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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122화 (122/425)

레스큐 시스템 122화.

수혁은 이동하는 구급차 안에서도 심폐 소생술을 멈추지 않았다.

옆에서 구급대원들이 뭔가를 묻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수혁은 그냥 무시해 버렸다.

쉬지 않고 심폐 소생술을 지속한다는 것은, 수혁에게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체력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적인 문제였다.

자신의 손에 생명이 달려 있다는 압박감.

지금까지 셀 수 없이 경험해 온 것이지만,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 긴장과 압박이 수혁을 짓눌렀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슬슬 병원에 도착할 때쯤 됐을 텐데.’

체감상 구급차에 탑승한 지도 벌써 5분 정도 흐른 느낌이었다.

분식집에서 기다린 시간까지 합하면 총 15분가량.

이 정도면 이제 슬슬 병원에 도착할 시간이었다.

“얼마나 남았습니까!”

“2분 남았습니다!”

수혁이 소리쳐 묻자, 운전하던 대원이 크게 대답했다.

‘아직도?’

수혁이 슬쩍 고개를 들어 앞을 쳐다봤다.

길은 막히지 않았고, 덕분에 구급차는 충분히 빠른 속도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오래 걸린다는 사실에 수혁이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물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려!”

“그, 그게…….”

구급대원의 음성에는 당황이 가득했다.

“뭡니까?”

뭔가 이상함을 느낀 수혁이 물었다.

“본래 가려던 병원에서 환자를 거절했습니다. 그래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가느라…….”

“하아.”

수혁은 구급대가 아니었기에 직접 경험을 해본 적은 없었지만, 이런 일이 가끔 발생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봤다.

병원 응급실에서 환자를 받지 않는 경우.

그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응급실에 자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럴 때는 막무가내로 환자를 데리고 갈 수도 없었기에, 이렇게 다른 병원으로 향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뺑뺑이를 돌다 사망하는 환자도 있다고 들었다.

“최대한 서둘러 주세요.”

이런 경우라면 구급대원들의 잘못이 아니었기에, 수혁은 화를 내는 대신 빨리 가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러곤 다시 심장 압박을 시작했다.

“교대해 드릴까요?”

옆에서 할머니의 찢어진 이마를 처치하고 있던 구급대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수혁이 그를 쳐다봤다.

이십대 중반 정도의 앳된 얼굴.

나이는 수혁과 비슷한 정도인 것 같았다.

“괜찮습니다.”

수혁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어려 보이는 외모와 처음 그가 보여준 어리바리한 모습이 왠지 믿음직스럽지 않았던 것이다.

차라리 조금 힘들더라도 자신이 계속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구급대원은 수혁의 거절에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때.

[위험 감지Ⅱ] 스킬이 발동됐다.

‘교통사고!’

움직이는 구급차에 갑자기 위험이 들이닥칠 이유로는 교통사고밖에 없었다.

고개를 번쩍 든 수혁이 앞을 향해 소리쳤다.

“핸들 꺾어!”

뜬금없는 수혁의 외침에 운전하던 대원이 화들짝 놀랐다.

하지만 갑자기 핸들을 꺾으란다고 그 말을 들을 운전사가 어디 있겠는가?

구급차는 본래 가던 경로를 이탈하지 않았고, 그것은 결국 사달을 일으키고 말았다.

“어, 어?”

끼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구급차가 휘청거렸다.

앞에서 달리던 차량이 급정거하는 바람에, 그것을 피하기 위해 급히 핸들을 꺾은 것이다.

“으아악!”

뒤에 타고 있던 젊은 구급대원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수혁은 그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그 어떤 때보다도 냉정했다.

휘청거리던 구급차가 이내 한쪽으로 급격히 쏠리는 것이 느껴졌다.

‘피할 곳은 없다.’

밀폐된 구급차 내부는 온통 붉은색이었다.

그 말은 어느 곳도 안전하지 않다는 뜻이었다.

수혁은 곧장 심폐 소생술을 하던 손을 떼고, 할머니를 감싸 안았다.

그러곤 속으로 소리쳤다.

‘실드!’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한 막이 수혁을 둘러쌌다.

그 범위는 넓지 않아 할머니의 몸까지 모두 커버할 수는 없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애초에 ‘실드’는 수혁만을 보호하는 스킬이었으니까.

그사이 중심을 잃은 구급차는 순식간에 뒤집히기 시작했다.

구비되어 있던 의약품과 장비들이 나뒹굴기 시작했고, 수혁과 구급대원 역시 허공에 떠올랐다.

수혁은 온몸으로 할머니를 보호하며 최대한 몸을 웅크렸다.

콰가가가각-!

동시에 옆으로 쓰러진 구급차가 도로 위를 나뒹굴었다.

그 충격에 구급차 내부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아아아악!”

구급대원들이 비명을 질렀다.

수혁은 그것을 들었지만, 안타깝게도 도울 방법이 전무했다.

지금은 할머니를 보호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그저 제발 크게 다치지는 말아달라며 비는 수밖에.

고작 10초 남짓한 시간.

눈 몇 번 깜빡이면 지날 정도면 흐를 정도로 짧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구급차 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그보다 몇 배는 길게 느껴졌다.

옆으로 쓰러져 도로 위를 미끄러지던 구급차가 이내 멈춰 섰다.

“으으으으.”

고통에 찬 신음 소리가 들렸다.

웅크린 채 할머니를 안고 있던 수혁이 재빨리 몸을 일으키며, 할머니의 상태를 살폈다.

지혈되어 있던 이마의 상처에서 다시 출혈이 일어난 것을 제외하면, 크게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수혁이 사용한 ‘실드’의 덕분이었다.

만약 ‘실드’가 없었다면, 아무리 수혁이 몸으로 보호를 했다고 하더라도, 결코 이 정도로 끝나진 않았을 것이다.

수혁은 할머니를 다시 안고는 구급차 문을 박차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그러곤 똑바로 뉘인 뒤, 다시 심폐 소생술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고개를 들어 구급차 안을 살펴보았다.

신음 소리가 들렸으니, 다행히 죽진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여기서는 부상 정도가 얼마나 되는지 확인을 할 수가 없었다.

“괜찮습니까!”

심폐 소생술을 멈출 수는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크게 물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파, 팔이…….”

들려오는 대답에는 고통이 가득했다.

젊은 구급대원이 몸을 일으키는 것을 본 수혁의 얼굴이 굳어졌다.

‘부러졌다.’

단순 골절이 아니었다.

팔은 꺾이지 말아야 할 방향으로 꺾여 있었고, 부러진 뼈가 살을 찢고 밖으로 튀어나온 상태였다.

‘출혈도 심한 것 같고.’

몸을 덜덜 떠는 것으로 봐선 쇼크도 온 것 같았다.

‘다른 한 명은?’

운전하던 대원은 수혁의 외침에도 반응이 없었다.

아무래도 정신을 잃은 것 같았다.

그렇게 판단한 수혁은 곧바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고가 난 탓에 주위의 차들은 모두 멈춰 있는 상태였다.

“119 신고 좀 해주세요! 심정지 환자 있으니까 서둘러 달라는 얘기도!”

놀란 기색으로 차 밖에 나온 사람 중 한 명을 향해 소리치자, 그는 잠시 당황하더니 곧 스마트폰을 들었다.

‘여기서 병원까지는 차로 2분 거리.’

사고가 나기 전, 운전하던 대원이 말한 대로라면 병원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어떻게 할까?’

자신은 움직일 수 없다.

그렇다고 팔이 부러진 구급대원을 이대로 가만히 둘 수는 없었다.

고작 팔이 부러진 것이라고 절대 얕볼 수 없다.

부러진 뼈가 피부를 뚫고 상온에 노출되는 개방성 골절이었기 때문이다.

개방성 골절은 제대로 된 응급처치를 하지 않으면 쇼크와 감염의 위험이 지극히 높아진다.

“정신 차려!”

수혁이 구급대원을 향해 소리쳤다.

머리를 부딪친 것인지, 아니면 튀어나온 뼈를 보고 패닉에 빠진 것인지.

구급대원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수혁이 재차 소리치자, 구급대원은 그제야 수혁을 쳐다봤다.

“팔 응급처치 해! 지금 당장!”

“하지만…….”

구급대원은 여전히 몽롱한 표정으로 우물쭈물했다.

“너 지금 처치 안 하면, 팔 잘라야 돼. 평생 한쪽 팔로 살고 싶어?”

겁이라도 줘서 정신 차리게 하기 위한 말이었지만, 아예 거짓말도 아니었다.

정말로 감염이 되면 팔을 절단해야 할수도 있었다.

그 말을 들은 구급대원이 움찔했다.

제정신이 아닌 와중에서도 평생을 한 팔로만 살아야 한다는 말에 겁을 먹은 것이다.

“배운 대로 처치해. 서둘러!”

구급대원 그제야 구급차 안을 주섬주섬 뒤지기 시작했다.

“신고해 주신 분?”

그 모습을 본 수혁은 고개를 돌려 방금 전 119에 신고를 한 남자를 쳐다보았다.

“……예?”

신고한 뒤 한 발자국 물러서 구경을 하듯 이쪽을 쳐다보고 있던 남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죄송하지만 저 친구 좀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직 제정신이 아닌 데다, 부상 입은 구급대원 혼자 하는 것보단, 누군가 옆에서 도와주는 것이 훨씬 빠를 것이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이고는 구급차로 달려갔다.

‘미치겠네.’

한시가 급한데 계속해서 일이 터지고 있었다.

일이 이 정도까지 되자, 아무리 수혁이라도 멘탈이 흔들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분식집에서 제세동기를 쓰는 건데.’

후회가 되었다.

제세동기를 사용하며 시간을 끄느니 빨리 병원으로 이송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는데, 그것이 악수였다.

‘지금이라도 써야 할까?’

수혁이 슬쩍 구급차 안을 쳐다보았다.

차 내부는 엉망이었다.

온갖 장비와 의약품, 처치기구들이 서로 섞인 채 뒹굴고 있었다.

수혁이 있는 위치에서는 제세동기가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구급대원을 도와주고 있는 남자에게 다시 부탁하려던 수혁이 고개를 홱- 하고 돌렸다.

“왔다.”

사이렌 소리가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수혁의 얼굴이 살짝 밝아졌다.

일단 구급차가 도착하면 제세동기를 이용하든, 빠르게 이송을 하든 결정할 수가 있었다.

구급차는 순식간에 현장에 도착했다.

이번에 온 대원들은 조금 전과 다르게 능숙하고 빠른 속도로 현장을 컨트롤하기 시작했다.

“심정지 환자입니까?”

박상태와 비슷한 나이 정도로 보이는 대원 한 명이 수혁에게 달려오며 물었다.

“의식, 맥박, 호흡 모두 없어 CPR을 시작했습니다. 이제 20분 정도 됐습니다.”

수혁의 말을 들은 대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땅에 내려놓았다.

“잠깐만 더 고생해 주세요.”

대원이 갖고 온 것은 제세동기였다.

그는 빠르게 준비를 끝내고는 수혁을 살짝 밀었다.

“잠시만요.”

수혁이 손을 떼고 할머니에게서 떨어졌다.

그러곤 구급대원을 도와 할머니의 상의를 벗기고는 패드를 받아 오른쪽 가슴위에 붙였다.

구급대원은 나머지 패드를 왼쪽 옆구리에 붙이고는 소리쳤다.

“떨어져!”

수혁이 두 팔을 들고 할머니에게서 한 걸음 물러섰다.

그러자 구급대원은 곧바로 제세동기를 작동시켰다.

할머니의 몸이 움찔- 떨렸다.

하지만 심장박동은 돌아오지 않았다.

구급대원은 다시 제세동기를 충전시키고는 작동시켰고, 수혁은 그동안 다시 심폐 소생술을 실행했다.

그렇게 네 번째 반복을 했을 때였다.

“그만!”

구급대원이 다시 심폐 소생술을 하려던 수혁의 어깨를 붙잡았다.

“돌아왔습니다.”

다행히 할머니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너무 늦은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뒷일은 이제 의사분들께 맡겨야죠.”

구급대원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다른 대원들과 함께 할머니를 구급차에 실었다.

그러곤 어느새 응급처치를 끝낸 젊은 구조대원과 정신을 잃은 대원도 구급차로 데리고 갔다.

“같이 병원으로 가시죠.”

“아, 저는 괜찮습니다.”

수혁이 고개를 저었다.

‘실드’덕분에 다친 곳이라곤 하나도 없었고, 분식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에게 돌아가 봐야 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멀쩡합니다.”

수혁이 웃으며 말을 하자, 구급대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김수혁 씨.”

역시 그도 수혁을 알고 있었다.

수혁은 멋쩍게 웃었다.

환자들을 태운 구급차가 떠나자 수혁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고작해야 20분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엄청난 심력을 낭비했다.

“……그런데 어떻게 돌아가지?”

주변을 돌아본 수혁이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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