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153화
“야, 이 또라이야! 그 몸을 해서 뭐? 사람을 구하러 가? 지금 우리가 널 구조해서 데리고 나가야 할 판이야!”
박상태가 거칠게 수혁의 팔을 잡으며 소리쳤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 수혁은 고작 걷는 것만으로도 힘이 들어 비틀거리고 있었으니까.
대체 그런 몸으로 어떻게 사람을 구한다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소방관이라면 누구나 사명감이 있고, 희생정신 역시 있었다.
요구조자를 위해선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앞으로 나아간다.
그것은 박상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저놈은 너무 심해.’
요구조자를 구하기 위해 몇 번이고 죽을 위기를 넘긴 경험이 있는 박상태가 보기에도, 수혁은 심각했다.
요구조자에 대한 집착이 광적일 정도로 보일 지경이었다.
10년의 소방관 생활을 하며 저런 놈은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었다.
물론 그 집착 덕분에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옆에서 보고 있자면 조마조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지금 가야 돼요, 형.”
“개소리하지 마. 못 가. 넌 우리랑 밖으로 나간다.”
“형!”
“내 말 들어, 뒈지기 싫으면.”
박상태는 수혁을 붙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수혁은 그런 박상태의 손을 뿌리치려고 팔을 흔들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박상태의 힘이 강하기도 했지만, 수혁이 힘을 전혀 쓰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수혁이 한숨을 내쉬며 박상태를 쳐다보았다.
“이럴 시간 없어요. 진짜 급해요.”
마지막 남은 요구조자는 지금 당장 숨을 거둬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였다.
이렇게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시간조차도 요구조자에겐 생과 사를 가를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시간이었다.
“지금부터 너는 구조대가 아니다. 요구조자야.”
“형!”
“박정우, 이곳 위치 알리고, 이 새끼 잡아.”
수혁이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지만, 박상태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박상태의 명령에 박정우는 수혁의 눈치를 보며 무전기를 들었다.
“요구조자 세 명 발견. 요구조자 세 명 발견. 지원 바랍니다.”
박정우는 이곳의 위치와 요구조자들의 상태를 설명하며 지원을 요청했다.
이제 지원이 올 때까지 상황이 악화되지 않게 조치를 취하며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박상태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수혁은 아니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박상태의 손에서 빠져나가야만 했다.
“상태 형.”
“말하지 마라. 체력 떨어진다.”
박상태는 수혁의 말을 듣지도 않겠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한 명 남았어요.”
한 명이 남았다는 말에 박상태의 손에 힘이 조금 더 들어가는 듯했다.
하지만 억지로 그 말을 무시하려는지, 수혁을 쳐다보지는 않았다.
“지금 가면 구할 수 있어요. 만약 이 사람 못 구하면, 그건 다 우리 책임입니다.”
목소리가 다 갈라져 듣는 것이 괴로울 정도인 사람의 말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겠는가?
박상태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좋아요, 그럼 같이 가요. 그럼 되죠?”
그 말에 박상태의 고개가 살짝 움직였다.
“여기는 안전해 보이니까, 지원이 올 때까지 정우 선배한테 맡기고. 형은 나랑 같이 가요. 위험하면 형이 구해주면 되잖아요.”
박상태의 시선이 천천히 수혁에게로 돌아갔다.
그 역시 요구조자를 구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도 구조대원이니까.
누구보다도 요구조자를 살리고 구조하고 싶었다.
하지만 수혁이 혼자 또 무리하다 잘못될까 두려워 애써 무시했던 것이다.
그러다 마침내 기다렸던 말이 나왔다.
“같이 가자고?”
박상태는 수혁을 말리지 못할 것을 알리고 있었다.
지금에야 힘이 없어 자신에게 붙잡혀 있었지만, 조금이라도 회복이 된다면 언제든 뿌리치고 혼자 갈 놈이었다.
그래서 같이 가자는 말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요구조자 위치는?”
“여기서 서쪽으로 27m 떨어진 곳이요.”
“한 명이라고?”
“네, 지금 위급한 상태일 거예요.”
박상태가 수혁의 팔을 붙잡은 손에서 힘을 뺐다.
이제 와 새삼스럽게 어떻게 알았냐는 질문은 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요구조자가 위급할지도 모른다는 것에만 집중했다.
“필요한 거 불러, 챙길 테니까.”
“……마스크면 돼요.”
수혁의 대답에 박상태가 고개를 끄덕이며 박정우를 불렀다.
“얘기 들었지?”
“네.”
“여긴 너한테 맡길 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무전 해라.”
“알겠습니다.”
박정우는 살짝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말라는 듯 억지로 눈웃음을 만들어냈다.
“그럼 믿고 간다.”
박상태는 박정우의 어깨를 한 번 두들겨 주고는 수혁에게로 다가갔다.
“앞장서, 뒤는 내가 맡는다.”
그 말에 수혁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발을 내딛을 때마다 휘청거리는 수혁의 뒷모습은 너무도 위태로워 보였다.
박상태는 그런 수혁을 부축해 줘야 할지 고민했다.
“제 걱정은 하지 마요. 그냥 좀 지쳐서 그런 것뿐이니까.”
수혁은 박상태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그렇게 말했다.
“까불지 말고 힘들면 말해. 업어서라도 데려가 줄 테니까.”
“그렇게 할게요.”
박상태의 말에 수혁이 작게 미소 지었다.
퉁명한 말투로 말을 하긴 했지만, 그 안에서 자신을 향한 걱정이 잔뜩 묻어 있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수혁은 힘겨웠지만, 절대 멈추지 않고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간혹 비틀거리며 주저앉을 뻔할 때마다 박상태가 붙잡으며 핀잔을 주었다.
“그런 몸으로 잘도 사람을 구하겠다.”
쓰러지려는 수혁을 붙잡아준 것이 다섯 번쯤 됐을 때였다.
박상태가 더는 안 되겠다는 것을 깨닫고는, 봄베를 벗어 수혁에게 건넸다.
“이거 들어라.”
수혁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봄베를 받아 들자, 박상태는 수혁의 앞으로 가서 등을 내밀었다.
“업혀.”
이대로 가다간 죽도, 밥도 안 되게 생겼다.
사람을 구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저런 몸으론 사람을 구하기는커녕, 민폐나 끼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수혁은 박상태의 등을 바라보며 잠시 주저했다.
하지만 이내 결심한 듯 등에 업혔다.
수혁도 자신의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닌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괜히 힘을 낭비했다가, 정말로 필요한 순간에 쓰지 못하는 것만큼 바보 같은 일도 없지 않은가?
지금은 박상태의 등에 업혀 최대한 힘을 비축하고, 그것을 요구조자를 구하는 데 써야만 했다.
‘미안해요, 형.’
수혁은 박상태의 등에 업힌 채 사과를 했다.
그와 같이 가기로 결정했지만, 사실 요구조자를 구할 수 있는 것은 수혁, 자신밖에 없었다.
박상태에게 함께 가자고 했던 것은 설득시키기 위한 명분에 불과했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 박상태가 보일 모습을 떠올린 수혁은, 미안한 마음에 속이 편치 않았다.
“어느 쪽으로 가면 되냐?”
길이 막혀 있는 것을 확인한 박상태가 물었다.
“오른쪽이요.”
“……저기?”
수혁이 가리킨 곳을 확인한 박상태가 얼굴을 찌푸렸다.
그곳에는 작은 골목길이 하나 있었다.
사람이 지나다니기엔 충분했지만, 양옆으로 불길이 넘실대고 있어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앞으로 가는 것보단 낫잖아요.”
“그렇긴 한데…….”
가장 빠른 길은 앞으로 계속 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앞을 막고 있는 불의 벽은 방수도 없이 들어가기가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반면 수혁이 가리킨 골목길은 위험하긴 했지만, 방화복을 입고 있으니 어떻게든 통과할 수 있는 정도였고.
한숨을 내쉰 박상태가 골목길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내가 미쳤지.”
괜히 같이 가겠다고 했다며 투덜거렸다.
“조심, 조심.”
수혁은 박상태의 등에 업힌 채, 주변을 살펴보며 박상태에게 경고해 주었다.
덕분에 박상태는 별 무리 없이 골목길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거의 다 왔어요.”
수혁이 걱정스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박상태의 호흡이 너무 거칠었다.
장비와 수혁의 무게를 합치면 100㎏이 넘는다.
그것을 마스크를 쓴 채 홀로 짊어지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한 시간 동안 구조하느라 상당한 체력을 낭비한 후였으니 더욱 그랬다.
박상태는 대답할 여력도 없는지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여기냐?”
조금 더 걷던 박상태가 앞을 확인하고는 헛웃음을 내뱉으며 물었다.
‘에이, 설마. 아니지?’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는 것 같았다.
“내려줘요.”
수혁은 그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정말 이 안에 요구조자가 있다고?”
조금 전 앞길을 막고 있던 불의 벽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길이었다.
어디서 가스라도 새고 있는 것인지, 불길은 너무도 커서 천장을 뚫고 하늘 높이 치솟아 올라 있을 정도였다.
밖에서도 이쪽의 심각성을 알고 있는 것인지, 쉴 새 없이 방수하고 있었다.
물론 잡힐 기미는 보이지 않았지만.
“조금 더 옆으로 돌면 길이 있을지도 몰라.”
“다 똑같아요.”
박상태가 다른 쪽으로 진입할 것을 고려하자, 수혁이 고개를 저었다.
불길의 크기만 차이가 있을 뿐, 위험하기는 모두 매한가지였다.
아니, 차라리 불만 뚫으면 되는 이쪽이 훨씬 쉬웠다.
최소한 수혁에게는 말이다.
“그럼 돌아가서 화재 진압대랑 같이 와야 돼.”
이곳의 상황을 눈으로 본 박상태는 그냥 진입한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그게 정상이었다.
저런 불 속에 걸어 들어간다?
아무리 방화복을 입고 면체 마스크와 헬멧으로 몸을 보호한다고 해도 무리였다.
몇 걸음 옮기지도 못하고 참을 수 없는 열기에 몸부림치다 쓰러져, 그대로 잿더미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럴 시간 없다니까요.”
화재 진압대를 부를 시간이 있었으면, 처음부터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럼 어쩔 생각이냐?”
박상태는 자신이 생각하는 그것이 아니길 바라며 수혁에게 물었다.
그리고 수혁은 그런 박상태의 바람을 무참히 짓밟았다.
“저 혼자 들어갈게요. 형은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요.”
“야, 이……!”
습관적으로 소리를 치려는데, 수혁이 고개를 저으며 박상태의 말을 막았다.
그러곤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상태 형, 부탁이 하나 있는데요. 지금부터 보는 건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줘요.”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얼굴로 수혁을 쳐다보았다.
대체 뭘 보여줄 생각이기에 저렇게까지 말을 하는지 예상조차 가질 않았다.
그리고 박상태가 그것에 대해 잠시 생각을 하는 사이, 수혁이 빠르게 움직였다.
뒤늦게 박상태가 그런 수혁을 붙잡기 위해 팔을 뻗었지만, 등에 업혀오며 조금 체력을 회복한 수혁을 붙잡기엔 역부족이었다.
“야! 이 미친 새끼야!”
수혁이 불 속으로 뛰어들었다.
정말이지 미쳤다는 소리밖에 나오질 않았다.
아무리 요구조자를 구조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지만, 저건 그냥 자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박상태가 황당을 넘어 경악과 분노한 표정으로 수혁의 뒤를 쫓아가려던 그때였다.
“어?”
박상태의 움직임이 덜컥- 하고 굳어졌다.
그러곤 지금 자신이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이 사실인지 의심스러워했다.
“불이……?”
당장에라도 수혁을 집어삼킬 것만 같았던 불길이, 무언가에 막힌 것처럼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다.
박상태는 방금 전 수혁이 했던 부탁을 떠올렸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는 게 이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