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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152화 (152/425)

레스큐 시스템 152화

“어서 움직여!”

박상태가 다급한 음성으로 크게 말했다.

방금 한 명의 요구조자를 더 발견하고는 구조를 시작했다.

연기를 마신 요구조자의 상태는 한눈에 보기에도 심각했다.

빨리 밖으로 데려가 병원으로 이송하지 않으면 위험했다.

박상태의 얼굴에 초조함이 떠올랐다.

‘수혁이 놈은 정말 괜찮은 건가?’

방금 전의 무전을 떠올렸다.

수혁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하는 것 같았지만, 박상태는 이상함을 느꼈다.

우선 말투가 너무 늘어졌다.

보통 그런 증상은 정신이 온전하지 못할 경우에 나타난다.

‘지칠 만도 하지.’

자신조차도 벌써 몇 번이나 밖으로 나가 잠깐씩 휴식을 취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으니까.

그런데 수혁은 단 한 번도 휴식을 취하지 않고 계속해서 구조를 이어갔다.

물도 못 마셨을 테고, 체력도 다 떨어졌을 것이다.

‘산소도 마찬가지지.’

거기까지 생각을 한 박상태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대충 계산해 봐도 수혁에게 남아 있는 산소가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설마 벌써 다 떨어진 건 아니겠지?’

방금 무전에서 수혁의 어눌했던 음성이 산소 부족으로 인해 생긴 것이라면 큰일이었다.

박상태는 자신의 봄베를 확인했다.

마지막으로 밖에 나갔을 때 교체한 덕에, 산소량은 거의 풀에 가까웠다.

그것을 확인한 박상태는 잠시 고민하다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대원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박정우, 따라와.”

“……네?”

“여긴 다른 녀석들한테 맡기고, 넌 나랑 김수혁한테 간다.”

갑작스런 박상태의 말에 박정우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식아, 이제부터 여기는 네가 맡아라.”

“알겠습니다.”

박상태의 말을 들은 김강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수혁이 걱정되기는 마찬가지였기에, 별다른 의문은 제기하지 않았다.

“가자.”

박상태는 박정우와 함께 수혁이 말한 시장 중앙 쪽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대체 불길이 잡힐 기미가 보이질 않네요.”

방수가 한 시간이 넘게 이어졌다.

인근의 소방서란 소방서에서 모두 출동해서 펌프차만 20대에 가까웠다.

그 많은 펌프차에서 쉴 새 없이 방수하고 있음에도, 시장의 불길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점점 제 몸집을 키우는 것만 같았다.

그것은 시장의 특성상, 연소물질이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간혹 가스통이 폭발하며 불길이 더욱 거세지기까지 해 진압에 어려움을 겪었다.

“우리도 우리지만, 진압대는 정말 죽을 맛이겠네요.”

호스의 수압은 일반인이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올바른 방법으로 제대로 잡지 않는다면 몸이 뒤로 밀려날 정도였으니까.

그런 수압을 견디며 불과 싸워야 하니, 그야말로 체력소모가 어마어마했다.

지쳐서 쓰러지는 대원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았다.

“일단 우리는 수혁이랑 요구조자들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돼.”

“그건 알고 있는데……. 수혁이는 왜요?”

“그놈 상태가 좀 이상하다.”

박상태는 자신이 받은 느낌을 박정우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박정우의 얼굴 역시 굳어졌다.

체력이 소모되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실제로 화재 현장에서 체력을 모두 소모한 구조대원이 불길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안에 갇혀 순직한 사례도 있었다.

하지만 더 무서운 것은 산소가 모두 떨어지는 것이다.

산소가 모두 동이 나면, 마스크를 벗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연기를 마실 수밖에 없었고.

만약 연기를 모두 마시며 구조한다면?

죽는다.

화재 시 발생하는 연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독가스다.

괜히 한 모금만 들이마셔도 위험하다고 표현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것을 계속 마시면서 움직인다?

그건 정말로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만약 살아난다고 해도 문제였다.

폐와 뇌가 망가질 확률이 높았고, 온갖 질병에 시달릴 것이다.

앞으로 소방관은커녕, 정상적인 생활조차 불가능한 병자로 평생을 살아야만 한다.

“차라리 죽는 게 낫지…….”

거기까지 생각한 박정우가 중얼거렸다.

몸이 망가져 가족과 지인들을 고생시키느니, 깔끔하게 순직하는 것이 차라리 나았다.

병원비는 병원비대로 들고, 간호해야 하는 가족들은 점점 지쳐 간다.

국가에서 책임을 져주면 좋겠지만, 공상으로 인정을 받는 것도 쉽지만은 않다.

오죽하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거는 소방관들도 있을 정도였으니까.

소송까지 가게 되면 더욱 괴롭다.

자신이 죽고 난 뒤 남을 가족들을 위해 싸우는 것이지만, 그 과정이 절대 쉽지 않았다.

소송을 건다고 해서 무조건 공상으로 인정받는 것도 아니었고.

여러 가지 의미로 힘든 시간이 찾아온다.

“서둘러야겠네요.”

수혁이라면 알아서 잘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긴 했지만, 박상태의 표정을 보니 조금 심각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박상태와 박정우는 서둘러 움직였다.

불과 무너져 내린 잔해들이 둘의 앞길을 막고 있어 속도가 그리 빠르진 않았지만 말이다.

* * *

“으윽!”

수혁이 신음을 터트렸다.

팔뚝만 한 쇠기둥 하나가 쓰러지며 수혁의 머리를 강타했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시야가 붉어져 급히 몸을 피했는데, 몸이 생각처럼 움직여 주질 않았다.

피하지 못할 것임을 깨달은 수혁은 요구조자들에게 부딪히지 않도록 자신의 머리를 내밀어 쇠기둥을 막았다.

‘실드’를 사용할 겨를도 없었다.

다행히 헬멧은 깨지지 않았지만, 그 충격은 상당했다.

순간적으로 눈앞이 캄캄해졌다.

수혁은 비틀거리며 간신히 균형을 잡았다.

몇 초 뒤에 시야가 돌아오자 수혁은 걸음을 멈추고 숨을 골랐다.

‘미치겠네.’

수혁도 슬슬 자신이 한계를 넘었다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한 걸음씩 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온몸이 찢어지는 것 같은 통증이 몰려왔으니 모를 수가 없었다.

봄베의 경고음이 계속해서 수혁의 주의를 산만하게 만들었고, 팔은 떨어져 나갈 것만 같았다.

수혁은 다시 한 번 입술을 깨물었다.

따끔한 느낌과 함께 정신이 살짝 돌아오는 것 같았다.

‘움직이자.’

수혁은 그때를 놓치지 않고 팔에 힘을 주며 앞으로 나아갔다.

‘어디였지?’

머리의 충격 때문인지, 아니면 지쳤기 때문인지.

사고가 제대로 되질 않았다.

잠시간 헤매던 수혁이 ‘미니 맵’을 떠올리고는 헛웃음을 지었다.

‘거의 다 왔네.’

뒤늦게 ‘미니 맵’을 사용한 수혁은 요구조자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반쯤 정신을 놓은 상태로 이동을 한 것 같은데, 다행히 다른 길로 새진 않았다.

‘여기까지 구하면…….’

남은 사람은 한 명이다.

박상태에게 세 명의 요구조자를 인계한 뒤, 곧바로 마지막 사람을 구하러 가면 될 것 같았다.

‘버틸 수 있을까?’

마지막 한 명.

과연 그 한 명을 구할 때까지 자신의 몸이 움직여 줄지 의문이었다.

‘안 되면 기어서라도 가야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바람에 마지막 남은 요구조자는 그야말로 불구덩이 한복판에 갇혀 있었다.

다른 대원이 그곳으로 들어가려면 화재 진압대의 엄호 방수가 필수였다.

그렇지 않으면 접근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위험했다.

하지만 이제 화재 진압대를 불러 다시 오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요구조자는 그전에 사망할 확률이 높았다.

‘나밖에 못 간다.’

오직 수혁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수혁은 의식적으로 요구조자들을 생각하며 허물어지려는 육체와 정신을 붙잡았다.

나 때문이다.

내가 쓰러지면 요구조자들이 희생된다.

그들이 죽는다면 그 모든 책임은 바로 나 때문이다.

계속해서 자신에게 채찍질했다.

“도, 도착했다.”

그렇게 걷다 보니, 어느새 요구조자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이곳에 있는 요구조자 역시 의식이 없었다.

가슴이 오르내리는 것을 보니 호흡은 있었다.

수혁은 짊어지고 있던 요구조자 두 명을 바닥에 내려놓고는, 보조 마스크를 꺼냈다.

손이 사시나무 떨듯이 떨려왔다.

덕분에 요구조자에게 마스크를 씌우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몇 번의 시도 끝에야 간신히 성공한 수혁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조금만 쉬자…….’

쉬는 게 아니라 그냥 이대로 쓰러져 정신을 놓고 싶었다.

그러면 얼마나 편할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질 정도였다.

하지만 수혁은 아득해져 가는 정신을 억지로 붙잡기 위해 노력했다.

여기서 쓰러지면 안 되니까.

‘빨리 좀 와요. 나 이러다 진짜 죽을 거 같으니까.’

속으로 제발 박상태가 늦기 전에 도착하기를 빌었다.

불길이 맹렬하게 타오르는 소리.

어디선가 천장이 무너져 내리며 떨어지는 소리.

쉴 새 없이 울려대는 봄베의 경고음.

그 모든 것이 점점 멀어지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었다.

“……혁! 김수혁! 이 새끼, 정신 똑바로 안 차려?”

언젠가 한 번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은 음성과 내용.

‘아, 그날인가?’

처음 회귀를 하고, 혼란에 빠져 있던 수혁을 일깨워 주었던 바로 그 말.

“……상태 형?”

“정신이 좀 드냐?”

박상태였다.

그렇게 정신을 부여잡고 있었는데, 자신도 모르게 잠깐 기절한 모양이었다.

박상태는 아직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수혁의 마스크를 벗겨내고는 보조 마스크를 씌웠다.

“이 미련한 새끼. 경고음 들리면 현장 빠져나오라는 교육 안 받았어? 대체 요즘 소방 학교에선 교육을 어떻게 하는 거야?”

박상태의 험악한 말에 수혁은 왠지 웃음이 흘러나왔다.

‘이것도 들은 적 있는 것 같은데.’

괜히 더 반가웠다.

“일단 이거 한 모금 마셔라. 목소리를 보니까 완전히 맛이 갔네, 이거.”

어디서 난 것인지, 박상태가 박정우에게 물 한 병을 받아 들고는 뚜껑을 따서 수혁에게 건넸다.

그것을 본 수혁의 눈동자가 커졌다.

얼마나 마시고 싶었던가?

수혁이 덜덜 떨리는 손을 물병으로 뻗자, 그것을 본 박상태가 혀를 찼다.

“가만있어. 내가 먹여줄 테니까. X병, 내가 별짓을 다하네.”

박상태는 수혁의 마스크를 잠깐 밑으로 내리고는 물병을 입가로 가져다 댔다.

조르륵- 하고 물이 흘러나오자 수혁이 그것을 벌컥벌컥 받아마셨다.

“천천히 마셔라. 누가 안 뺏어간다.”

그렇게 물 한 병을 통째로 비운 수혁은 그제야 조금 살 것 같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제 정신 좀 차렸냐?”

박상태가 묻자 수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요.”

그런 수혁의 모습을 본 박상태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항상 말했지? 구조해야 할 건 요구조자들뿐만이 아니라…….”

“나 역시 그렇다고요. 알고 있어요.”

수혁이 박상태의 입을 막았다.

“귀에 딱지 생기겠네.”

수혁은 웃으며 그렇게 말을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정신은 조금 돌아왔을지언정, 육체는 전혀 회복되지 않은 상태였다.

“조금 쉬어, 이 새끼야. 아주 뒈질라고 환장하고 있구만?”

“팀장님 말 들어라. 너는 모르겠지만, 지금 너 죽기 직전처럼 보이거든?”

박정우도 박상태의 말을 거들었다.

하지만 수혁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 가야 돼요.”

“그 몸으로 대체 어딜 간다는 거냐?”

박상태가 답답하다는 듯 묻자, 수혁이 대답했다.

“어디긴 어디겠어요. 사람 구하러 가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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