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150화
“오른쪽 방수!”
구조팀장의 외침과 함께 뒤따르던 화재 진압대원이 호스의 방향을 틀었다.
호스에서 뿜어져 나온 강력한 물줄기가 덮쳐들던 불길을 집어삼켰다.
“다시 이동한다.”
주변의 불길이 웬만큼 잡혔다고 생각을 한 구조팀장이 전진을 명령했다.
‘너무 더뎌.’
10분이면 도착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것도 화재로 인해 장애물이 생기고, 그것들을 뚫고 지나간다는 가정하에 최대한으로 잡은 시간이었다.
그런데 벌써 10분이 지나 버렸다.
구조팀장이 생각했던 것보다 시장 안쪽의 상황이 심각했기 때문이었다.
“조금 더 서둘러!”
구조팀장은 앞을 막고 있는 장애물을 빠르게 헤쳐 나갔다.
너무 강한 불길에 엄호 방수를 받고 있음에도 온몸이 타오르는 것 같은 뜨거움이 느껴졌다.
그것은 다른 대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화염에 녹아버린 플라스틱이 떨어져 내리며 대원들을 덮칠 뻔하기도 했고, 쌓여 있던 불붙은 물건들이 쓰러지며 한 명이 가벼운 부상을 입기도 했다.
고작 10분.
시장에 들어온 지 고작 10분 만에 대원들의 모습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더 흘렀을까?
“도착했습니다!”
지친 구조팀장을 대신해 선두에 서 있던 대원이 소리쳤다.
대원의 말에 구조팀장이 시선을 돌렸다.
‘드디어!’
그의 눈에 식당의 모습이 들어왔다.
“바로 진입해!”
구조팀장의 명령에 대원들이 날 듯이 달려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허억- 허억-!”
그 잠깐 사이에 엄청난 체력을 소모한 구조팀장이 숨을 헐떡이며 식당 내부를 살폈다.
‘요구조자는?’
“이쪽입니다!”
마치 구조팀장의 생각을 듣기라도 한 듯, 주방 쪽에서 누군가의 갈라지는 듯한 외침이 들렸다.
그것을 들은 대원들이 주방 안으로 들어갔다.
“음…….”
구조팀장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요구조자였다.
한눈에도 심각해 보이는 상태였다.
그다음으로 확인한 것은 요구조자의 옆에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소방관.
“김수혁 씨?”
머리 전체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는 데다, 그을음까지 잔뜩 묻어 있어 전과는 이미지가 좀 달라 보였지만, 분명히 수혁이었다.
“조금 늦으셨네요.”
수혁은 지친 얼굴로 구조팀장에게 인사를 건넸다.
“여기에 있다던 구조대원이 수혁 씨인 줄은 몰랐군요.”
“저도 팀장님이 오실 거라곤 생각 못 했습니다.”
둘은 서로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는 다시 요구조자를 쳐다보았다.
“상태가 어떻습니까?”
수혁이 요구조자의 상태를 살피고 있는 구급대원에게 물었다.
“그리 좋지 않아요.”
전신에 십여 개에 달하는 부상을 입은 데다, 화재 속에 너무 오랜 시간 노출이 되어 있었다.
수혁이 아무리 열기를 차단시키기 위해 물을 뿌렸다지만, 고작 그것만으로 시장 내부의 뜨거운 공기를 모두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가장 심각한 것은 옆구리를 관통한 철골이었다.
“이건 여기서 뽑으면 안 돼요.”
철골이 지나간 자리가 영 좋지 못했다.
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뽑다간 구조고 뭐고, 그 자리에서 사망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들어서 옮길 수도 없었다.
철근 한쪽에는 커다란 콘크리트가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 절단기 가져오셨습니까?”
수혁이 구조팀장에게 물었다.
“절단기 가져와!”
다행히 구조팀장은 이쪽의 상황 설명을 듣고, 몇 가지 장비를 챙겨온 모양이었다.
그는 절단기를 받아 들고는 철골과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이걸론 안 되겠는데?”
철골의 굵기가 너무 굵었다.
이건 절단기가 아니라 글라인더나 유압절단기가 있어야 끊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글라인더 챙겼지?”
“챙겼습니다.”
대원 중 한 명이 글라인더를 건네주었다.
글라인더라면 저 정도의 철골은 금방 잘라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요구조자에게 충격이 가선 안 돼요.”
구급대원이 고개를 저었다.
글라인더는 빠른 회전을 이용한 절삭력으로 물체를 절단한다.
그 말은 곧, 철골을 잘라내게 되면 필연적으로 요구조자에게 충격이 전해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구급대원의 말을 들은 구조팀장은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절단기로는 불가능하고, 글라인더는 사용할 수 없다.
유압절단기가 있다면 아무런 문제 없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겠지만, 그런 무거운 장비를 이런 화재 속에 갖고 왔을 리가 없었다.
구조팀장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해야 하지? 지금이라도 유압절단기를 가져와야 하나? 아니면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글라인더를 써서…….’
“절단기 좀 줘보시겠습니까?”
생각에 잠겨 있던 구조팀장의 옆에서 수혁이 말했다.
구조팀장은 별생각 없이 수혁에게 절단기를 건네주었다.
“……어, 어? 잠시만요!”
절단기를 받아 든 수혁이 요구조자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자, 그것을 본 대원 하나가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하지만 수혁은 아랑곳하지 않고 요구조자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러곤 철골에 절단기를 가져다 댔다.
“수혁 씨, 잠깐만! 요구조자에게 충격이 가면 안 된다고……!”
생각에서 깨어난 구조팀장이 상황파악을 하고는, 다급히 수혁을 만류하려던 그때.
터엉-!
철골이 잘려 나갔다.
구조팀장이 그대로 움직임을 멈추었다.
방금 자신이 본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절단기의 성능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엄지손가락만 한 철골을 저렇게 단번에 끊어낼 수는 없었다.
그게 가능했으면 처음부터 고민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수혁은 해냈다.
구조팀장이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방법을 사용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철골에 절단기를 가져다 대고 힘을 한 번 줬을 뿐.
그런데 잘려 나갔다.
두 눈으로 직접 봤음에도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는 모습이었다.
“뭐 하십니까? 이제 구조할 준비 해야죠.”
잘라낸 철골을 콘크리트 더미와 함께 한쪽으로 치워 버린 수혁이 뒤돌아보며 말했다.
“서둘러! 바로 이송해야 돼! 병원에 연락해서 대기해 달라고 하고!”
밖으로 빠져나온 구급대원이 소리를 질렀다.
구급대원들이 최대한 출혈이 발생하지 않도록 처치를 한 다음 밖으로 데리고 나오긴 했지만, 상태는 계속해서 나빠졌다.
이동하며 조금씩 충격이 가해진 탓에 철골이 장기를 계속 건드리며 상처를 낸 것 같았다.
때문에 더 늦기 전에 구급차에 태워 곧장 병원으로 출발을 했다.
“수고하셨습니다.”
구급대원이 구조팀장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저는 딱히 한 게 없습니다만…….”
“한 게 없으시긴요. 팀장님과 다른 대원 분들이 없었으면 저분도 구조하지 못했을 거예요.”
그 말을 들은 구조팀장이 뺨을 긁적였다.
구급대원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정말 요구조자를 살린 건 자신들이 아니라 수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구조팀장은 물을 한 병 꺼내 뜨겁게 달아올랐던 몸을 좀 식히며 시장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자신이 저 안에 있었던 건 20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살이 죄다 익어버리고, 체력이 바닥을 칠 정도로 힘이 들었다.
그런데 수혁은 저 안에서 벌써 한 시간 가까이 구조하고 있었다.
단 한 번도 밖으로 나와 휴식을 취하지 않은 상태로 말이다.
철골을 자를 때 보여줬던 힘도 놀라웠지만, 체력은 정말 사람 같지도 않아 보일 정도였다.
“팀장님!”
그때 뒤에서 대원 한 명이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야?”
“요구조자들을 발견했다는 보고입니다. 수는 세 명. 구조를 위해서 지금 바로 들어와 달라고…….”
5분이나 쉬었을까?
방전된 체력은 아직 회복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구조팀장은 손에 든 물병을 내려놓으며 머리에 헬멧을 뒤집어썼다.
“준비해. 바로 들어간다.”
저 안에는 자신들보다 몇 배는 더 긴 시간 동안 구조하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
한번 들어갔다 나왔으니 조금 쉬어도 되겠지? 라는 생각 따위는 조금도 들지 않았다.
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구조하고 있는 다른 소방관들에 대한 존경과 요구조자들을 구해내고야 말겠다는 사명감만이 불타올랐다.
“준비 다 됐습니다!”
대원들의 말에 구조팀장은 마스크를 쓰고 장비를 점검하고는 다시 불길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가자.”
사람 구하러.
“요구조자 한 명 발견. 요구조자 한 명 발견.”
수혁은 무전으로 보고하고는 요구조자의 얼굴에 마스크를 씌웠다.
‘좋지 않아.’
지금 발견한 한 명은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
눈에 보이는 부상은 없었지만, 아무래도 연기를 마신 것 같았다.
‘시간이 너무 지체됐어.’
구조를 시작한 지 벌써 한 시간째.
남은 요구조자는 여기 있는 한 명을 포함해 다섯 명.
한 시간 동안 이 지옥 같은 불길 속에서 구조한 사람이 47명이었다.
눈이 부실 정도로 빠른 속도였지만, 수혁은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생명 반응이 점점 약해진다.’
너무 장시간 불길 속에 있었다.
이 뜨거운 열기와 연기 속에서 이만큼 오래 버티는 것은, 훈련받은 소방관들에게도 힘든 일이었다.
하물며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생지옥과 같을 것이다.
그것이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이라면 더욱더.
살이 익어버릴 정도로 뜨거운 열기 속에서 남은 요구조자들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이제 정말로 시간이 없다.’
남은 다섯 명 중 세 명은 정말로 시급했다.
지금 당장 움직이지 않으면 생명 반응이 사라질 것만 같았다.
수혁은 숨을 몰아쉬고는 쓰러져 있는 요구조자를 등에 업었다.
‘한 번에 구한다.’
평범한 소방관이라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
하지만 수혁의 힘이라면 가능성이 있었다.
수혁은 요구조자를 등에 업은 채 상점 밖으로 나갔다.
이글거리는 불길과 천장에서 떨어져 내리는 물줄기로 인해 시장 안은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수없이 많이 봐온 광경이었지만, 두려웠다.
아무리 힘이 강하고, 체력이 좋고, 스킬이라는 능력이 있다고 한들 여전히 두렵기는 마찬가지였다.
“후우…….”
수혁이 심호흡했다.
두렵지만, 그것을 이겨내고 전진해야 하는 것이 소방관이다.
자신이 이렇게 두려운데 구조를 기다리고 있을 요구조자들은 오죽하겠는가?
그들을 구하려면 두려움을 극복해야만 한다.
수혁이 걸음을 내디뎠다.
최대한 등에 업힌 요구조자에게 불길이 닿지 않도록, 온 신경을 집중해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걸음을 뗐다.
‘정말 모두 살릴 수 있을까?’
갑자기 든 걱정이었다.
분명 얼마 전까지는 모두를 살리고야 말겠다는 굳은 의지가 가득했는데, 지금은 걱정부터 들었다.
이전 생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던 화재.
그로 인해 생겨난 피해.
수혁은 그것이 모두 자신 때문에 일어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정신적으로 매우 지친 상태였다.
게다가 한 시간 동안 불길 속에서 동분서주하느라, 체력적으로도 조금씩 부담이 가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수혁은 그것을 느끼지 못했다.
1초라도 빠르게 요구조자들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과 괜한 죄책감에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수혁은 숨을 쉴 때마다 목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억누르며 계속 움직였다.
그런 수혁의 뒷모습은 너무도 위태로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