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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137화 (137/425)

레스큐 시스템 137화

수혁을 바라보고 있는 율리안과 지양호는 자신들의 눈을 의심했다.

현재 계단 위는 말 그대로 화산과도 같은 상태였다.

거대한 화염이 마치 산처럼 일어나 길을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다.

화염은 엄청난 열기를 뿜어대고 있어, 아무리 방화복을 입고 있다 한들 도저히 가까이 다가갈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수혁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곳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고는 도끼를 휘둘렀다.

콰드득-!

뭔가가 박살나는 소리와 함께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우왁! 야! 뭐, 뭐 하는 거야!”

“피해!”

둘은 경악을 하며 수혁을 붙잡았다.

몇 발자국 앞으로 갔을 뿐인데도, 뜨거운 열기가 마스크와 방화복을 뚫고 들어오며 살을 익혔다.

“물러나요!”

수혁은 자신을 붙잡아 뒤로 끌고 가려는 두 사람의 손을 뿌리쳤다.

그러곤 둘을 밀어 불에게서 떼어낸 뒤, 자신은 오히려 화염을 향해 한 걸음 더 다가섰다.

“야, 이 미친놈아!”

지양호가 소리를 질렀다.

그것을 들은 수혁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오랜만에 듣는 욕이다.

마치 박상태가 뒤에 있는 것 같았다.

“걱정 말고 거기서 잠깐 기다리고 계세요!”

화염은 뜨거웠다.

열기에 바짝 익은 살갗이 한껏 예민해져 쓰라린 통증이 밀려왔다.

‘그래도 아직은 버틸 만해.’

수혁은 다시 한 번 도끼를 휘두르며 그렇게 생각했다.

팔이 한 번 움직일 때마다, 불붙은 잔해들이 박살이 나며 주변으로 흩어졌다.

덕분에 불길은 조금씩이지만 약해지기 시작했다.

불에 탈 만한 것들이 사라지고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팀워크 좋지.’

소방관에겐 그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하지만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을 굳이 다른 사람의 능력에 맞춰 할 이유도 없었다.

수혁에게 있어 그것은 시간 낭비나 다름없었다.

차라리 그 시간에 혼자 행동을 한다면,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요구조자를 구할 수 있었다.

비록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 좋지 못하게 비친다 하더라도…….

‘한 명이라도 더!’

콰앙-!

욕 한 번 먹고 사람 한 명을 더 구할 수 있다면 이득 아닌가?

율리안은 다시 한 번 수혁을 데리고 나가려다 걸음을 덜컥- 멈추었다.

조금씩이지만 불길이 사그라지고 있는 것을 그도 느낀 것이다.

“야, 인마!”

그는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가려던 지양호의 어깨를 붙잡았다.

“잠시만 기다려 보죠.”

“그게 뭔 개소리야? 지금 저놈 위험한 거 안 보여?”

지양호가 어깨를 흔들며 율리안의 손을 뿌리치려고 했다.

하지만 율리안은 그를 쉽게 놔주지 않았다.

“양호 씨야말로 다시 한 번 잘 봐보세요. 지금 누가 위험하다는 겁니까?”

율리안의 말에 지양호가 무슨 말이냐는 듯 인상을 찌푸리며 수혁을 쳐다보았다.

계단을 가득 메우고 있는 붉은 불길.

그리고 그 앞에 서서 도끼를 휘두르고 있는 수혁.

누가 봐도 위험한 상황…….

“응?”

뭔가 달랐다.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수혁의 모습은 위태롭기 그지없었다.

당장에라도 불길에 휩싸일 것만 같았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위험한 상황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수혁이 정말로 위험해 보이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었다.

“불길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아직 눈에 띌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자세히 본다면 분명히 불길이 약해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지양호 역시 그것을 알아차렸다.

수혁의 도끼가 쌓여 있는 잔해를 박살 낼 때마다, 일렁이는 불길의 크기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음을 말이다.

율리안과 지양호는 더 이상 수혁을 만류할 생각을 하지 못한 채,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이 비현실적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콰드득-!

보통 사람이라면 지쳐도 벌써 지쳐서 나가떨어졌을 것이다.

아니, 웬만한 소방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방화복과 장비를 착용하고 호흡이 원활하지도 않은 마스크까지 착용한 채로 이토록 격하게 움직이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수혁은 계속해서 움직였다.

도끼에 나무가 걸리면 나무를 쪼개 버렸고, 돌이 걸리면 산산이 박살을 내버렸다.

수혁의 도끼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대로만 계속하면 돼!’

체력은 충분하다.

이런 식으로 10분 정도만 더 하면 충분히 길을 뚫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세상일이 그렇게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갑자기 손에 들고 있던 도끼의 무게가 가벼워졌다.

“아, 젠장.”

꽤 무게가 나가는 돌덩이라도 친 모양이었다.

수혁이 뒤를 돌아봤다.

하지만 율리안과 지양호 모두 여분의 도끼는 갖고 있지 않았다.

“죄송한데 도끼 한 자루만 더 가져다주실 수 있으세요?”

건물 안으로 진입한 소방관 중에는 수혁처럼 도끼를 들고 온 이들도 몇 있었다.

그들에게 무전을 한다면 빠르게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기다려라.”

율리안은 수혁의 부탁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이대로면 얼마 지나지 않아 길을 뚫을 수 있을 것 같았기에, 최대한 수혁에게 협조해 주기로 결정한 듯했다.

수혁은 새로운 도끼가 올 때까지 잠시 뒤로 물러나 쉬기로 했다.

“……너 괜찮냐?”

지양호가 물었다.

“피부가 조금 익은 것 같긴 한데, 괜찮아요. 아직은 버틸 만하네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을 하는 수혁의 모습에 지양호는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사실 지양호는 지금도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5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유독 더 심할 뿐이지, 다른 곳도 불구덩이인 것은 마찬가지였으니까.

건물에 들어온 지 고작 10분도 채 되지 않았음에도, 이미 전신이 땀으로 흠뻑 젖은 상태였다.

그런데 수혁은 방화복이 검게 그을릴 정도로 불과 가까운 곳에서 도끼를 휘둘렀다.

‘그런데 괜찮다고?’

이건 신체 능력이 좋은 것과는 별개의 일이었다.

아무리 체력이 좋고, 힘이 세고, 순발력이 좋다 한들, 화상을 입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금방 가지고 올 거다.”

지양호가 수혁에게 뭔가를 더 물으려 는 찰라, 무전을 끝낸 율리안이 다가오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다행이네요. 도끼만 있으면 10분 안에 길을 뚫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수혁의 말을 들은 율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율리안은 수혁에게 따로 뭔가를 묻지 않았다.

질문은 구조가 끝난 뒤 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셋이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계단에서 누군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져왔습니다!”

크라우프였다.

그는 양손에 도끼를 든 채로 빠르게 달려왔다.

“고맙다.”

율리안은 일단 도끼를 받아 들어 수혁에게 전해주고는, 크라우프를 향해 물었다.

“수색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지?”

“계속해서 진행 중이긴 합니다만, 아직까지 요구조자는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알았다.”

율리안은 크라우프의 어깨를 한번 두들겨 주며 격려하고는 다시 아래층으로 돌려보냈다.

“이제 저도 다시 움직여야겠네요.”

잠깐의 휴식을 마친 수혁이 도끼 한 자루를 들고 다시 계단으로 향했다.

“……조심해라.”

“걱정하지 마세요.”

수혁이 미소 지었다.

크라우프가 가져다준 두 개의 도끼를 못 쓰게 된 후에야 길이 뚫렸다.

수혁은 율리안과 지양호를 뒤로한 채 빠르게 5층에 올랐다.

시간이 지체된 만큼, 구조를 기다리고 있을 요구조자들이 더욱 위험해졌을 것이다.

당연히 천천히 수색을 시작할 것이라 생각했던 율리안과 지양호는, 그런 수혁의 모습에 화들짝 놀라며 재빨리 따라붙었다.

5층에 올라선 수혁은 우선 ‘생명 감지Ⅱ’를 사용해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요구조자의 위치를 파악했다.

‘두 명, 왼쪽!’

위치를 파악한 수혁은 망설이지 않고 움직였다.

‘또?’

망설임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수혁의 모습에 율리안의 눈이 가늘어졌다.

조금 전에도 그랬다.

마치 요구조자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기라도 한 것 같은 행동이었다.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처음에는 단순히 수혁의 엄청난 신체 능력에 놀랐지만, 그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물어봐야 수혁은 언제나처럼 비밀이라며 대답을 회피할 것이 뻔했다.

율리안의 시선이 수혁의 등 뒤에 쫓았다.

몇 초 지나지 않아 수혁은 어느 문 앞에서 멈춰 섰다.

그러곤 문을 발로 걷어찼다.

쾅-!

문짝이 박살나며 떨어져 나갔다.

‘후우…….’

대체 어떻게 불길이 번진 것인지, 문 안쪽도 불길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안쪽으로 피신한 요구조자들이 소화기를 사용한 것인지, 어느 정도 진압이 되어 있는 상태라는 것이었다.

수혁은 요구조자들이 숨어 있는 곳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구하러 왔습니다!”

아버지와 아들로 보이는 두 명.

둘은 수혁을 보고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얼마나 두려웠을까?

수혁은 그 둘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다.

“율리안!”

수혁이 부르자 율리안이 안쪽으로 들어오다 헛웃음을 내뱉었다.

설마 하고는 있었지만, 정말로 이렇게 단번에 요구조자들을 찾아낼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한 것이다.

“요구조자들 좀 진정시켜 주세요.”

율리안은 놀란 가슴을 가라앉히고는, 수혁의 말대로 둘에게 다가가 진정시키기 시작했다.

“여기서 잠깐 기다리고 있으세요. 형님은 저랑 같이 가시고.”

“어디 가려고?”

“계속 수색해야죠.”

아직 5층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까지 구조한 다음 한 번에 같이 내려가는 편이 나았다.

부족한 사람이야 아직 아래에서 수색하고 있는 이들을 부르면 될 일이었으니, 최대한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수혁은 지양호를 데리고 5층을 누비기 시작했다.

율리안이 보살피고 있는 두 명을 제외하면 남은 요구조자는 총 아홉 명.

그중 다섯 명이 이곳 5층에 더 있었다.

수혁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와아아!”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활활 타오르는 건물 안에서, 구조대원들이 사람들을 감싸 안은 채 밖으로 빠져나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물! 물 가져와!”

밖에 있던 소방관들이 다급히 물을 가지고 달려와 구조대원들에게 건네주었다.

“후우우!”

마스크를 벗어 던진 율리안이 물을 머리 위로 뿌리며 이제야 좀 살겠다는 듯 숨을 내뱉었다.

“1층부터 4층까지는 현재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아래층을 수색했던 대원들이 율리안에게 보고를 했다.

“수고했다.”

율리안은 대답을 하면서 다시 한 번 헛웃음을 지었다.

처음 건물을 진입했을 때 수혁이 보여주었던 모습을 떠올린 것이다.

그때 수혁은 1층 수색에는 관심도 보이지 않고, 오직 위로 올라가야 된다고만 했다.

그리고 결국 5층에서 요구조자들을 발견했고.

그 모습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는데, 수혁은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아래층에는 요구조자가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대체 어떻게 안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빚을 졌군.’

만약 아래층을 수색한다고 시간을 낭비했더라면, 다른 요구조자들을 구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었다.

물론 후에 인원이 더 투입되었으니 그렇게 되지는 않았겠지만, 그사이 요구조자들은 더욱 큰 불안과 공포에 휩싸였을 터였다.

수혁의 빠른 행동은 단순히 요구조자들의 생명만을 구한 것이 아니었다.

율리안이 수혁을 쳐다보았다.

수혁은 대원들에게 받은 물을 마시고는 곧바로 다시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곧장 다시 들어갈 생각인가?’

딱히 한 일이 없는 자신도 이렇게 지치는데, 가장 많이 움직인 수혁은 아직도 팔팔해 보였다.

율리안은 한숨을 내쉬며 마스크를 썼다.

쉬는 것은 나중에.

모든 요구조자를 구한 뒤 하면 된다.

그렇게 생각한 율리안은 수혁과 함께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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