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161화
느리지만 꾸준했다, 수혁의 몸이 회복되는 속도는.
“이거 놀라운데…….”
수혁의 회복력을 확인한 의사들은 자신의 두 눈을 의심했다.
그야말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으니, 해답을 찾기 위해 뒤늦게 의학서적을 뒤적거리는 이들도 생길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희망적이냐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분명히 상태는 호전되고 있었지만, 아직은 미약했기 때문이었다.
이러다 언제 또다시 악화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의사도 다수였다.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라면서 말이다.
그럼에도 수혁이 처음보다 좋아졌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군.”
시한부 판정을 받은 말기 암 환자가 갑자기 완치되는 경우도 있고, 다시는 일어설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가 걷는 경우도 있다.
세상은 그런 경우를 기적이라고 말한다.
수혁 역시 기적이라 부르기에 충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조금 더 정밀한 검사를 해봐야 알 것 같지만, 만약 이대로 계속 회복이 된다면…….”
말을 하던 의사는 섣불리 ‘완쾌’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가 조금씩은 기대하는 단어이기도 했다.
“김수혁 환자가 회복되는 건 좋은 일이지만, 그게 우리가 해낸 일이 아니라는 건 좀 문제가 있어.”
의사로서의 자존심이 상하는 문제였다.
어떻게 회복이 되고 있는지는 둘째치고서라도 그 원인조차 밝혀내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일단은 잡혀 있는 수술들부터 모두 캔슬시켜. 앞으로 상황을 조금 더 지켜본 뒤에 일정을 다시 잡지.”
“알겠습니다.”
폐 절제 수술과 피부이식 수술 등, 수혁을 위해 준비되었던 수술들이 모두 중단되었다.
만약 이대로 계속해서 회복된다면, 그 수술들은 나중에 독이 될 것이 분명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검사를 다시 한 번 해보자고,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려면.”
“나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김수혁 환자의 상태가 그리 좋지는 않아. 잦은 검사를 견딜 만한 체력이 되지 않을 걸세.”
“음…….”
확실히 수혁은 아직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최대한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해보자고.”
회의가 끝이 났다.
의사들은 각자의 의국으로 향하며 수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것은 임현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주치의인 만큼 가장 많이 수혁의 상태를 봐왔기에 놀라움도 가장 컸다.
“어? 과장님, 의국은 이쪽으로 가셔야 하는데요?”
피부과 전문의의 말에 임현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김수혁 환자에게 한번 들르자.”
“또요?”
주치의가 환자를 보러 가는 것이 이상할 것은 없었지만, 임현수는 너무 자주 방문을 했다.
아무리 VIP 환자라고는 하지만, 너무 신경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만큼 임현수는 수혁을 확인하러 가는 것을 좋아했다.
하루가 달라지게 좋아지는 수혁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기 때문이었다.
“넌 먼저 돌아가, 혼자 다녀올 테니까.”
임현수는 자신을 따라오려는 전문의를 의국으로 돌려보내고는 혼자서 VIP 병실로 향했다.
“음?”
VIP 병실 앞에 도착한 임현수가 걸음을 멈추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외국인?’
수혁의 병실 앞에 웬 검은 양복을 입은 외국인 두 명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마치 영화에서나 보던 경호원 같은 모습이었다.
‘아니, 경호원이 맞나?’
임현수는 본 적이 없었지만, 가끔 내원하는 정재계의 높으신 분들도 저렇게 경호원들을 대동한다고 들었다.
그래서 더 의문이었다.
수혁이 VIP이긴 했지만, 그것은 순전히 그의 뒤를 봐주고 있는 사람 덕분이었지, 수혁이 대단한 사람이라 그런 것은 아니었으니까.
“실례합니다.”
임현수가 그들에게 다가가며 말을 걸자, 외국인 한 명이 그의 앞을 막아섰다.
그러곤 그는 놀랍게도 유창한 한국말로 질문했다.
“죄송하지만, 성함을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임현수입니다. 김수혁 환자의 주치의입니다만…….”
“아, 그러시군요.”
임현수의 이름을 들은 외국인은 이미 알고 있는 이름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길을 비켜주었다.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그런데 누구십니까?”
이번엔 임현수가 물었다.
하지만 외국인은 그에 대한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그냥 어떤 분을 모시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모시고 있는 분이시라면……?”
“들어가 보시면 알 겁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음.”
사실 짐작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바로 수혁을 이 병원의 VIP로 만들어준 사람.
그의 이름이나 정체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극히 소수였지만, 분명 평범한 사람은 아닐 것이다.
임현수는 그런 사람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긴장한 채 병실 문을 열었다.
안에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누워 있는 수혁과 그의 여자친구인 최은송이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한 명.
‘외국인이군.’
경호원들을 보고 대충 예상은 했었다.
‘누구인지 전혀 모르겠는데?’
임현수는 순간적으로 자신이 알고 있는 유명한 이들을 떠올려 봤지만, 그중에 눈앞에 있는 노인은 없었다.
“어서 오세요.”
잠시 생각하느라 멀뚱히 서 있던 임현수를, 최은송이 반겨주었다.
“아, 예. 오늘은 좀 어떠십니까?”
“아직 자고 있어요. 많이 좋아진 것 같아요.”
임현수는 소파에 앉아 있는 노인, 짐 머레이를 힐끔 쳐다본 뒤 수혁에게로 다가갔다.
“잠시 보겠습니다.”
임현수는 차트와 수혁을 번갈아 가며 확인했다.
오늘도 역시 어제보다 나은 상태였다.
괴사된 조직의 범위가 줄어 있었고, 화상으로 손상된 피부도 조금 복구가 되어 있었다.
‘더 자세한 건 검사해 봐야 알겠지만.’
근육이나 진피층, 피하지방층 역시 회복이 되어 있을 확률이 컸다.
‘놀랍다는 말밖엔 나오질 않는군.’
임현수의 입가에 미소가 살짝 지어졌다.
“어떤가? 의사양반.”
그때 소파에 앉아 있던 짐 머레이가 임현수에게 물었다.
임현수가 움찔- 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짐 머레이는 기대가 잔뜩 서린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왠지 모를 압박감에 입이 바짝 마르는 것 같았다.
“아직 뭐라고 말씀드릴 단계는 아닙니다만…….”
임현수는 유창한 영어로 짐 머레이의 질문에 대답했다.
“지금까진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회복이 되고 있습니다.”
짐 머레이가 그 말에 미소를 지었다.
“병원을 옮기기로 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 같군. 그렇지 않은가?”
짐 머레이가 최은송을 쳐다보며 웃었다.
“그러게요. 정말 다시 한 번 감사드려요.”
최은송이 그런 짐 머레이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이런…….’
임현수는 그런 둘의 모습을 보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수혁이 지금 엄청난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자신들 덕분이 아니었으니까.
아직 치료다운 치료는 시작도 하지 않았고, 고작해야 검사 몇 가지와 항생제 투여 정도 한 게 전부였던 것이다.
제대로 된 치료를 하기도 전에 회복이 되고 있어, 일단은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중이었는데…….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을 하던 임현수가 결국 입을 열었다.
최은송과 짐 머레이의 시선이 그에게로 돌아갔다.
임현수는 난감한 표정으로 결국 수혁의 상태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은 아직까지 한 것이 없으며, 지금 수혁이 보이고 있는 회복세는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설명은 그리 길지 않았다.
아니, 처음부터 길게 설명할 수도 없었다.
임현수도 어떻게 된 상황인지 모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설명하려 해도, 해줄 말이 없다는 것이 더 정확했다.
임현수의 짧은 이야기를 들은 두 사람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말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선생님 말씀은 수혁 씨 혼자 낫고 있다는 말인가요?”
“항생제를 비롯한 몇몇 약들이 도움은 되었을 겁니다.”
임현수는 그렇게 최소한의 변명을 했다.
“흐음…….”
짐 머레이는 자신의 짧은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임현수나 이 병원을 탓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니고, 수혁에게 해가 될 행동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저 지금 상황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자네들도 원인은 알지 못하고?”
“지금 최선을 다해서 알아보고 있는 중입니다만 네, 아직은 밝혀낸 것이 없습니다.”
“알겠네.”
짐 머레이는 그런 임현수를 향해 걱정말라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냥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최선을 다해 치료에 전념해 주게. 그거면 돼.”
“알겠습니다.”
임현수는 짐 머레이와의 대화를 끝내고 병실 밖으로 나섰다.
그저 수혁의 상태를 확인하러 왔다가 난데없는 봉변을 당한 것 같아 정신이 없었다.
‘이거 잘한 건가?’
아직 수혁에게도 해주지 않은 말을, 이렇게 얘기해도 되는지 걱정이 되었다.
‘다른 분들이 알면 나를 잡아먹으려고 하겠군.’
병원의 치료 덕분에 수혁이 회복되고 있다고 자랑해도 모자를 판에, 한 일이 전혀 없다고 고백했으니.
아무리 그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병원과 의사들의 체면에 금을 가게 만든 행동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나중에 이것이 밝혀지면 혼이 좀 나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후회는 하지 않았다.
예정에는 없던 일이었지만, 환자와 보호자에게 거짓말하는 것보단 이렇게라도 밝히는 것이 더 나았다.
임현수는 수혁을 생각하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갔다.
내일은 또 얼마나 회복이 되어 있을지 기대하면서.
* * *
‘으으음.’
잠들어 있던 수혁의 눈이 떠졌다.
농담으로라도 상쾌하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지만, 그래도 어제보단 조금 나아진 기분이었다.
“일어났어요?”
수혁이 일어난 것을 알아차린 최은송이 바로 아침 인사를 건넸다.
하루 종일 자신만 쳐다보고 있는 것인지 의심이 될 정도였는지라, 수혁은 그녀에게 미안해졌다.
눈을 길게 깜빡이는 것으로 최은송에게 인사했다.
그러자 최은송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누가 왔는지 한번 봐요.”
‘응?’
갑작스런 말에 수혁이 의아한 눈빛을 보냈다.
“오랜만이네.”
낯익은 음성이었다.
‘짐?’
수혁이 눈동자를 돌리자, 그곳에는 짐 머레이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몸은 좀 어떠냐고 물으시네요.”
짐 머레이의 말을 최은송이 통역해 주었다.
물론 수혁은 대답해 줄 수가 없었지만 말이다.
“이거 참, 내가 올 때마다 병원에 있는군.”
짐 머레이가 한숨을 쉬며 말하자 수혁은 황당해했다.
‘올 때마다 병원에 있는 게 아니라, 병원에 있을 때만 오는 거 아닌가?’
“자네 덕분에 많은 사람이 목숨을 구한 것은 알고 있네만, 그래도 자기 몸도 챙겨야 하지 않겠나? 매번 이렇게 다쳐서야, 자네 여자친구가 얼마나 걱정을 하겠어.”
최은송이 난감한 표정으로 말을 전해주자, 수혁은 미안하다는 듯 그녀를 쳐다보았다.
“뭐, 그건 그렇고…….”
짐 머레이는 말을 돌렸다.
“자네 몸에 대해서 얘기를 좀 해보지.”
수혁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호기심이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