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119화.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선 수혁과 최은송은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는 차를 가만히 쳐다봤다.
부드러운 곡선이 눈에 띄는 SUV였다.
블랙의 고급스러운 디자인이었지만, 부담스러울 정도로 화려하진 않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이제 뛰어서 출근하지 않아도 되겠네요?”
조용히 차를 보던 최은송이 웃으며 말했다.
“나는 그냥 달려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
“이런 차를 주차장에 세워두기만 하는 것도 낭비잖아요.”
“그렇긴 하죠.”
차는 타라고 있는 것이지, 고이 모셔두라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용케 선물을 받았네요. 수혁 씨 성격이라면 거절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미 등록까지 끝내놨다니, 어쩔 수 없었어요.”
보통 이런 차를 뽑으려면 최소한 몇 개월은 기다려야 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대체 무슨 방법을 쓴 것인지 짐 머레이는 고작 며칠 만에 이런 걸 준비해 왔다.
수혁이 신경써야 할 부분도 모조리 처리한 상태로 말이다.
그런 걸 보면 짐 머레이는 수혁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대단한 위치에 있는 사람인 것 같았다.
“이왕 받은 거니까 잘 타고 다녀요.”
최은송이 웃으며 말하자, 수혁이 한숨을 내쉬었다.
짐 머레이는 그리 비싼 차가 아니라고 했지만, 수혁이 알아본 바에 의하면 1억을 호가하는 가격이었다.
평생을 뚜벅이로 지내다 이런 차를 타려니 부담스럽기 그지없었다.
“일단 당분간은 안 타고 다닐 생각이에요.”
“왜요?”
“면허증이 있긴 한데, 장롱면허라……. 괜히 이런 비싼 차 몰고 다니다가 사고라도 날까 무섭네요.”
수혁의 말에 최은송이 고개를 끄덕였다.
차가 망가지는 건 둘째치고, 수혁의 안전이 걸린 문제였기에 납득했다.
“확실히 운전 연습을 한 다음 타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최은송이 자신의 말에 동의하는 듯하자 수혁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운전 미숙은 그저 핑계였다.
지금 수혁의 신체 능력을 봤을 땐, 누가 고의적으로 들이받지 않는 이상 사고가 날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될 정도였으니까.
그럼에도 핑계 댄 것은 이 차를 끌고 출근했을 때 닥쳐올 후폭풍이 걱정되기 때문이었다.
구조 3팀은 물론이고 다른 대원들이나 심지어 서장까지 관심을 가질 게 분명했다.
수혁은 그들에게서 쏟아질 질문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그럼 오늘도 그냥 갈 거예요?”
최은송이 자신의 차를 흘깃- 쳐다보며 물었다.
자신이 데려다줄 수도 있다는 뜻이었지만, 수혁은 고개를 저었다.
“운동 삼아서 뛰어갈게요.”
가뜩이나 최은송은 서울까지 출근해야 하는데, 시간을 뺏을 필요는 없었다.
둘은 가볍게 키스하고는 각자 출근길에 올랐다.
집이 이사한 탓에 서에서 조금 멀어지긴 했지만, 수혁은 그편이 오히려 더 좋았다.
이른 아침임에도 벌써부터 더웠다.
수혁은 내리쬐는 햇빛을 맞으며 달리기 시작했다.
푹푹 찌는 날씨에 지칠 만도 했지만, 수혁은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가끔 지나치는 사람들이 이 더위 속에서 달려가는 수혁을 보며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후우…….”
그렇게 30분가량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리자, 어느새 서에 도착했다.
잠시 서서 숨을 고르는데, 박상태가 출근하는 것이 보였다.
“오셨어요?”
“그래, 넌 오늘도 뛰어왔냐?”
“뭐, 그렇죠.”
“웬만하면 차를 좀 사던지, 버스를 타던지 해라. 옆에서 보는 내가 더 덥다.”
차를 사라는 말에 수혁이 흠칫- 했다.
박상태는 별 뜻 없이 그냥 한 말이었지만, 괜히 제발이 저린 것이다.
박상태의 눈치를 슬쩍 살핀 수혁은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하며 같이 사무실로 들어갔다.
아직 다른 대원들은 아직 출근하지 않은 듯했다.
전 근무를 했던 2팀과 대충 인사를 나눈 수혁은 박상태와 함께 커피 한 잔을 하기 위해 자판기로 향했다.
“어제 그 사람이랑은 잘 만났냐?”
박상태가 밀크커피 한 잔을 뽑아 수혁에게 건네며 물었다.
“네. 은송 씨가 일하는 식당에 가서 저녁 먹었어요.”
“좋은 거 샀냐?”
“거기가 생각보다 더 고급스러운 곳이더라고요.”
“잘했네.”
자신들을 위해 큰 기부를 해준 사람이었다.
생각 같아선 서장더러 직접 나서서 표창이라도 주라고 얘기하고 싶을 정도였다.
“다행히 한식을 마음에 들어 하더라고요. 신기해하는 것도 같고.”
“여기는 한 번 안 오신대냐?”
대체 어떤 사람이 이렇게 통 크게 기부를 한 건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직접 그 장비들을 사용할 대원들은 물론이고, 서장까지.
“물어보긴 했는데, 잘 모르겠네요.”
“바쁘대?”
“한국에서 할 일이 좀 있나 보더라고요.”
그렇지 않아도 한 번 방문해 줄 수 있냐고 물어봤지만, 짐 머레이는 확답을 주지 않았었다.
“그럼 어쩔 수 없고.”
박상태가 어깨를 으쓱- 하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장비는 언제부터 사용 가능하대요?”
“며칠 걸릴 거 같다. 가격이 가격이니만큼, 뭐 처리할 게 많은가 보더라고.”
그런 행정적 처리 부분은 서장이 도맡아서 하고 있었으니, 정확한 건 알 수가 없었다.
“빨리 써봤으면 좋겠네요.”
당장 장비만 바꿔도, 현장에서의 안전성이 확연하게 올라갈 것이다.
수혁에게는 큰 의미가 없었지만, 다른 대원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하루빨리 사용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컸다.
둘은 커피를 마신 뒤, 사무실로 돌아갔다.
그사이 3팀의 대원들이 모두 출근해 있었다.
2팀과 인수인계를 마친 구조 3팀은 각자 자리로 가서 업무를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이었다.
잠시 사무실 밖으로 나갔던 박상태가 돌아오며 수혁을 불렀다.
“수혁아.”
수혁이 무슨 일이냐는 듯 고개를 들어 쳐다보자, 박상태가 턱짓을 하며 한쪽을 가리켰다.
“서장님이 부르신다.”
왠지 오늘 한번 부를 것 같았다.
수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곧장 서장실로 향했다.
똑똑-
“들어와.”
노크하자 기다렸다는 듯 서장의 음성이 들려왔다.
“실례하겠습니다.”
수혁이 서장실의 문을 열고 조심히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 복덩이 왔어?”
서장이 웃으며 그런 수혁을 반겨주었다.
“하하하.”
수혁이 어색하게 웃었다.
저 호칭은 들을 때마다 소름이 돋았다.
수혁이 소파에 앉자 서장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 이야기의 대부분은 어제 짐 머레이에게 받은 선물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다 문득-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혹시 독일에 아는 사람 있어?”
“……독일이요?”
갑자기 뜬금없이 나온 말에 수혁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뇨, 제가 독일 사람을 알 리…….”
말을 하던 수혁이 말끝을 흐렸다.
누군가 떠오른 것이다.
“왜? 있어?”
서장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아는 사람이라고 해야 할지……. 전에 세계 소방관 경기에 나갔을 때 인사 정도만 나눈 사람이 있긴 했습니다.”
“누군데?”
수혁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율… 뭐라고 했던 것 같은데.’
솔직히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수혁에게 있어 그는 그냥 스쳐 지나가는 인연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그게 이름이 잘…….”
“혹시 그날 세계 신기록 갱신했었던 사람이야?”
수혁이 버벅거리며 대답을 하지 못하자, 서장이 대신 말을 했다.
“네,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러자 서장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율리안이라는 소방관이야.”
“아!”
그제야 이름이 떠올랐다.
그런데 갑자기 율리안의 이야기가 왜 나온 건지는 아직 이해할 수가 없었다.
수혁의 표정을 보고 그 생각을 눈치챈 서장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독일 소방국 쪽에서 우리한테 연락했더라고.”
수혁이 눈을 끔벅였다.
그런 말을 왜 일개 소방관에 불과한 자신에게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뒤이어진 서장의 말에 그 답이 있었다.
“그쪽에서 너를 독일에 초대하고 싶단다.”
“……예?”
수혁은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라 생각했다.
‘아, 그러고 보니?’
헤어지기 전, 조만간 독일에서 보자는 식의 말을 하긴 했던 것 같았다.
그땐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율리안은 진지하게 제안했던 모양이었다.
“조만간 본부에서 일선 소방관들을 뽑아 독일로 연수를 보낼 예정이었거든. 그런데 독일 측에서 그 인원에 너를 꼭 참가시켜줬으면 한다고 연락이 왔단다.”
헛웃음이 나왔다.
아직 1년도 채 되지 않은 신입 공무원이 해외 연수라니.
“그게 가능한 일이긴 합니까?”
“안 될 것도 없지. 그쪽에서 먼저 요청한 일을 거부할 이유가 없으니까.”
“그래도 제가 아직 경력이…….”
“너 조만간 진급하잖아. 그런데 뭐가 문제야?”
그러고 보니 수혁은 곧 진급이 예정되어 있었다.
“기간은 어느 정도나 됩니까?”
“교육 기간은 8주. 이동시간이랑 여유시간까지 합치면 총 9주.”
“그렇게 오랫동안 독일에 있어야 합니까?”
“왜? 싫어?”
서장은 이해를 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가 보기엔 이건 기회였다.
견문을 넓히고, 기술을 배울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지만, 그보다는 국가의 돈으로 교육받는다는 것이 더 컸다.
서장이 생각하기에, 세금으로 교육시킨 소방관을 국가에서 홀대하진 않을 것이다.
오히려 더 잘 써먹기 위해 우대해 줄 것이 분명했다.
한 번 다녀오기만 하면 앞길은 보장되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뜻이었다.
“싫은 건 아닙니다만…….”
그냥 좀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요즘 들어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들이 점점 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커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푸켓에서의 일 때부터였나?’
BBC 뉴스에 나오고, 예능에 출연하고, 조금씩 유명해졌다.
그뿐 아니라, 푸켓에서 도움을 줬던 장영수와 짐 머레이에게 분에 넘치는 선물까지 받았다.
그런데 이젠 독일까지 가게 됐다.
이러다 정말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일까지 벌어지는 건 아닌지 걱정되기 시작했다.
수혁이 바라는 건 그저 이전 생에선 구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구하고, 조금 더 행복한 삶을 사는 것 정도였는데…….
“기회라고 생각해. 정 부담스럽다면 그냥 더 많은 사람을 구하기 위한 방법을 배우러 간다고 여기고.”
서장의 말도 틀린 건 아니었다.
이번 해외 연수의 본질적인 이유는 바로 그것이었으니까.
“알겠습니다.”
수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 일은 나중에 고민하기로 했다.
“그럼 연수는 언제……?”
“아직 정확한 일정은 발표가 되지 않아서. 대충 다음 달 정도라고만 알아둬. 정확한 일정은 발표되면 가르쳐 줄 테니까.”
“네.”
대화가 대충 마무리되자 수혁이 소파에서 일어났다.
“아, 그리고.”
서장이 인사를 하고 나가려던 수혁을 붙잡았다.
걸음을 멈춘 수혁이 더 할 말이 남았냐는 듯 뒤를 돌아보자, 서장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네 진급 날 잡혔어.”
서장은 소파에서 일어나 수혁에게 다가갔다.
“사흘 후. 수원에 있는 경기도 소방 재난 본부에서 다른 특진자들이랑 진급식이 열릴 거야.”
수혁의 어깨를 두드려 준 서장은 말을 이었다.
“그동안 애 많이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