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114화.
“으음.”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아니, 머리뿐만이 아니라 온몸이 아팠다.
더 자고 싶었지만, 통증을 견디기가 힘들었던 수혁은 결국 눈을 떴다.
‘여긴?’
이제는 그리 낯설지 않은 천장이 보였다.
‘병원이구나.’
수혁은 자신이 병원에 입원해 있음을 깨닫고는 몸을 일으켰다.
“으윽.”
절로 얼굴이 찌푸려질 정도로 아팠다.
“일어났냐?”
옆에서 낯익은 음성이 들렸다.
“정우 선배.”
침대 옆에는 환자복을 입고 있는 박정우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수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선배가 입원한 병원이구나.’
“내가 퇴원할 때가 되니까, 이제 네가 입원하네.”
박정우는 어이가 없는지 헛웃음을 터트렸다.
“몸은 좀 어때요?”
“그건 내가 물을 말이고. 몸은 좀 어떠냐?”
“……죽을 맛이네요.”
수혁이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그래도 크게 다친 곳은 없다더라, 며칠 입원은 해야겠지만. 어떻게 된 놈이 그 높은 곳에서 떨어졌는데도 나보다 덜 다치냐.”
백 드래프트의 위험성이 크다고는 하지만, 맨몸으로 아이 하나를 안은 채 7층 높이에서 떨어진 것만 할까?
그런데도 수혁은 머리를 빼면 그리 다친 곳이 없었다.
“제가 워낙 튼튼하잖아요.”
고작 튼튼하다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였지만, 박정우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원래 수혁은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놈이었으니까.
“아이는 어떻게 됐어요?”
정신을 잃기 전에 박상태가 유예은을 데리고 가는 것을 보긴 했다.
하지만 당시 수혁은 제정신이 아니었던 터라, 정확히 어떤 상태인지 알 수가 없었다.
“떨어지는 충격에 타박상을 좀 입은 걸 빼면, 네 덕분에 털끝 하나도 안 다쳤단다.”
박정우의 대답을 들은 수혁의 얼굴에, 그제야 미소가 지어졌다.
“엄마는?”
“차라리 그쪽이 더 걱정이다. 너랑 딸이 떨어지는 걸 보고 너무 크게 충격을 받아서, 한동안 제정신이 아니었거든.”
자신의 눈앞에서 딸이 밑으로 추락하는 것을 본 엄마의 심정은 어떠할까?
수혁으로선 아직 상상도 하기 힘든 기분이었다.
“제수씨는 잠깐 집에 다녀온다고 나갔다.”
“그냥 집에 있어도 괜찮은데.”
“너라면 제수씨가 입원했을 때, 가만히 집에서 기다릴 수 있겠냐?”
그럴 순 없을 것 같았다.
“보니까 네 속옷이랑 세면도구 같은 거 챙기러 간 것 같으니까, 금방 올 거다.”
그래도 이렇게 챙겨주는 사람이 있으니 좋긴 했다.
그리고 동시에 미안함도 같이 들었다.
괜히 자신 같은 사람을 만나서 이렇게 고생한다는 게.
“선배는 언제 퇴원이라 그랬죠?”
“내일.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병원에서 탈출이다.”
“몸은 좀 어떻고요?”
박정우는 갈비뼈가 몇 개나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다.
“이제 다 나았지. 처음에는 숨만 쉬어도 아팠는데, 이젠 멀쩡하다.”
박정우는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자신의 건재함을 확인시켜 주었다.
“너 내가 없는 사이에 치즈 간식 잘 챙겨줬지?”
“……그럼요. 제가 얼마나 잘 챙겨줬는데요.”
수혁의 대답이 좀 늦자, 박정우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내가 가서 물어본다?”
“진짜라니까요.”
수혁은 찔리는 표정을 애써 감추며 대답했다.
사실 치즈를 챙긴 사람은 수혁이 아니라 김강식이었으니까.
나름대로 챙긴다고 챙겼는데, 일이 너무 바쁘다 보니 언젠가부턴 좀 소홀해졌다.
오히려 김강식이 생각보다 훨씬 더 정성스럽게 치즈를 보살폈다.
“몸무게도 꽤 늘었을 걸요? 한 6㎏은 되어 보이던데.”
“어휴, 많이도 컸네.”
그래도 어느 정도 조절을 해가며 간식을 줬던 박정우와는 다르게, 김강식은 시도 때도 없이 줬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몸조리 잘하고 있어라. 나는 이제 그만 가볼란다.”
“쉬세요.”
박정우는 손을 휘저으며 자신의 병실로 돌아갔다.
병실에 혼자 남은 수혁이 손을 들어 뒤통수에 가져다 대봤다.
상처 부위를 덮고 있는 드레싱이 만져졌다.
상처를 꿰매기 위해 머리카락을 잘랐는지, 조금 휑한 것도 같았다.
한참 동안 그곳을 매만지던 수혁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왜 스킬을 사용한다는 생각을 못 한 거지.’
갑작스런 상황에 너무 당황했다.
그 당시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은 ‘실드’뿐만이 아니라, 하나가 더 있었다.
바로 유조차 폭파 사고 때 얻었던 스킬.
쓰임새가 무궁무진하지만, 아직은 딱히 사용할 타이밍을 잡지 못해 써보지 못한 스킬이었다.
‘그걸 썼다면 조금 더 안전하게 건널 수 있었을 텐데.’
후회가 되었다.
그러면서 앞으론 스킬을 좀 더 적극적으로 사용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지금까진 주변의 눈치를 살피느라 사용을 자제한 경향이 조금 있었다.
‘위험 감지Ⅱ’나 ‘생명 감지Ⅱ’, ‘미니 맵’ 같은 것은 상관없었지만, ‘실드’는 분명 비현실적인 광경을 연출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현장에서 사용한 것은 단 두 번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스킬을 사용하는 것이 몸에 익질 않았다.
만약 수혁이 ‘실드’를 자주 사용하고, 그만큼 익숙해졌다면, 이번에도 본능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앞으론 막 쓰자.’
누군가 이상하게 본다면?
‘그땐 그때 가서 생각하고.’
사람들이 조금 이상하게 보는 게, 죽는 것보단 백배 나으니까.
수혁이 그렇게 다짐을 하고 있을 때였다.
“깼냐?”
박상태가 병실로 들어오며 수혁을 불렀다.
“오셨어요?”
수혁이 슬쩍 박상태의 눈을 피했다.
그에게도 면목이 없었다.
자신 있게 큰소리치고 멋대로 움직였는데, 결과가 이 모양이었으니…….
물론 그렇게 움직이지 않았더라면 더 큰일이 벌어졌을지도 몰랐지만, 그래도 미안한 건 사실이었다.
“몸은 좀 어때?”
“……나중에 올 사람 다 오면 한 번에 대답해도 돼요?”
“정우 왔었냐?”
수혁의 말에서 누군가 들렀다 갔다는 걸 눈치챈 박상태가 픽- 하고 웃으며 물었다.
“네. 방금 나갔는데, 못 봤어요?”
“엇갈렸나 보지.”
박상태는 별거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 했다.
“그건 뭐예요?”
수혁이 박상태가 손에 들고 있는 검은 비닐봉지를 보고는 물었다.
“너 깨면 먹으라고 음료수 몇 개 사 왔다.”
“아무거나 먹어도 돼요?”
“너 별거 없단다. 머리 깨진 게 다야. 그런 놈이 무슨 먹을 걸 가려?”
박상태는 퉁명하게 말을 하며 비닐봉지에서 음료수를 꺼내 수혁에게 건넸다.
음료수를 본 수혁이 슬쩍 미소를 지었다.
말은 저렇게 해도 걱정하긴 했는지, 그가 사온 음료수는 죄다 건강음료뿐이었다.
인삼이나 홍삼이 들어간.
물론 수혁도 탄산보단 이런 쪽이 더 좋았다.
뚜껑을 따고 한 모금 들이켜자, 알싸한 홍삼의 맛이 입안에 가득 찼다.
“좀 많이 사오지, 네 개가 뭡니까?”
“이 새끼는 사다 줘도 뭐라 그러네. 마시지 마, 인마!”
박상태가 욱하며 수혁의 손에서 음료수를 빼앗으려 했지만, 수혁은 그의 손을 피하며 한 번에 몽땅 털어 넣었다.
“잘만 처마시면서.”
박상태는 콧바람을 한번 내뱉고는 음료수들을 정리했다.
“너 한 3일은 입원해 있어야 한다더라.”
그러다 툭- 말을 던졌다.
“그렇게 오래요?”
몸이 좀 아프긴 했지만, 3일씩이나 입원할 정도는 아니었다.
“너 다친 게 머리잖냐. 혹시 몰라서 좀 두고 보자더라.”
“됐어요, 하루 쉬면 괜찮아질 텐데.”
“그러든지, 제수씨한테 뒈지게 얻어맞고 싶으면.”
박상태가 어림도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많이 걱정하던가요?”
“그럼 걱정이 안 되겠냐? 남자친구라는 놈이 허구한 날 다쳐서 돌아오는데? 제수씨 성격이니까 버티는 거지, 나였으면 벌써 헤어졌다.”
그 말에 수혁이 얼굴을 긁적였다.
그의 말이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수혁은 최은송이 이렇게 자신을 이해하고 곁에 남아줄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이전 생의 좋지 않은 추억 때문에 더욱 회의적이었다.
그런데 최은송은 수혁의 예상과 다르게, 지금까지 함께해 주었다.
수혁은 그것이 너무도 고맙고, 미안했다.
“넌 진짜 제수씨한테 잘해야 돼.”
“알고 있어요.”
수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왜 모를까?
“알면 됐고.”
박상태는 자신이 사온 음료수를 하나 까서 마시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시게요?”
“너 일어난 거 봤으니까 이제 가봐야지. 비번에 하루 종일 시꺼먼 남자 옆에 앉아 있을 일 있냐?”
“저 심심한데.”
“잠이나 쳐 자.”
박상태는 끝까지 퉁명하게 말하며 병실 밖으로 나가 버렸다.
병실에 적막이 흘렀다.
6인실에는 수혁을 포함해 네 명의 환자가 있었지만, 모두 누워서 눈을 감고 있을 뿐, 아무도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괜히 머쓱해진 수혁이 침대 밖으로 다리를 내렸다.
“윽!”
역시 아직은 통증이 심했다.
그래도 가만히 누워있는 것보단, 조금씩 몸을 움직여줘야 빨리 나을 것 같았기에 수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깨어나셨네요?”
이번엔 간호사가 수혁을 발견하고는 반색했다.
“몸은 좀 어떠세요?”
질문을 들은 수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나는 괜찮다’는 팻말을 만들어 목에라도 걸고 다녀야 할 듯싶었다.
* * *
“알아봤나?”
짐 머레이는 잔뜩 기대한 얼굴로 비서의 보고를 기다렸다.
“네, 찾는 게 그리 어렵진 않았습니다. 생각보다 유명한 사람이더군요.”
“유명하다고?”
비서의 말에 짐 머레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분명 소방관이라 들었는데, 소방관이 유명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푸켓에서의 일이 BBC에서 방영된 모양입니다. 그 덕분에 히어로라는 별명도 생겼고요.”
“히어로…….”
다른 사람은 몰라도, 짐 머레이의 입장에서는 히어로가 확실했다.
그가 아니었으면 자신은 아직까지 살아있지 못했을 수도 있었으니까.
“그런데 조금 문제가 있는 모양입니다.”
“문제라니?”
비서는 잠시 머뭇거리다 이내 입을 열었다.
“현재 병원에 입원 중이라더군요. 구조 도중 머리에 부상을 입었다고 합니다.”
그 말에 짐 머레이의 눈이 커졌다.
“심각한가?”
다급한 질문에 비서가 빠르게 대답했다.
“다행히 심각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머리를 다쳤으니…….”
“이런, 젠장!”
짐 머레이는 자신의 히어로, 수혁을 조금 더 빨리 찾았어야 했다며 자책했다.
미국으로 돌아온 뒤, 그는 한동안 병원 신세를 졌다.
옆구리와 다리에 결코 가볍지 않은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었다.
제때 응급처치를 해서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의사는 그에게 응급처치해 준 사람에게 꼭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라는 말까지 했다.
그렇게 심각한 부상을 견뎌내고 한참 동안 입원을 한 뒤 이제야 퇴원한 것이다.
그러곤 부랴부랴 수혁을 찾기 시작했는데…….
“비행기 준비해. 가봐야겠다.”
“지금 말입니까? 아직 회장님 몸 상태는 정상이 아닙니다. 장거리 비행은 무리입니다.”
비서가 걱정스러운 낯으로 짐 머레이를 만류했다.
하지만 짐 머레이는 상관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나는 괜찮다. 생명의 은인이 다쳤다는데, 여기서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순 없지.”
그는 다른 건 몰라도, 은과 원은 확실한 사람이었다.
단순히 도움을 받은 것도 아니고 생명을 빚졌으니, 이대로 가만있을 순 없었다.
“……알겠습니다.”
비서는 그의 성격을 알고 있었기에, 더는 말리지 않았다.
비서가 인사를 하고 나가자 혼자 남은 짐 머레이는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했다.
과연 자신이 생명의 은인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