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159화
‘회복Ⅱ’ 스킬 역시 사용횟수에 제한이 있었다.
수혁은 하루에 열 번이고, 백 번이고 쓰고 싶었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하루 세 번.’
세 번까지가 한계였다.
그래도 좋은 소식은 스킬을 사용할 때마다, 조금씩 회복되는 속도가 빨라진다는 것이었다.
획기적으로 치료가 되거나, 눈에 보일 정도로 확연한 속도는 아니었지만, 이대로라면 수혁의 생각보다도 훨씬 빠르게 회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회복Ⅱ.’
수혁은 오늘의 마지막 ‘회복Ⅱ’을 사용했다.
예의 청량한 기운이 몸 안으로 들어오며 새살이 돋아나는 것이 느껴졌다.
“후우…….”
기도 역시 좋아졌다.
폐의 상태는 알 수가 없었지만, 숨을 쉬는 것이 편해진 것 같았다.
“수혁 씨, 어디 아파요?”
수혁이 숨을 깊게 몰아쉬자, 깜짝 놀란 최은송이 다급히 물었다.
수혁은 일그러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직접 이제는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아직은 제대로 말을 할 수 있는 컨디션이 아니었다.
수혁이 괜찮아 보이자 최은송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 병원으로 이송된 지 벌써 3일째.
최은송은 화장실을 갈 때를 제외하고는 단 한순간도 수혁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특실이 아무리 좋다지만 집만 하겠는가.
수혁이 제발 좀 집에 가서 쉬다 오라고 얘기하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최은송은 수혁의 작은 움직임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절대로 떠나지 않았다.
“힘들어도 조금만 참아요. 통증이 심하면 바로 얘기…… 아니, 신호해 주고요.”
걱정스러운 그녀의 음성에 수혁이 눈을 지그시 감았다 뜨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똑똑-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네, 들어오세요.”
수혁의 몸을 살펴보던 최은송이 허리를 펴며 말했다.
당연히 주치의인 임현수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들어온 사람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허허, 안녕하십니까.”
수혁이 처음 이 병원으로 이송됐을 때, 인사하려다 최은송에게 거절당했던 중년인, 한규진이었다.
최은송은 고개를 갸웃하며 그를 쳐다보았다.
한 번 본 것 같긴 한데, 누구인지 잘 기억이 나질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 어디서 봤는지 떠올린 최은송이 ‘아!’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병원 앞에서?”
“기억하시는군요.”
한규진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수혁이 그런 한규진을 보며 누구냐는 듯한 눈빛을 떠올렸다.
“그게…….”
최은송은 설명해 주려고 했지만, 딱히 해줄 말이 없었다.
그녀 역시 그때 처음 본 사람일 뿐, 누구인지 몰랐으니까.
“처음 뵙는군요, 김수혁 소방관님. 저는 한규진이라고 합니다. 이 병원의 이사장 직책을 맡고 있지요.”
“아…….”
최은송이 그제야 누구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일을 하며 몇 번 들어본 이름이었다.
그리고 그가 한 재단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는 사실도 들어본 적 있었고.
그래서 조금 떨떠름했다.
한규진에 대한 이야기는 대부분 그리 좋지 못한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안하무인이니, 싸가지가 없다느니.
집안과 돈만 믿고 아랫사람을 찍어 누르는 것이 취미라는 소문도 있었다.
하지만 최은송은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다.
그가 어떤 사람이든, 지금은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수혁이 입원한 병원의 이사장이라는 사실이 중요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자신으로 인해 그의 기분이 상한다면 골치 아픈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물론 그렇다 해도 그녀는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이 있었지만, 괜히 귀찮은 일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수혁 씨는 지금 말할 수 없는 상태라…….”
“아, 그건 알고 있습니다. 명색이 병원 이사장인데요, 허허.”
한규진은 호탕하게 웃으며 마치 자기 집이라도 되는 듯 자연스럽게 수혁의 옆에 있는 소파로 가서 앉았다.
앉은 자세 하나만 봐도 그의 인성이 어떤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중환자가 입원해 있는 병실에 병문안을 온 사람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거만, 그 자체였다.
“마실 거라도?”
최은송은 불편한 심기를 감추며 물었다.
“괜찮습니다.”
한규진은 최은송의 권유를 거절하고는 수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부족하지만 병원 이사장을 맡고 있는 사람으로서, 김수혁 소방관님 같은 분이 다쳐서 오셨는데 가만있을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인사차 들렀습니다.”
한규진은 다리를 꼬고 앉은 자세로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사람들을 구하다가 부상 당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감탄도 했고 정말 영웅이라는 별명이 아깝지가 않더군요.”
그렇게 말한 한규진은 껄껄- 하며 웃었다.
최은송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대체 환자 앞에서 뭐가 좋다고 저리 웃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처음 이곳에 오실 때 인사를 드리려고 했는데…….”
한규진의 시선이 최은송을 향해 슬쩍 이동했다.
“그때는 죄송했습니다. 경황이 없었던 터라.”
“아아, 이해합니다. 당연히 환자가 우선이었어야 했는데, 그땐 제가 생각이 너무 짧았습니다.”
한규진이 최은송을 향해 사과했다.
고개를 까딱이는 것이 사과라면 말이다.
“아무튼 그때 일을 반성하고 기회를 보다, 지금이 그때인 것 같아서 찾아왔습니다.”
최은송은 괜히 불안해졌다.
말로는 저리 죄송하다며 사과하지만, 그의 태도로 보면 빈정이 상한 게 분명해 보였던 것이다.
그러고 동시에 불쾌해졌다.
지금은 수혁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터질 것 같은데, 이런 사람에게까지 신경써야 한다는 사실이 말이다.
하지만 최은송은 한 번 더 참기로 했다.
지금 짜증을 조금 참는 것이 나중에 벌어질 귀찮은 일을 막는 것보단 나았기 때문이었다.
“김수혁 소방관님의 주치의에게 대충 상황은 들었습니다. 상태가 그리 좋지는 않으시다고……?”
“잠시만요.”
방금 전 참기로 했던 결정을 번복했다.
지금 이게 환자 본인 앞에서 할 이야기란 말인가?
“그런 얘기는 삼가주셨으면 좋겠는데요.”
“아, 이런, 죄송합니다. 제가 또 실수를.”
한규진이 전혀 미안하지 않은 표정으로 사과했다.
그것을 본 최은송은 한규진에게 다가갔다.
“지금 수혁 씨는 안정을 취해야 하니까, 이만 돌아가 주시겠어요?”
그러곤 축객령을 내렸다.
더는 수혁 옆에 이런 사람을 두고 싶지 않았다.
“흠, 돌아가라고요?”
한규진은 자리에서 일어나기는커녕, 반대로 소파에 몸을 묻으며 물었다.
“네, 돌아가 주세요.”
“아까 제 소개를 한 것 같은데……. 혹시 기억을 못 하시는 겁니까? 저 이 병원 이사장입니다만?”
“아니요,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요. 한규진 이사장님.”
최은송은 한규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럼 이만 나가주세요, 한규진 이사장님.”
한규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으신가 봅니다?”
“무슨 후회를 말씀하시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네, 자신 있어요.”
최은송의 태도는 당당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나가 드려야죠.”
한규진이 느릿하게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최은송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기대가 좀 되는군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갑자기 문 쪽에서 누군가의 음성이 들려왔다.
깜짝 놀란 최은송이 뒤를 돌아보자, 너무도 낯익은 얼굴의 남자가 얼굴을 찌푸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빠!”
최은송의 아버지인 최문식이었다.
최문식은 잠시 기다리라는 듯 최은송에게 손을 들어 보인 뒤, 한규진을 쳐다보았다.
“어떤 일이 생길지 기대가 된다니, 그게 무슨 말인지 설명 좀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흠흠.”
예상치 못한 최문식의 등장에 당황한 한규진이 헛기침을 했다.
그러곤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했다.
“보호자 분의 아버지 되십니까? 저는 이 병원의 이사장인…….”
“그딴 건 관심 없고. 설명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만.”
한규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거 참, 이런 무시를 당하는 것도 오랜만이라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그러면서 ‘아비나 딸이나 똑같군’이라며 중얼거렸다.
딴에는 혼잣말이었겠지만, 이 병실 안에서 그것을 못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당연히 그것을 들은 최문식의 얼굴이 딱딱해졌다.
“이 병원 이사장이라면……. 예성 그룹 쪽 분이시겠군요.”
예성 그룹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한규진의 얼굴에 미소가 짙어졌다.
“그래도 아버지께선 뭘 좀 아시는 모양입니다. 예성의 한규진이라고 합니다.”
한규진은 마치 ‘이제 내가 누군지 알았지?’라는 표정을 지었다.
어디서 돈 많은 호구를 하나 붙잡아 VIP 대접을 받고 있는 것 같았지만, 돈이라면 자신 역시 만만찮았다.
그러니 제아무리 VIP라고 해도 숙일 이유가 없었다.
“한규진, 한규진이라. 아, 그래. 그 한규진?”
최문식은 뭔가를 생각하는 듯 한규진의 이름을 되뇌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한규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감히 자신의 이름을 저렇게 함부로 부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남의 이름을 그렇게 막 부르시고. 무슨 대단하신 분인가 봅니다?”
한규진이 어이가 없는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그리 대단한 사람은 아니고, 이런 사람입니다.”
최문식이 품에서 지갑을 꺼내, 그 안에서 명함을 빼 들었다.
한규진은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그 명함을 받아 들었다.
[기획재정부 장관.]
[경제부총리.]
[최문식.]
전화번호와 이메일 등등의 다른 문구들도 많았지만, 한규진의 눈에 들어온 것은 그 세 가지였다.
‘……최문식?’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
이름은 들어본 적 있었다.
사실 재계 사람이라면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는 인물이었다.
한규진이 조금만 이쪽에 관심이 있었더라면, 얼굴을 보는 순간 누구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한규진은 그런 것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때문에 최문식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은 크나큰 실수였다.
“자, 장관?”
한규진의 눈이 더는 커질 수 없을 정도로 부릅떠졌다.
평범한 소시민 정도로만 여겼던 사람이, 이 나라의 장관이자 경제를 담당하는 부서의 책임자다.
예성 그룹의 일개 구성원에 불과한 자신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신분이었다.
“한규진 씨, 이제 제가 누구인지 알았으니까, 조금 전 질문에 대답해 주시겠습니까?”
“그, 그게…….”
한규진의 눈알이 데룩데룩 굴렀다.
‘젠장, 설마 그 호구가 경제부총리일 줄이야!’
한규진의 오해였지만, 사실 크게 틀리지도 않았다.
어쨌든 최문식은 수혁의 장인어른이 될 예정이었던 사람이니까.
수혁의 부상으로 미래가 불투명해지긴 했지만, 수혁의 뒷배 정도는 충분히 해줄 수 있었다.
“방금 제 딸과 저 녀석을 협박한 것 같았는데, 맞습니까?”
“아닙니다!”
최문식의 질문에 한규진이 발작하듯 대답했다.
“제대로 된 설명을 해주셔야 할 겁니다.”
최문식이 눈을 가늘게 뜨며 한규진을 노려보았다.
“아빠.”
그때 최은송이 나섰다.
지금 수혁은 절대안정을 취해야 한다.
설명이고 뭐고, 밖으로 나가서 하라는 딸의 눈치에 최문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가서 얘기하시죠.”
한규진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돼지처럼 최문식의 뒤를 따라 병실 밖으로 나갔다.
그제야 병실 안이 조용해졌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침대에 누워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상황을 지켜보기만 했던 수혁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