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141화
“이게 얼마만의 출근이냐.”
수혁은 아침 일찍 출근했다.
8주가 넘는 시간 동안 오지 못했음에도, 바로 어제 왔던 것처럼 익숙한 모습의 신일서가 보였다.
수혁은 콧노래를 부르며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십니까!”
구조대 사무실 문을 연 수혁이 크게 인사를 했다.
“어, 왔냐?”
수혁을 맞아준 것은 역시나 박상태였다.
그의 모습을 본 수혁은 반가운 마음에 한껏 미소를 지었다.
“뭘 그렇게 웃어? 미쳤냐?”
“에이, 반가우면서 또 그러신다.”
“반갑기는 개뿔.”
보고 있던 신문을 내려놓은 박상태의 표정은 뚱해 보였다.
“그동안 너 없어서 얼마나 편했는데. 이제 다시 고생길이 열렸구만.”
박상태가 한숨을 내쉬자 수혁은 섭섭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나 없다고 사고가 덜 난 것도 아니었을 텐데.”
“덜 났어.”
“……네?”
“덜 났다고. 너 독일 가니까 애들 몸이 두 배는 더 커졌다. 하도 한가해서 운동만 하느라고.”
수혁은 순간 박상태의 말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을 할 수가 없었다.
“좋은 아……. 수혁이 왔네?”
때마침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던 이재한이 수혁을 발견하고는 인사를 하다 말고 멈칫했다.
왠지 보고 싶지 않은 무엇인가를 본 것 같은 얼굴이었다.
“선배는 표정이 왜 그래요?”
“으응?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벌써 8주가 다 지났구나 싶어서.”
이재한은 수혁을 스쳐 지나가며 ‘아, 좋은 날 다 갔네’라며 중얼거렸다.
“다 들리거든요?”
수혁이 헛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독일에 가 있는 동안, 이곳은 휴가철이 한창이었다.
신일서야 언제나 한결같이 바빴지만, 특히 이 기간에는 더 많은 사고가 터져 출동이 잦았다.
그래서 수혁은 선배들이 고생깨나 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정말로 한가했던 모양이다.
“오늘부턴 다시 좀 바빠지려나요?”
“저놈이 왔으니까.”
둘은 수혁을 보며 수군거렸다.
“아, 진짜!”
수혁이 얼굴을 찌푸리며 자리에 앉자 이재한이 껄껄- 웃었다.
“농담이야, 새끼야. 설마 너 하나 없어졌다고 정말로 사고가 안 일어났겠냐?”
“그렇죠?”
“그래. 그냥 우연이겠지.”
그러니까 정말 한가하긴 했단 말이었다.
박상태는 시무룩해 있는 수혁을 보며 한번 피식하고는 물었다.
“독일은 어땠냐?”
“독일이요? 음…….”
수혁은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훈련은 뭐 그냥 그랬어요. 딱히 특별한 것도 없었고.”
“기술 쪽은 우리도 세계에서 알아주니까.”
“대신 시스템이 잘되어 있는 것 같더라고요. 소방관 대우도 우리랑은 차원이 달랐고.”
수혁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같은 일을 하는데도 그들과 자신들은 받는 대우가 하늘과 땅 차이였다.
“그런 우울한 얘기 말고. 재밌는 일은 없었냐?”
“재밌는 일이요?”
수혁은 8주간의 기억을 더듬어봤다.
“독일 애들이랑 축구한 거랑…….”
수혁은 나름 MSG를 쳐가며 기억에 남는 썰을 풀었다.
하나둘씩 출근을 한 구조 3팀의 대원들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수혁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다 한순간 모두의 눈이 커졌다.
“뭐? 독일에 가서도 출동했다고?”
무슨 교육 연수 가서 현장 출동을 한단 말인가?
“출동한 건 아니고요. 그냥 우연히 맥주 마시러 갔다가 화재 현장을 발견한 건데.”
“그게 더 이상해, 인마.”
대원들은 ‘역시 김코난’이라며 웅성거렸다.
“너 없는 동안 우리는 꿀 빨고 있었는데…….”
박정우가 고개를 저으며 말하자 수혁이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진짜로 한가했어요?”
“어.”
너무도 빠른 대답에 수혁이 머리를 부여잡았다.
이쯤 되면 정말로 자신이 재난을 몰고 다닌다고 해도 할 말이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해서 출동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고. 사실 출동한 횟수로 따지면 너 있을 때보다 더 많았을걸? 대부분 사소한 것들이어서 한가하다고 느낀 것뿐이지.”
김강식이 웃으며 말했다.
“올여름에는 태풍도 오다가 다 죽어버렸고, 장마도 짧아서 기껏해야 교통사고 정도뿐이었지.”
그 말을 들은 수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니 이때는 확실히 큰 사건이 없이 무탈하게 보냈던 것 같았다.
그러다 가을로 접어들 때 큰 사고가 한 번 일…….
“응?”
생각에 잠겨 있던 수혁이 움찔했다.
‘잊고 있었어!’
수혁의 소방관 생활을 하며 겪었던, 가장 끔찍했던 기억 중 하나.
‘연립 주택 화재.’
그 참혹하고 슬펐던 현장을 떠올린 수혁이 몸을 떨었다.
“갑자기 왜 그러냐? 감기라도 걸렸어?”
“아, 아니요.”
박상태가 고개를 갸웃하며 묻자, 수혁은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게 이맘때였지.’
신일서의 관할 지역에서 일어난 화재는 아니었고, 후에 지원 요청을 받고 출동한 곳이었다.
수혁은 그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분명 처음 신고받았을 당시에는 화재가 그리 크지 않았다고 했다.
제때 도착만 했다면 그리 어렵지 않게 진압할 수 있는 상황.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좁은 골목길에 늘어서 있는 수많은 불법 주차 차량들.
펌프차는커녕 구급차조차 쉽사리 들어갈 수 없는 혼잡한 골목길은, 출동한 소방관들의 시간을 낭비하게 만들었다.
그사이 빌라에 난 화재는 그 크기를 점점 더 키웠고, 이내 사람이 접근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해졌다.
뒤늦게 달려서 도착한 소방관들은 주택 앞에 서서 발을 구르고 있는 노부부의 말을 듣고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 갔다.
“아들이 아직 빠져나오지 못했다!”
지적장애를 지니고 있는 아들이 안에 갇혀 있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주택 안에 진입한 지 몇 분도 채 지나지 않았을 시점.
건물이 무너졌다.
구조대 여섯 명.
화재 진압대 세 명.
총 아홉 명의 소방관들이 수십 톤의 콘크리트 구조물에 매몰됐다.
구조 3팀에게 지원 요청이 간 시점은 바로 그때였다.
뒤늦게 현장에 도착한 수혁은 울부짖으며 맨손으로 불타오르고 있는 잔해를 파헤치고 있는 동료 소방관들의 모습을 봤다.
너무도 처절한 광경.
구조를 위한 중장비는 불법 주차 차량에 막혀 진입하지 못했고, 결국엔 매몰된 아홉 명의 소방관은 싸늘한 주검으로 변해 동료들의 품에 안겼다.
무려 아홉 명의 소방관이 순직했다.
수혁은 그날의 참혹한 현장을 한동안 기억에서 지우지 못했었다.
“이 녀석 왜 이래?”
수혁이 아무런 말도 없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자, 박상태가 불안함을 느꼈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오랜만에 출근해서 적응을 못 한 건가? 야, 김수혁! 왜 이래? 정신 차려!”
이재한이 수혁의 눈앞에 손가락을 튕기며 불렀다.
“아, 네.”
그제야 수혁이 생각에서 빠져나왔다.
“죄송합니다, 뭐 좀 생각하느라.”
“다른 애들은 몰라도 넌 그러지 좀 마라. 불안해서 살 수가 없다.”
박상태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수혁을 쳐다봤다.
“뭐 할 말 있으면 나중에 따로 와서 얘기하고.”
수혁이 저런 모습을 보일 때마다 뭔가 좋지 않은 일이 터졌다.
박상태는 이번에도 그런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수혁에게 그렇게 일러두었다.
“그럴게요.”
수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그날의 기억을 한쪽으로 미뤄둔 뒤, 다시 독일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잠시 후 구조 출동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 계속됐다.
“물 뿌려!”
박상태의 외침에 수혁과 박상태의 머리 위로 물이 안개처럼 퍼져 나갔다.
그와 동시에 수혁이 굳게 닫혀 있던 문을 열었다.
화르르르륵-!
갇혀 있던 불길이 밖으로 빠져나왔다.
하지만 넓게 퍼진 물방울들이 마치 방패처럼 그 불길을 막아냈다.
“진입!”
어느 정도 불길이 잦아들자 박상태가 소리쳤다.
수혁을 포함한 구조 3팀은 명령과 동시에 안쪽으로 진입을 시도했다.
“계속 물 뿌려!”
문 안쪽은 불바다였다.
집주인이 가스불을 켜놓은 것을 까먹고 외출하는 바람에 일어난 화재였다.
“수혁이는 안방, 정우는 거실하고 베란다 확인해!”
하지만 수혁은 고개를 저었다.
“안방 말고, 화장실부터 확인할게요.”
수혁의 말에 박상태가 한소리 하려다 멈칫- 했다.
수혁이 저렇게 말을 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을 게 분명했으니까.
“그럼 안방은 내가 간다.”
작은 방들을 뒤져 볼 생각이었던 박상태가 방향을 틀었다.
사실 수혁은 처음부터 요구조자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에게는 ‘생명 감지Ⅱ’ 스킬이 있었으니까.
스킬을 사용해 요구조자의 위치를 확인한 수혁은 곧장 화장실로 향했다.
“요구조자 한 명 발견했습니다!”
화장실 문을 열자 욕조 안에 숨어 있던 요구조자의 모습이 보였다.
수혁의 말에 박상태가 화장실로 다가왔다.
“잠시 그대로 계세요.”
아직 거실 쪽에는 불길이 거세게 타오르고 있었다.
자신들이 발견한 이상 급할 건 없었으니 어느 정도 진압이 된 후에 탈출하는 것이 더 안전했다.
수혁은 요구조자에게 마스크를 씌워주고는 밖을 확인했다.
화재 진압대가 소화전에서 빼낸 호스로 열심히 방수하고 있었다.
화재가 그리 심하진 않았기에 몇 분 지나지 않아 위험해 보이는 불길은 모두 꺼졌다.
“나가시죠.”
수혁은 요구조자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여보!”
가스불을 켜놓고 밖에 나갔던 아내가 눈물을 흘리며 구조된 남편을 향해 달려왔다.
“이 여편네가!”
오랜만의 휴일에 낮잠을 자고 있다가 큰일을 당할 뻔한 남편이 아내를 보며 눈을 부릅떴다.
다행히 구조대가 제때 도착해 목숨을 건지긴 했지만,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표정이었다.
‘뭐, 죽을 뻔했으니…….’
수혁은 일단 그를 진정시켰다.
“이야기는 나중에 나누시고 병원부터 가셔야 합니다.”
“……어디 다친 곳도 없는데 병원을 가야 합니까?”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요. 검사받아 보시는 게 좋을 겁니다.”
남편은 수혁의 말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남편과 아내가 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떠나자 수혁이 한숨을 내쉬며 장비를 벗었다.
“수고했다.”
박상태가 다가오며 물병 하나를 던졌다.
“아, 오늘 진짜 바쁘네요.”
오늘만 벌써 세 번째 화재 출동이었다.
아직 퇴근하려면 시간이 한참 남았는데, 이런 분위기면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출동해야 할 것 같았다.
“점점 빡세지는구만.”
체력에는 자신이 있는 박상태마저 앓는 소리를 할 정도로 바빴다.
“인원충당 같은 건 안 해준대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
박상태가 물 한 모금을 마시며 혀를 찼다.
“이러다 다 과로사하게 생겼는데.”
수혁조차도 조금 쉬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으니, 다른 사람들은 오죽할까?
“너 독일에 가 있는 동안 무슨 얘기가 있긴 했는데…….”
“무슨 얘기요?”
“여기에 무슨 특수 구조대를 하나 설립하네, 마네 하더라고.”
특수 구조대란 말에 수혁이 픽- 하고 웃었다.
이전 생에서도 몇 번이나 나왔던 이야기였다.
하지만 수혁이 죽기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던 일이기도 했다.
“그게 되겠어요?”
수혁이 어림도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박상태의 반응은 수혁과 조금 달랐다.
“그게, 진행이 되고 있는 모양이더라고.”
“……네?”
“정우 녀석 말로는 거의 확정적이라고 하던데?”
수혁이 눈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