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151화
‘51, 52, 53…….’
수혁은 자신의 발걸음을 세었다.
한 발자국씩 움직일 때마다 시시각각으로 주변의 상황이 변했기에, 빠르게 움직일 수가 없었다.
‘60… 젠장!’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던 수혁의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수혁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일단 몸을 다시 뒤로 피했다.
콰드드득-!
뭔가가 부서지는 소음과 함께 천장이 아래쪽으로 떨어져 내렸다.
녹아내린 플라스틱과 철근, 그리고 석고가 섞여 있는 구조물이었다.
‘큰일 날 뻔했다.’
수혁은 정신을 집중하기 위해 발걸음을 세기 시작했고, 고작 60걸음 동안 이런 일을 벌써 세 번째 겪었다.
대충 20걸음에 한 번.
위험하기 짝이 없는 공간이었다.
수혁은 등에 업고 있는 요구조자의 상태를 한 번 확인하고는 한숨을 내쉬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60, 61, 62…….’
요구조자가 있는 곳까지의 거리는 앞으로 10m 정도.
눈 깜빡할 사이 도착할 수 있는 짧은 거리였지만, 매 걸음 주의해야 하는 상황이었는지라 속도가 나질 않았다.
‘답답해.’
만약 등에 요구조자만 업고 있지 않았더라면 일단 달리고 봤을 텐데.
수혁은 초조한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비릿한 피 맛이 느껴졌다.
‘물 좀 마시고 싶다.’
한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밖으로 단 한 번도 나가지 않았다.
그러니 휴식은커녕, 목을 식혀줄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했다.
목이 가뭄의 논처럼 쩍쩍 갈라지는 느낌이었다.
‘식당에서 조금 마셨어야 했는데.’
요구조자의 상태에 정신을 빼앗겨 물을 마신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이 아쉬웠다.
하지만 후회한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없었다.
이제 와 물 한 모금을 마시자고 밖으로 나간다면, 남은 요구조자들은 절대 구할 수 없을 테니까.
‘조금만 더 버티자…….’
수혁은 찢어진 입술에서 흘러나온 피로 조금이나마 입안을 적시며 자신을 다독였다.
그렇게 몇 분을 걸었다.
도착했다.
괜찮으냐고, 구조대가 도착했다고 말할 힘도 없었다.
원래 옷을 파는 곳처럼 보였던 상점 안으로, 수혁은 조심스럽게 걸어 들어갔다.
아니, 들어가려고 했지만 이대로는 들어갈 수가 없었다.
“음…….”
불길이 너무 심했다.
진열해 놓았던 옷에 불이 옮겨붙으며 마치 불로 벽을 세워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저 안에 있는 요구조자가 대체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인지 놀라울 정도였다.
‘일단 내려놔야 하나?’
수혁은 잠시 고민했다.
혼자서라면 무리해서라도 불길을 뚫고 들어갈 수 있었다.
정 힘들다면 ‘실드’를 사용해서 들어갈 수도 있었고.
하지만 지금은 혼자가 아니었다.
요구조자를 등에 업은 상태로는 그런 행동을 할 수가 없었다.
수혁은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요구조자를 잠시 내려놓을 장소를 찾아봤지만, 주변은 온통 화염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떻게 한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으니, 빠르게 판단을 내려야 했다.
고민하던 수혁은 옷가게 옆에 난 작은 샛길을 발견했다.
‘미니 맵’으로 확인하자, 좁긴 했지만 사람 한 명 정도는 어떻게든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다.
‘일단 저기로 가자.’
불에 탈 만한 물질도 없는지 골목 안쪽은 그저 뜨겁기만 할 뿐, 불길은 옮겨붙지 않은 상태였다.
수혁은 샛길 안쪽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아슬아슬하네.’
만약 수혁의 어깨가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넓었다면 들어갈 수 없었을 정도로 좁았다.
샛길 안을 천천히 이동하던 수혁이 걸음을 멈추었다.
‘이 건너편이다.’
‘미니 맵’에 나온 요구조자의 위치는 바로 눈앞의 벽 너머에 있었다.
‘부술 수 있을까?’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충분했다면, 고민할 필요도 없는 문제였다.
하지만 지금은 앞으로 걷는 것 외에는 제대로 된 행동도 하지 못할 정도로 비좁았다.
수혁은 방법을 고민하는 듯하다 일단은 등에 있는 요구조자를 조심스럽게 내렸다.
그러곤 봄베역시 벗어 옆에 내려놓았다.
요구조자와 장비를 벗자 몸을 비틀어 벽을 정면으로 보고 설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졌다.
‘이 정도면 될 것 같기도 한데?’
여전히 좁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방금 전보다는 나았다.
‘도끼를 좀 가져올걸.’
파괴용 도끼가 아쉬웠다.
도끼만 있었다면 이런 벽쯤은 순식간에 뚫어버릴 수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수혁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쓰지도 못할 걸 아쉬워해서 뭐하나.’
도끼가 있어 봐야 제대로 휘두를 수 있는 공간도 없었다.
힘이 들다 보니 괜히 별생각을 다 한다며 속으로 혀를 찬 수혁이 주먹을 말아 쥐었다.
파괴용 도끼는 없었지만, 수혁에게는 그 누구보다도 강한 육체가 있었다.
‘부순다.’
쿠웅-!
수혁의 주먹이 벽에 꽂혔다.
우스스- 하며 시멘트 가루가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았기에 벽은 실금 하나도 가지 않고 건재했다.
수혁은 낙담하지 않고 다시 주먹을 내질렀다.
쿵- 쿵- 쿵-!
양쪽 주먹이 번갈아 가며 벽을 계속해서 때렸다.
그때마다 조금씩 시멘트 조각들이 벽에서 떨어져 나왔다.
‘조금만, 더!!
아팠다.
게다가 수혁의 생각보다 벽이 더 두꺼운 듯했다.
벌써 스무 번이 넘게 주먹을 내질렀음에도, 금이 조금 간 것 외에는 뚫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수혁은 이를 악다물었다.
무식하기 짝이 없는 방법이었지만, 지금은 이것이 가장 최선이었다.
아니, 그것 외에는 다른 방법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체력적, 정신적으로 한계에 도달한 수혁은 지금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지쳐 버린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수혁의 주먹이 계속해서 벽에 틀어박혔다.
한 번 주먹을 뻗을 때마다 온몸이 울리는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다.
‘피가 나나?’
왠지 주먹이 축축해진 느낌이었다.
그것이 땀인지, 피인지 구분도 되질 않았다.
그저 기계처럼 벽이 뚫릴 때까지 쉬지 않고 팔을 뻗을 뿐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퍼어억-!
지금까지와는 다른 소리에 수혁이 퍼뜩 정신 차렸다.
자꾸만 감기려는 눈을 억지로 뜨고 앞을 보자, 자신의 팔이 벽 속에 파묻혀 있었다.
‘뚫렸다!’
수혁이 팔을 뺐다.
그러자 말 그대로 주먹만 한 구멍이 뻥 뚫려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을 본 수혁이 ‘하하’ 하며 작게 웃었다.
한 번 뚫렸으니 이젠 조금 수월해질 것이다.
구멍을 중심으로 조금씩 넓혀가기만 하면 되었으니까.
수혁이 주먹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알고는 있었지만, 정말 괴물 같은 몸이 되었구나.’
맨주먹으로 시멘트벽을 뚫어버리다니.
수혁은 새삼 자신의 육체에 감탄하며 구멍을 넓혔다.
주먹이 아프긴 했지만, 처음 구멍을 뚫을 때보단 많이 수월했다.
수십 번 정도 벽을 치자, 구멍은 수혁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넓어졌다.
“후우…….”
팔이 덜덜 떨려왔다.
그리고 손에서 화끈한 통증이 계속 느껴지는 것이, 아무래도 축축한 이 액체는 땀이 아니라 피인 것 같았다.
수혁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봄베를 집어 들고는 구멍 안쪽으로 상체를 들이밀었다.
요구조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어디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있었다.
‘냉장고?’
스킬이 감지한 요구조자의 위치는 바로 냉장고가 있는 곳이었다.
‘불을 피하려고 들어간 모양인데…….’
가게 앞이 온통 불바다였으니, 어디론가 숨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다 발견한 것이 냉장고였고, 안에 있는 것들을 모두 뺀 요구조자는 그 안에 숨었을 것이다.
그리 좋은 생각은 아니었다.
불과 연기를 피한다고 해서, 그 열기마저 모두 막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화재 한복판에 있는 냉장고 안이라면, 내부 온도는 계속해서 상승할 것이고, 그러면 사망에 이를 수 있다.
물론 밖에서 불에 타 죽거나 연기를 마시고 질식을 하는 것보단 오래 버틸 수 있겠지만…….
수혁은 가게 안으로 들어가 빠르게 냉장고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냉장고 안쪽에서 정신을 잃고 있던 요구조자가 옆으로 쓰러지며 모습을 드러냈다.
몸 전체가 젖어 있을 정도로 땀을 엄청나게 흘렸다.
다행히 호흡과 맥박은 약하지만 정상적으로 뛰고 있었다.
냉장고 안에 들어간 지는 아직 30분도 지나지 않은 것 같았다.
버티고 버티다 숨었을 확률이 컸다.
만약 한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그 안에 있었다면 살아 있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수혁은 일단 요구조자를 똑바로 눕힌 뒤, 주변을 살폈다.
예상대로 요구조자가 냉장고에서 꺼낸 물병이 보였다.
수혁은 그것을 들고는 뚜껑을 열고 요구조자의 입에 조심스럽게 흘려 넣었다.
물을 보자 갈증이 미친 듯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수혁은 가까스로 그것을 참아내며 요구조자에게 모두 먹였다.
그러곤 마스크를 씌웠다.
“요구조자 발견했습니다.”
수혁은 일단 무전으로 자신과 요구조자의 상황을 알렸다.
[어디냐?]
박상태에게 답변이 왔지만, 수혁은 이곳의 위치를 알려주지 않았다.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그들이 올 때까지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을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신 다음으로 구해야 할 요구조자의 위치를 가르쳐 주었다.
“시장 중앙으로 와주세요.”
[중앙?]
“네, 거기에 가면 요구조자가 있을 거예요. 거기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수혁은 무전을 끊고 심호흡한 뒤 요구조자를 안아 들었다.
구멍 밖에 있는 요구조자는 등에 업고, 이번에 구한 요구조자는 팔로 안아야만 했다.
체력이 방전되기 직전이었지만, 수혁은 개의치 않았다.
‘쓰러지더라도, 이 사람들은 모두 구하고 쓰러져야 돼.’
수혁은 이를 악물고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요구조자 두 명을 데리고 좁디좁은 샛길을 이동하는 것이 힘들었지만, 수혁은 혼신의 힘을 다해 빠져나왔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손이 네 개였으면 좋겠다.’
등에 요구조자 한 명을 업고, 팔로는 요구조자를 안고 봄베를 들었다.
평범한 사람은 흉내도 내지 못할 힘.
하지만 수혁은 팔이 몇 개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너무도 힘이 들었다.
평소였다면 아무렇지도 않게 움직였을 몸이, 지금은 바들바들 떨리며 요구조자들을 들고 있는 것도 어려울 지경이었다.
봄베를 집어 던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물론 그럴 순 없었다.
아무리 수혁이라도 연기를 들이마신다면 위험한 것은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산소 잔량이 얼마나 남았지?’
수혁은 산소 잔량을 체크했다.
‘길어야 10분.’
거의 바닥을 치고 있었다.
‘어쩐지 아까부터 이상한 소리가 들리더라니…….’
살짝 혼미해진 정신 때문에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조금 전부터 삐이이- 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산소 잔량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경고음이었다.
‘움직이자.’
이젠 요구조자 뿐 아니라, 수혁 역시도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다.
만약 박상태와 다른 대원들이 제시간 안에 도착하지 못한다면, 수혁의 산소는 바닥이 나고 말 것이다.
그러면 모두 끝장이다.
자신이 정신을 잃으면 요구조자들 역시 위험해진다.
이곳에서 모두 목숨을 잃을 확률이 높았다.
수혁은 제발 그들이 서둘러 주길 바라며 비틀비틀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