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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131화 (131/425)

레스큐 시스템 131화

‘그게 또라이라고 부를 정도인가?’

수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양호의 말대로 확실히 그건 또라이라고 불려도 할 말이 없는 행동이었다.

심지어 그때는 회귀 직전이었는지라, 지금처럼 엄청난 신체 능력을 지니고 있지도 않았다.

조금이라도 운이 나빴다면, 수혁은 그때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괜히 가슴이 서늘해졌다.

“내가 또라이라고 그래서 삐쳤냐?”

“아, 아니요, 그냥 그때가 떠올라서.”

“네가 생각해도 터무니없는 짓을 하긴 했지?”

“그러네요.”

그때는 그 방법밖에 없긴 했지만, 그것이 미친 짓이었다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수혁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자 지양호가 피식- 웃었다.

“그렇다고 너무 마음에 담아두진 말고. 내 듣자 하니까 그렇게 안 했으면 너랑 요구조자 모두 폭발에 휩싸여서 죽었을 거라던데. 잘한 거다.”

“고맙습니다.”

당시 수혁은 이리저리 까이기만 했다.

그나마 박상태가 자신의 편을 조금 들어주긴 했지만, 수혁은 신일서 구조 3팀에서 애물단지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았었다.

‘이런 말을 듣고 싶었는데.’

미친 짓을 한 것도 알고, 또라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다는 것도 알지만, 사실 수혁은 이런 칭찬을 받고 싶었다.

괜히 머쓱해진 수혁은 헛기침하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창밖으로 이제 조금은 익숙해진 함부르크의 풍경이 스쳐 지나갔다.

레펠 훈련이 시작됐다.

수혁은 레펠 타워를 보며 옛 생각이 떠올랐다.

‘누구였더라?’

지금은 이름도 잘 생각이 나지 않는 소방 학교의 교관.

그는 첫 레펠 훈련에서 시범을 보인 교관이었다.

아래에서 시범을 지켜보고 있는데, 그 교관이 로프에 매달린 채 발로 타워 외벽을 발로 한 번 차 붕- 떴다가 다시 돌아오면서 말했다.

“우리의 활동은 신뢰를 기본으로 한다.”

작은 음성이었지만, 그것은 수혁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그는 자신이 이렇게 줄에 매달려 너희에게 이야기하고, 시범을 보이는 것도 이 로프가 안전하다는 것을 신뢰하고, 다른 동료들을 신뢰하기 때문이라고 했었다.

그러면서 화재 현장에서도 서로를 신뢰하라는 말을 끝으로, 시범을 마쳤다.

수혁은 그때 그 교관이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교관이 말한 ‘신뢰’라는 단어를 항상 마음에 품고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물론, 나중에는 너무 바빠 그 교관의 이름도, 그때의 다짐도 잊고 살았지만…….

레펠 타워를 보니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오늘은 어제 고지했다시피, 레펠 교육 훈련을 실시할 예정입니다.”

율리안이 앞으로 나서며 말을 했다.

사실 교육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았다.

이곳에 있는 소방관들은 모두 레펠 정도는 능숙하게 할 수 있는 이들뿐이었으니까.

당장 소방 학교 교관을 시켜도 잘해낼 사람이 대부분이었는데, 그들을 데리고 무슨 교육을 한단 말인가?

율리안 역시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소방 학교 커리큘럼에 포함되어 있기에 실시할 뿐, 정말로 교육을 한다는 건 아니었다.

“그냥 하면 재미가 없으니까, 오늘은 성적이 가장 좋은 조에게 소정의 상품을 드리겠습니다.”

율리안이 의도하고 있는 것은 바로 경쟁 심리였다.

경쟁을 통해 서로 자극을 받아 성장의 밑거름이 되길 원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의 의도대로 될지, 안 될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지난 일주일 동안을 생각해 보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한국, 독일 할 것 없이 모두 수혁의 사람 같지도 않은 모습에 잔뜩 자극을 받은 모습이었으니까.

“상품은 뭡니까?”

질문한 것은 김성태였다.

그는 승부욕을 활활 불태우는 눈빛으로 율리안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건 비밀입니다.”

율리안의 대답에 김성태가 살짝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상품인지 알아야 더 열심히 할 것 같은데…….”

“좋은 거라는 것만 알려 드리겠습니다.”

율리안이 웃으며 대답을 회피했다.

“그럼 조별로 모여서 훈련을 시작하겠습니다.”

훈련 방법은 간단했다.

최상층에서 두 명은 로프를 설치하고, 남은 두 명은 강하하는 것이었다.

로프 매듭을 짓는 순간부터 강하한 두 명의 발이 땅에 닿을 때까지 기록으로 성적을 매기기로 했다.

“상품이 아무리 탐난다고 해도, 절대 성급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

모두 능숙하게 레펠을 탈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이 절대 사고가 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었다.

순간의 방심, 성급함 등으로 인해 사고가 날 확률은 얼마든지 있었다.

예전에 자살자 구조 현장에서도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던가?

물론 그때는 진지한이라는 희대의 머저리 때문에 발생한 사고였지만, 베테랑인 김강식이 당황한 탓에 제대로 된 대처를 못 하기도 했었다.

그러니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았다.

훈련을 시작됐다.

레펠 준비를 하는 이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서렸다.

아무리 익숙하고 능숙하다고 해도, 10여 미터 상공에서 줄에 의지해 강하하는 것은 긴장되는 일이었다.

“강하!”

타탓-!

대원들이 외벽을 박차며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자세는 안정적이었고, 속도도 나쁘지 않았다.

그야말로 신속 정확이라는 말이 가장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강하한 둘은 동시에 바닥에 깔린 매트 위에 착지했다.

그러자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다른 이들이 훌륭하다는 듯 박수를 쳐주었다.

기록은 1분 23초.

나쁘지 않은 기록이었다.

당사자들도 만족했는지 미소를 지으며 서로 손뼉을 마주치고는 위에 있는 조원들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다음 조 준비하세요.”

율리안의 말에 대기하고 있던 조가 타워 위로 올라갔다.

“음, 이게 훈련하는 건지, 노는 건지 모르겠네.”

지양호가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일주일 동안 고생 좀 했잖아요. 오늘은 이렇게라도 풀어줄 생각인가 보죠.”

“네 말이 맞긴 한데…….”

지양호는 뭔가 찝찝한 표정이었다.

“이거 나랏돈으로 독일까지 와서 이러고 있으려니 양심에 걸리네.”

수혁의 말대로 지난 일주일간 빡세게 훈련했었다.

독일의 소방, 구조 훈련은 한국과 다른 점이 있어, 새로운 것을 많이 배우고 견문을 넓힌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큰돈을 들여 이 먼 곳까지 와서 배울 만한 가치가 있을까?

지양호는 그 물음에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솔직히 개인적으론 낭비라고 생각했지만, 다른 이들은 뭔가를 더 얻어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모르겠다, 모르겠어.”

지양호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편하게 생각하세요. 독일에서도 생각이 있으니까 이렇게 초청했을 거 아닙니까?”

한국이나 독일이나, 아무런 이득도 없이 이런 일을 계획했을 리가 없었다.

“그래, 내가 이런 걸 고민해서 뭐 하냐.”

둘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한 조가 끝이났다.

그리고 이번 순서에는 김성태의 조였다.

김성태는 의욕 가득한 표정으로 타워를 올라갔다.

“쟤는 실력은 좋은데 성격이 좀 이상해.”

지양호가 그런 김성태를 보며 중얼거렸다.

김성태는 지양호의 말대로 확실히 실력이 좋은 소방관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자신이 근무하는 서에서는 에이스로 통할 정도의 실력일 것이다.

하지만 성격이 너무 편협했다.

누군가 자신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데다, 자신이 위라는 확신이 들면 상대를 무시하기 일쑤였다.

때문에 일행에게 평판이 그리 좋지 못했다.

“사람만 잘 구하면 됐죠, 뭐.”

“저런 성격으로 퍽이나 잘 구하겠다. 팀워크나 해치지 않으면 다행이지.”

실력과 별개로, 구조팀 내에서는 그리 좋은 대우를 받지 못할 게 뻔했다.

자기 잘난 맛에 혼자 설치는 놈을 누가 좋아한단 말인가?

수혁조차도 한때는 팀에서 고립되었을 정도인데 말이다.

‘실력 있는 진지한 같은 놈인가?’

확실히 성격은 비슷한 것 같았다.

진지한 쪽이 조금 더 얼굴에 철판을 깔고 있다는 것만 빼면 말이다.

“저런 놈이 언젠간 사고를 친다.”

지양호는 확신에 가득 찬 음성으로 단언했다.

경험이 많은 그는 김성태와 같은 성격의 사람들을 많이 겪어봤던 것이다.

“다치려면 혼자 다치던가, 꼭 주변 동료나 요구조자들도 휘말리게 하지. 그러기 전에 잡아야 하는데…….”

문제는 저런 성격은 남의 조언을 듣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지양호가 고개를 들어 타워 위쪽을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김성태가 강하 준비를 하고 대기하고 있었다.

“강하!”

김성태는 순식간에 바닥에 착지했다.

동시에 강하를 시작한 독일인 조원보다도 빠른 속도였다.

“오!”

지금까지 중 가장 빠른 강하 속도에 사람들이 감탄했다.

“확실히 실력이 좋긴 해.”

지양호가 인정했다.

피지컬도 나쁘지 않았고, 각종 기술에 능숙했다.

성격만 조금 고친다면 좋은 소방관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제가 사람 한번 만들어볼까요?”

수혁이 웃으며 말하자, 지양호가 솔깃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방법 있겠냐?”

“그건 좀 생각해 봐야죠.”

수혁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레펠 훈련 성적의 탑은 아쉽게도 수혁의 조가 차지하지 못했다.

수혁은 그 누구보다 빠르게 강하를 했지만, 다른 조원들의 실력이 그것을 뒷받침해 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상품을 받게 된 것은 김성태의 조였다.

율리안이 준비한 상품은 레스토랑 식사권이었다.

꽤 비싼 곳이었는지, 독일 소방관들이 놀란 표정을 지을 정도였다.

김성태는 한쪽 입꼬리만 올리는 미소를 지으며 수혁을 쳐다봤다.

자신이 이겼다는 것을 자랑이라도 하고 싶은 것 같았다.

물론 수혁은 그런 김성태를 무시했지만 말이다.

“저놈은 지치지도 않네.”

지양호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분명 인천 공항에서 그렇게 경고했음에도, 김성태는 계속해서 수혁에게 적개심을 표현했다.

“쟤는 그렇다 치고, 독일 애들도 요즘 너를 보는 시선이 심상치가 않다.”

김성태처럼 적의가 깃든 눈빛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호승심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그동안 수혁이 워낙 뛰어난 모습을 보여준 덕분에, 어떻게 해서든 이겨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서로 자극받아서 성장하면 좋은 거죠.”

아직 훈련 일정은 7주나 남아 있었다.

그동안 그들은 수혁을 이기기 위해 노력을 할 것이고, 그만큼 실력이 늘어날 것이다.

“전에 크라우프가 한 말이 이런 거였나?”

“그럴지도요.”

확실하진 않았다.

이것 말고도 다른 것을 바라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다.

“나중에 알게 되겠죠. 시간은 아직 많으니까.”

수혁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이봐, 수혁!”

그때 누군가 수혁을 불렀다.

고개를 돌리자 미하일이라는 이름의 독일 소방관이었다.

“무슨 일입니까?”

수혁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지금까지 개인적으로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수혁의 표정을 본 미하일이 웃으며 대답했다.

“혹시 축구 좀 할 줄 아나?”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축구라…….’

수혁은 자신이 축구를 언제 해봤는지 떠올려 봤다.

‘군대였나? 아니, 체육대회 때도 했구나.’

사실 축구를 그리 잘하지 못했기에, 별다른 추억도 없었다.

“잘하지는 못하는데.”

수혁이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하자, 미하일이 반색했다.

“어쨌든 할 줄은 안다는 거지?”

그러면서 말을 이었다.

“이번 주말에 축구 한판 어때? 독일 대 한국. 괜찮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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