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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167화 (167/425)

레스큐 시스템 167화

“어이구, 죽겠다.”

이재한이 기지개를 켜며 앓는 소리를 냈다.

“이게 대체 며칠째냐…….”

갑자기 시작된 5월의 장마.

반짝하고 사라질 것이라 예상했던 일기예보와는 달리, 사흘째 비가 퍼붓고 있었다.

덕분에 죽을 맛이었다.

화재 출동은 조금 줄었지만, 대신 구조 출동이 훨씬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비로 인해 교통사고가 정말이지 쉴 새 없이 일어나는 것만 같았다.

“그만 축 처져 있어. 그럴 거면 운동이나 하던가.”

김강식이 핀잔을 주자 이재한이 입술을 삐죽였다.

“아니, 운동하려고 해도 시간이 안 나는 걸 어떻게 합니까? 꼭 아령 하나 들기만 하면 출동이 떨어지는데.”

오늘만 교통 사고 출동을 세 번이나 나갔다.

억수처럼 쏟아지는 비에 시야도 좋지 않았고, 빗길도 미끄러운 탓에 꽤나 심각한 사고가 여러 번 있었던 것이다.

거기다 출동 한 번 나갔다 오면 비에 흠뻑 젖는 바람에 체력 소모도 심했다.

도저히 운동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럼 좀 쉬던가. 왜 다른 사람들까지 기운 빠지게 자꾸 그러냐.”

김강식이 한숨을 내쉬었다.

“힘드니까 그렇죠.”

그렇지 않아도 비가 와서 우중충한 마당에 이재한까지 저러니 분위기가 더 다운됐다.

물론 이재한과 정반대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대원도 있었다.

“치즈야, 이거 먹어라. 아빠가 너 주려고 사온 거야.”

박정우는 이재한이 뭐라고 하든 신경도 쓰지 않고, 행복한 표정으로 치즈에게 간식을 챙겨주고 있었다.

“쟤를 좀 본받아봐라.”

“저건 그냥 아무 생각도 없는 거 아닙니까?”

둘은 대화하면서도, 박정우를 향해 애교를 부리고 있는 치즈를 보며 자신도 모르게 아빠 미소를 짓고 있었다.

“생각이 없긴 누가 없습니까?”

박정우는 마당발답게 안 듣는 척하면서 모든 대화를 듣고 있었다.

“누구긴 누구냐, 너지.”

이재한이 낄낄- 거리며 웃었다.

그렇지 않아도 축축 처지고 있는데 박정우나 데리고 놀기로 결정한 것이다.

하지만 박정우는 그런 이재한의 수에 빠지지 않았다.

“심심하시면 특수 구조대 얘기나 좀 해드리려고 했는데…….”

“특구? 걔들이 왜?”

순간 대원들의 시선이 박정우에게로 집중이 됐다.

요즘 이들에게 있어 특구의 이야기는 가장 재밌는 화젯거리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저는 생각이 없어서 다 까먹었네요. 생각 좀 하고 살아야 하는데.”

“까불지 말고 얘기해 봐.”

박정우가 튕기자 이번엔 김강식이 나서며 재촉했다.

이재한이라면 모를까, 김강식에게 반기를 들 수 있는 짬밥은 아니었기에 박정우는 툴툴거리며 입을 열었다.

“어제 세경서 관할 구역에서 꽤 큰 화재가 일어난 건 알고 계시죠?”

물론이었다.

언제 지원 요청이 올 줄 몰라 잔뜩 긴장하며 대기하고 있었으니까.

결과적으로는 지원 요청이 없긴 했지만.

“그게 왜? 혹시 거기에 특구 애들도 출동했냐?”

이야기의 맥락상 그게 옳았다.

“네, 특구 1팀이 출동했다고 하더라고요.”

대원들의 눈이 흥미진진해졌다.

어제 일어난 화재라면 아파트의 지하 주차장에서 난 화재였다.

한 차에서 갑자기 시작된 불이 번지며 연기로 지하 주차장을 가득 채웠고, 덕분에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이 빠져나오지 못한 채 갇혀 있다고 들었다.

“시야 확보가 잘 되질 않는 데다가, 요구조자의 수가 정확히 파악되질 않아서 구조에 애를 먹고 있는데 특구가 딱 등장하더랍니다.”

역시 박정우는 이야기를 잘했다.

별다른 내용이 없는데도, 특유의 분위기를 잘 살리며 듣는 이로 하여금 몰입감을 갖게 만들었다.

“도착하자마자 아파트 구조도를 몇 번 확인하더니, 그대로 진입!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마스크만 착용한 채로 지하 주차장에 들어가서 구조를 시작했는데…….”

박정우가 잠시 뜸을 들이다 말을 이었다.

“요구조자 네 명을 모두 구하는데 걸린 시간이 고작 7분이랍니다.”

“7분?”

김강식과 이재한의 눈이 커졌다.

7분이면 요구조자를 수색할 시간도 부족했다.

그런데 요구조자들을 찾아낸 것도 모자라, 구조까지 끝냈다니?

믿을 수가 없는 속도였다.

“덕분에 희생자는 단 한 명도 없이 전원 구출됐고, 화재도 신속하게 제압할 수 있었다고 하네요. 그래서 우리가 지원을 안 나가게 된 거고.”

“역시 특구는 특구네.”

이재한이 놀랍다는 얼굴로 감탄했다.

자신들이었다면 10분 이상은 걸렸을 것이다.

그것도 최소한으로 잡은 시간이었다.

엘리트들 중 엘리트들만 모인다는 특수 구조대답게, 실력이 엄청난 듯했다.

“우리도 그런 놈 하나 있잖아.”

“아…….”

김강식의 말에 이재한이 잊고 있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요. 우리도 있죠. 아니, 솔직히 말하면 우리 쪽이 더 대단하지.”

대화하던 셋의 시선이 수혁의 책상을 향했다.

수혁은 잠시 어디 나갔는지, 책상은 비어 있었다.

특구가 들어가서 요구조자 네 명을 7분 만에 구했다고?

수혁은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30명에 가까운 요구조자를 홀로 구해냈다.

한 시간이 넘도록 단 한 번도 밖으로 나오지 않고 말이다.

아무리 특구라도 그런 건 흉내도 내지 못할 것이다.

그랬다간 분명히 죽을 테니까.

“그래, 우리 쪽이 더 낫다.”

김강식이 피식- 하며 말했다.

“뭐가 더 나아요?”

박상태와 커피를 뽑으러 갔다 온 것인지, 수혁이 손에 종이컵을 들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며 물었다.

“내건?”

“네가 뽑아다 마셔, 새끼야.”

이재한이 대답 대신 수혁을 보며 묻자, 박상태가 얼굴을 찌푸리며 핀잔을 주었다.

“맨날 나만 가지고 뭐라고 하시네들.”

이재한이 삐친 듯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며 툴툴거렸다.

수혁 역시 웃으며 자리로 돌아갔다.

“그런데 뭐가 낫다는 거예요?”

수혁이 다시 묻자 김강식이 어깨를 으쓱했다.

“별거 아니야. 그냥 특구 얘기를 좀 하고 있었다.”

“특구요?”

“그래, 어제 활약을 좀 했다더라.”

수혁이 흥미를 보였다.

그러자 김강식이 다시 한 번 얘기해 주라는 듯 박정우를 쳐다봤다.

“같은 얘길 또 하라고요?”

박정우가 질색했다.

“해봐, 빼지 말고.”

하지만 박상태 역시 그 이야기를 듣지 못했기에 박정우를 재촉했다.

결국 박정우는 별수 없이 다시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특구가 대단하긴 한가 보다.”

박상태는 전에 이야기를 들었던 두 사람과 같은 반응을 보였다.

연기로 가득 차 시야가 전혀 확보되지 않는 지하 주차장에서, 위치와 인원을 특정할 수 없는 요구조자들을 모두 구조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베테랑인 박상태라면 가능은 하겠지만, 7분이라는 시간 내에 하라고 하면 난색을 표할 정도로 말이다.

“넌 어때?”

박상태가 수혁을 쳐다보며 물었다.

“대단하네요.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아니, 그런 다 아는 얘기 말고. 넌 어떠냐고.”

“뭐가요?”

수혁은 박상태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해 다시 물었다.

“넌 몇 분이나 걸릴 것 같냐?”

박상태가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반면 수혁은 난처한 기색이었고.

“글쎄요, 그건 직접 해봐야 알겠는데요.”

수혁이 대답을 회피하자 대원들이 김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수혁이 쓴웃음을 지었다.

이제야 들어올 때 들었던 ‘우리가 낫다’는 말의 뜻을 이해한 것이다.

그러면서 정말 자신은 얼마나 걸릴지 혼자 생각을 해보았다.

일단 연기는 수혁에게 아무런 장애가 되지 못했다.

장비를 착용하면 되었으니까.

시야 역시 마찬가지였다.

수혁은 ‘미니 맵’을 사용해 눈으로 보는 것 이상으로 정확하게 지하 주차장의 구조를 알 수가 있었으니까.

‘남은 건 요구조자 위치인데…….’

그것도 ‘생명감지Ⅲ’ 스킬이 있는 이상, 문제가 될 수가 없었다.

‘요구조자가 네 명이라고 했으니.’

요구조자가 어느 위치에 있느냐에 따르겠지만,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 같았다.

‘나도 7분 정도면 될 것 같은데?’

대충 계산해 본 수혁은 7분, 늦어도 10분 안에 구조를 끝낼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을 했다.

특수 구조대와 비슷한 시간.

하지만 그 차이는 어마어마했다.

특수 구조대 1팀 대원들의 숫자는 팀장을 포함해 여섯 명.

여섯 명이 한 팀으로 움직여 구조하는 것과 수혁 혼자 하는 것은 천양지차였으니까.

그럼에도 수혁은 자신이 있었다.

그 시간 안에 모든 요구조자를 구해낼 자신이.

수혁은 괜히 머리를 긁적이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래도 대단한 건 사실이지.’

평범한 구조팀이었다면 절대로 해내지 못할 일이었다.

‘한번 보고 싶다.’

수혁의 머릿속에 특수 구조대에 대한 호기심이 자리를 잡았다.

과연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 어느 정도의 실력을 지닌 이들인지.

꼭 한 번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었다.

[구조 출동, 구조 출동.]

장마가 나흘째 이어졌다.

작년 여름 장마 때도 이렇게 비가 안 온 것 같았는데…….

덕분에 출동은 계속 이어졌다.

“빨리 움직여!”

늦은 점심을 먹고 있던 구조 3팀이 후다닥 뛰어나갔다.

“아, 제발 밥 먹을 시간은 좀 주면 안 되나?”

박정우가 입속에 든 것을 억지로 삼키며 말했다.

“투덜거릴 시간에 차에 타!”

“타고 있습니다!”

수혁이 가장 먼저 구조 차량에 탑승했다.

“출발!”

수혁의 뒤로 대원들이 모두 탑승하자. 곧장 차가 출발했다.

“상황 부탁드립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박상태가 무전기를 들고 물었다.

[만안천 하류에서 초등학생 두 명이 고립되었다는 신고입니다. 비 때문에 불어난 하천에 급류가 너무 심해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뒤에서 무전을 들은 수혁이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며칠째 비가 쏟아지는 와중에 그 안엔 왜 기어들어 갔단 말인가?

“고립될 때까지 들어간 게 더 신기하네.”

마치 수혁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이재한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이재한의 궁금증은 현장에 도착한 뒤 풀렸다.

“동생이 발을 헛디뎌서 물에 빠졌는데, 형이 구한다고 뛰어들었다가…….”

처음부터 상황을 지켜보고, 신고한 신고자의 말이었다.

“이런.”

물에 빠진 두 초등학생이 가까스로 하천 중앙에 있는 작은 바위를 붙잡고 버티고 있었다.

“시간은 얼마나 됐습니까?”

“이제 한 10분 정도요.”

급했다.

다행히 지금까진 버티고 있었지만, 초등학생의 체력이라면 언제 손을 놓치고 급류에 휩쓸릴지 알 수가 없었다.

“이재한, 박정우, 강효상, 반대쪽으로 넘어가.”

시간이 조금 더 걸리겠지만, 로프를 연결해 직접 건너가서 구조하는 수밖에 없었다.

수혁 역시 박상태와 같은 판단이었다.

수혁이 아무리 힘이 세다 한들, 급류에 휩쓸리는 것은 근력이나 체력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었으니까.

‘조금만 더 버텨라.’

두 명의 요구조자는 한눈에 봐도 아슬아슬했다.

이대로 가다간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박상태가 지명한 세 명이 차를 타고 이동을 시작하자, 박상태가 로프를 걸 준비를 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사이렌 소리가 들리더니, 낯선 구조 차량이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응?”

지원 요청을 한 적이 없었기에, 박상태가 고개를 갸웃하며 그쪽을 쳐다보았다.

구조차의 전면에는 ‘특수 구조대’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특구?”

“특구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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