같냐?”

무전을 끝낸 박상태가 다가오며 물었다.

“형이 판단한 거니까 뭐, 그렇겠죠.”

“확실히 빠르긴 빠르네.”

박상태가 보기에도 특수 구조대의 움직임은 빨랐다.

자신들이었다면 저런 식으로 빠르게 진행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물론 수혁을 제외하고.

“너였으면 더 빨랐겠지?”

수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박상태도 그것에 대한 답은 이미 알고 있을 테니까.

‘확실히 나였으면 더 빨랐겠지.’

자만하는 것이 아니었다.

수혁이었다면 최소한 전승철의 두 배는 더 빨리 움직일 수가 있었다.

“오늘은 그냥 특구 애들 구경하는 셈 치자.”

저 정도면 구조하는 것에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아이들도 구조대가 오는 것을 보고 더욱 힘을 내서 버티는 중이었고, 전승철은 거의 도착한 상태였으니까.

수혁은 그런 상황을 아무런 말도 없이 가만히 쳐다보기만 했다.

“왜? 특구에 관심 생기냐?”

“없다면 거짓말이죠.”

솔직하게 말하자면, 특수 구조대 설립 때 수혁이 입원만 하고 있지 않았더라면 지원했을 것이다.

신일서 구조 3팀 역시 바쁘게 움직이고 많은 사람을 구하긴 하지만, 특수 구조대는 그보다 한 차원 높은 현장에서 사람들을 구조하니까.

수혁의 능력은 그런 곳에서 더욱 힘을 발휘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수혁이 퇴원한 당시에는 이미 조직이 끝나 있어 더는 기회가 없었다.

물론 특수 구조대 설립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짐 머레이에게 말하면 어떻게든 한 자리를 마련할 수도 있었겠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해서 들어가고 싶은 생각은 없고, 괜히 또 빚을 지는 것 같으니까.’

수혁은 깔끔하게 특수 구조대를 포기했다.

언젠가 다시 자리가 나게 된다면 모를까.

“들어갈 수만 있다면 좋지. 연봉도 오르고, 대우도 좋아지고.”

명예까지 생긴다.

일이 조금 힘들기야 하겠지만, 그것을 감수하고서라도 들어갈 만한 가치가 있다.

구조 3팀 대원들 역시 같은 마음이었지만, 사실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기에 지레 포기했다.

“너였으면 들어가고도 남았을 텐데. 아쉽구만.”

수혁의 능력이라면 특수 구조대에서 직접 모셔가도 모자라다.

“언젠간 또 기회가 있겠죠. 그때 돼서 가지 말라고 말리지나 마요.”

“안 말려, 새끼야.”

박상태가 피식- 웃었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수혁은 이런 작은 소방서보다는 특수 구조대 같은 큰물에서 노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그런 곳에서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도록 말이다.

“구조 시작됐네요.”

요구조자들 바로 옆까지 도착한 전승철이 한 명을 안아 들고 뒤따르던 대원에게 넘겨주었다.

그러곤 자신 역시 한 명을 안아 들고 다시 이쪽으로 복귀를 시작했다.

“마음 놓지 말고 있어. 혹시 모르니까.”

“네, 알고 있어요.”

혼자서 갈 때도 쉽지 않은 길이었다.

그런 곳을 아이 한 명을 업은 채로 다시 건너오는 것은 더 힘들 것이다.

잠깐 방심하면 그대로 물살에 휩쓸려 버릴 수도 있었다.

그것을 알고 있는 수혁은 그들에게서 단 1초도 눈을 떼지 않았다.

만약의 경우엔 그대로 뛰어들 생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전승철과 대원은 숨 쉬듯 자연스럽게 하천 밖으로 빠져나왔다.

“구급대!”

박상태의 외침에 대기하고 있던 구급대원들이 급히 달려와 아이들을 안아 들었다.

고작 20분도 되지 않는 시간에 불과했지만, 아이들은 거의 탈진 상태였다.

싸늘한 날씨와 거친 물살 덕분에 저체온증 증상까지 나타나고 있었다.

“바로 이송합니다!”

긴장이 풀렸는지 정신을 잃은 아이들을 구급차로 데려간 구급대원들은 곧장 병원으로 출발했다.

“후우…….”

전승철이 흠뻑 젖은 옷을 짜며 한숨을 내쉬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박상태가 그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아, 감사합니다. 이거 쉽지가 않네요.”

아무리 전승철이라 하더라도 저런 물살 속에서 긴장을 유지한 채 움직이는 일이 쉬울 리가 없었다.

그 잠깐 동안 체력을 꽤나 소모했는지, 지친 표정이 역력했다.

거기다 복귀하던 중에 왔다고 하지 않았던가?

숨 돌릴 틈도 없이 연이어 구조한 셈이었으니…….

박상태는 그의 마음이 어떠한지 이해한다는 듯,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대체 여기는 뭐가 잘못된 거랍니까? 하루에 출동이 대체 몇 번인지. 셀 수도 없군요.”

“이 동네가 좀 그렇습니다.”

그래서 특수 구조대가 설립된 거고.

“그래도 덕분에 저희는 조금 살 것 같은데, 고맙다고 해야 할는지.”

박상태의 말에 전승철이 껄껄- 웃었다.

“이거 도움이 된다니 그나마 위안이 되는군요.”

첫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지만, 꽤나 호탕한 성격인 듯했다.

“그럼 저희도 이만 복귀해 봐야 겠… 응?”

웃으며 인사를 하던 전승철이 박상태의 옆에 서 있는 수혁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혹시 김수혁?”

“네, 맞습니다.”

수혁이 긍정하자 전승철의 눈이 커졌다.

“아니, 어떻게? 분명 크게 다쳤다고 들었는데?”

수혁에 대한 소문은 꽤나 널리 퍼져 있었다.

뉴스에서도 한창 다루었고, 같은 구조대원이었으니 더욱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리고 수혁은 원래 유명 인사였지 않은가?

“얼마 전에 퇴원해서 복귀했습니다.”

“……복귀가 가능할 정도의 부상이었나?”

전승철은 ‘내가 듣기론 아니었는데?’라며 중얼거렸다.

“이 녀석 상태가 조금 와전된 것 같더군요. 부상이 심하긴 했는데, 언론이나 사람들이 떠든 정도까진 아니었습니다.”

박상태가 수혁을 대신해 변명했다.

“아, 그렇군요. 어쩐지 이상하더라니. 하여튼 이 나라 사람들 과장하는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전승철은 대수롭지 않게 그것을 받아들였다.

“아무튼 반갑군요. 나는 전승철이라고 합니다.”

전승철이 수혁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 네. 김수혁입니다.”

수혁은 전승철과 악수하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전 생에서는 서로 사이가 그리 좋지 못했다.

딱히 누군가의 잘못이 있던 것은 아니었고, 서로 성격이 잘 맞지 않았던 탓이 컸다.

물론 항상 지는 것은 수혁이었다.

나이로 보나, 짬으로 보나 전승철에 한참 미치지 못했으니까.

그랬던 사람이 이렇게 호감이 어린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것이 적응이 되질 않았다.

“김수혁 씨 소식 듣고 많이들 걱정했는데. 이렇게 쾌차해서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수혁은 자신의 어색한 표정을 숨기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내가 듣기론 실력이 뛰어나서, 부상만 안 당했으면 우리 특수 구조대에 충분히 들어올 수 있었을 거라고 하던데…….”

전승철이 그렇게 말을 하며 박상태를 쳐다보았다.

마치 그 말이 사실이냐고 묻는 것 같았다.

박상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녀석이라면 어디 가서 빠지지 않을 실력이 있긴 합니다.”

“오…….”

전승철의 눈에 호기심이 서렸다.

그간 그가 들은 수혁의 활약상은 솔직히 믿기 힘들 정도였다.

모두 거짓은 아니더라도, 이번 일처럼 과장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박상태가 직접 이렇게 말을 하니,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이제 같은 지역에서 일하게 되었으니, 자주 볼 수 있겠군요.”

전승철은 수혁의 구조 현장을 직접 보고 싶다는 충동이 강하게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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