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158화
“조심, 조심.”
수혁의 이송이 시작되었다.
스트래쳐에 실려 구급차로 향하는 수혁의 몸에는 온갖 장비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수혁 씨, 조금 고통스럽겠지만 잠시면 되니까 참아주세요.”
누군가 수혁에게 그렇게 말을 했다.
수혁은 작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버틸 만한데.’
‘회복Ⅱ’ 스킬 덕분에 통증은 어느 정도 사라졌다.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 정도는 충분히 견딜 수 있었다.
그것을 알지 못하는 의료진들은, 최대한 충격이 가지 않도록 조심하며 수혁을 옮겼다.
한참 만에 구급차에 실린 수혁이 눈동자를 굴려 옆을 쳐다봤다.
누군가 앉아 있었다.
그런데 입고 있는 옷을 보니, 간호사나 의사가 아닌 것처럼 보였다.
‘누구지?’
흐릿한 시야 때문에 어떤 사람인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대충 여자인 것은 알겠는데…….’
어딘지 모르게 익숙했다.
익숙한 머리길이.
익숙한 옷.
익숙한 향기.
수혁은 문득 그녀가 누구인지 알 수가 있었다.
‘은송 씨.’
아무리 앞을 제대로 볼 수 없다고 하지만, 그녀를 어찌 못 알아볼까?
수혁이 입가에 힘을 주었다.
미소를 지어보려 했지만, 화상으로 손상된 피부와 근육은 수혁의 마음처럼 움직여 주질 않았다.
결국 일그러진 미소밖에는 지을 수가 없었다.
“……수혁 씨.”
최은송의 목소리였다.
그것을 들은 수혁의 미소가 더욱 일그러졌다.
“괜찮아요? 많이 아프죠?”
최은송의 음성은 떨리고 있었다.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지만, 그 떨림은 수혁에게도 생생하게 전해졌다.
수혁이 눈을 감았다.
최은송에게 큰 상처를 준 것 같아 너무도 미안했다.
하지만 지금은 희망이 생겼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중요한 건 회복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조금만 기다려요.’
수혁은 속으로 속삭였다.
최은송은 손을 들어 수혁의 얼굴에 가까이 가져다대다 멈칫했다.
얼굴이 흉측해서가 아니라, 혹여 손이 닿으면 수혁이 고통스러울 것 같아 걱정됐기 때문이었다.
최은송은 남자친구의 얼굴도 제대로 만지지 못하는 상황에 절로 울상이 지어졌다.
“괘, 괜찮…….”
수혁은 그런 최은송에게 괜찮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출발하겠습니다.”
그때, 준비가 다 됐는지 인턴 한 명이 구급차 안에 타며 출발을 알렸다.
구급차가 서울을 향해 출발했다.
구급차 안에는 적막이 흘렀다.
수혁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는 몸이었고, 최은송은 그저 수혁만을 바라볼 뿐, 입을 열지 않았다.
그렇게 침묵 속에서 얼마나 달렸을까?
서울에 진입한 구급차는 이내 수혁이 치료받을 대학 병원에 도착했다.
구급차 문이 열리자, 이미 연락받고 대기 중이었던 의료진들이 수혁을 맞이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누군가 수혁과 최은송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는 가운 대신 양복을 걸치고 있는 오십대 남자였다.
복장 때문인지, 그는 의사라기보다는 사업가의 느낌을 물씬 풍겼다.
“아, 네.”
최은송이 수혁을 대신해 그의 인사를 받았다.
“저는…….”
남자가 자신의 소개를 하려고 했지만, 최은송은 고개를 저으며 그의 입을 막았다.
“죄송한데, 소개는 나중에 들을게요. 일단은 수혁 씨 먼저.”
최은송의 말에 남자가 입을 다물며 얼굴을 붉혔다.
부끄러움보단, 모욕감에 가까운 표정이었다.
하지만 이내 신색을 회복하고는 미소를 지었다.
“제가 실례를 저질렀군요. 환자가 우선이죠, 아무렴요.”
남자가 뒤를 돌아보며 고개를 살짝 끄덕이자,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들이 그제야 수혁을 스트래쳐에 실어 이송하기 시작했다.
“같이 들어가 보시죠.”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최은송은 그에게 고맙다는 듯 고개를 살짝 숙여 보인 후, 수혁을 따라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던 남자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같잖은 것들이 호구 하나 잡았다고 상전 노릇이군.”
그는 헛웃음을 내뱉으며 최은송의 등을 노려보았다.
“괜찮으십니까?”
비서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눈치를 보며 물었다.
“괜찮아 보이나?”
남자는 비서에게 괜한 화풀이를 하며 손에 들고 있던 명함을 집어던졌다.
“이딴 건 대체 왜 준비한 거야!”
손에서 떨어진 명함이 비서의 몸에 맞고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쯧.”
남자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몸을 돌려 빠르게 사라졌고, 비서 역시 그의 뒤를 잽싸게 따라붙었다.
조용해진 병원 앞.
땅에 떨어진 명함에는 ‘재단 이사장 한규진’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상태가 그리 좋지는 않군요.”
수혁의 상태가 적혀 있는 차트를 보던 의사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피부 괴사도 상당히 많이 진행됐고, 무엇보다 화상 부위가 너무 넓습니다.”
“일단 피부 이식은 불가피하군요.”
“예, 아무래도 저 상태로는 일상생활도 불가능할 테니까요.”
“다행히 신경은 대부분 살아 있습니다. 하지만 덕분에 통증이 심각할 겁니다. 아마 진통제가 없으면 쇼크가 올지도 모를 정도입니다.”
“기도와 폐는 답이 없군, 자가 호흡이 불가능해.”
피부과, 외과, 내과, 신경과 등등.
온갖 부서에서 몰려와 수혁의 상태를 논의했다.
각각의 의견은 많았지만, 공통적인 것은 수혁의 상태가 매우 안 좋다는 것이었다.
“괴사된 조직부터 처리하는 것이 우선이겠군요.”
죽은 조직이 썩어 들어가기 시작하면 그 이후부턴 손쓸 도리가 없었다.
수혁의 상태를 확인한 의사들은 치료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대화가 지속되면 지속될수록 의사들의 표정은 점점 더 어두워질 뿐이었다.
“이거 VIP를 받은 줄 알았더니, 반송장을 받았군요.”
“어허, 말조심 못 하겠나?”
누군가의 말에 사람들이 경고하며 주위를 살폈다.
“위쪽에서도 신신당부할 정도의 환자야. 괜한 구설수에 올랐다간 가운 벗는 수가 있어.”
“……죄송합니다.”
의사들은 수혁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TV에도 여러 번 나왔고, 한때 영웅이라 불릴 정도로 유명한 소방관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정도로 이 병원에서 VIP 대접을 받기에는 부족했다.
그럼에도 수혁은 병원장과 총장, 이사장까지 모두 신경쓸 정도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VIP 환자가 됐다.
그 말은 누군가 수혁의 뒤를 봐주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수혁이 입원한 특실은 하루 입원비가 3백만 원을 훌쩍 넘기는 곳.
지방 공무원에 불과한 수혁은 꿈도 꾸지 못할 병실이었다.
그것만 봐도 수혁의 뒤를 봐주는 사람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쯤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앞으로 다들 말조심하고, 위에서도 눈여겨보고 있는 만큼, 치료하는 데 실수가 있어선 안 돼.”
“알겠습니다.”
의사들은 1차 회의를 끝마쳤다.
그리고 수혁의 주치의가 된 피부과 과장은 수혁의 병실로 향했다.
똑똑-
“들어오세요.”
과장이 노크하자 안에서 최은송의 음성이 들려왔다.
“실례하겠습니다.”
피부과 과장은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지금 방금 막 잠들었어요. 깨워야 할까요?”
과장이 수혁을 살피기 위해 다가오자 최은송이 말했다.
“아, 괜찮습니다. 지금은 그냥 인사드리러 온 것에 불과합니다.”
가능하면 수혁에게 직접 자신을 소개하고 싶었지만, 잠들어 있는 환자를 깨울 수는 없었다.
대신 보호자에게 인사를 건넸다.
“김수혁 환자의 주치의를 맡게 된 임현수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주치의란 말에 최은송이 허리를 숙였다.
“하하. 주치의라고는 하지만, 김수혁 환자의 치료는 저뿐만 아니라 모든 과에서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임현수는 손을 내저으며 겸양을 떨었다.
“수혁 씨의 상태는 어떤가요?”
최은송이 물었다.
느닷없는 질문에 임현수는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금세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보호자의 입장에서는 의사의 이름 따위보다는, 환자의 상태를 가장 궁금해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임현수는 수혁을 쳐다봤다.
그러곤 수혁이 잠들어 있는 것을 확인한 뒤,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닙니다.”
최은송이 마른침을 삼키며 임현수의 설명을 들었다.
하지만 그가 말을 해준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들뿐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열기로 인해 손상된 기도와 폐, 그리고 화상 부위입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일상생활에도 지장이 생길 겁니다.”
거기까지 들은 최은송이 눈을 감았다.
큰 병원으로 옮겼지만, 결국은 똑같은 말이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임현수로선 그 정도밖에는 해줄 말이 없었다.
사실 수혁의 상태는 죽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으니까.
만약 수혁의 체력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을 정도가 아니었다면, 이미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최은송은 다시 한 번 임현수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임현수는 그 후로 몇 가지 사항에 대해 더 이야기를 나누고는 병실을 나갔다.
“하아…….”
수혁의 옆에 혼자 남은 최은송이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 주저앉았다.
병실이라기엔 지나치게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였지만, 그녀에겐 일말의 가치도 없었다.
그저 침대에 누워 눈을 감은 채, 힘겹게 호흡을 하고 있는 수혁만이 그녀의 시선을 전부 차지하고 있었다.
“힘내요.”
최은송이 슬픈 음성으로 수혁을 향해 속삭였다.
“힘내요.”
수혁은 눈을 감은 채, 최은송의 속삭임을 들었다.
‘힘낼게요.’
눈만 감고 있었을 뿐, 잠에 들지 않고 있었던 수혁은 최은송과 임현수의 대화를 전부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제야 자신의 상태를 정확하게 알 수가 있었다.
‘많이 다쳤구나.’
생각보다도 더 심했다.
피부 이식은 물론이고, 폐도 절제를 해야 할 정도라니.
그 소리를 들은 수혁은 조금 조급해졌다.
만약 회복이 되기 전에 수술해 버리면 큰일이기 때문이었다.
수혁은 눈을 감은 채, 다시 한 번 스킬을 사용했다.
‘회복Ⅱ.’
솨아아아-!
청량한 기운이 몸속으로 스며드는 것이 느껴졌다.
통증이 한결 더 사라지며, 상쾌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리고.
‘……어?’
몸이 조금씩 근질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개미들이 기어 다니는 것 같은 감각.
간지러움이 심하게 느껴졌지만, 수혁은 오히려 희열했다.
왜 이런 감각이 느껴지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새살이 돋는다!’
처음 ‘회복Ⅱ’을 사용했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속도였다.
물론 그렇다 해도 완벽히 회복되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처음 생각했을 때보다 빠르다는 사실은 꽤나 고무적이었다.
1년, 혹은 2년이 걸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이 정도 속도라면 6개월이면 충분할지도 모른다.
아니, 더 빠를지도 몰랐다.
처음 스킬을 사용했을 때보다, 두 번째 사용했을 때 속도가 더 빨라졌으니까.
세 번, 네 번 사용하면 더욱 빨라질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었다.
반면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화상이 치료되고, 폐와 기도가 재생되는 일은 분명히 비정상적이었으니까.
그것을 본 의사들이 해부하자며 안 달려들면 다행이었다.
‘이것도 방법을 생각해 봐야겠어.’
걱정이 되긴 했지만, 수혁은 일단 접어두었다.
지금은 이 좋은 기분을 더 만끽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