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120화.
“3일 뒤요?”
수혁과 저녁 식사를 하고 있던 최은송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수혁이 특진 대상자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수혁이 직접 얘기해 주기도 했고, 박상태에게 듣기도 했다.
“와아, 축하해요!”
최은송은 손에 들고 있던 젓가락을 내려놓고는 박수 쳤다.
그 모습에 수혁이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
왠지 결혼한 아내가 남편의 승진을 축하해 주는 드라마 속의 한 장면이 떠올랐던 것이다.
“빨리 얘기해 주지. 이럴 줄 알았으면 오늘 저녁은 외식이라도 하는 건데.”
최은송이 식탁 위의 음식들을 보며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이게 어때서요?”
“이런 날에는 조금 더 맛있는 걸 먹는게…….”
최은송이 차려준 저녁은, 평범한 가정의 저녁 식사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 않았다.
하지만 수혁은 그래서 더 좋았다.
이렇게 집에서 그녀와 마주 앉아 저녁을 먹는다는 것 자체가 수혁에게는 더없이 행복한 일이었다.
“나는 외식보다 은송 씨가 해준 음식을 먹는 게 훨씬 더 좋아요.”
수혁의 진심이 느껴졌는지 최은송이 배시시- 하고 웃었다.
“그러면 다행이고요.”
그렇게 둘은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저녁 식사를 마쳤다.
“진급식은 소방서에서 열리는 거예요?”
식사를 마치고 거실의 소파에 앉아 TV를 보던 중에 문득 최은송이 물었다.
“아뇨, 수원에서 열린다네요.”
“수원이요?”
“네, 거기에 경기도 소방 재난 본부가 있거든요. 아마 거기에서 다른 특진자들과 같이할 거예요.”
“아하.”
최은송이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갑자기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런데 어떡하죠?”
“뭐가요?”
최은송이 울상을 지으며 말하자, 수혁이 고개를 갸웃했다.
“저도 수혁 씨가 진급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데……. 아무래도 그날은 좀 힘들 것 같아요.”
평소에도 바쁘긴 했지만, 하필 그날은 예약이 풀로 차 있는 날이었다.
시간을 내고 싶어도 도저히 낼 수가 없는 날이었던 것이다.
입술을 삐죽 내밀며 아쉬워하는 최은송의 모습에 수혁이 미소를 지었다.
“그건 저도 좀 아쉽네요.”
분명 진급식에는 진급 대상자들의 가족들도 많이 올 것이다.
한두 명이 진급하는 것도 아니었으니, 가족들의 수도 많을 터였고.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만 혼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 씁쓸해졌다.
그런 수혁의 얼굴을 본 최은송이 더욱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가족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수혁이었기에, 그런 자리에선 더욱 쓸쓸해할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미안해요.”
최은송이 수혁의 어깨에 이마를 기대며 사과했다.
“은송 씨가 미안할 게 뭐가 있어요?”
수혁은 오히려 최은송이 미안함을 느낀다는 사실이 미안했다.
“저라도 가서 축하해 줘야 하는데.”
“그냥 한 말이었어요. 저 진짜 괜찮아요. 하나도 안 아쉬워요.”
수혁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최은송이 오지 못한다는 것이 아쉬운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것이 섭섭하다는 뜻은 결코 아니었다.
최은송은 수혁의 말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여전히 미안한 기색은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최은송은 수혁의 품에 안겨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무엇을 떠올렸는지, 눈동자를 반짝였다.
3일이란 시간은 순식간에 흘렀다.
그동안 스무 번에 가까운 구조 출동을 나갔고, 그 현장에서 수혁이 구한 요구조자만 여덟 명이나 되었다.
쉽게 말해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는 뜻이었다.
“음…….”
수혁은 진급식이 열리는 경기도 소방 재난 본부 앞에 도착해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생각보다 작은데?’
처음으로 방문해 본 재난 본부의 건물은 생각보다 작았다.
사진으로 봤을 땐 컸는데 막상 도착해서 보니, 그냥 5층짜리의 평범한 소방서 건물이었다.
괜한 실망감에 입맛을 다신 수혁이 건물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평소에도 이런지, 아니면 진급식이 열려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안쪽은 꽤 많은 사람으로 북적였다.
수혁처럼 정복을 입고 있는 소방관들도 있었고, 평범한 옷차림의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가족들인가?’
손에 꽃다발을 들고 있는 이들은, 오늘 진급하는 소방관들의 가족인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을 본 수혁은 살짝 우울해졌다.
그러지 않으려고 단단히 마음을 먹고 왔지만, 이렇게 혼자 서 있으니 기분이 가라앉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수혁은 괜히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태연한 척 진급식이 열리는 행사장으로 향했다.
행사장도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작게 한숨을 내쉰 수혁은 행사장 앞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디에 앉지?’
행사장 안에는 수십 개의 의자가 놓여 있었다.
수혁은 진급 대상자였으니 앞 열에 앉아야 하겠지만, 정확히 어디에 앉아야 할지를 알 수가 없었다.
“저…….”
잠시 고민하던 수혁이 관계자로 보이는 한 명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예?”
주변을 정리하던 관계자는 수혁이 부르자 고개를 돌리며 무슨 일이냐는 듯 쳐다봤다.
“오늘 진급하는 사람인데, 어디에서 기다려야 합니까?”
“아, 잠시만요.”
질문을 받은 관계자는 수혁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말을 한 뒤, 하던 일을 마저 끝내고는 다시 수혁을 쳐다봤다.
그러곤 눈을 살짝 크게 떴다.
“어? 혹시 김수혁 씨 아닙니까?”
“아, 네, 맞습니다.”
그는 수혁을 알아보고는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오늘 온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이렇게 따로 볼 줄은 몰랐네요.”
수혁은 일반인들에게도 어느 정도 알려져 있긴 했지만, 소방관들에게 더 유명한 편이었기에 쉽게 알아본 것 같았다.
“그런데 무슨 일이십니까?”
수혁과 악수를 나눈 관계자는 자신을 왜 불렀는지 물었다.
“어디에 앉아야 할지를 몰라서요. 아무데나 앉으면 됩니까?”
“아, 자리라면…….”
잠시 생각을 하던 관계자는 수혁을 가장 앞 열의 정중앙에 있는 의자로 데리고 갔다.
“여기가 수혁 씨 자리입니다.”
“감사합니다.”
수혁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자, 관계자는 손을 내저으며 사양했다.
그러곤 시계를 확인하고는 말했다.
“아직 진급식까진 시간이 좀 남아 있는데, 여기서 기다리시려고요?”
행사 시작은 한 시간 뒤였다.
그전에 미리 리허설을 할 시간을 생각해도, 최소한 30분 정도의 여유시간은 있었다.
“딱히 할 일이 없어서요.”
수혁이 웃으며 대답하자 관계자는 그제야 수혁이 이곳에 혼자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마저 준비를 좀 하러…….”
“네, 감사합니다.”
관계자가 떠나자 수혁은 의자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수혁이 앉은 앞줄의 의자가 열 개인 걸로 봐선, 아마 오늘 진급을 하는 소방관은 총 열 명인 것 같았다.
그들의 가족과 행사에 참가할 관계자들까지 합하면 족히 수십 명.
‘또 외롭겠구만.’
그 많은 사람 속에 혼자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또다시 우울해졌다.
한숨을 내쉰 수혁은 시간을 때울 겸,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그렇게 하릴없이 인터넷 기사들을 훑어보고 있는데, 갑자기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처음에 수혁은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런데 점차 그 소리가 커지자,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이지?’
수혁은 스마트폰에서 시선을 거두곤 뒤쪽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문밖으로 보이는 광경은 딱히 특별해 보일 것이 없었다.
고개를 갸웃거린 수혁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손에 쥐고 있던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어?”
최은송이나 선배들일 것이라 생각하고 전화를 받으려는데, 액정에 뜬 번호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람의 것이었다.
수혁이 의아한 표정으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오빠! 지금 어디예요?]
“어, 시애야. 나 지금 수원인데…….”
전화를 건 사람은 바로 시애였다.
번호를 교환하긴 했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연락해 본 적이 없었기에 수혁은 살짝 당황하며 대답했다.
[수원에 있는 건 이미 알고 있고요. 저도 지금 수원이거든요?]
시애도 수원에 있다는 말에 수혁은 당연히 스케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틀렸다.
[저 지금 그 뭐냐, 소방 재난 뭐시기에 도착했어요.]
“뭐?”
수혁의 눈이 커졌다.
[오빠가 오늘 진급한다는데, 우리가 가만있을 순 없지! 그래서 축하하러 왔는데, 대체 어디 있는 거예요?]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러니까 저 밖에서 들리는 소란은 바로 시애 때문이라는 뜻이었다.
“잠깐 기다려.”
수혁은 전화를 끊고 행사장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문에 가까워질수록 웅성거리는 소리가 더욱 크게 들렸다.
밖으로 나가자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는 버블걸스 아이들이 보였다.
그녀들을 본 수혁의 미소가 짙어졌다.
“여기!”
수혁이 부르자, 시애가 가장 먼저 그를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었다.
“오빠!”
사람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수혁에게 집중되었다.
대체 네가 누군데 걸 그룹이 오빠라고 부르냐는 듯한 눈빛이었다.
수혁은 괜히 뿌듯해지는 것을 느끼며 반갑게 인사했다.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
수혁이 웃으며 묻자, 시애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은송 언니가 가르쳐 줬죠! 오늘 오빠 진급하는데, 언니가 바빠서 참석 못 하니까 우리보고 대신 축하해달라고 부탁했어요.”
최은송이 가르쳐 줬다는 말에 수혁이 머리를 긁적였다.
아무래도 축하해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 마음에 걸린 모양이었다.
‘이렇게까지 신경써 줄 것까지는 없었는데…….’
자신을 생각해주는 최은송의 마음이 너무도 고마웠다.
“너희 안 바빠? 스케줄 없어?”
“다행히 이번 주는 스케줄 없는 날! 만약에 진급 날이 다음 주였으면 못 올 뻔했어요.”
효진이 대답하자 시애가 격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거든? 다음 주에 했어도 왔을 거거든?”
“야, 다음 주 스케줄이 태국인데 어떻게 오냐?”
“비행기 타고 오면 되지!”
“너 바보지?”
셋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흐뭇한 미소 짓게 만들었다.
“아무튼 오빠, 정말 축하해요.”
시애가 손에 들고 있던 꽃다발을 수혁에게 건넸다.
진급이 아니라 무슨 영화제 시상식에서나 받을 법한 커다란 꽃다발이었다.
얼떨결에 그것을 받아 든 수혁이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보통 이런 건 행사 끝나고 주는 거 아니야?”
“어? 그래요?”
셋이 동시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이내 실실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뭐 아무 때나 주면 어때요. 예쁘면 그만이지.”
“그래, 고맙다.”
이 커다란 걸 들고 맨 앞줄 정중앙에 앉아 있어야 할 것을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렇게 축하하러 와줬으니까, 오늘 끝나면 맛있는 거 사줄 거죠? 은송 언니가 맛있는 거 얻어먹고 오랬어요.”
“뭐가 먹고 싶은데?”
“그냥 맛있는 거면 다 좋아요.”
잠시 생각하던 수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오늘 내가 크게 쏜다!”
“와아!”
셋이 손을 번쩍 들며 기뻐했다.
“리허설 시작하겠습니다. 금일 진급 대상자 분들은 안으로 들어와 주세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리허설 시간이 되었다.
“그럼 나는 먼저 들어가 볼게. 조금 이따 보자.”
“네, 오빠. 파이팅!”
뭘 파이팅해야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수혁은 알았다며 손을 흔들어주고는 행사장 안쪽으로 들어갔다.
회귀한 지 8개월.
소방관이 되어 신일서에 배치받은 것도 8개월.
그 짧은 시간에 수혁은 소방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