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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162화 (162/425)

레스큐 시스템 162화

“아차, 말을 못 하지?”

짐 머레이가 깜빡했다는 듯 자신의 이마를 쳤다.

사실 대화를 나누고자 했다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짐 머레이는 그런 방법을 쓰지 않았다.

수혁을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았을 뿐더러, 그렇게 해서까지 뭔가를 캐내고 싶진 않았다.

“그래도 한 가지만 묻겠네.”

짐 머레이는 수혁을 보며 항상 의아해했다.

푸켓에서의 그날.

수혁은 도저히 사람 같지도 않은 힘을 발휘했었다.

현직 소방관이기 때문에 체력과 근력이 좋은 것이라고?

아니, 그 정도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은 짐 머레이뿐만이 아니었다.

푸켓에서 수혁에게 구조된 사람이 백 명이 넘는데, 짐 머레이 혼자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그저 침묵하고 있을 뿐.

수혁에게는 분명 평범하지 않은 뭔가가 있었다.

“자네에게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비밀이 있을 걸세. 맞나?”

수혁은 짐 머레이의 말을 가만히 듣다가 최은송을 한 번 쳐다보았다.

‘어쩔까…….’

회귀, 레벨, 스킬, 퀘스트.

그 누구에게도 밝히고 싶지 않은, 수혁만의 비밀이다.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오직 박상태만이 그 일부분을 직접 목격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제 더는 숨길 수가 없게 되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수혁의 몸이 회복되는 건 정말 이상한 일이었으니까.

수혁도 그것이 고민이긴 했다.

대체 뭐라고 이야기를 해야 할까?

화상으로 손상되었던 육체가 예전으로 완벽히 돌아간다면.

의학계는 물론이고, 언론에서도 주목할 것이 뻔했다.

물론 수혁은 모르쇠로 일관할 테지만…….

‘그래도 도움받는 편이 편하긴 하겠지.’

짐 머레이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은 충분히 알 수가 있었다.

만약 그런 사람이 수혁을 도와준다면?

수혁은 짐 머레이를 향해 눈을 한 번 길게 깜빡였다.

“내 그럴 줄 알았지!”

짐 머레이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났다.

“내친김에 하나만 더 물어도 되겠나?”

그렇게 말한 짐 머레이는 수혁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곧장 질문했다.

“자네 몸은 완치가 될 수 있는 건가?”

임현수의 설명을 듣고 가장 궁금했던 점이 그것이었다.

과연 완치가 가능한가?

수혁의 육체는 조금씩 회복하고 있다고 했다.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한 수준으로 말이다.

만약 그것이 수혁이 갖고 있다는 비밀 때문이라면…….

어쩌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짐 머레이의 말을 전해주던 최은송의 눈이 커졌다.

중간에서 통역해 주고 있기는 했지만, 짐 머레이의 말을 하나도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수혁이 그렇다는 듯 눈을 깜빡이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는 것이었다.

“……수혁 씨?”

최은송은 지금 그게 무슨 뜻이냐는 듯한 얼굴로 수혁을 쳐다봤다.

지금 수혁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완치는커녕, 치료가 끝난다고 해도 일상생활조차 힘들어 보였다.

아니, 분명히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완치가 가능하다니?

수혁은 그런 최은송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모두 설명해 주고는 싶었지만, 그럴 순 없었다.

그녀에게서 정신병자 취급을 받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언젠간…….’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털어놓을 날이 올 것이다.

“내 도움이 필요하다면 말하게.”

수혁과 최은송 사이에서 오간 무언의 대화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던 짐 머레이가 말했다.

그리고 수혁은 흔쾌히 그의 도움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조금 전 생각했듯이, 짐 머레이가 돕는다면 후에 찾아올 혼란을 최대한 막아낼 수 있을 테니까.

“알겠네, 그럼 그건 내가 알아서 하지.”

짐 머레이는 약간 흥분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알아서 한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짐 머레이라면 정말로 알아서 잘해줄 것이라 믿었다.

“아, 완치되는데 얼마나 걸릴 것 같은가? 이거, 하나만 묻는다고 해놓고는 계속해서 미안하군.”

수혁은 멋쩍은 표정을 짓고 있는 짐 머레이에게 눈을 깜빡였다.

그 횟수는 여덟 번.

“8년?”

짐 머레이가 눈을 크게 뜨자, 수혁이 작게 고개를 저었다.

8개월.

수혁이 완전히 회복하는 데 걸릴 것이라 예상하고 있는 시간은 8개월이었다.

* * *

“……뭐?”

“설립된답니다, 특수 구조대가.”

박정우의 말에 식당에서 점심으로 떡볶이를 먹던 대원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한줄기 불신감은 지우지 못했다.

“어디서 또 이상한 헛소문 듣고 온 것 아니야?”

“갑자기 특수 구조대라니? 너무 뜬금없지.”

이재한과 강효상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박상태와 김강식은 그들과 반대였다.

둘은 이미 들은 이야기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이번엔 아주 없는 말이 아닌 것 같다.”

박상태의 말에 이재한이 그건 또 무슨 소리냐는 듯 쳐다봤다.

“너희에게 말을 하진 않았지만, 이미 예전부터 흘러나왔던 사항이다. 우리도 정말 설립될 것이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정우가 저렇게 얘기하는 걸 보면 무슨 진전이 있었겠지.”

박상태가 박정우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네, 이번엔 확실하답니다. 예산도 편성됐고, 경기청에서 이미 준비 중이라네요.”

박정우의 말에 대원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특수 구조대라니?

이곳에 특수 구조대가 생긴다면, 그것만으로도 자신들이 할 일이 확연히 줄어들 것이다.

매일 엄청난 출동과 고된 구조 작업에 시달릴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특수 구조대가 생긴다는 것은 일을 나눌 수 있는 동료가 더 생긴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리고 한 가지 더.

“인력 충원은? 어떻게 한다디?”

“지원 아니겠습니까? 서류 심사하고, 체력 테스트하고. 뭐, 똑같겠죠.”

“나도 들어갈 수 있으려나?”

이재한이 웃으며 말하자, 박상태가 어림도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특수 구조대원이 된다면, 일이 고되기야 하겠지만 그만큼 보상이 확실하게 뒤따라 온다.

명예도 있었으니, 구조대원이라면 누구나 들어가고 싶어 하는 곳이었다.

“인마, 특구가 애들 장난이냐? 아무나 다 들어가게. 우리 서에서 거기 들어갈 만한 놈은 수혁이 밖… 흠흠.”

박상태는 자신도 모르게 수혁의 이야기를 꺼냈다가 헛기침을 했다.

순식간에 식당 분위기가 다운이 됐다.

말없이 떡볶이만 뒤적거리던 김강식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쉽네요. 그놈이 있었으면 특구는 그냥 들어갔을 텐데.”

“특구 애들이 거의 특채 출신이라지만, 수혁이 놈한테는 쨉도 안 될걸요?”

“그렇지. 최강 소방관 경기에서 세계 신기록도 세운 놈인데.”

말을 하면 할수록 더욱 아까웠다.

수혁과 같은 뛰어난 소방관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한다는 것이.

그리고 그 책임에는 자신들도 있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우리가 조금만 더 뛰어났더라면.’

그랬다면 수혁 혼자 사람을 구하겠다고 발광하며 돌아다니다 저런 꼴은 안 당했을 텐데.

구조 3팀의 대원들 모두가 같은 생각을 했다.

그날, 온몸에 화상을 입고 구급차에 실려가던 수혁의 모습을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이 무거워졌다.

“언제 설립된다고 하냐?”

분위기를 반전시키려는 듯 박상태가 물었다.

“아, 정확한 건 모르겠지만, 늦어도 내년 초에는 될 거라고 하더라고요.”

“내년 초…….”

지금이 9월이었으니, 대충 6개월 안에는 설립이 된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았다.

“조만간 공문 내려올걸요?”

“음, 한번 지원해 볼까?”

“넌 안 된다고, 인마.”

박상태가 이재한을 구박하는 것으로 다시 식당 안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모두가 애써 수혁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식당 아줌마가 해준 떡볶이를 먹고, 웃고 떠들다 출동 명령이 떨어져 밖으로 내달릴 때까지.

수혁에 대한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는 대원은 아무도 없었다.

오직 마음속으로만 수혁을 위로할 뿐이었다.

* * *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말 그대로입니다. 병실에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경호원이 의사 한 명의 앞을 막고 비켜주지 않았다.

“저는 이 병원 흉부외과 과장입니다만?”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앞으로 김수혁 씨를 대면할 수 있는 의사는 주치의 한 명으로 제한되었습니다. 필요한 게 있으시다면 그분께 물어보십시오.”

흉부외과 과장은 경호원의 말에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터트렸다.

“아니, 대체 누구 마음대로 그딴 결정을 내렸단 말이야?”

자신이 일하는 병원에서, 치료해야 할 환자를 만나지 못하게 하다니.

그럴 거면 대체 왜 이 병원에 입원을 시켰단 말인가?

“헛소리하지 말고 비켜요, 보안 요원 불러서 모두 내쫓기 전에.”

과장은 경호원을 향해 협박하듯 말했다.

하지만 경호원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이미 결정된 사항이니, 따라주시길.”

“그 결정을 누가 했냐고!”

더는 화를 참지 못한 과장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 누가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경호원의 입에서 나온 이름을 들은 과장은 화를 집어삼키는 수밖에 없었다.

“한규진 이사장입니다.”

“……이사장님?”

자신이 아무리 흉부외과의 과장이라고는 하지만, 따지고 보면 월급을 받아먹고 사는 월급쟁이에 불과했다.

과장이라는 직책 덕분에 꽤 강력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지만, 그것이 이 병원의 이사장과는 비교할 수도 없었고.

“그, 그분이 왜?”

“저희가 해드릴 수 있는 말은 여기까지입니다.”

철벽과 같은 경호원의 태도에, 과장은 아무런 소득도 없이 그냥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잘 막아주고 있나 보네요.”

밖에서 나는 소란을 들은 최은송이 수혁에게 말했다.

‘그러게요.’

짐 머레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수혁을 외부와 완전히 단절시키는 것이었다.

그 누구도 수혁의 상태를 확인할 수 없었고, 수혁에 대한 소식도 들을 수 없었다.

그것이 가능한 건 오직 주치의인 임현수뿐.

임현수조차도 짐 머레이에게 협박 아닌 협박을 들어, 절대 수혁에 대한 이야기를 밖에 전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당연히 병원 측에서는 반발했다.

수혁에게 치료가 필요한 곳은 화상으로 손상된 피부뿐만이 아니었다.

폐와 기도, 그 외의 외상들까지.

많은 과가 협진해 가며 치료해야 할 정도로 중한 상태였다.

그런데 오직 피부과 과장인 임현수만이 치료할 수 있다는 소리에,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반발을 잠재운 것이 한규진이었다.

‘까라면 까라.’

말도 되지 않는 일이었지만, 어찌 된 일인지 병원장과 총장까지 한규진의 손을 들어주며 아무도 수혁의 병실에 출입할 수가 없게 되었다.

짐 머레이가 그다음으로 한 일은, 외부의 의사들을 불러와 수혁의 치료를 맡긴 것이었다.

이 역시 병원에서는 절대 허락해 줄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이번에도 한규진의 입김이 닿아 허가가 나고 말았다.

미국에서 직접 건너온 이 의사들은, 하나같이 짐 머레이의 말이라면 죽는시늉까지 할 정도였다.

최은송과 짐 머레이, 임현수, 그리고 미국에서 온 의사 다섯 명.

수혁의 병실에 출입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여덟 명이 전부였다.

무려 반년이란 시간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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