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135화
폭발음을 들은 수혁이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테러였다.
하지만 이내 수혁은 고개를 저었다.
테러가 발생한 정확한 장소와 시간은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확실히 올해는 아니었다.
적어도 수혁이 소방관이 되고 몇 년이 흐른 뒤에 일어난 일이었으니까.
‘그럼 가스 폭발?’
이건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다.
가스 폭발은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사고였으니까.
다만 충격파가 이렇게 강할 정도면, 그 폭발이 얼마나 거대할지 생각만 해도 끔찍할 정도였다.
술집 안에 있던 소방관들의 얼굴에서 취기가 사라졌다.
그러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밖으로 뛰쳐나갔다.
“어디야?”
“제길, 안 보여!”
건물들에 가로막혀 폭발이 일어난 곳이 어딘지 특정할 수가 없었다.
“이쪽이야!”
언제 저기까지 간 건지, 한참 떨어진 큰 도로까지 이동한 미하일이 한쪽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수혁은 순식간에 미하일의 옆에 서서 그곳을 확인했다.
“이런…….”
200m쯤 떨어진 곳에 있는, 5층 정도로 보이는 커다란 건물 한 채가 불에 타고 있었다.
어느 지점이라고 할 것 없이, 건물 전체에서 불길이 치솟아 오르고 있을 정도로 큰 화재였다.
“신고해!”
율리안이 그렇게 소리치고는 곧장 그쪽을 향해 달려갔다.
수혁은 잠시 고민을 하다, 결국에는 율리안의 뒤를 따랐다.
“같이 가, 이놈아!”
뒤에서 지양호의 외침이 들려오자, 수혁은 살짝 속도를 늦추며 그와 나란히 달렸다.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
화재는 꽤 심각해 보였다.
지금 타오르고 있는 건물도 문제였지만, 건물 간 간격이 좁은 유럽식 건축 양식 덕분에, 언제 화재가 옆으로 옮겨 붙을지 알 수가 없었다.
고작 200m에 불과한 거리를 주파하는 데는 1분도 필요하지 않았다.
화재가 난 건물 앞에 선 수혁은 눈살을 찌푸렸다.
대체 불이 어떻게 시작된 것이기에, 그 짧은 시간에 이렇게 광범위하게 퍼진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수혁은 일단 건물 안에 요구조자가 있는지 파악을 하기 위해 ‘생명 감지Ⅱ’를 사용했다.
‘젠장!’
있었다.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었다.
‘열다섯 명이라고?’
그들은 4층과 5층, 그리고 옥상에 있었다.
‘아래쪽의 불길 때문에 피신하지 못한 모양인데.’
그게 아니라면 불길을 피해 위로 피신한 것이거나.
수혁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율리안에게 물었다.
“출동은 얼마나 걸릴까요?”
수혁의 말을 들은 지양호가 재빨리 통역을 해주었다.
“여기라면 앞으로 5분 내.”
“5분……. 확실해요?”
수혁이 되물었다.
조금 전 여기까지 오기 위해 율리안의 차를 탔을 때, 길이 막혔던 것을 떠올린 것이다.
“충분하다.”
하지만 율리안은 자신 있는 표정이었다.
길이 아무리 막히고 복잡하더라도, 성숙한 독일의 시민들은 소방차와 구급차의 앞길을 막지 않았으니까.
율리안이 말한 5분도 최대한 길게 잡은 것이었다.
‘우리나라였으면…….’
5분은커녕 10분 안에 도착하기도 힘들 것이다.
근래 들어 조금씩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는 했지만, 아직 독일과 비교하긴 힘들었다.
“일단 준비하고 있죠.”
수혁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겉옷을 벗었다.
“잠…….”
율리안은 그런 수혁을 말리려다 멈칫- 했다.
사실 수혁이 나설 이유는 없었다.
이곳은 독일이었고, 수혁은 그저 교육 훈련 연수를 받기 위해 초청을 받고 방문한 한국인이었다.
아무리 뛰어난 소방관이라고는 하지만, 독일에도 소방관은 많았다.
굳이 수혁이 나서지 않아도 자신들만으로 충분히 해결이 가능했다.
하지만 율리안은 그런 수혁을 말리지 않았다.
그도 직접 보고 싶었다.
훈련이나 경기가 아닌, 진짜 현장에서 수혁이 사람들을 구하는 모습을 말이다.
그래서 율리안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수혁의 옆에서 자신도 겉옷을 벗었다.
그사이 뒤늦게 출발한 소방관들이 도착했다.
“이거 꽤 심각한……. 응? 쟤 뭐 합니까?”
화재 현장을 보며 표정을 굳히던 신의성이 수혁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직접 들어갈 생각인 모양이다.”
“……왜요?”
이 자리에 있는 독일 소방관의 숫자만 일곱 명이다.
이제 조금 있으면 도착할 이들까지 합하면 거의 20명에 가까웠다.
그 정도 숫자면 충분했다.
독일 측에서 도움을 요청하면 모를까, 왜 굳이 나선단 말인가?
“들어가고 싶은가 보지.”
지양호는 한 발 떨어져 수혁을 지켜보기만 하고 있었다.
“음…….”
신의성은 지양호가 아무런 말도 없이 수혁을 가만두자, 자신도 한발 뒤로 물러섰다.
예전에 이야기했지만, 그들도 수혁이 현장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대장, 우리도 준비할까?”
미하일이 율리안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이곳이 그들의 관할서의 지역이긴 했지만, 지금은 그들의 근무 시간이 아니었다.
“준비해.”
하지만 율리안은 미하일에게 준비하라고 명령했다.
근무 시간이고 뭐고, 눈앞에 불이 났는데 그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미하일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뒤쪽을 향해 신호를 주었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 술을 마시며 즐겁게 웃고 떠들던 소방관들이 순식간에 결연한 표정으로 돌변했다.
수혁과 율리안, 그리고 다른 소방관들이 몸을 풀며 준비를 마칠 때쯤, 마침내 펌프차와 구조차들이 속속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화재 현장을 보며 장비를 착용하다, 율리안을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혹시 남는 장비들이 있나? 좀 빌리고 싶은데.”
“아, 아, 예!”
율리안의 말을 들은 대원이 잠시 당황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수혁!”
율리안이 수혁을 부르더니, 장비 한 세트를 내주었다.
율리안에게 장비를 빌려준 대원의 눈이 커졌다.
“저 사람이 누군데…….”
동양인.
함부르크는 관광지로 유명하기도 해서 동양인을 보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이런 상황은 낯설었다.
“소방관이네.”
율리안은 그 한 마디로 대원의 질문을 막고는 자신도 준비하기 시작했다.
‘대단하네.’
그런 모습을 보며 수혁은 감탄했다.
한국이었다면 어림도 없을 일이었다.
엄연한 각 팀 간의 지휘체계가 잡혀 있는 상황에, 이렇게 쉽게 자신들이 끼어들 수 있다는 것이 말이다.
율리안이 대단한 건지, 아니면 융통성 있게 상황을 대처하는 대원이 대단한 건지.
수혁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장비를 모두 착용했다.
한국에서 사용하던 것들과는 조금 다르긴 했지만, 지난 5주간 교육 훈련을 받으며 익숙해졌기에 빠른 준비가 가능했다.
“그리고 지원도 부르게. 아무래도 조금 힘든 밤이 될 것 같으니. 아, 지원을 부르면서 우리 애들 장비도 좀 챙겨오라고도 말해주고.”
아쉽게도 여분의 장비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 장비를 착용한 사람은 수혁, 율리안, 미하일이 전부였다.
“알겠습니다.”
지휘권이 자연스럽게 율리안에게 옮겨왔다.
서로 다른 팀이긴 했지만, 율리안의 계급과 명성이 그걸 가능케 했다.
“길이 열리면, 일차적으로 우리 셋이 먼저 돌입한다. 나머지는 대기하다, 어느 정도 화재 진압이 되면 그때 들어오도록.”
불길은 심각했다.
아무리 방화복을 입고 있다 하더라도, 저런 불길 속에서는 견디기 힘들 것이 뻔했다.
때문에 율리안은 다른 구조대원들에게 대기를 지시했다.
“방수 시작해!”
율리안의 명령과 함께 펌프차와 연결된 호스에서 물줄기가 뻗어 나왔다.
쏴아아아-!
그들은 건물 입구를 향해 집중적으로 방수를 했다.
몇 분가량의 시간이 흐르자, 마치 지옥문과도 같았던 불길이 조금씩 잦아지며 틈이 보이기 시작했다.
“돌… 입?”
그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던 율리안이 명령하려던 순간, 수혁이 먼저 앞으로 튀어나갔다.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도저히 장비를 매고 있는 사람의 움직임이라고는 믿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율리안과 미하일이 뒤늦게 그런 수혁의 뒤를 따라 불길 속으로 몸을 던졌다.
“후욱- 후욱-!”
안쪽의 상황은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
사방이 불길로 잠식되어 있었고, 열기는 400도를 훨씬 웃도는 것 같았다.
그 빡센 훈련 속에서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던 수혁이, 땀을 비 오듯 흘릴 정도로 말이다.
“같이 움직인다.”
율리안은 안의 상황을 보고는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셋이 같이 움직이며 수색해야겠다고 판단했다.
따로 움직이기엔 너무 위험해 보였던 것이다.
율리안이 1층부터 수색을 하기 위해 움직이려는데, 수혁이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위로 올라가죠.”
“뭐라고?”
하지만 율리안은 수혁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곳에는 수혁의 말을 통역해 줄 사람이 없었으니까.
그것을 뒤늦게 깨달은 수혁이 미간을 찌푸리며 손가락을 펴 위를 가리켰다.
“위로 올라가자고요. 업, 업.”
율리안은 수혁의 말뜻을 이해하고는 고개를 저었다.
확실히 1층에는 요구조자가 있을 확률이 적었다.
1층은 가장 대피하기 쉬운 장소였으니까.
하지만 만약에 한 명이라도 있다면?
가능성이 0이 아닌 이상, 수색은 해야만 했다.
“음…….”
갑자기 신일서가 그리워졌다.
그곳의 동료들이라면, 수혁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는 이해하지 못해도 따라주었을 테니까.
수혁은 회귀 초반의 기억을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에 노 바디. 아무도 없어요.”
수혁은 엉터리 영어를 섞어가며 율리안과 미하일을 설득하다, 답답했는지 가슴을 치며 몸을 돌렸다.
“아, 따라오던가, 말던가. 팔로우!”
그러곤 계단을 향해 뛰었다.
“잠깐!”
율리안은 그런 수혁을 붙잡으려고 했지만, 한발 늦었다.
수혁은 이미 계단 위로 뛰어오르고 있었다.
율리안과 미하일은 서로를 쳐다보다 헛웃음을 내뱉었다.
도저히 수혁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수혁 혼자 가도록 내버려 둘 순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위에서부터 수색 시작한다.”
그렇게 말한 율리안이 수혁의 뒤를 따라 계단을 올랐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자신이 수혁을 잘못 판단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구조는 팀워크다.’
수혁이 아무리 대단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런 행동은 옳지 못하다.
이번 일이 끝나면 수혁에게 한마디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선배로서, 교육 훈련의 교관으로서.
다시는 수혁이 이런 행동을 할 수 없게 말이다.
반면 수혁은 그딴 뒷일은 생각하지 않고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젠장, 소화전이 없어.’
오래된 건물이라 그런지, 소화전이 보이지가 않았다.
아니면 단순히 수혁이 찾지 못하는 것이거나.
다행히 스프링클러는 정상 작동해서 계속 물을 뿜어대고 있었지만, 그 정도로 이 불길을 잡기엔 역부족이었다.
방화복 안쪽에 있는 피부가 익어가는 것 같았다.
피부에 방화복이 스칠 때마다 쓰라린 통증이 올라왔다.
화상에 어느 정도 면역이 있는 수혁이 이 정도였으니, 다른 두 사람은 어떨지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앞을 막고 있는 불길을 헤치며 계단을 올라가던 수혁이 다리를 멈춘 곳은 4층이었다.
‘여기엔 네 명.’
요구조자가 있었다.
‘생명 감지Ⅱ’와 ‘미니 맵’을 동시에 활성화시킨 수혁은 순식간에 요구조자들의 위치를 파악했다.
‘저쪽이다!’
역시나 불길을 피해 안쪽으로 깊숙이 숨어 들어간 상태였다.
“기다려!”
율리안이 움직이려던 수혁을 불렀다.
“같이 움직인다.”
수혁이 멈춰서 뒤를 돌아보자 율리안이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수혁은 둘이 도착하길 기다리다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쪽에 요구조자 있으니까, 따라오세요.”
수혁이 앞장섰고, 둘은 영문도 모른 채 그 뒤를 따랐다.
옥상까지 단번에 올라갈 것 같았던 수혁이 왜 4층에서 멈췄는지, 그리고 대체 무슨 이유로 저렇게 확신에 가득 찬 모습인지.
그런 둘의 궁금증은 몇 분 지나지 않아 해결되었다.
다른 곳은 모두 무시하고 걸어가던 수혁이 멈춘 곳의 문을 열자, 네 명의 요구조자가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