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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142화 (142/425)

레스큐 시스템 142화

“그게 된다고요? 진짜로?”

수혁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박상태에게 물었다.

“그냥 말만 떠드는 게 아니라 구체적인 사안까지 나왔다니까 그럴 확률이 높지 않겠냐? 뭐, 이러다가 또 엎어질 수도 있겠지만.”

수혁이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내뱉었다.

‘구체적인 이야기까지 오간다고?’

이전 생에서는 없던 일이었다.

구체적인 이야기는커녕 언제 그런 말을 했었냐는 듯 입 다물기 일쑤였는데…….

수혁은 대체 이전 생과 뭐가 달라졌기에 이렇게 이야기가 진행되었는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뭔가 묻기도 전에 철수할 때가 되었기에, 질문은 다음 기회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정리하고 돌아가자!”

수혁은 박상태가 준 물을 벌컥벌컥 다 마시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구조는 끝났어도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었으니까.

수혁은 사용한 장비들을 정리하고는 구조차에 올라탔다.

남은 뒷정리는 화재 진압대에서 맡아주었으니, 서로 돌아가 혹시 있을지도 모를 다음 출동을 대비해 휴식을 좀 취해야만 했다.

“어으, 죽겠다.”

김강식이 구조차에 탑승하며 끙끙거렸다.

“이거 체력이 옛날 같지가 않네.”

“요즘 너무 바빴으니까요. 비번에는 침대에서 일어날 수도 없을 정도입니다.”

이재한이 그런 김강식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이러다 어디 한 군데 고장날까 봐 무섭네.”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실제로 혹사당한 몸이 조금씩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오늘 퇴근하고 사우나 한번 가서 땀 좀 뺄까요?”

박정우가 은근슬쩍 대화에 끼며 물었다.

“넌 젊은 놈이 퇴근하고 아저씨들이랑 사우나를 가고 싶냐? 제발 그 시간에 연애 좀 해라.”

“아, 왜 또 갑자기 연애 얘기로 빠집니까?”

“안쓰러워서 그런다, 안쓰러워서. 우리 팀에서 지금 너만 솔로인 거 알지?”

김강식의 말에 박정우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사이 구조차가 출발을 했고, 김강식과 이재한은 박정우를 괴롭혔다.

“그만들 해라. 애 울겠다.”

앞 좌석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던 박상태가 둘을 말리지 않았더라면, 서에 도착할 때까지 이어졌을 것이다.

“아, 그 얘기 좀 해주세요.”

대화가 끊기자 그 틈을 노린 수혁이 박정우에게 말을 걸었다.

“얘기? 무슨 얘기?”

“특구 생긴다면서요?”

수혁의 말에 박정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몇 번째 해주는 것인지 셀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만큼 특구 설립은 이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고 있었다.

“이제 마지막이니까 잘 들어. 다음부턴 물어봐도 안 가르쳐 줄 거야.”

같은 내용을 몇 번이나 말하는 것이 지겨웠는지, 박정우는 그렇게 못을 박았다.

그러고는 다른 대원들에게 해줬던 이야기들을 다시 한 번 풀어주었다.

가만히 박정우의 말을 듣고 있던 수혁이 고개를 갸웃했다.

“잠깐만요. 짐 머레이요?”

“아, 그래. 너는 그 양반하고 연락 가능하지? 차라리 그쪽에 물어보는 게 더 정확할걸?”

생각지도 못한 사람의 이름이 나오자 수혁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분이 왜?’

헤어지기 전에 무슨 비즈니스를 위해 좀 더 머물 것이라 그러더니, 이게 그건가 싶었다.

“궁금한 거 있으면 직접 연락 한번 해봐라. 아직 한국에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만.”

박정우는 다행이라는 듯 짐 머레이에게 자신의 짐을 넘겨 버렸다.

“네, 제가 한번 연락해 볼게요.”

확실히 이런저런 소문만을 듣는 박정우보다, 당사자인 짐 머레이가 훨씬 더 자세히 알 게 분명했으니까.

‘내가 연락처를 저장해 뒀던가?’

수혁이 자신의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조만간 한번 연락해 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아, 다들 내일이 무슨 날인지 기억하고 있지?”

“네, 기억하고 있습니다.”

갑작스런 박상태의 말에 오직 수혁만이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눈을 끔뻑였다.

“내일 뭐 해요?”

수혁이 묻자 박상태가 자신의 이마를 탁- 하고 쳤다.

“그러고 보니 너한테는 전달이 안 됐었지?”

수혁이 독일에 있는 사이 뭔가가 결정된 것 같았다.

“내일 신일 초등학교로 소방 교육 나간다. 화재 진압대랑 같이 갈 거니까 그렇게 알아둬.”

“……소방 교육이요?”

“그래, 너는 올해가 처음이겠지만, 매년 하는 행사니까 선배들이 어떻게 하는지 잘 보고 배워.”

박상태는 그 말을 끝으로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그래서 수혁의 표정을 보지 못했다.

딱딱하게 굳어진 수혁의 표정을.

“다녀왔어요.”

수혁이 현관 안으로 들어가며 말을 하자, 저녁을 준비하고 있던 최은송이 웃으며 그를 맞이했다.

“오늘도 수고했어요.”

“은송 씨도요.”

항상 서울까지 출퇴근하고, 집에 와서 저녁까지 차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단 한 번도 빼놓지 않고 이렇게 준비해 주는 그녀가 고마웠다.

“오늘 저녁은 뭐예요?”

“김치찌개요.”

“돼지고기 넣고?”

“당연하죠.”

수혁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최은송의 요리는 언제나 맛이 있었지만, 오늘처럼 돼지고기를 넣은 김치찌개를 가장 좋아했다.

수혁은 대충 샤워하고 난 뒤, 주방으로 향했다.

그러곤 최은송이 차려준 저녁을 먹었다.

평범한 날의 평범한 저녁식사.

밥을 세 공기나 먹은 수혁은 소파에 앉아 최은송과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다, 침실로 향해 잠을 청했다.

“후우…….”

하지만 수혁은 쉽사리 잠에 들지 못했다.

최은송이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로 향한 수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으로 웃고, 떠들며 평소처럼 지냈지만, 사실 수혁의 속은 그렇지 못했다.

낮에 박상태와 대화를 나눈 이후 줄곧 마음이 무거웠던 것이다.

‘소방 교육이라…….’

초등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소방 교육 현장에선 별다른 일이 없었다.

그럼에도 수혁이 이렇게 심란스러워 하는 것은 다른 이유였다.

‘내일이 그날이구나.’

아홉 명의 소방관이 목숨을 잃은 바로 그날.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이번 생에서는 절대 그들이 목숨을 잃도록 가만히 두고만 보고 있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그들을 구할 수 있는지는 떠오르질 않았다.

수혁의 고민은 다음날 아침 해가 떠오를 때까지 계속됐다.

“일찍 왔네?”

“잠이 좀 안 와서 그냥 일찍 나왔어요.”

사무실로 들어오던 박상태가 수혁을 보곤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잠이 왜 안 와? 무슨 고민 있냐?”

“그냥요.”

수혁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을 회피하자, 박상태의 눈이 가늘어졌다.

수혁의 분위기가 왠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챈 것이다.

“말해봐. 또 무슨 감이 안 좋고 그래?”

박상태는 얼마 전, 수혁이 보였던 이상한 모습을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끼게 했던.

혹시나 그 불안의 정체가 오늘 밝혀질까 두려웠다.

“설마 오늘 초등학교에서?”

“아니요, 그런 건 아니에요.”

이럴 때마다 수혁은 가슴이 답답했다.

도대체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차라리 모든 것을 다 이야기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물론 수혁의 말을 듣고 믿어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겠지만 말이다.

‘정신 병원에 안 끌려가면 다행이지.’

작게 한숨을 내쉰 수혁은 별거 아니라는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냥 기분이 좀 그래서요.”

수혁은 대충 둘러댄다고 한 말이었지만, 그것을 들은 박상태의 표정은 더욱 심각해졌다.

“내가 널 몰라? 무슨 일인데 그래?”

박상태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수혁에게 물었다.

잠시 고민을 하던 수혁이 뭔가를 결심한 듯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혹시 저 소방 교육 때 좀 빠질 수 있어요?”

“……반 차를 쓰겠다고?”

“네, 당일 날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건 아는데, 뭐 좀 걸리는 게 있어서요.”

박상태가 미간을 찌푸렸다.

사실 수혁이 반 차를 쓰는 건 상관없었다.

그동안 수혁은 단 하루도 연차를 사용한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당일 사용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그 정도는 팀장의 재량으로 얼마든지 허가를 내줄 수 있었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것은, 과연 수혁이 반 차를 내고 어디 가서 무엇을 하느냐였다.

“심각한 일이냐?”

“아무래도요?”

수혁이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하자 박상태가 혀를 찼다.

“그래, 그럼. 신청서 작성해서 가져와. 바로 결재해 줄 테니까.”

“고마워요, 상태 형.”

“대신 나중에 무슨 일이었는지 말해줘야 된다.”

“그럴게요.”

사실 말을 해주지 않아도 시간만 지나면 충분히 알 수가 있었다.

구조 3팀도 그 현장에 지원 출동을 하게 되어 있으니까.

박상태가 자신의 자리로 가자, 수혁은 반 차 신청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아직은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했다.

화재의 원인도 잘 생각이 나지 않았고, 발화 지점도 기억하지 못했으니까.

‘일단은 직접 가서 보는 수밖에.’

그러다 보면 무슨 수가 생길지도 모른다.

수혁은 빠르게 신청서를 채워 나갔다.

괜히 마음만 급해졌다.

“너 어디 가냐? 이제 곧 있으면 초등학교 가야 되는데?”

주섬주섬 자리를 정리하는 수혁을 본 박정우가 물었다.

“수혁이 오늘 반 차다.”

“반 차요?”

박상태가 수혁 대신 대답해 주었고, 박정우는 그게 사실이냐는 듯 수혁을 쳐다보았다.

“아, 네. 오늘 일이 좀 있어서.”

“어디 몸 안 좋은 곳이라도 있어? 아니, 네가 그럴 리는 없고. 제수씨랑 데이트 가냐?”

“그런 거 아니에요.”

수혁은 의심 가득한 박정우의 시선을 피하며 나갈 준비를 했다.

다른 대원들 역시 무슨 일이냐는 듯 수혁을 쳐다보았다.

“개인적인 일이니까 다들 신경 꺼. 사내새끼들이 남 얘기에 왜 이렇게들 관심을 가져?”

보다 못한 박상태가 버럭- 소리를 치자, 그제야 다들 관심을 거두었다.

“넌 이제 가라.”

“네,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오냐.”

수혁은 대원들에게 인사를 하고는 서 밖으로 빠져나왔다.

이제 점심시간.

화재가 발생할 때까지 시간적 여유가 그리 많지 않았다.

마음이 급해진 수혁은 일단 택시를 잡아타고 이동을 시작했다.

‘최초 신고 시간이 1시쯤이었나?’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았다.

신일서의 관할 지역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수혁이 출동 명령을 받은 것은 오후 2시가 조금 안 되었을 시점이었다.

소방교육이 한창 진행되고 있던 시간에, 갑작스런 출동이 떨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미 그때는 늦은 상태였고.

그것을 생각해 보면 화재는 오후 1시나 그 이전에 발생한 것 같았다.

“조금 더 빨리 가주실 수 있습니까?”

수혁이 택시 기사에게 부탁을 했다.

“무슨 바쁜 일 있으신가 봐요?”

룸미러를 통해 수혁을 흘깃 확인한 기사가 물었다.

“네, 좀 부탁드립니다.”

수혁이 정중하게 부탁을 하자, 기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최대한 빠르게 가드릴게요.”

택시가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창밖의 풍경을 보며 수혁이 마른 침을 삼켰다.

아홉 명의 영웅.

이번 생에서는 그들이 그토록 허무하게 죽도록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이번엔 안 늦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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