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166화
“너…….”
박상태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대체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수혁이 부상을 입기 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환하게 웃으며 서 있는 것을 보면서 말이다.
“저 왔어요.”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광경이었다.
짐 머레이라는 사람이 와서 수혁의 부상에 대한 모든 말을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할 때부터 이상하긴 했다.
그 대가로 적지 않은 돈을 약속한 것도 이상했고.
게다가 8개월 만에 퇴원한다니?
박상태가 지금껏 봐온 경험으로, 수혁의 상태는 고작 8개월이 아니라 몇 년을 입원해서 집중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로 심각한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런데 갑자기 퇴원한다는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물론 박상태는 어느 정도의 믿음을 갖고 있었다.
수혁이 가진 그 이상한 힘이라면, 회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믿음을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껏이었다.
박상태가 생각한 건 그저 수혁이 일상 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지금처럼 화상 자국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히 나은 모습이 아니었던 것이다.
“너 이 새끼…….”
박상태가 천천히 수혁에게 다가갔다.
그러곤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팔을 뻗었다.
수혁 역시 그런 박상태를 향해 팔을 내밀었다.
포옹이라도 해주려나 싶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박상태의 손바닥이 수혁의 머리통을 때렸다.
“아! 뭐 하는 거예요?”
갑작스런 기습에 수혁이 머리를 부여잡으며 박상태를 노려보았다.
“이 새끼야! 그렇게 낫고 있었으면 얘기를 해줘야 될 것 아니야!”
박상태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도대체 어떻게 몸이 나았는지는 상관없었다.
어차피 물어봐도 언제나처럼 두루뭉술하게 대답을 회피할 게 뻔했으니까.
박상태에겐 수혁이 어떻게 나았는지 보단 다 나았다는 것이 훨씬 중요했다.
박상태는 주먹을 말아 쥔 채 손을 떨었다.
한 대 더 칠까 말까 고민하는 것 같았다.
“죄송합니다.”
수혁은 재빨리 사과했다.
박상태가 때린다면 얼마든지 맞아줄 용의가 있었지만, 사과가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박상태가 얼마나 힘들어했을지 생각하면 백 번을 사과해도 모자랐다.
“하아.”
결국 박상태는 꽉 쥐고 있던 주먹을 풀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까지 비밀로 하고 있었던 것이 괘씸하긴 했지만, 이제 와 따진다고 한들 변하는 건 없었으니까.
“몸은 이제 다 나은 거냐?”
“완전히요.”
수혁은 자신의 가슴을 탕탕- 두들기며 대답했다.
완전히 나았다.
언제 부상을 입었냐는 것처럼.
아니, 오히려 전보다 더 좋아졌다.
‘회복Ⅱ’ 스킬로 인해 이전에 다쳤던 곳들까지 모두 나으며 흉터 하나 찾아볼 수 없는 몸이 되었던 것이다.
박상태는 정말이냐는 듯 수혁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일그러졌던 얼굴은 예전처럼 돌아와 있었고, 숨도 제대로 못 쉬었던 때와 달리 호흡도 안정적이었다.
퍽-!
“윽!”
수혁이 방심한 틈을 타, 박상태가 수혁의 배를 한 번 쳤다.
‘복부도 단단해.’
도저히 방금 전까지 병원에 입원해 있던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자신은 며칠만 운동을 쉬어도 살이 물렁물렁해지는데…….
“병실에서 받으라는 치료는 안 받고, 운동만 했냐?”
“딱히 할 게 없어서요.”
퉁명한 박상태의 말에 수혁이 웃으며 대답했다.
몸이 회복되며 사라졌던 근육들까지 모두 예전처럼 돌아온 것이었지만, 운동한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박상태는 그런 수혁을 한참 동안이나 말없이 가만히 쳐다보았다.
또다시 동료를 잃는 줄 알았다.
구조 2팀장인 이수열이 순직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수혁마저 잃을 뻔했다.
사람을 구하러 갔다가, 대신 자신의 목숨을 놓고 온 동료의 모습을 보는 것.
박상태는 다신 그런 경험을 하고 싶지 않았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수혁이 박상태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미안함을 담아서.
그리고 고마움도 함께.
박상태는 그런 수혁의 어깨를 몇 번 두들겨 주고는 몸을 돌렸다.
“들어가자. 애들한테도 너 무사하다고 보여줘야지.”
“네.”
수혁이 박상태의 뒤를 따라 서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구조 3팀의 사무실이 얼어붙었다.
대원들은 마치 귀신이라도 보는 듯한 얼굴로 수혁을 쳐다봤다.
‘하긴, 선배들이 보기엔 귀신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지.’
수혁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숨은 쉬고 있었지만,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말도 할 수 없이 그저 누워만 있는 상태였으니까.
그런데 이렇게 느닷없이 멀쩡해진 모습으로 나타났으니, 귀신이라고 여겨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뭘 그렇게 멀뚱히 보고만 있어? 인사 안 해?”
박상태가 대원들을 향해 눈살을 찌푸리며 말하자, 그제야 다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김수혁!”
“야, 인마!”
그들은 빠르게 수혁을 향해 달려왔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는 눈으로.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이재한은 자신의 볼을 꼬집었고.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박정우는 짐 머레이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너 괜찮냐? 진짜 괜찮은 거냐고.”
김강식은 오직 수혁의 안위만을 걱정하며 오두방정을 떨었다.
오직 강효상만이 그저 놀란 얼굴로 수혁을 덤덤하게 맞아줄 뿐이었다.
“네, 이제 다 나았습니다. 그동안 걱정 끼쳐서 죄송합니다.”
수혁은 멋쩍게 웃으며 대원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었다.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이재한이 멍한 얼굴로 박상태에게 물었다.
“어떻게 되긴 뭐가 어떻게 돼? 그냥 다 나아서 온 거지.”
“그게 말이 됩니까? 저놈은 분명히 그날…….”
“거기까지만 해.”
박상태가 이재한의 입을 막았다.
“전에 그 외국인 양반이 부탁한 거 잊었어?”
수혁의 부상에 대한 것은 절대 입 밖으로 꺼내지 말 것.
그 누가 물어도 잘 모르겠다는 대답만 해달라며 부탁을 했었다.
그것은 구조 3팀 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서로 수혁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했던 것이다.
박상태의 말에 이재한이 입을 다물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가 알지 못하는 무슨 비밀이 있는 것 같았다.
“괜히 시끄러운 일 만들고 싶지 않으면 계속 입 다물고 있어. 오늘은 그냥 다쳤던 놈 하나가 복귀했다고 생각하고. 그거면 돼.”
대원들은 수혁을 반기다가 그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이상하고, 의심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내색하지 않았다.
박상태와 마찬가지로, 그딴 것들보다는 수혁이 돌아왔다는 사실이 훨씬 더 중요했으니 말이다.
구조 3팀의 사무실은 그 후로도 한참 동안이나 떠들썩했다.
박정우는 수혁이 정말 다 나았는지 확인해 보겠다며 팔씨름을 제안했다가 1초도 걸리지 않아 패배하고는 치즈를 찾아 어디론가 사라지기도 했다.
그 소란을 듣고 온 화재 진압대와 구급대에서도 사람들이 찾아와 수혁을 맞이해 주었다.
그들은 수혁이 정확히 얼마나 심각한 부상을 입었는지 알지 못했기에, 그저 다 나아서 다행이라며 축하를 건넸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질문을 해대는지, 수혁이 지칠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난 뒤에야 조금 진정이 되었다.
“그래서, 복귀는 언제부터냐?”
“다음 주요.”
“더 안 쉬어도 되고?”
“그동안 충분히 쉬었거든요. 더 쉬는 게 지겨울 정도로요.”
박상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만도 했다.
무려 8개월 동안이나 그 좁은 병실에 갇혀 있었을 테니까.
“사실 지금 당장에라도 복귀하고 싶은데, 서장님이 말리셔서.”
“그 양반이?”
박상태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수긍했다.
서장은 휘하 대원들에게 관심이 별로 없는 듯하면서도 알게 모르게 잘 챙겨주곤 했으니까.
특히 수혁은 서장이 가장 아끼는 부하였으니…….
“휴가냐?”
“네.”
더 쉬라는 서장의 말에 수혁은 전에 받은 휴가를 사용하려고 했지만, 서장은 거절했다.
그건 나중에 좀 더 좋은 때에 쓰라면서 또 휴가를 준 것이다.
부담스럽기 그지없는 일이었지만, 거절할 수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또다시 휴가를 받았다.
“오래 입원해 있었으니까, 집에서 조금 쉬면서 그동안 못 먹었던 것도 먹고 그래라.”
박상태는 수혁이 조금 더 쉰다는 사실을 반겼다.
수혁의 몸이 모두 나은 것은 알지만, 지금 이대로 복귀한다면 대원들이 혼란스러워할 것이다.
지금이야 반가운 마음에 애써 떠올리지 않고 있었지만, 분명 수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그전에 정리를 좀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려면 수혁이 자리에 없는 것이 더 나았다.
괜히 수혁이 있으면 직접 물어봐서 곤란하게 만들 놈들이 몇 있었으니까.
“그럼 오늘은 이만 돌아가라.”
“그래야겠네요.”
수혁이 대원들과 인사를 나누고는 박상태와 함께 서 밖으로 나왔다.
“그럼 다음 주에 봬요.”
수혁이 박상태에게 인사하고는 몸을 돌렸다.
“야, 김수혁.”
그때 박상태가 뒤에서 수혁을 불렀다.
수혁이 무슨 일이냐는 듯 뒤돌아보자, 박상태는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잘 돌아왔다. 정말로.”
박상태는 부끄러운지 말을 끝내자마자 서둘러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수혁이 피식- 웃으며 다시 몸을 돌렸다.
안쪽에서 사이렌과 함께 출동 명령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 * *
“서둘러!”
박상태의 외침에 수혁이 도끼를 휘둘러 벽을 깨부수기 시작했다.
쾅- 쾅-!
도끼질 한 번 할 때마다 벽이 스펀지마냥 부서져 나갔다.
몇 번 휘두르지도 않았는데, 벽에 사람이 드나들 정도의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진입!”
수혁이 앞장서 안으로 진입했다.
벽 안쪽은 뜨거운 불길이 넘실대고 있었다.
수혁은 망설임 없이 불 쪽으로 몸을 날렸다.
“조심해!”
박상태가 소리쳤지만, 수혁은 거리낌이 없었다.
‘상태는 좋아.’
화재로 인해 큰 부상을 입은 소방관은 때때로 불이 무서워질 때가 있다.
사람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특히나 수혁처럼 죽을 고비를 넘길 정도의 부상을 입으면 불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수혁은 다행히 아무렇지도 않았다.
조금이라도 움찔할 만한데도,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나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인가?’
죽지만 않는다면, 아무리 화상을 입는다 하더라도 회복할 수 있다는 믿음.
그것이 수혁의 정신과 육체를 단단하게 붙잡아주었다.
수혁은 빠르게 불길을 뚫고 요구조자가 있는 방향으로 달려갔다.
불길이 사방에서 휘몰아쳤지만, 괜찮았다.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달랐으니까.
요구조자를 구하기 위해 무리를 할 필요도 없었고, 설사 위험에 처한다고 해도 믿음직한 동료들이 곁에 있었다.
‘혼자가 아니야.’
박상태, 김강식, 이재한, 강효상, 박정우.
그들이 수혁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수혁은 왠지 뒤가 든든해지는 느낌을 받으며 앞을 막고 있는 문을 발로 박찼다.
쾅-!
“구하러 왔습니다!”
수혁의 눈에, 애타게 구조를 기다리고 있는 요구조자의 모습이 들어왔다.
“이제 걱정하지 마세요.”
요구조자의 모습을 확인한 수혁은 이제야 실감이 났다.
자신이 다시 복귀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