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117화.
방화복만 해도 최소한 수천만 원 이상은 되는 것 같았다.
방화복 역시 보급품 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가의 제품이었기 때문이다.
“이건 일단 서장님한테 얘기해야겠다.”
이 정도로 비싼 물품들이라면, 서장에게 먼저 알리는 것이 우선이었다.
단순히 빵과 같은 간식들일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일이 커져 버린 탓에 박상태는 서장실로 달려갔다.
그리고 잠시 후, 밖으로 나온 서장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장비들을 보고는 멈칫- 했다.
“이, 이게 다 뭐야?”
수혁의 지인 중 누군가 장비들을 기부했다는 말을 듣고 나오긴 했는데, 그 양과 질이 서장이 생각했던 것을 아득히 넘어서고 있었다.
“수혁아! 김수혁!”
서장은 빠르게 수혁을 찾았다.
수혁이 그에게 다가가자, 서장은 다짜고짜 그런 수혁을 껴안아 버렸다.
“서, 서장님?”
수혁은 당황한 표정으로 그대로 얼어붙었다.
하지만 서장은 그런 수혁과는 반대로 크게 웃었다.
“우리 복덩이! 내가 정말 네 덕분이 요즘 살맛이 난다니까?”
‘우리 수혁’에서 ‘우리 복덩이’로 진화를 해버렸다.
“서장님 이, 이것 좀…….”
“그래그래, 내가 좀 오래 안고 있었지?”
수혁이 몸을 살짝 비틀자, 서장은 안고 있던 팔을 풀며 수혁을 놔주었다.
“그러니까 이게 다 수혁이 앞으로 온 기부 물품이라 이거지?”
서장의 얼굴은 싱글벙글이었다.
이렇게 값비싼 기부라면 처리해야 할 절차들이 많았지만, 그딴 건 아무래도 좋았다.
자신의 부하들이 더 좋고, 더 비싼 장비를 사용할 수 있게 됐는데 그깟 절차가 대수랴?
서장이라고 해서 보급품들에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일반 대원들보다 더 강한 불만을 품고 있었다.
서장이 명예욕이 조금 있긴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그는 자신의 부하들을 아꼈다.
얼마 전 이수열이 사망했을 당시, 그는 영정 앞에서 오열을 토해냈다.
항상 대원들과 일정 이상의 거리를 두고 있던 서장의 그런 모습에 수혁이 충격을 받을 정도였다.
대원들은 모르고 있었지만, 서장은 이수열의 순직 이후, 장비 보급을 위해 위쪽과 매일같이 전쟁을 치르는 중이었다.
더는 낡고 노후화 된 장비로 인해 목숨을 잃는 부하들이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보급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항상 같은 이유였다.
예산 부족.
이놈의 정부는 왜 항상 돈이 부족한지를 모르겠다.
위에서 쓸데없는 곳에 쓰는 세금을 조금만 돌려도 소방관들이 지금보다는 훨씬 안전해질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무튼 그런 와중에 저런 기부가 왔으니, 서장이 뛸 듯이 기뻐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푸켓에서 쓰나미가 일어났을 때 구조했던 분이 보내주셨네요.”
수혁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집, 차, 명품.
수혁은 이런 것을 선물받는 것보다, 이런 장비들을 받는 것이 훨씬 더 기뻤다.
장비의 질이 좋으면 좋을수록, 동료들이 더욱 안전해질 테니까.
“그분 연락처를 알 수 있을까? 이런 큰 선물을 받았으니, 인사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아, 연락처는 저한테 없고, 조만간 연락하기로 했으니 그때 물어보겠습니다.”
“그래, 꼭 좀 부탁하자.”
서장은 크게 웃으며 수혁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러곤 일단 선물 받은 장비들을 한쪽으로 옮기라 지시했다.
지금 당장 대원들에게 주고 싶었지만, 절차라는 게 있었으니까.
대원들은 박스를 옮기며 희희낙락했다.
이 박스 안에 담긴 장비들은, 보급품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것들이었다.
사비를 들여 사기에는 너무 비싼 것들.
앞으로 그런 것을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미소가 지어질 수밖에.
이수열이 죽고, 수혁이 부상을 입는 등, 악재가 연달아 일어나는 바람에 가라앉아 있던 신일서의 분위기가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수혁은 그런 동료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다시 말하지만, 이런 선물이라면 언제든 환영이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지.’
수혁은 짐 머레이를 위해 조금 더 좋고 비싼 식당을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근데 너 벌써 퇴원해도 괜찮은 거 맞아?”
박스를 옮기던 박정우가 물었다.
“다 나았어요.”
“7층 높이에서 떨어진 놈이 3일 만에 멀쩡해진다는 게 말이 되냐? 너 머리도 깨졌다며.”
“그러게요. 제가 빨리 낫는 체질인가 보죠, 뭐.”
통증은 없었다.
뒤통수를 꿰맨 곳 역시, 상당히 아물어 있는 상태였다.
“그게 체질로 설명이 되냐?”
박정우는 헛웃음을 지었다.
예전부터 느낀 것이었지만, 수혁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체격을 초월하는 힘과 불가사의할 정도의 체력.
그리고 비정상적인 회복 속도까지.
박정우뿐만 아니라 구조 3팀의 대부분이 갖고 있는 의문들이었다.
하지만 굳이 그것을 이해하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늘이라도 날아다니면 모를까, 이제는 그냥 ‘원래 그런 놈’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이었다.
박정우의 질문도 그저 빨리 나아서 다행이라는 뜻에 불과했다.
“선배나 몸조심해요.”
“나도 이젠 완전히 다 나았다.”
박정우가 자신의 갈비뼈를 툭툭- 치며 웃었다.
“앞으로도 조심하시라고요.”
“누가 누굴 걱정하냐?”
둘의 대화를 들은 것인지, 박상태가 다가오며 핀잔을 주었다.
“너나 제발 몸 좀 사려라. 내가 아주 너 때문에 제수씨 볼 낯이 없다.”
그 말에 수혁이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최은송과 박상태에겐 항상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앞으로 조심할게요.”
“맨날 입으로만…….”
박상태는 고개를 저으며 혀를 찼다.
“그런데 이거 보낸 사람은 대체 뭐 하는 사람이기에 이렇게 비싼…….”
박상태가 질문을 하는 도중, 수혁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잠깐만요.”
수혁은 잠시 박상태의 말을 끊고 스마트폰을 꺼냈다.
“응?”
모르는 번호였다.
또 스팸전화일 것이라 생각한 수혁은 인상을 찌푸리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김수혁 씨?]
“누구십니까?”
[아, 며칠 전에 만났던 짐의 보디가드입니다.]
“아……!”
그러고 보니 목소리가 낯이 익었다.
짐 머레이와의 대화를 통역해 준 그 경호원이었다.
[혹시 선물은 잘 받았는지 짐이 궁금해하더군요.]
그렇지 않아도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타이밍 좋게 연락이 왔다.
“네, 지금 확인했습니다. 정말 감사하다고 좀 전해주세요.”
[급하게 준비하느라 부족한 게 많았을 텐데…….]
“아뇨. 이 정도면 충분하다 못해 과분할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경호원은 웃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 오늘 시간 되십니까?]
“오늘이요?”
시간이야 많다.
오늘은 쉬는 날이었으니까.
[짐이 저녁 식사를 같이하고 싶다고 하셔서.]
잠깐 시간을 확인한 수혁은 흔쾌히 그것을 받아들였다.
“네, 얼마든지요.”
[그럼 오후 7시쯤 어떻습니까?]
수혁은 잠시 고민했다.
7시면 아직 최은송이 귀가하기 전이었다.
웬만하면 그녀도 같이 데리고 가고 싶었다.
하지만 괜히 여자친구와 같이 간다고 짐 머레이를 기다리게 만들 순 없었다.
“그렇게 하죠. 만날 장소는…….”
[말씀해 주시면 저희가 모시러 가겠습니다.
“아뇨, 굳이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주소를 보내 드릴 테니까, 그쪽으로 바로 와주세요.”
[음,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죠.]
수혁은 전화를 끊고 곧장 최은송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가 퇴근할 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면, 직접 그곳으로 가면 될 일이었다.
“은송 씨.”
수혁은 최은송이 전화를 받자마자, 짐 머레이와의 일을 이야기하며, 혹시 오늘 저녁 식사를 그곳에서 할 수 있냐고 물었다.
[잠시만요.]
수혁의 말을 들은 최은송은 곧장 스케줄을 확인했다.
[음. 7시면 괜찮을 것 같아요. 예약이 하나 취소돼서요.]
“그럼 그때로 부탁해도 돼요?”
[알았어요. 엄마한테 얘기해서 미리 준비해 둘게요.]
“고마워요.”
전에 예원에게 말한 것을 생각해 보면, 예약이 꽤 어려울 것 같았는데 다행히 자리가 있었다.
수혁은 전화를 끊고 경호원에게 주소를 보내주었다.
“……뭐가 그리 바쁘냐?”
말을 하다 멈추고 어색하게 수혁을 보고만 있던 박상태가 헛기침하며 물었다.
“아, 이 선물 보내준 사람이 오늘 저녁 좀 같이 먹자고 해서요. 은송 씨 식당에서 대접 좀 하려고.”
“그래?”
박상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거 대접해라.”
받은 선물이 비싸서가 아니었다.
짐 머레이가 보낸 선물은, 비싼 명품이 아니라, 소방관들의 안전이었다.
다시는 이수열과 같은 희생이 나오지 않도록 만들어주는…….
“알고 있어요. 그래서 은송 씨 식당에 가는 거잖아요.”
수혁은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었지만, 이야기만 들어도 얼마나 고급 한식점인지 알 수 있었다.
그런 곳에서의 저녁 식사라면, 짐 머레이도 만족할 듯싶었다.
“그건 좀 부럽네.”
최은송의 요리 솜씨를 잘 알고 있는 박상태가 입맛을 다셨다.
“언제 다 같이 한번 가요.”
“그럼 좋고.”
박상태는 별로 관심 없는 척 몸을 돌리며 가버렸다.
“저 이만 갑니다?”
수혁이 통화를 하는 사이 박스들은 거의 옮겨져 있었다.
“그래, 가라. 쉬는 날 오라고 해서 미안하다.”
“이런 일이 있는데 와야죠. 아무튼 갑니다.”
수혁은 다른 대원들에게 인사를 하고는 서를 빠져나왔다.
아직 약속 시간까지는 조금 남았지만, 최은송의 식당은 서울에 있었으니 지금 출발해야만 했다.
‘차를 한 대 사야 할까?’
지금까지는 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최은송의 차도 있었으니, 굳이 뽑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처럼 혼자 이렇게 돌아다닐 때면, 차를 한 대 뽑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돈이 있어야 뽑든 말든 하지.’
수혁은 고개를 저으며 차 생각을 지웠다.
장영수 덕분에 다달이 나가던 월세가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아낄 때였다.
최은송과 결혼하려면 어느 정도 모아둘 필요가 있었다.
“지하철이나 타자.”
신일역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조금 귀찮기는 해도, 아직은 지하철만으로 충분했다.
“수혁 씨!”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수혁이 고개를 돌렸다.
최은송이었다.
그녀는 한달음에 달려와 수혁에게 포옹했다.
“아니, 왜 나왔어요?”
“혹시 못 찾을까 봐.”
최은송이 위를 올려다보며 배시시- 웃었다.
방금 전까지 일하다 나온 것인지, 그녀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내가 앤가? 주소도 있는데 거길 못 찾아가게.”
“이런 핑계로 조금 더 빨리 만나려고 하는 거죠.”
“겸사겸사 좀 휴식도 취하고?”
“그렇죠.”
둘은 마주 보며 웃었다.
아침에 출근할 때의 말끔한 모습은 사라졌지만, 지금이 더 보기 좋았다.
“그런데 언제 오신대요?”
“이제 슬슬 올 때가 된 것 같은데…….”
수혁이 말을 하기가 무섭게, 고급세단 한 대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저건가?”
수혁이 긴가민가하고 쳐다보고 있는데, 차가 수혁의 옆에 멈춰 섰다.
그리고 뒷문이 열리며 짐 머레이가 밖으로 나왔다.
“수혁!”
바로 며칠 전에 봐놓고 뭐가 그리 반가운지…….
짐 머레이는 두 팔을 활짝 펼치며 수혁을 안았다.
‘오늘 여러 사람한테 안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