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164화
“특구가 만들어졌다고요?”
“네, 그리고 면회를 언제 다시 할 수 있냐고…….”
확실히 이전 생에서는 없던 일들이 발생하고 있었다.
시장 화재도 그렇고, 이번에 특구가 설립됐다는 것도 그렇고.
그 모든 것이 수혁이 회귀해서 한 행동들 때문이었다.
전통 시장 화재는 어떻게 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지만, 특구는 수혁이 구한 짐 머레이 덕분에 만들어진 것이었으니까.
‘이걸 좋다고 해야 하나?’
특수 구조대가 만들어지면, 신일서의 구조팀은 한숨 돌릴 수 있을 것이다.
짐을 나눌 동료들이 생기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것도 뛰어난 동료들이.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들이 더욱 벌어질 확률이 높아졌다.
그것이 좋은 방향으로 흐른다면 모르지만, 만약 더 큰 재난이나 좋지 않은 사고로 이어진다면…….
지금의 수혁이라면 웬만한 현장에서 구조가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원래에는 없던 사고가 터져 사람들이 죽고 다치는 것은 사양이었다.
‘내가 이런 고민을 해봐야 소용없겠지만…….’
이미 특구 설립은 확정된 사항이었다.
지금의 수혁이 나서서 뭔가를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좋게 생각하자.’
특수 구조대가 만들어진 덕분에 본래는 구하지 못했을 사람들을 구할 수도 있었다.
아니, 분명 더욱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수혁은 그렇게 생각하며 긍정적으로 여기기로 했다.
“특구가 뭔데 그래요?”
말을 하던 최은송은 수혁의 표정이 왠지 심각해 보이자 걱정스럽게 물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특수 구조대 줄임말인데, 그냥 특수 부대 같은 느낌의 구조대라고 해야 하나?”
“그런데 표정이 왜 그렇게 안 좋아요?”
“그냥 생각할 게 좀 있어서요. 나쁜 일은 아니에요. 특구가 생기면 선배들도 부담이 좀 줄어들 테니까.”
최은송은 잠시 수혁을 빤히 쳐다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더 있는 것 같았지만, 굳이 캐물을 필요까진 없었으니까.
“그럼 얼른 식사해요. 음식 다 식겠네.”
“잘 먹을게요.”
수혁은 생각을 멈추고 최은송의 요리를 다시 먹기 시작했다.
“아, 그리고 상태 오빠가 면회는 언제쯤 다시 할 수 있냐고 물어봤다고 했는데, 들었어요?”
“음…….”
면회야 당장에라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렇게 회복한 수혁의 모습을 보면 박상태와 대원들은 아마 기절할 정도로 놀랄 것이 뻔했다.
그들은 의사가 아니었지만, 화상에 대해 그 누구보다 많이 알고 있기도 했다.
불은 소방관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으니까.
그러니 수혁이 절대 회복 불가능한 상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수혁을 보면, 당연히 이상하게 생각할 수밖에.
수혁은 동료들에게까지 거짓말하고 싶진 않았지만, 짐 머레이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적으면 적을수록 좋다며 자제를 부탁했다.
“짐이 어떻게든 둘러댈 말을 찾고 있다고 했으니, 그때까진 좀 기다려야겠네요.”
수혁이 아쉽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러자 최은송이 수혁의 손을 잡았다.
“그분들이라면 충분히 이해해 줄걸요? 비밀도 잘 지켜줄 거고. 그런 사람들이잖아요.”
그것은 분명했다.
수혁이 아는 구조 3팀의 대원들이라면, 아무리 수혁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 하더라도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진 않을 것이다.
수혁이 부탁을 한다면 더욱더.
“알아요.”
그래도 지금 당장 만날 순 없었다.
짐 머레이가 생각한 것들이 준비되기 전까진, 참아야만 했다.
그것이 동료들에게도 좋을 것이다.
수혁은 일단 그들에 대한 생각은 접어두고, 최은송과 식사를 마저 끝마쳤다.
“잘 먹었어요.”
한동안 병원 밥만 먹었더니, 최은송의 요리가 더욱 맛있게 느껴졌다.
“밥도 먹었으니, 운동 좀 할까요?”
최은송이 물었다.
“좋죠.”
수혁은 몇 달간이나 침대에 누워 움직이지 못했다.
수혁의 육체가 아무리 뛰어나다고는 하지만, 부상을 입은 채 그토록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았으니 제대로 움직일 리가 없었다.
예전처럼 움직이기 위해선 지금부터라도 운동을 꾸준히 해서 몸일 정상으로 되돌리는 수밖에 없었다.
“으으윽!”
수혁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다 신음 소리를 터트렸다.
‘회복Ⅱ’ 스킬 덕분에 크게 고통스럽지는 않았지만, 온몸이 삐걱거리는 것이 여실히 느껴졌다.
마치 자신의 몸이 아닌 것처럼 따로 노는 육체에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아파요?”
도시락을 정리하고 있던 최은송이 깜짝 놀라 달려왔다.
“아니, 아니에요. 아픈 건 아니고 그냥 잘 안 움직여져서.”
수혁이 괜찮다는 듯 최은송을 안심시켰다.
하지만 최은송의 얼굴에선 걱정이 사라지지 않았다.
수혁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낫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의사들도 규명하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혁에 대한 모든 걱정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이러다 언제 갑자기 또 상태가 악화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악몽을 꿀 때도 있었으니까.
지금도 수혁은 아프지 않다고, 괜찮다고 말하고 있지만, 최은송은 혹시나 수혁이 다시 잘못된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런 최은송의 마음을 눈치챈 수혁이 미소 지었다.
“나 진짜 괜찮아요. 조금 도와주기만 하면 돼요.”
수혁이 팔을 내밀자, 최은송이 붙잡아 침대에서 일으켜 주었다.
‘으음…….’
신음이 다시 터져 나올 뻔했다.
하마터면 힘이 들어가지 않아 자리에 주저앉을 뻔한 것을 간신히 버텼다.
운동을 시작한 지 이제 고작 3일째.
몇 달간 움직이지 않았던 육체를 정상화시키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수혁은 떨리는 다리를 조금씩 움직였다.
“천천히, 천천히.”
최은송은 그런 수혁이 넘어지지 않도록 지탱해 주었고, 수혁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운동이라고 해봐야 병실 몇 바퀴를 도는 것이 전부이긴 했다.
하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수혁은 온몸에서 땀을 뻘뻘 흘렸다.
“조금 쉴까요?”
환자복이 흥건히 젖을 정도가 되자, 최은송이 걸음을 멈추었다.
“아니요. 조금 더 하는 게 좋겠어요.”
이제 고작 열 바퀴를 돌았을 뿐이다.
어제도 열 바퀴를 돌고 쉬었으니, 오늘은 그보다는 조금 더 횟수를 늘리고 싶었다.
“괜찮겠어요?”
“물론이죠, 저 김수혁이에요. 알죠? 원래는 내가 사람도 막 몇 명씩 업고 달리고 그런다니까요?”
당장에라도 주저앉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지만, 이대로 포기하면 회복하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래서 수혁은 일부러 허세 부리며 운동을 계속했다.
결국 열다섯 바퀴를 채우고 난 뒤에야 수혁은 소파에 앉을 수가 있었다.
“얼굴 좀 내밀어봐요.”
언제 가지고 온 것인지, 최은송이 수건 한 장을 들고 땀으로 범벅이 된 수혁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손을 들어 땀을 닦을 힘도 남아 있지 않았기에 수혁은 순순히 그녀의 손에 얼굴을 맡겼다.
“고마워요.”
“뭘요.”
최은송이 수혁의 땀을 닦아주고 있는데 병실 문이 열렸다.
“아, 이런. 내가 좋지 않은 때에 온 건가?”
짐 머레이였다.
그는 짐짓 과장된 몸짓을 보이며 눈을 가리고 밖으로 나가려는 시늉을 했다.
수혁과 최은송이 그를 보며 미소 지었다.
“수혁 씨가 방금 운동을 끝마친 참이었거든요. 요 며칠 안 오시더니, 무슨 일 있었나요?”
수혁을 대신해 최은송이 묻자, 짐 머레이가 헛기침하며 안으로 들어왔다.
“한국에서 내가 하던 일이 이제야 어느 정도 마무리가 돼서 말이지.”
수혁은 최은송을 통해 짐 머레이의 말을 전해 듣고는, 그 일이 무슨 일인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특수 구조대 얘깁니까?”
“응? 그건 자네가 어떻게 아나?”
수혁이 알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도 하지 못했는지, 짐 머레이의 눈이 커졌다.
“그냥 여기저기서 주워들어서.”
수혁은 역시나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흠. 이거 깜짝 놀래켜 주려고 했는데……. 벌써 알고 있었다니, 김이 새는구만.”
짐 머레이는 실망한 듯 어깨가 축 처졌다.
“뭐, 알고 있었으니 이야기는 빠르겠군.”
그는 수혁이 앉아 있는 소파 옆에 걸터앉았다.
“뭐 마실 거라도 드릴까요?”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에 최은송이 묻자, 짐 머레이는 반색했다.
“그렇지 않아도 목이 좀 마르던 차였는데, 고맙네.”
최은송이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가지고 오자, 짐 머레이가 입을 열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까.”
짐 머레이는 수혁에게 줄 커다란 선물을 생각하고 있었다.
집이나 차, 구조 장비 같은 것은 그에게 있어 그리 큰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었고, 조금 더 의미가 있는 선물을 주고 싶었다.
그러던 차에 수혁과 그의 동료들이 항상 출동에 힘들어 한다는 것을 들었다.
만성적인 인력 부족.
그것은 큰 문제였다.
짐 머레이는 만약 그것을 해결해 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생각을 하면 할수록 괜찮다는 확신이 들었다.
인력 부족이 해결된다면, 수혁에게도 도움이 되고, 재난 현장의 요구조자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테니까.
이보다 더 의미 있는 선물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한번 제대로 일을 시작해 봤지.”
가장 먼저 알아본 것은 대한민국 소방관들의 고질적인 인력난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이 쉽게 찾아질 리가 없었다.
국가가 나서도 해결하지 못한 것을, 일개 사업가가 해결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방법을 찾아보려고 해도 마땅한 수가 나오질 않았다.
그래서 짐 머레이는 방향을 조금 틀었다.
다른 사람들이 무리라면, 최소한 수혁만큼은 편하게 해주자고.
방향을 틀고, 한동안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결과 도출해 낸 것이 특수 구조대의 설립이었다.
몇 가지 다른 방안도 떠오르긴 했지만, 현실적으로는 이것이 가장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그래서 짐 머레이는 자신의 돈과 지위를 이용해, 한국의 유력 정치인들과 관계자들을 만나 친분을 다졌다.
투자를 약속하고, 그들의 배에 약간의 기름칠도 해가면서.
그 결과 행안부 장관까지 끈이 닿았다.
순조로운 여정은 아니었다.
예산이 부족하니, 뭐가 부족하니 하며 다들 고개를 젓기 일쑤였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다들 왜 이렇게 소방관 처우개선에 난색을 표하는지, 짐 머레이는 이해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러다 결국에는 특수 구조대 설립을 통과시켰다.
그것에는 경제부총리인 최문식의 도움이 컸다.
처음에는 부정적이었던 그가 왜 갑자기 태도를 바꿨는지는 지금도 알 수가 없었지만, 짐 머레이에게는 다행인 일이었다.
그렇게 바쁘고 어려웠던 밀고 당기기가 끝난 뒤, 이제야 특수 구조대가 설립되게 된 것이었다.
이야기를 듣던 수혁이 최은송을 슬쩍 쳐다보았다.
그녀 역시 짐 머레이의 이야기를 전해주다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이야기 도중에 자신의 아버지 이름이 들릴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탓이었다.
둘의 표정이 이상한 것을 확인한 짐 머레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일인가? 내가 말실수라도 한 게 있나?”
“아니요, 익숙한 분 이름이 나와서.”
“응?”
짐 머레이의 얼굴에 궁금함이 떠올랐다.
“누구 말인가?”
지금까지 그가 꺼냈던 인물 중에서 그녀와 연관이 있을 만한 이가 있었던가?
“경제부총리요. 그분이 우리 아빠거든요.”
이번엔 짐 머레이의 눈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