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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148화 (148/425)

레스큐 시스템 148화

숨이 막혀왔다.

시장 내의 온갖 인화성 물질들이 타오르며 공기를 뜨겁게 달군 탓에, 호흡할 때마다 폐가 익는 느낌이었다.

만약 수혁에게 (화상 입을 확률 감소)라는 효과가 없었다면 정말로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을지도 몰랐다.

“으으윽!”

방화복도 뜨거웠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었다.

방염성능이 뛰어난 재질의 방화복에 불이 옮겨붙을 정도였다.

덕분에 그 안에 있는 수혁의 피부는 새빨갛게 달아올라 살짝 스치는 것만으로도 아찔한 통증이 느껴졌다.

‘‘실드’를 쓸까?’

순간 고민했다.

‘실드’를 사용한다면 훨씬 편해질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수혁은 끝내 사용하지 않았다.

스킬의 한계가 어느 정도나 되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무한으로 사용이 가능하다면 모르겠지만, ‘실드’는 한 번 사용에 5분이라는 제한 시간이 있었다.

‘제한 시간이 있는데 횟수에 제한이 없을 리가 없지.’

만약 지금 ‘실드’를 낭비했다가 정작 필요할 때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지도 몰랐다.

수혁은 계속해서 움직였다.

호흡이 힘든 탓에 처음처럼 빠르게 움직일 순 없었지만, 그래도 계속 움직였다.

‘조금만 더…….’

지금까지 수혁이 발견한 요구조자의 숫자는 열 명.

그들은 모두 무사히 이 지옥 같은 곳을 빠져나갔다.

지원 나온 다른 서의 구조대원들이 도착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그들 덕분에 수혁은 안심하고 다른 사람들을 찾으러 돌아다닐 수가 있었다.

‘여기다.’

이번에는 다섯 명이나 되는 요구조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구조대입니다!”

수혁의 음성은 마른 논처럼 쩍쩍 갈라졌다.

만약 밖에서 들었다면 구조대가 아니라, 자신들을 데리러 온 저승사자라 여겼을지도 모를 만큼 엉망이었다.

열기에 성대도 상한 모양이었다.

“여기에요! 여기 사람 있어요!”

수혁의 외침을 들은 것일까?

한쪽에 마련된 같은 곳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수혁은 곧장 그곳으로 다가갔다.

요구조자들이 모여 있는 곳은 작은 창고였다.

창문도 없는데다, 창고 자체가 콘크리트로만 이루어져 있어 불길이 침범하지 못하는 곳이었다.

‘근처에도 딱히 불이 옮겨붙을 만한 것이 없고…….’

그래서인지 아직은 안전해 보였다.

창고 앞에 도착한 수혁이 문고리를 잡아당겨 봤다.

하지만 안쪽에서 잠근 것인지, 철로 만들어진 문은 열리지 않았다.

문을 잠근다고 해서 안전해지는 것도 아니었건만, 요구조자들은 두려움에 문마저 잠근 모양이었다.

힘을 조금 주면 억지로라도 열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구조대입니다. 문 좀 열어주세요.”

지금은 조금이라도 힘을 비축해야 할 때였기에, 수혁은 힘을 쓰는 대신 말을 걸었다.

끼이익-!

낡은 쇳소리와 함께 창고의 문이 열렸다.

문을 연 이는 소방관 복장을 하고 있는 수혁을 보고는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

“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수혁을 맞아준 것은 이십대의 청년이었다.

아르바이트하는 학생인지, 아니면 장을 보러 나왔다가 횡액을 당한 건지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고생깨나 했는지 잔뜩 지친 표정에, 팔 쪽에 가벼운 화상도 입은 것 같았다.

“안으로 들어가시죠.”

수혁은 일단 그를 창고 안으로 밀어 넣으며 문을 닫았다.

그러고는 마스크를 벗었다.

“후우…….”

갑갑했던 호흡이 조금은 편해졌다.

주변에 불이 없어서일까?

다행히 창고 안쪽의 공기는 그리 뜨겁지 않았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스킬로 확인한 것처럼 창고 안에는 다섯 명이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었다.

“다치신 곳은 없습니까?”

수혁이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우린 괜찮은데 저 총각이 우리를 구하느라 많이 고생했어.”

할아버지 한 분이 처음 수혁을 맞아준 청년을 가리켰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수혁이 청년의 이름을 물었다.

“전승호라고 합니다.”

“승호 씨, 혹시 심하게 부상을 입은 곳이 있습니까?”

수혁이 랜턴의 불빛을 비추며 확인했지만, 핏자국이나 상처는 보이지 않았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불에 조금 데이긴 했는데……. 이 정도는 참을 만합니다.”

전승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지만, 몸을 움직일 때마다 표정이 일그러뜨리는 걸 보면 통증이 꽤나 심한 모양이었다.

“조금 있으면 다른 대원들이 도착할 겁니다.”

수혁은 말을 하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당장에라도 다시 움직이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체력적인 문제가 아니라, 장비의 문제였다.

더는 요구조자들에게 나누어줄 보조 마스크가 없었다.

지금 그들에게 이동을 해봐야 안전을 보장해 줄 수가 없다는 뜻이었다.

후에 이곳에 도착할 대원들이 추가 장비를 갖고 오기로 했으니, 그때까지 수혁도 잠시 쉬기로 했다.

“괜찮으세요?”

전승호가 수혁을 향해 걱정스럽게 물었다.

머리카락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는데다, 목소리마저 맛이 간 상태였으니, 걱정할 만도 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이런 일은 익숙하니까.”

수혁이 그를 향해 살짝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을음으로 인해 검게 칠해진 얼굴과 하얀 치아가 대조적이었다.

“얼마나 걸릴까요?”

잠시 침묵이 흐르자, 불안함을 견디지 못한 전승호가 물었다.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길어야 5분.

그 안에는 대원들이 이곳에 도착할 것이다.

수혁에게 줄 장비들을 챙겨서 말이다.

다시 적막이 찾아왔다.

어르신들은 말할 기력도 없어 보였고, 전승호는 딱히 할 말이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대로 침묵이 오래 지속되는 것도 좋지는 않았다.

수혁의 등장으로 인해 조금 가셨던 두려움이 언제 치솟아 오를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일부러 대화를 시도했다.

“나이가 어떻게 돼요?”

전승호를 향해 물었다.

“아, 스물세 살입니다.”

생각보다 더 어렸다.

최소한 스물다섯 살은 되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학생?”

“아니요. 아쉽게도 대학을 가지 못해서……. 얼마 전에 제대해서 지금은 취업 준비하고 있습니다.”

전승호의 대답에 수혁은 자신도 모르게 혀를 찰 뻔했다.

가까스로 그것을 참은 수혁은 잠시 호흡을 고르고는 입을 열었다.

“고생이 많겠네요.”

“뭘요, 저 혼자만 힘든가요? 다들 똑같죠.”

그렇게 말을 하는 전승호의 음성이 살짝 무거웠다.

수혁 역시 요즘 취업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었기에, 그가 안타까웠다.

“그럼 여기에는 어쩌다 갇힌 겁니까?”

“아르바이트를 좀 하고 있었거든요.”

전승호는 시장에서 농산물을 납품하는 일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러다 갑작스럽게 화재가 발생하고, 몸이 불편하신 어르신들을 발견하고는 그들을 돕다 미처 피하지 못했던 것이다.

“수고하셨습니다.”

수혁은 전승호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담아 말을 했다.

만약 그가 없었다면, 어르신 네 분은 이곳에 없었을 수도 있다.

저분들이 살아계신 것은 전적으로 전승호의 노력 덕분이었다.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데요, 뭘.”

많이 듣던 말.

그리고 많이 했던 말.

전승호의 말에 수혁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영웅이 별거냐?’

BBC나 다른 국내 뉴스에선 수혁을 영웅으로 부르며 치켜세워 줬지만, 사실 진짜 영웅은 그가 아니었다.

수혁은 소방관이었다.

사람들을 구하는 일이 직업이란 말이었다.

그러니 재난 현장에서 사람들을 구하는 것은 수혁에게 있어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전승호는 어떤가?

푸켓에서 쓰나미에 휩쓸린 사람들을 돕기 위해 움직인 이들은 어떻고?

이전 생에서 보육원 버스 사고 때 아이들을 구하다 목숨을 잃었던 그 회사원은?

그들에겐 사람을 구할 의무가 없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의 몸을 내던져 가며 사람들을 구해냈다.

자신들 역시 두려웠을 텐데도 말이다.

진짜 영웅이라는 칭송을 받을 사람은 수혁이 아니라, 바로 그런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홀로 도망을 칠 수 있었음에도 남아서 어르신들을 구한 전승호는 영웅이었다.

[어디냐?]

그때, 수혁의 무전기에서 박상태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수혁은 곧바로 ‘생명 감지Ⅱ’로 근처의 생명을 확인하고는 무전기를 들었다.

“지금 위치에서 전방으로 5m가량 이동하면 오른쪽에 작은 골목이 보일 거예요. 그곳으로 들어오시면 창고가 하나 있는데, 거기에 있습니다.”

[1분 내로 도착한다.]

박상태가 더는 수혁에게 대체 자신의 위치를 어떻게 알고 있느냐고 묻지 않았다.

그저 수혁이 가르쳐준 길로 이동을 할 뿐이었다.

지금까지 그 말을 따라서 요구조자를 찾지 못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슬슬 이곳에서 빠져나갈 준비를 하죠.”

수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상을 입은 자리가 쓰라려 왔다.

하지만 수혁은 그것을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자신의 표정을 본 요구조자들이 불안해할 수도 있었으니까.

자리에서 일어난 수혁이 헬멧과 마스크를 뒤집어쓰는 것과 동시에, 창고의 문이 열렸다.

“오래 기다렸냐?”

박상태가 창고 문을 열고 들어오며 물었다.

그의 뒤에는 이재한과 강효상, 그리고 다른 서에서 지원을 나온 구조대원들 세 명이 서 있었다.

“아니요. 딱 좋은 때에 오셨네요.”

수혁이 그렇게 말을 하며 손을 내밀자, 박상태가 챙겨온 장비들을 건네주었다.

“다른 쪽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요?”

수혁은 장비들을 조심스럽게 받아 허리끈에 묶으며 물었다.

“네 말대로 이동했더니 정말로 요구조자들이 있더라.”

수혁은 예전과는 달리, 혼자서만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기엔 구해야 할 요구조자가 너무 많았으니까.

그 많은 숫자의 요구조자를 수혁 혼자서 구해내기란 불가능했다.

그래서 수혁은 박상태에게 요구조자들의 위치를 가르쳐 주었다.

그로선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박상태는 수혁의 뜻대로 움직여 주었다.

그 결과 벌써 20명에 가까운 요구조자들을 구해냈다.

수혁이 구한 이들과 합치면 30명에 달하는 요구조자들을 구조한 셈이었다.

‘이제 남은 건 22명인가?’

도저히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빠른 구조속도였지만, 수혁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아직도 너무 많이 남았어.’

시장 안으로 진입한 지 꽤 시간이 흘렀다.

아무리 빠르게 움직인다고는 하지만, 불길이 퍼지는 속도는 그보다 훨씬 빨랐다.

만약 방수가 지속되지 않았으면, 시장 전체가 잿더미로 변해 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조금 더 서둘러 주세요, 상태 형.”

“……노력해 보마.”

수혁의 음성에서 왠지 불안함을 느낀 박상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분들은 맡길게요.”

수혁이 곧장 박상태를 스쳐 지나가며 부탁했다.

장비도 챙겼으니, 이제 움직여야 할 때였다.

“조심해라, 인마.”

“걱정 마시라니까.”

수혁이 웃음기 섞인 대답하고는 다시 불구덩이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으윽…….’

조금 식었던 방화복이 다시 달궈지며 수혁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젠장.’

헬멧이 지글거리며 녹아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더 서둘러야겠다.’

아직 ‘위기 감지I’가 발동하지는 않았지만, 이대로 가다간 자신도 위험해질 수 있겠다는 불안함이 들었다.

수혁의 걸음이 조금 더 빨라졌다.

속도와 비례해 통증도 커졌지만, 수혁은 이를 악물고 참았다.

이번에 향하는 곳에 있는 요구조자는 단 한 명.

‘조금만 기다려요. 금방 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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