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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144화 (144/425)

레스큐 시스템 144화

아직 아들이 남아 있다니?

수혁은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구조팀장의 팔을 붙잡으며, 연신 아직 안에 아들이 있다고 소리쳤다.

그러자 구조팀장이 ‘이 말이 사실인가?’라는 표정으로 수혁을 쳐다보았다.

수혁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분명 저 안에 남아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생명 감지Ⅱ’에도 감지가 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 확인을 하지 않았던가?

“신일서 구조대의 김수혁이라고 합니다. 저 안에 요구조자는 더 이상 없습니다.”

“아, 신일서.”

일단 수혁의 정체를 안 구조팀장이 미간을 찌푸렸다.

현직 구조대원이라면 수색을 허투루 했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정말로 저 안에는 요구조자가 없다는 말인데…….

그렇다고 해서 제보를 마냥 무시할 수도 없었다.

“할아버지, 정말 안에 아드님이 계세요?”

“아직 아들이 있어, 아들이!”

수혁은 혹시나 하며 할아버지에게 물었고, 할아버지는 계속해서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이거 좀…….’

이런 말 하면 좀 그렇지만, 할아버지의 상태가 그리 정상적으로 보이진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구조팀장도 느낀 듯했다.

“할머니, 어르신 말씀이 사실이에요?”

이번엔 할머니에게 물었다.

“몰러, 나도……. 집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

하지만 할머니는 고개를 저으며 모른다고만 대답했다.

수혁이 구조팀장을 쳐다보았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 결심했는지 헬멧과 마스크를 뒤집어썼다.

“수색한다.”

“아니, 잠깐만요. 정말 안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것을 본 수혁이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그것을 들은 구조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할아버지를 힐끔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할아버지께선 치매가 조금 있으신 것 같고.”

“그런데 왜 수색을……?”

“혹시 모르니까요.”

수혁의 말은 믿는다.

정말로 저 안에는 단 한 명의 요구조자도 없을 가능성이 높았다.

구조대원이 직접 확인했다니까.

하지만 제보자의 말도 무시를 할 순 없었다.

그것이 아무리 치매에 걸린 노인의 말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정말로 저 안에 요구조자가 있을 확률이 0.1%라도 있다면, 들어가야만 했다.

구조팀장의 말에 수혁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바뀌지 않았다.’

이들보다 먼저 현장에 도착해서, 요구조자들을 구했음에도.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떻게 하지?’

출동한 구조대원들은 이미 진입 준비를 끝마치고 움직이기 직전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힘을 써서라도 억지로 붙잡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막을 수 있다면…….

수혁이 구조팀장의 어깨를 붙잡았다.

“위험합니다.”

화재는 이미 방수 없이는 진입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이대로라면 이전 생과 같은 결과를 초래할 뿐이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펌프차도 들어오지 못하는 이런 상황에서 가만히 손을 놓고만 있을 순 없죠.”

그러니까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도 들어간다는 말이었다.

자신도 소방관이긴 했지만, 수혁은 소방관들의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펌프차와 구조 차량이 들어오면 안 들어가실 겁니까?”

“……그게 무슨?”

“펌프차가 들어올 수 있다면, 일단 방수를 먼저 하고 그 후에 들어가겠냐는 말입니다.”

수혁의 진지한 물음에 구조팀장이 작게 웃었다.

“그게 가능하면 그렇게 하는 게 좋겠죠.”

“그럼 1분만 기다려 주세요.”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

“그럼 30초만!”

수혁이 구조팀장을 향해 단호한 표정으로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흠칫한 구조팀장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고갯짓을 본 수혁이 곧바로 스마트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받아라, 제발.’

수혁의 간절한 마음이 닿은 것일까?

신호음이 멈추고, 누군가의 음성이 들려왔다.

[수혁 씨, 오랜만입니다. 독일에 다녀오셨다고 들었는데…….]

전화를 받은 사람의 정체는 짐 머레이와의 통역을 맡아주었던 바로 그 경호원이었다.

“인사는 나중에 하죠. 혹시 짐과 같이 있습니까?”

수혁은 반가워하는 경호원의 말을 끊고 빠르게 물었다.

수혁의 다급한 음성에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깨달은 경호원은 곧바로 대답했다.

[바로 옆에 있습니다. 전해 드릴 말이라도?]

“제가 이번에 사고를 좀 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돈이 조금 많이 깨질 것 같은데……. 혹시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물어봐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건 짐에게 묻지 않아도 제가 대신 대답해 드릴 수 있겠군요. 치십시오, 사고. 그게 무엇이 되었든 뒷일은 저희 쪽에서 모두 책임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수혁은 전화를 끊고 뒤를 돌아봤다.

구조팀장은 지금 자신이 들은 대화가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펌프차 들어오라고 해주세요.”

“……무슨 뜻입니까?”

“말 그대로요. 골목길에 세워져 있는 차들을 몽땅 밀어서라도 들어오라고 하세요. 책임은 모두 제가 지겠습니다. 그게 돈이든 소송이든.”

수혁의 말에 구조팀장은 물론이고, 진입을 준비하고 있던 다른 대원들의 눈이 모두 커졌다.

* * *

콰드득- 콰득-!

“야, 이 새끼들아!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차가 작살 나는 소리와 함께 차 주인들의 욕설이 골목을 가득 울렸다.

하지만 펌프차 기관원들은 개의치 않고 무작정 앞으로 전진했다.

그런 기관원들의 얼굴에는 속이 시원하다는 표정이 가득했다.

그동안 이런 차량들로 인해 얼마나 골치를 앓았던가?

작은 스크래치 하나만 나도 온갖 민원과 소송이 들어오니 골목길 진입할 때마다 겁이 날 지경이었다.

그런데 뒷일은 생각할 필요도 없이 이렇게 밀어버리니, 그렇게 통쾌할 수가 없었다.

펌프차가 가장 먼저 차들을 밀어버리고, 그 뒤를 구조차와 구급차가 따랐다.

“이 새끼들아, 멈춰!”

그렇게 얼마를 이동했을까?

앞쪽에 있는 차주로 보이는 남자 한 명이 몸으로 펌프차를 막았다.

절대 자신의 차는 밀어내지 못하게 하겠다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그는 5초도 채 버티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에 의해 끌려 나오고 말았다.

“이 미친놈이 자기 차 지키자고 소방차 앞을 막아?”

“끌어내! 끌어내!”

의외로 소방관의 편을 들어주는 주민들이 많았다.

덕분에 구급 차량들이 멈추지 않고 화재 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바로 방수해!”

길이 막혀 발을 동동 구르며 지켜만 봐야 했던 한을 풀려는지, 화재 진압대는 순식간에 호스를 연결하고는 방수를 시작했다.

쏴아아아아-!

물줄기가 시원하게 뻗어 나오며 불길을 잡아먹기 시작했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수혁에게 구조팀장이 다가와 조심스럽게 물었다.

“네, 걱정하지 마세요.”

이런 일로 짐 머레이에게 부탁한 것이 마음에 걸리긴 했다.

미안하기도 했고, 괜히 빚을 지는 것 같아 불편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홉 명의 동료 소방관이 순직하느니, 빚을 지는 게 나았다.

“어느 정도 화재가 진압되면, 그때 수색을 다시 시작하죠.”

불길이 줄어들면, 그만큼 건물의 붕괴위험이 줄어든다.

붕괴 자체가 화재로 인한 폭렬 현상 때문이었으니까.

수혁의 말에 구조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몇 분 후.

불길이 잦아들자, 장비를 빌려서 착용한 수혁과 구조대원들은 주택 안으로 들어가 수색을 시작했다.

“없습니다.”

“발견 못 했습니다.”

“여기도 없습니다.”

당연하게도 요구조자는 없었다.

“수색은 여기까지 한다. 모두 철수해.”

구조팀장은 대원들에게 무전으로 명령을 한 뒤 수혁과 함께 밖으로 빠져나갔다.

“할아버지, 아드님은 안에 안 계시네요.”

구조팀장이 밖에서 서성이고 있는 할아버지에게 다가가 그렇게 말을 했다.

“아들 있어! 아직!”

하지만 대화는 통하지 않았다.

“혹시 아드님께서 어떻게 생겼는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수혁이 할머니에게 물었다.

“내 새끼지만은 잘생겼다고는 말을 못허것네. 그냥 험상궂게 생겼어.”

그 말에 수혁은 누군가를 떠올릴 수 있었다.

“혹시 나이는 어떻게 돼요?”

“가만있어 보자. 그러니까 서른… 둘인가, 셋인가?”

할머니의 대답에 수혁은 확신했다.

노부부의 아들은 처음 주택 안으로 들어갈 때 마주쳤던 그 남자였다.

“할머니, 할아버지. 두 분 아드님은 밖으로 잘 빠져나갔어요. 제가 봤어요.”

“응? 그려?”

할머니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말로 할머니는 모르고 있었던 듯싶었다.

‘X새끼네, 그거.’

불이 난 집에서 몸도 성치 않으신 부모님이 앨범을 챙기는 사이, 혼자만 빠져나왔다는 소리였다.

수혁이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아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부모님이 걱정되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수혁은 일단 노부부를 구급차에 태워 병원으로 이송시켰다.

그러곤 현장에 출동한 경찰들에게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무래도 화재와 아들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다급하게 밖으로 빠져나오던 아들의 모습.

처음엔 그냥 불을 피해 도망치는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지금 와서 다시 떠올려 보니 부자연스러웠다.

경찰에게 설명을 끝낸 수혁이, 자신의 모자를 맡아주었던 아저씨에게 다가갔다.

“감사합니다.”

“아, 수고 많았수다! 큰일 날 뻔했는데, 덕분에 잘 수습됐네.”

“다른 분들이 애썼죠, 뭐.”

수혁은 그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는 모자를 뒤집어썼다.

“오늘 도움 주신 것 감사합니다.”

그사이 다가온 구조팀장이 수혁에게 악수를 청했다.

계급이나 호봉수로 따져도 수혁이 한참 낮은 후배였건만, 그는 한결같이 존대를 사용했다.

“그냥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한 것뿐입니다.”

“그 덕분에 빠르게 화재를 진압할 수 있었습니다.”

괜히 민망해진 수혁이 코를 긁었다.

“그런데 복장을 보니 오늘 비번은 아닌 것 같고. 어쩌다 이곳에 오게 된 거죠? 여기는 신일서 관할 구역도 아닌데.”

“아, 그게…….”

수혁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당신들 살리려고 반 차 내고 일부러 왔다고 말을 할 순 없었으니까.

“그냥 근처에 볼일이 좀 있어서 반 차를 냈습니다. 그러다 운 좋게 화재 현장을 발견한 거고요.”

“천운이었네요.”

만약 수혁이 이곳을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상황이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

구조팀장은 수혁이 먼저 이곳을 발견한 것이 천운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저건 정말로 괜찮은 겁니까?”

구조팀장은 아무래도 걱정이 사라지지 않는지 계속해서 물었다.

수혁이 대답하려는 순간, 스마트폰이 울렸다.

“잠시만요.”

구조팀장에게 양해를 구한 수혁이 전화를 받았다.

그러곤 잠시 대화를 나눈 뒤, 그를 향해 웃어 보였다.

“벌써 해결이 된 것 같네요.”

“……벌써?”

대체 뭐가 해결되었단 말인가?

아직 차주들은 소방관들을 향해 고래고래 욕을 하고 있었고, 경찰들이 그런 차주들을 말리느라 진땀을 빼는 와중이었는데 말이다.

뒤늦게 도착한 보험사 직원들도 소방관들의 책임을 주장하며 골목길은 혼란의 도가니였다.

하지만 구조팀장의 그런 의문은 몇 분 지나지 않아 해소되었다.

“수혁 씨!”

검은 양복과 검은 선글라스를 쓴 외국인이 수혁을 부르며 이곳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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