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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127화 (127/425)

레스큐 시스템 127화

“함부르크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율리안이 한 말은 아니었다.

‘반갑습니다’ 정도가 율리안이 할 수 있는 한국말의 전부였는지, 따로 통역을 대동하고 있었다.

지양호가 나서서 율리안의 인사를 받았다.

“오랜 시간 비행하느라 힘드셨을 텐데, 일단은 숙소로 이동하시죠.”

다행히 독일에선 한국처럼 사진을 찍는 등의 행사 따위는 준비하지 않았다.

가뜩이나 오랫동안 비행기 안에 처박혀 있어 힘들었는데, 그런 자신들을 배려해 주는 것 같았다.

“역시 독일이 좋긴 좋아?”

지양호도 그것이 마음에 들었는지 얼굴에 웃음기가 가득했다.

확실히 인천공항에서 스트레스를 받은 것 같았다.

일행은 독일 측에서 준비한 커다란 버스를 타고는 어딘가로 이동을 시작했다.

“와…….”

창밖으로 보이는 이국적인 풍경에 수혁이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태국하고는 전혀 다른 풍경.

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건물들과 거리가 수혁의 눈을 붙잡았다.

‘은송 씨랑 결혼하면 신혼여행은 유럽으로 올까?’

괜히 그런 희망도 가져 봤다.

물론 이루기는 어려운 것이지만 말이다.

돈은 둘째치고, 유럽 여행을 할 정도로 긴 휴가를 얻지 못할 테니까.

그래도 수혁은 꿈이라도 꾸는 게 어디냐며 창밖을 구경하는데 정신을 쏟았다.

“인마, 조용히 좀 봐라. 쪽팔리게.”

옆자리에 앉은 지양호가 혀를 차며 핀잔을 주었다.

지금 수혁의 모습은 영락없이 서울에 갓 상경한 촌놈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수혁은 괜히 머쓱해져 자세를 바로 하고는 고개만 돌려 풍경을 감상했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고 난 후, 드디어 버스가 멈추었다.

“내리시죠.”

앞자리에 타고 있던 율리안이 가장 먼저 버스에서 내리자, 일행도 그 뒤를 따랐다.

“음…….”

“여기가 우리 숙소라고?”

사람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분명 떠나기 전에 듣기로는, 자신들의 숙소가 소방 학교의 기숙사라고 했었다.

그래서 딱히 기대하진 않았다.

아무리 독일이라 하지만, 소방 학교 기숙사가 그리 좋을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 보니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호텔? 우리가 호텔에서 묵습니까?”

지양호 역시 놀란 듯, 눈을 끔뻑이며 물었다.

“일정에 변경이 좀 생겼습니다. 위쪽에서 생각보다 더 많은 지원을 해줘서……. 마음에 안 드십니까? 그러면 다시 기숙사로 옮겨 드릴 수 있습니다만.”

“아니,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율리안이 웃으며 말하자, 지양호가 당황하며 손을 내저었다.

“이런 곳에서 지내도 되나 싶어서.”

“괜찮습니다. 먼 곳에서 오셨는데 이 정도 편의는 봐드려야죠.”

“이거 감사합니다.”

지양호가 율리안을 향해 감사 인사를 건넸다.

“일단 들어가시죠. 호텔 측에도 미리 이야기를 해두었으니.”

호텔 로비로 들어서니, 율리안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사람들이 나와 일행을 반겨주었다.

그들은 일행의 짐을 대신 받아 들고는 각자의 방으로 안내를 시작했다.

아무리 지원이 많이 내려왔다고는 하지만, 모두에게 방 하나씩을 내려주기는 힘들었는지 대부분 트윈베드였다.

지양호와 수혁만 제외하고.

율리안은 직접 그 두 명을 방으로 안내했다.

“두 분께서 쓰실 방은 여기와 이 옆방입니다.”

“……네?”

다른 일행은 두 명이 하나의 방을 썼다.

그래서 당연히 자신들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는데.

“한 분은 일행의 책임자시니 당연히 좋은 방을 내드려야죠. 수혁 씨는 뭐…….”

율리안은 왜 수혁에게 1인실을 배정했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어? 그런데 이렇게 나누면 한 명이 남는데.”

연수 인원은 총 35명.

지양호와 수혁이 방을 하나씩 쓴다고 치면 서른세 명이 남는다.

“아, 그래서 방 하나는 조금 더 큰 것으로 골랐습니다. 세 분이 지내기에 불편하지 않도록.”

율리안의 말을 들은 수혁은 살짝 불편해졌다.

지양호야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은 이런 특별한 취급을 받을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막내이지 않은가?

막내가 혼자 1인실을 배정받았다는 것이 알려지면, 그리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많을 것이다.

수혁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이미 정해진 것을 바꿀 수는 없었기에, 수혁은 자신의 방문을 열었다.

“그럼 저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일단은 조금 쉬시고, 저녁 식사 시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율리안은 수혁과 지양호에게 눈짓으로 인사를 하고는 그대로 돌아가 버렸다.

문을 연 채로 그에게 인사한 수혁이 방으로 들어갔다.

수혁의 방은 평범한 스탠다드 룸이었다.

하지만 꽤나 오래된 호텔인지, 고풍스러운 느낌이 마음에 들었다.

“내가 독일 호텔에서 자는 날이 올 줄은 생각도 못 해봤네.”

수혁은 짐을 풀며 방 안을 구경했다.

“이런 델 은송 씨랑 왔어야 하는데.”

서른 명이 넘는 시커먼 남자들이랑 일하러 오다니.

괜히 서러운 느낌마저 들었다.

최은송이 챙겨준 옷가지와 짐들을 대충 풀어서 정리한 수혁이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수혁에게도 장시간의 비행은 힘들었다.

그 좁은 곳에 열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갇혀 있으려니, 좀이 쑤셔 견딜 수가 없었다.

침대에 누워 기지개를 한 번 쭉 편 수혁은 스마트폰을 꺼냈다.

“보자, 와이파이가…….”

호텔 객실이라 그런지, 와이파이는 쉽게 잡혔다.

현재 이곳의 시간은 오후 3시.

“시차가 일곱 시간이라고 했으니까, 10시쯤인가?”

수혁은 한국과의 시차를 계산한 뒤, 바로 최은송에게 연락했다.

당연히 전화가 아닌 톡이었지만, 둘은 한참 동안이나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다 한순간 기절을 하듯 잠이 들었다.

몇 시간 뒤 지양호가 저녁 먹으러 가자며 깨우지 않았더라면, 다음날 아침까지 잠들어 있을 뻔했다.

“저녁은 어디서 먹는지 들었어요?”

“글쎄다. 이름은 들었는데, 당최 뭐 하는 집인지 알 수가 있어야지.”

지양호는 자신 역시 모른다며 고개를 저었다.

일행이 모두 로비에 모이자, 타이밍 좋게 율리안이 호텔로 들어섰다.

“아, 벌써 다 모이셨군요.”

손목에 찬 시계를 확인한 율리안이 걸음을 멈추고는 몸을 돌렸다.

“그럼 식사하러 가시죠. 제가 맛있는 곳으로 예약해 두었습니다.”

율리안은 일행을 데리고 식당으로 향했다.

예약해 두었다더니, 이미 음식들이 세팅이 되어 있었다.

이름도 모를 독일의 음식들을 본 수혁의 눈이 커졌다.

“많기도 하다.”

서른 명이 넘는 대인원이라 그런지, 음식은 말 그대로 산처럼 쌓여 있었다.

“오늘까진 정식 일정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그냥 편하게 식사하시면 됩니다.”

율리안은 일행에게 부담 주지 않으려 최대한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덕분에 사람들은 마음 편히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독일의 유명한 음식인 슈바인 학센이나 슈니첼, 커리 부어스트 등등.

익숙하면서도 낯선 독일 음식에 수혁은 정신 차리지 못하고 흡입했다.

“천천히 먹지.”

그때 율리안이 수혁에게 말을 걸었다.

통역이 없어 알아듣지 못한 수혁이 눈을 끔뻑이자 율리안이 웃었다.

그러곤 손을 천천히 입에다 가져다 대는 시늉을 했다.

“아…….”

그 뜻을 알아차린 수혁이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오케이, 오케이. 땡큐.”

수혁은 대충 영어로 대꾸했다.

“여기 통역 좀 해주겠나?”

밥을 먹고 있던 통역사가 율리안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대회가 끝난 지 꽤 됐는데.”

“뭐, 그냥 사람 구하고 지냈죠.”

“하긴.”

율리안이 괜한 것을 물었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맥주나 한잔하지.”

율리안이 맥주잔을 들고 수혁에게 내밀었다.

수혁은 더 이상 생각하는 것을 관두고 일단은 식사를 즐기기로 했다.

챙-!

건배를 한 번 한 수혁이 맥주를 꿀꺽꿀꺽 들이켰다.

“크으으!”

입안을 가득 채우는 청량감에 수혁이 자신도 모르게 감탄을 했다.

“맥주는 독일이라더니, 괜한 말이 아니었네요.”

솔직히 맛있었다.

술맛을 잘 모르는 수혁이었음에도, 한국에서 마셨던 맥주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확실히 느낄 정도였다.

“앞으로 8주 동안 매일 마시게 될 걸세.”

율리안의 말에 앞으로 독일에서 그 긴 시간 동안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떠올리곤, 다시 기분이 다운되었다.

‘그러고 보니 이 양반 때문에 여기까지 온 거지.’

최은송을 집에 혼자 두고 독일에 오게 만든 원흉이 바로 율리안이었다.

“그런데 저를 직접 지목했다고 들었는데,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그리 복잡한 이유는 아니라네.”

율리안은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는 말을 이었다.

“그냥 너를 우리 애들한테 보여주고 싶었거든.”

“그게 무슨 말인지?”

“말 그대로일세. 내가 데리고 있는 녀석들을 포함해, 다른 동료들한테 너라는 존재를 한번 보여주고 싶었지.”

율리안이 설명해 주었지만,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니까 왜 나를 보여주는 거냐고, 이 양반아.’

수혁의 표정을 본 율리안이 크게 웃었다.

“내가 왜 그런지는 한번 경험해 보면 알게 될 테니, 너무 서두르지 않아도 돼.”

수혁은 뺨을 긁적였다.

그러니까 목적이 있긴 있다는 뜻인 것 같았다.

그게 뭔지는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말이다.

수혁은 더 이상 고민하는 것을 그만두고는 그냥 식사에 집중하기로 했다.

고개를 처박고 밥을 먹는 수혁을 보며 율리안이 슬쩍 미소를 지었다.

앞으로 8주 동안 수혁이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사뭇 기대가 되었다.

“교육 날이 기다려지는군.”

율리안은 왠지 오늘따라 맥주가 더 맛있게 느껴졌다.

다음날부터 공식 일정이 시작됐다.

환영 행사를 비롯한 브리핑 등의 따분한 행사가 두 시간가량 이어졌다.

“흐아암.”

어젯밤 과음한 지양호가 늘어지게 하품하며 눈물을 닦아냈다.

“이놈의 공무원들은 한국이나 독일이나 똑같구만. 조금 다른 줄 알았더니.”

지양호는 체질상 이런 행사가 맞지 않는 듯했다.

수혁 역시 지루하긴 마찬가지였기에 그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이제 밖으로 나가시죠.”

다음 일정은 그들이 교육을 받을 시설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썩은 동태눈깔 같던 수혁과 지양호의 눈빛이 살아났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과연 독일의 소방 교육은 어떻게 이뤄지는지 궁금해진 것이다.

밖으로 나온 일행은 안내자를 따라 우르르 자리를 이동했다.

“여기는 실화재 훈련장입니다.”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실화재 훈련장.

구체적인 상황을 가정해서 화재 진압 훈련을 하는 시설이었다.

그것을 본 화재 진압대원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확실히 한국과는 달랐다.

한국의 실화재 훈련장은 노래방이나 고시원, 주택 같은 환경을 조성하고 훈련을 한다.

하지만 이곳은 독일이다 보니, 한국과는 꽤 다른 환경들이 많았다.

일행은 이전 행사 때와는 달리 활기 가득한 표정으로 시설들을 확인했다.

“이곳은 테러 대응 전술 훈련장입니다.”

나날이 테러 위협이 증가하고 있는 유럽이라 그런지, 테러에 관련된 훈련장도 있었다.

그곳을 본 수혁이 잠시 멈칫했다.

‘테러, 테러라…….’

이전 생에서 수혁이 직접적으로 경험한 테러 현장은 없었다.

하지만 뉴스로는 유럽에서 일어난 테러에 대해 많은 소식을 접했었다.

그중에는 독일도 있었다.

하지만 수혁은 이내 그 생각을 접었다.

그가 기억하기론 독일에서 테러가 일어나는 것은, 확실히 지금보다 몇 년 후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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