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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115화 (115/425)

레스큐 시스템 115화.

“산책 좀 할까요?”

점심 먹고 누워서 쉬고 있는데, 최은송이 물었다.

“그럴까요?”

그렇지 않아도 좀이 쑤시던 차였다.

“조심해서…….”

수혁은 아직도 통증이 가라앉지 않았다는 것을 내색하지 않았지만, 최은송은 귀신같이 그것을 눈치채고는 부축해 주었다.

“나 괜찮은데.”

“알아요. 그냥 제가 좋아서 하는 거예요.”

최은송은 배시시- 웃으며 수혁의 팔을 붙잡고 병원 밖으로 나갔다.

“덥네요.”

에어컨이 틀어져 있는 내부와는 다르게, 바깥은 실로 찌는 듯한 더위가 느껴졌다.

“올여름은 기록적인 폭염일 거라던데요?”

굳이 뉴스를 보지 않았더라도 알 것 같았다.

지금도 녹아내릴 정도로 더웠으니까.

“고생 많이 하겠어요.”

최은송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더위 속에서 그 두터운 방화복을 입고 뛰어다녀야 할 수혁과 다른 사람들이 걱정되었다.

“어쩔 수 없죠. 그래도 익숙하니까 괜찮아요.”

“익숙해도 힘든 건 힘든 거죠.”

잠시 생각하던 최은송이 수혁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다시 한 번 방문해야겠어요.”

“어디를요?”

“소방서요.”

최은송의 말에 수혁이 고개를 갸웃했다.

“은송 씨가 오는 건 언제든지 환영이지만… 왜요?”

“보양식 좀 해드리려고요.”

최은송이 웃으며 대답했다.

거창한 건 못 해줘도, 삼계탕 정도는 대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럴 필요는 없는데…….”

“수혁 씨는 튼튼해서 필요 없을지 몰라도, 다른 분들은 아니잖아요. 더 더워지기 전에 몸보신 좀 하는 게 좋아요.”

수혁은 자신의 동료들까지 챙겨주는 최은송의 마음씀씀이가 참으로 고마웠다.

“고마워요.”

“뭐가요?”

“전부 다요.”

이렇게 옆에서 자신을 챙겨주는 것도 고마웠고, 자신을 믿고 기다려 주는 것도 고마웠다.

수혁과 최은송은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산책을 마쳤다.

“……응?”

병실로 돌아오던 수혁이 걸음을 멈추곤 고개를 갸우뚱했다.

“무슨 일 있나?”

최은송 역시 그런 수혁의 옆에 서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수혁이 입원해 있는 병실 문 앞에, 웬 검은 양복을 입은 네 명의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외국인인데요?”

심지어 그들은 외국인이었다.

그들은 마치 영화에서나 보던 경호원들처럼, 병실 문 앞을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수혁은 의아한 얼굴로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그러자 그들 중 한 명이 손을 들어 수혁과 최은송을 제지했다.

“뭔가요?”

최은송이 얼굴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러자 둘을 막은 건장한 체구의 남자가 정중하게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사정이 있어서. 이 병실에 입원한 환자 분이십니까?”

놀랍게도 그는 유창한 한국말로 말을 했다.

최은송은 의외라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물었다.

“그런데요?”

“혹시 성함을 알 수 있을까요?”

위협적인 겉모습과 다르게, 경호원의 태도는 조심스럽기 그지없었다.

“김수혁입니다.”

그의 정중한 태도에 수혁은 자신의 이름을 가르쳐 주었다.

그러자 경호원의 눈이 커졌다.

“들어가시죠. 기다리는 분이 계십니다.”

“……누가?”

“들어가 보시면 알 겁니다.”

그의 말을 들은 수혁은 더욱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체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람이 누구인지 짐작도 되질 않았다.

병실 문을 열고 안쪽으로 들어간 수혁이 멈칫- 했다.

자신의 침대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의 얼굴이 낯이 익었던 것이다.

“……짐?”

바로 짐 머레이였다.

수혁은 마치 ‘형이 거기서 왜 나와?’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수혁!”

수혁을 기다리고 있던 짐 머레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곤 수혁에게 다가와 포옹했다.

“어… 어?”

그를 이곳에서 볼 것이라고는 상상도 해본 적이 없던 수혁은, 당황해서 눈만 껌뻑였다.

“누구예요?”

갑자기 수혁을 껴안는 짐 머레이를 본 최은송은 더 당황한 표정이었다.

“아, 여기는 예전에 푸켓에서 구조했던 분인데… 여긴 어떻게 알고 왔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요.”

자신을 구조해 준 소방관을 찾아와 인사하는 경우는 많았다.

실제로 수혁도 몇 번이나 경험해 본 일이었다.

그런데 타국에서 구조한 외국인이 이렇게 한국까지 찾아오리라곤…….

“몸은 좀 어떤가? 많이 다쳤다고 들었는데.”

짐 머레이가 수혁의 어깨를 잡고 몸을 살피며 말하자, 한국말을 할 줄 알았던 경호원이 재빨리 통역을 하기 시작했다.

“저는 괜찮은데. 짐이야말로 괜찮아요? 그때 심하게 다쳤잖아요.”

짐 머레이는 당시 수혁을 만나지 못했다면 생사를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수혁이 병원으로 데리고 간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워낙 상처가 심한 데다, 감염까지 일어나 자칫 잘못했으면 죽음에까지 이를 뻔했다.

“나는 물론 괜찮네, 그러니 여기까지 찾아왔지.”

그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호쾌한 웃음을 터트리며 대답했다.

푸켓에서 봤을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정말 다행이네요.”

당황이 사라지자 반가움이 밀려왔다.

“이렇게 늦게 찾아와서 미안하네.”

짐 머레이가 수혁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본 수혁은 손사래를 쳤다.

“미안하긴요. 솔직히 이렇게 찾아와 줄 거라곤 생각도 안 해봤는데.”

“생명을 빚졌는데, 최소한 감사 인사는 하러 와야지.”

“빚졌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저는 그냥 제가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니까, 괜한 부담도 갖지 마시고.”

수혁은 미리부터 선을 그었다.

짐 머레이는 수혁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분명했다.

개인 경호원을 네 명이나 대동하고 다닐 정도였으니, 못 느끼는 것이 더 이상했다.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이 고작 감사 인사를 하기 위해 한국까지 찾아왔을 리가 없었다.

괜히 장영수처럼 빚을 갚는다며 분에 넘치는 것을 준다면 곤란했다.

짐 머레이는 그런 수혁을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제시카는 어떻게 됐습니까? 부모님은 찾았어요?”

왠지 불안한 미소에 수혁은 재빨리 말을 돌렸다.

그런데 제시카의 이름을 들은 짐 머레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쉽게도 그 아이의 부모는…….”

짐 머레이는 병원에서 치료하면서도 그의 비서에게 제시카의 부모를 반드시 찾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제시카의 부모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실종자 명단에 올라가 있었고, 지금까지 시체조차 찾지 못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수혁의 표정도 덩달아 어두워졌다.

부상을 입은 짐 머레이를 구하기 위해 그 진흙탕 속을 뛰어다니던 소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면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습니까?”

“내가 그 아이의 후견인이 되어주었네.”

마음 같아선 입양하고 싶었지만, 손자의 나이보다 어린 제시카를 입양하는 건 좀 무리였다.

대신 제시카의 후견인이 되어 경제적, 사회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제시카 역시 자신의 생명을 구한 은인 중 한 명 이었으니까.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수혁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날 푸켓에서 수혁은 수많은 아이를 보았다.

부모를 잃고, 몸에 크고 작은 상처를 입은 아이들.

그 숫자는 너무도 많아 일일이 셀 수도 없을 정도였다.

제시카 역시 그런 아이들 중 하나가 될 수도 있었다.

부모를 잃은 것은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그 후 짐 머레이와 같은 사람을 만난 것은 천운이었다.

“사실은 그 아이도 데리고 오고 싶었네만, 아직 그날의 트라우마가 좀 남아 있어서…….”

아무리 건장한 성인이라도, 그날의 참상을 겪었다면 정신적인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물며 부모를 잃은 어린아이라면 그 정도가 더 심할 터였다.

“저를 보러 이 먼 곳까지 오는 것보단 회복이 훨씬 중요하죠.”

수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 예쁜 여성분은 누구신가?”

짐 머레이는 분위기를 반전시키려는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최은송은 살짝 민망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수혁 씨 여자친구입니다.”

“오, 영어를 할 줄 아는군.”

최은송의 자연스러운 영어에 살짝 놀란 표정이었다.

“이 친구의 여자친구가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내가 맞았어.”

짐 머레이는 크게 웃으며 최은송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이야기를 들어서 알고 있겠지만, 나는 짐 머레이라는 사람일세.”

최은송은 그의 손을 잡으며 자신의 소개를 했다.

“저는 최은송이라고 해요.”

“좋은 남자친구를 두었어.”

“저도 그 말에 동의해요.”

둘은 마주 보며 웃었다.

홀로 대화를 알아듣지 못하고 있는 수혁만이 멀뚱히 서 있을 뿐이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경호원을 쳐다봤지만, 그는 수혁의 시선을 외면하며 통역을 해주지 않았다.

“내가 저 친구에게 빚을 좀 갚으려는데…….”

“아마 싫어할 거예요.”

최은송이 살짝 고개를 저었다.

“역시 그런가?”

수혁은 자신과 대화를 하는 도중에도 그런 뜻을 은연중에 내비쳤다.

사업하는 사람답게 눈치가 빠른 짐 머레이는, 수혁의 생각을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래도 포기할 순 없지.”

“너무 부담스러운 것만 아니라면, 저도 응원할게요.”

최은송이 살포시 웃었다.

전에도 생각했던 것이지만, 수혁은 이런 보상을 받기에 충분한 자격이 있었다.

사심이 담긴 뇌물도 아니었고, 그저 순수하게 고마움을 표하는 것이니까.

“대체 나 빼놓고 무슨 얘기들을 하고 있는 겁니까?”

멍하니 영어 듣기 평가를 하고 있던 수혁이 더는 참지 못하고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냥 제 소개를 좀 했어요.”

최은송이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무슨 소개를 이렇게 길게…….”

“저보고 예쁘다고 칭찬해 주더라고요. 남자친구를 잘 만났다고도 그러고, 그래서 고맙다는 말을 했을 뿐이에요.”

수혁은 그녀의 말에 한 치의 의심도 품지 않았다.

대신 하루빨리 영어를 공부해야겠다는 의욕을 불태웠다.

“그럼 오늘은 이만 가보겠네. 환자를 오래 붙잡고 있을 순 없지.”

짐 머레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은이요?”

설마 또 오겠다는 뜻일까 싶어 수혁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한국은 첫 방문이니, 관광도 좀 할 겸 며칠 머물 생각이네.”

“아, 괜찮은 곳 추천해 드릴까요?”

“나름대로 일정을 세워뒀으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되네.”

하긴 짐 머레이가 아무런 계획도 없이 그냥 돌아다닐 사람처럼 보이진 않았다.

“그럼 돌아가기 전에 식사나 한번 같이하죠. 제가 맛있는 한식점 소개해 드릴 테니까.”

“좋지, 기대하겠네.”

짐 머레이는 다시 한 번 수혁을 껴안아주었다.

“저는 내일 퇴원이니까 병원으로 오지 마시고, 여기로 연락 주세요.”

“그렇게 하지.”

짐 머레이는 연락처를 한번 쳐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조만간 보세.”

짐 머레이는 수혁과 최은송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고는 경호원들과 함께 돌아갔다.

“꽤 유쾌한 분이네요.”

둘만 남게 되자, 최은송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요. 푸켓에서는 저런 분위기가 아니었는데.”

“그땐 어땠는데요?”

“뭐, 거의 죽어가는 분위기였죠.”

실제로도 죽어가고 있었으니까.

“제시카라는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를 구하다가 옆구리 쪽에 큰 부상을 입었거든요.”

수혁은 그때를 떠올리며 뺨을 긁적였다.

꽤 심각한 부상이었는데, 이렇게 다 나아서 돌아다니는 걸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자신이 구조한 사람이 건강한 모습을 되찾은 것을 보는 건 항상 보람찬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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