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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136화 (136/425)

레스큐 시스템 136화

‘……어떻게?’

율리안은 지금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감이 좋아서 요구조자를 빨리 찾을 순 있다.

율리안 자신도 왠지 이쪽에 요구조자가 있을 것 같다는 강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수혁이 보여준 것은, 단순히 감이라고 부를 만한 영역이 아니었다.

‘마치 요구조자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는 것처럼…….’

하지만 말이 되질 않는다.

대체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단 말인가?

수혁의 신체 능력이 비범하다 못해 특별하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율리안은 그런 수혁이 대단하다고 생각했고, 그의 존재를 자신의 부하들에게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생각 역시 했다.

수혁을 보고 자만하지 않고 열심히 훈련하길 바랐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수혁이 갖고 있는 특별함은 단순히 엄청난 피지컬뿐만이 아닌 듯했다.

율리안은 이곳이 화재 현장이라는 것을 잊을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

수혁이 왜 그렇게 확신에 찬 모습으로 이곳으로 왔는지 깨달았다.

‘이걸 어떻게 알았는지는 설명하지 못하겠지만.’

만약 요구조자가 어디 있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면, 자신 역시 수혁과 같은 행동을 했을 것이다.

다른 동료들과의 팀워크도 중요했지만, 1초라도 빠르게 요구조자를 구해내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했으니까.

수혁은 땅에 못이 박힌 것처럼 가만히 서 있기만 하는 두 사람을 돌아봤다.

그러곤 눈짓을 했다.

자신은 말이 통하질 않으니, 둘이 나서서 저들을 진정시키라는 뜻이었다.

율리안과 미하일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는 안쪽으로 들어갔다.

“구하러 왔습니다.”

“어디 다치신 곳은 없습니까?”

둘은 복잡한 생각 속에서도 요구조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둘을 보며 수혁이 고개를 위로 올렸다.

4층에 있는 요구조자는 이들 네 명이 끝이다.

나머지 열한 명은 5층과 옥상에 있었다.

‘한 번 내려갔다 와야 하나?’

수혁은 잠시 고민을 했다.

혼자 저 많은 사람을 데리고 불길을 뚫을 순 없었다.

그것은 율리안과 미하일이 있다 하더라도 마찬가지였다.

몇 번을 왔다 갔다 반복할 생각이 아니라면, 몇 명이 더 필요했다.

‘그리고 장비도.’

안쪽의 상황이 생각보다 좋지 않았기에, 몇 가지 장비가 더 필요했다.

‘일단 한 번 나가긴 해야겠다.’

밖에 나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통역을 도와줄 사람도…….

율리안과 미하일은 챙겨온 보조 마스크를 요구조자들에게 씌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하일, 수혁, 요구조자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간다.”

미하일은 고개를 끄덕였고, 수혁은 그 말을 알아듣진 못했지만 대충 때려 맞추며 알아듣는 척했다.

수혁이 두 명, 그리고 나머지 둘이 각각 한 명씩 데리고 계단으로 향했다.

불길이 날름거리며 그들을 덮쳤지만, 셋은 능숙하게 몸으로 막아 요구조자들을 보호했다.

‘담요도 필요하겠다.’

오래전에 만들어진 건물이라 그런가?

건물 구조 자체에 목재가 너무 많이 사용된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불길이 이렇게 심각하게 퍼져 있을 리가 없었다.

수혁은 온 신경을 주변에 쏟아부으며 조금의 위험도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수혁 혼자 뛰어 올라왔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건물 밖으로 나가는 문이 보였다.

구조대를 위한 길을 열기 위해 열심히 방수했는지, 입구 주변은 어느 정도 진압이 된 상태였다.

셋은 망설이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구급대와 구조대원들이 뛰쳐나와 요구조자들을 받아 들었다.

“양호 형님!”

자신이 데리고 나온 요구조자 두 명을 구급대에 인계한 수혁이 지양호를 불렀다.

그러자 지양호가 무슨 일이냐는 듯 쳐다봤다.

“들어갈 준비 해주세요!”

수혁의 말에 지양호가 당황했다.

“내가?”

“네, 부탁드립니다. 통역이 좀 필요할 것 같아요.”

지금까진 대충 눈치로 때려 맞추긴 했지만, 의사소통이 꼭 필요한 때가 올지도 모른다.

서로 대화가 통하지 못해 요구조자를 잃을 순 없지 않은가?

수혁의 부탁에 지양호가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려.”

지양호는 잠시 숨을 돌리고 있는 율리안에게 다가가 장비를 부탁했다.

그리고 율리안은 흔쾌히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도 수혁과의 의사소통이 필요하긴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수혁이 건물 안에 진입한 사이 요청한 지원들이 도착했기에, 지양호에게 지급할 장비는 충분했다.

“모여!”

율리안은 구조대원들을 집합시켰다.

수혁과 지양호까지 합치면 총 열네 명.

율리안은 서너 명씩 짝을 지어 팀을 만들었다.

그러곤 각 조가 수색해야 할 장소들을 정해주었다.

율리안과 같은 조가 된 수혁은 지양호가 장비 착용을 완료한 것을 확인하고는 자신 역시 몇 가지 장비를 더 챙기며 면체 마스크를 뒤집어썼다.

“들어가죠.”

수혁을 선두로 열네 명의 구조대원이 불타는 건물 안으로 진입했다.

율리안이 따로 말을 하지 않았지만, 구조대원들은 자신의 조와 함께 각자 정해진 수색 장소로 이동했다.

수혁은 그것이 시간 낭비임을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위로 올라가죠.”

수혁의 조가 맡은 곳은 5층.

총 일곱 명의 요구조자가 있는 곳이었다.

수혁이 가장 앞에 서서 계단을 올랐다.

4층까지는 수월했다.

불길이 넘실거렸지만, 방화복을 뚫고 해를 입힐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5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달랐다.

“이런…….”

율리안과 지양호가 계단 앞에 서서 얼굴을 찌푸렸다.

계단은 마치 폭탄이라도 맞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무너져 내린 천장과 벽의 잔해가 계단을 뒤덮고 있었고, 그 위로는 가까이 가기도 힘들 정도로 뜨거운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 폭발이 여기서 일어난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모습일 리가 없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다행이다.’

만약 폭발의 여파로 계단이 무너져 내렸다면, 그들로선 손쓸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어떻게 할까?”

지양호가 물었다.

본래대로라면 물러서는 게 맞다.

그 후에 화재를 진압하든, 다른 대원들을 더 데리고 와서 조금씩 길을 뚫든.

대책을 세운 후에 다시 와야 한다.

그럼에도 지양호가 수혁에게 물은 것은, 혹시나 수혁이라면 다른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지양호의 물음에 수혁은 잠시 고민을 했다.

사실 수혁에게 있어 이 정도 잔해를 헤치고 위로 올라가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실드’를 사용하면 될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요구조자들이다.

수혁이 쉽게 지나갈 수 있다고 해서, 그들도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열한 명이나 남아 있는 요구조자들을 데리고 이 건물을 빠져나가려면, 이 잔해들을 어떻게 해야만 했다.

“뚫죠.”

수혁의 말에 율리안과 지양호의 눈이 커졌다.

“여길 뚫자고? 어떻게?”

마치 캠프파이어라도 되는 것처럼, 무너져 내린 천장의 잔해는 활활 타오르며 계단 전체를 불태우고 있었다.

그런 곳을 물 한 방울 없이 어떻게 뚫는단 말인가?

의아해하는 둘을 향해 수혁이 손에 든 도끼를 들어 보였다.

“장작 좀 패면 될 것 같은데.”

***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엄마아.”

아버지의 자책과 아이의 울음소리.

둘은 화장실 문틈 사이로 보이는 시뻘건 불길에, 밖으로 나갈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조금만 참아. 분명 사람들이 구하러 올 거야.”

아버지는 겁에 질려 울고 있는 아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정작 자신도 두려움에 잔뜩 질린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을 그는 알지 못했다.

덕분에 어린 아들은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그저 계속해서 엄마를 찾아 울 뿐이었다.

아버지는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집 안에 소화기가 있어 더 큰일이 나기 전에 어떻게든 살아남을 순 있었지만, 그것도 이제 한계였다.

‘제발 빨리 와라.’

밖에서는 아까부터 사이렌 소리와 함께 물을 쏟아붓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그 말은 소방관들이 도착했다는 것.

아버지는 더 늦기 전에 소방관들이 자신들을 구하러 와주길 기도했다.

쿠르릉-

그때,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설마?’

뭔가가 무너지는 듯한 소음에 그는 몸을 흠칫 떨었다.

소방관들이 오는 소리였으면 좋겠지만, 아무리 들어도 건물이 무너지며 내는 소리 같았기 때문이었다.

‘지금이라도 뛰어내려야 할까?’

5층의 높이.

여기서 뛰어내린다면, 다치기야 하겠지만 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아들이었다.

자신은 그렇다 치고, 이제 고작 여덟 살밖에 되지 않은 아들에게 5층은 위험한 높이였다.

그는 화장실에 난 작은 창문으로 밖을 쳐다보았다.

밖은 분주했다.

소방관들이 쉴 새 없이 물을 쏴대고 있었고, 다른 곳에서 구조된 것처럼 보이는 이들이 구급차에 올라타는 것이 보였다.

바닥에 설치된 에어매트가 눈에 띄었다.

에어매트는 여기와는 조금 떨어진 곳에 설치되어 있었다.

그것을 본 아버지는 창문 밖으로 손을 흔들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여기요! 사람 있어요!”

“사람이다!”

그의 모습을 확인한 소방관들이 또다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매트를 그들이 있는 방향으로 옮기고, 이쪽을 향해 호스를 돌려 방수를 시작했다.

“구조대가 갔으니까, 뛰어내리지 말고 기다리고 계십시오!”

에어매트는 만에 하나를 위한 안전장치였다.

혹시나 두려움을 참지 못하고 몸을 던지는 사람들을 대비해 깐 것이지, 절대로 여기로 뛰어내리라고 깐 것이 아니었다.

소방관의 외침에 고민하고 있던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라면 모를까, 아무리 에어매트가 있다 한들 아들을 데리고 뛰어내리진 못할 것 같았다.

소방관들도 절대 뛰어내리지 말라고 이야기를 했고.

구조대가 왔다니 그것을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그사이 밖에서는 뭔가가 부서지고,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그리고 그것은 조금씩 크게 들렸다.

아들은 더욱 겁을 먹고 그의 품속에 파고들었다.

‘대, 대체 뭐야?’

소방관들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것으로 봐선 건물이 붕괴하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저 소리는 대체 뭐란 말인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누군가 도망을 치다 몸에 불이 붙어 굴러다니는 것은 아닐까?

소방관들이 미처 파악하지 못한 곳에서 건물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는 것은 아닐까?

소리가 계속될수록 두려움은 더욱 커져만 갔다.

아버지와 아들이 화장실 구석에 앉아 겁에 질린 표정으로 문을 직시했다.

그런데 잠시 후, 소리가 멈추었다.

잠시 귀를 기울여 봤지만, 이제 들려오는 소리는 없었다.

괜한 안도감에 한숨을 내쉬는데, 갑자기 콰앙-!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동시에…….

“구하러 왔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독일어가 아닌, 한국어였으니까.

하지만 알아듣지 못해도 상관없었다.

그 뜻은 충분히 알아듣고도 남았기 때문이었다.

이내 화장실 문이 벌컥- 하고 열리고,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던 구조대의 모습이 보였다.

“괜찮으십니까?”

뜨거운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녹아내린 헬멧.

본래의 색이 어땠는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검은 그을음이 가득한 방화복.

거친 숨소리와 들썩이는 어깨.

그 모습을 본 아버지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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