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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156화 (156/425)

레스큐 시스템 156화

눈을 떴다.

희미하게나마 앞이 보이기 시작했다.

수혁은 눈앞에 어둠이 펼쳐지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안도했다.

‘얼마나 지난 거지?’

몸은 여전히 아팠다.

특히 상체 쪽은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으…….”

도와달라는 말을 하기 위해 입을 열었지만, 나오는 것이라곤 쇳소리와 같은 신음이 전부였다.

“정신 드셨어요?”

하지만 다행히 누군가 그것을 들었는지, 수혁에게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무, 물 좀.”

타들어가는 듯한 갈증에 수혁이 물을 부탁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간호사로 보이는 여자가 수혁의 상태를 잠시 체크하고는 사라졌다.

수혁이 힘겹게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일반 병실은 아니었고, 집중 치료실인 것 같았다.

‘화상이 심한가 보구나.’

그것은 지금 몸에서 느껴지는 고통만으로도 알 수가 있었다.

자신의 몸이 어떤 상황인지 보고 싶었지만, 고개를 마음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온몸이 찢어지는 듯했기 때문이었다.

“목이 상해서 아직 물을 드실 순 없어요. 대신 이걸 좀 물어보세요.”

사라졌던 간호사가 다가오며 수혁의 입술을 살짝 벌렸다.

그러곤 젖어 있는 거즈를 물렸다.

입술에 닿은 차가운 감각에, 수혁은 희열마저 느껴졌다.

수혁은 거즈에 묻은 물을 빨았다.

적은 양이었지만 뜨거운 육체를 식혀주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거즈에서 더는 물이 나오지 않자 갈증이 다시 시작됐다.

“조금 참으셔야 해요.”

물을 더 달라고 하려던 찰라, 이미 그것을 예상하고 있던 간호사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수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물도 제대로 마실 수 없을 정도라니.’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한 것 같았다.

아니, 예상은 하고 있었다.

사실 불길 속에서 요구조자를 던지고 쓰러졌을 때, 이대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박상태의 도움으로 살아나긴 한 것 같지만, 그것이 마냥 고맙지는 않았다.

‘회복할 수 있을까?’

이전 생에서 수혁은 수많은 화상 환자들을 봐왔다.

그가 직접 구한 요구조자.

구조하다 참변을 당한 동료.

셀 수 없이 많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적은 수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

수혁은 앞으로 자신 역시 그런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은송 씨는…….’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최은송이었다.

평소 그녀의 행동과 마음을 생각해 보면, 떠날 것 같지가 않았다.

분명 곁에서 간호하며 계속해서 머물러줄 수 있는 여자였다.

하지만 수혁은 그것이 더욱 마음 아팠다.

최은송의 외모와 성격이라면, 지금 당장에라도 만나자며 다가올 남자들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도 화상으로 육체가 망가져 버린 자신을 떠나지 않는다면, 그녀에게 너무도 미안했다.

‘헤어져야겠지?’

생각이 있다면 그녀를 놓아주어야 마땅하다.

절대로 헤어지지 않고,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었지만…….

이렇게 된 이상, 더는 그녀와 함께할 수가 없었다.

수혁은 그 정도로 양심이 없지 않았다.

최은송을 생각하자 마음이 더욱 아파왔다.

“수혁 씨.”

그때였다.

잠에 빠지기 전, 수혁에게 말을 걸었던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수혁이 눈동자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시야가 흐릿해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하얀 가운을 입고 있는 것으로 봐선 의사인 것 같았다.

“잠시 몸 좀 보겠습니다. 아파도 조금만 참아주세요.”

그 말과 동시에 끔찍할 정도의 통증이 밀려들었다.

“으으윽!”

자신도 모르게 고통에 찬 신음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의사는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수혁의 몸 상태를 살폈다.

그렇게 몇 시간 같았던 몇 분이 흘렀다.

“자신의 몸 상태는 자각하고 계시죠?”

의사의 음성은 차가워 보였지만, 그 안에는 안타까움이 가득 묻어 있었다.

수혁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현재 상반신에 중증 3도 화상을 입은 상태입니다.”

화상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피부가 괴사되기 시작했고, 감염의 위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불운하다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신경 조직은 아직 살아 있습니다.”

의사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신경 조직이 죽지 않았다는 것은 희소식이었지만, 그 덕분에 수혁은 통각을 정상적으로 느낄 수가 있었다.

지금 수혁이 느끼고 있을 고통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피부 이식이 필요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수술한다고 해도, 예전과 같은 모습으로는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의사의 말은 냉정했다.

하지만 수혁은 차라리 그것이 고마웠다.

괜한 희망을 주었다가 나중에 실망하는 것보단, 지금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이 더 나았다.

“그리고 기도와 폐의 손상 역시 심각한 수준입니다. 자세한 것은 더 정밀한 검사가 필요하겠지만, 절제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지금 수혁이 호흡할 수 있는 것은 산소 호흡기를 착용하고 있는 덕분이었다.

그것을 뗀다면 당장에라도 호흡 곤란이 올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수혁은 의사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점점 더 깊은 수렁에 빠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진심으로 차라리 그 자리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의사는 그 후로도 몇 가지 사항을 더 이야기했지만, 수혁은 더 이상 그것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머릿속이 너무도 복잡해 그 말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럼 다시 오겠습니다.”

의사는 간호사에게 진통제 및 약물의 처방을 지시하고는 멀어졌다.

수혁은 멍하니 천장만을 바라봤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병원 천장의 색처럼, 수혁의 생각도 새하얗게 변해 버렸다.

그러다 어느 순간 핑- 하는 느낌과 함께 천장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진통제의 약효가 들기 시작한 것이다.

수혁은 혼미해져 가는 시야를 느끼며 생각했다.

‘다음에는 눈을 뜨지 않았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을 했다.

* * *

최은송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그렇게 참아보려고 노력했는데, 의사의 설명을 듣고 있노라니 도저히 참아낼 수가 없었다.

그만큼 수혁의 상태는 너무도 참혹했다.

최은송은 잠시 눈을 감고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러곤 뺨을 적시고 있는 눈물을 거칠게 닦아내며 눈을 떴다.

“살 수는 있는 건가요?”

최대한 담담한 음성으로 물었다.

“환자분의 체력이 평소에 대단했는지, 생존 가능성은 높습니다. 하지만 생존한다고 해도, 그 이후의 삶은 예전과는 많이 달라질 겁니다.”

의사가 죄송하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러자 최은송은 고개를 끄덕였다.

“살아만 있으면 돼요, 살아만 있으면.”

죽지 않고 살아만 있으면 된다.

예전과는 다를 거라고?

상관없었다.

수혁이 흉측한 몰골로 변했다고 해도, 평생을 움직이지 못하고 침대에만 누워 있어야 한다고 해도.

그딴 건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수혁 씨만 살아 있으면 돼!’

나머지는 자신이 책임질 수 있었다.

언젠가 수혁에게 했던 말이 있다.

‘아무리 다치고, 망가지더라도. 살아서 돌아와만 준다면, 나머지는 모두 내가 책임지겠다. 그러니 제발 살아서만 돌아와 달라.’

수혁은 농담처럼 받아들인 것 같았지만, 최은송은 진심이었다.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생각이 바뀌지는 않았다.

‘수혁 씨는 내가 책임져.’

나중에는 지금의 결정이 너무 힘들어서 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은송은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최은송이 의사를 향해 허리를 깊게 숙였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의사 역시 그런 최은송에게 마주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고는 한숨을 내쉬곤 자리를 떴다.

최은송은 한참 동안이나 굽히고 있던 허리를 펴지 못했다.

지금 일어났다가는 다시 눈물이 흘러내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몇 분이 지나고 나서야 고개를 든 최은송은 입술을 깨물며 의자에 앉았다.

그녀의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수혁은 단 한 명의 가족도 없었고, 신일서의 동료들도 지금 모두 근무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수혁의 친구들 역시 마찬가지.

어제저녁에 고승우를 비롯한 몇 명의 친구들이 왔지만, 면회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최은송과 인사하고 몇 마디 대화만 나눈 채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최은송은 시끄러운 병원 안에서, 홀로 힘겨운 싸움을 벌였다.

‘약해지지 말자.’

아무리 힘들고, 아무리 괴로워도.

절대 수혁을 포기하지 말자며 스스로 다짐했다.

그리고 이젠 단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겠다며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최은송은 그 후로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은송아!”

뒤에서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최은송이 일어나 뒤를 돌아보자, 그녀의 어머니인 유영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엄마!”

그녀의 모습을 확인한 최은송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하고 흘러내렸다.

“수혁 씨가, 수혁 씨가…….”

엄마의 품에 안긴 최은송이 마치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유영자는 그런 최은송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엄마는 딸을 위로했지만, 딸의 서러움은 쉽사리 잦아들지 못했다.

그간 혼자서 병원 앞에 앉아 가슴을 졸이고, 수혁에 대한 걱정으로 마음이 미어질 것 같았던 설움이 터져 나왔다.

유영자는 그런 최은송을 가만히 안은 채 기다려 주었다.

한참 동안이나 서럽게 울던 최은송은 어느 정도 진정이 됐는지 유영자의 품에서 얼굴을 뗐다.

“다 울었어?”

유영자가 묻자 최은송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더 울고 싶었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계속해서 울고 싶었다.

그래서 수혁이 나을 수만 있다면, 언제까지고 울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눈물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럼 앉자꾸나.”

유영자는 최은송을 데리고 의자에 앉았다.

“어떤 상황인지 한번 얘기해 봐.”

유영자의 물음에 최은송이 머뭇거렸다.

하지만 여기까지 온 마당에 숨길 수도 없었으니, 조금 전 의사에게 들었던 말을 그녀에게 전해주었다.

말이 이어질수록 유영자의 표정이 굳어졌다.

크게 다쳤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살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고는 하지만, 그 후가 더 문제였다.

세상 어느 부모가 딸을 그런 상황의 남자와 계속 만나게 해줄까?

최은송 역시 말을 하며 유영자의 눈치를 보았다.

혹시나 당장 헤어지고 다시는 수혁과 만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할까 무서웠다.

이야기를 모두 들은 유영자는 한숨을 내쉬며 최은송의 눈을 쳐다보았다.

그러곤 말했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 돼. 네가 힘든 모습을 보이면, 수혁이는 더 힘들 테니까.”

최은송은 그 한마디가 너무도 안심되었다.

그 말에 담긴 의미는 계속해서 수혁과 함께해도 된다는 뜻이었으니까.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겠네. 이 병원은 괜찮은 곳 맞니? 서울로 옮기지 않아도 되겠어?”

사실 그녀는 잘 알지 못했다.

이 근방에서는 가장 큰 종합 병원이긴 했지만, 최은송은 한 번도 와본 적도 없었고, 들어본 적도 없는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네 아버지에게 말해서 병원을 옮기는 게 좋을 것 같구나.”

모녀는 조금이라도 더 좋고, 더 유능한 의사들이 있는 곳으로 이송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병원은 이미 저희가 구해놓았습니다.”

갑자기 누군가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깜짝 놀라서 돌아보니, 낯이 익은 외국인이 눈에 들어왔다.

최은송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검은 양복의 외국인이 입을 열었다.

“수혁 씨의 치료는 모두 자신에게 맡겨달라고 하시는군요.”

그의 옆에는 짐 머레이가 침통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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