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113화.
송미라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난간 옆에 섰다.
“아래는 쳐다보지 마세요.”
수혁의 말에 송미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보라고 해도 볼 엄두를 내지 못했겠지만 말이다.
“제 손 잡고.”
송미라는 수혁의 손을 잡고는 천천히 난간 위로 올라섰다.
“일어서지 마시고, 기어서 천천히 가시면 돼요.”
사실 이 정도는 아무리 평범한 사람이라도 충분히 건널 수 있는 수준이었다.
물론 겁도 나고 무섭겠지만, 막상 시도한다면 그리 어렵지도 않았다.
송미라는 용기 내서 사다리 위를 기어가기 시작했다.
“좋아요, 잘하고 계세요.”
뒤에서 수혁이 응원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송미라는 그것에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무서워…….’
그녀의 머릿속은 온통 무서운 상상들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바람이 불어서 옆으로 밀려나면 어떡하지?
사다리가 부러지면?
또 폭발이 일어나서 떨어질지도 몰라, 등등.
온갖 부정적인 상상이 그녀를 괴롭혔다.
‘더는 못가겠어.’
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그냥 다시 돌아가서 사다리차를 기다리고 싶었다.
송미라가 후회와 두려움에 눈을 질끈 감고 울음을 터트리려던 그때였다.
“잘하셨어요.”
바로 코앞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송미라는 그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어, 어?”
유지환이 보였다.
어느새 이렇게 온 건지, 그녀는 이미 옆 빌라의 옥상에 도착한 상태였다.
유지환이 손을 뻗어 안전하게 그녀를 받은 후, 옥상 위에 내려주었다.
“버, 벌써 다 온 건가요?”
송미라가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려 뒤를 쳐다봤다.
천릿길보다도 멀어 보였던 길이, 이제 와 다시 보니 고작해야 몇 걸음만 걸으면 도착할 정도로 짧은 거리였다.
대체 자신이 왜 그렇게 무서움에 벌벌 떨었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네, 이제 안전합니다.”
유지환은 송미라의 어깨를 잡고 난간에서 조금 떨어뜨리며 말했다.
“그럼 제 딸은……?”
“이제 저분이 데리고 올 겁니다.”
유지환이 수혁을 가리켰다.
그의 말대로 수혁은 유예은을 데리고 사다리를 건널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저씨 목 꽉 잡고 있어야 돼. 알겠지?”
수혁이 차분하게 말을 하자, 유예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밑에는 쳐다보지 말고, 아저씨가 됐다고 할 때까지 눈 꼭 감고 있을 수 있지?”
“……네.”
유예은은 작은 입을 오물거리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착하네, 우리 예은이.”
장하다는 듯 머리를 한번 쓰다듬은 수혁이 유예은을 등에 업었다.
‘대충 30㎏ 정도인가?’
장비의 무게보다 조금 더 무거운 듯했다.
만약 유예은을 업은 채, 장비까지 착용했다면 사다리가 그 무게를 버티지 못했을 것 같았다.
“이제 엄마한테 가자. 눈 감아.”
계속해서 느낌이 좋지 않았기에, 수혁은 서둘러 난간 위로 올라섰다.
아까보다 조금 더 짙어진 연기가 시야를 방해하기 시작했다.
‘조심해야겠네.’
수혁이 조심스럽게 첫발을 내딛을 때였다.
키잉-!
주변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화들짝 놀란 수혁이 발을 뗐다.
하지만 여전히 붉은색은 사라지지 않고, 수혁의 주변을 물들이고 있었다.
‘사다리 때문이 아니라고?’
수혁은 ‘위험 감지Ⅱ’ 스킬이 발동한 이유가 사다리를 건너려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수혁 씨, 왜 그래요?”
유지환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수혁이 갑자기 뭔가에 놀란 듯한 모습을 보이고는 황급히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수혁은 대답 대신, 다급한 기색으로 그를 향해 소리쳤다.
“비켜요!”
그러곤 유지환이 대꾸할 새도 없이 그대로 사다리 위로 발을 내디뎠다.
그와 동시에…….
콰광-!
두 번째 폭발이 일어났다.
‘이거 봐! 내 예감이 맞았잖아!’
수혁이 지금까지 느꼈던 불안감의 정체는 바로 이것이었다.
이번에는 첫 번째보다 폭발의 강도가 강했다.
빌라 옥상에 쩌저적- 하고 금이 가더니 순식간에 무너져 내릴 정도였다.
동시에 옥상의 난간 역시 허물어졌다.
“안 돼!”
유지환과 송미라가 눈을 부릅뜨며 비명을 질렀다.
난간이 무너져 내리며, 그 위에 걸쳐져 있던 사다리가 아래로 추락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제 막 두 걸음째를 내딛던 수혁의 몸이 아래로 쑥- 떨어져 내렸다.
갑자기 발밑이 허전해지며 느껴지는 부유감에 수혁은 일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X됐다!’
자신을 향해 비명을 지르는 두 사람을 보며 이를 악다물었다.
그러곤 등에 업혀 있는 유예은을 빠르게 앞쪽으로 안았다.
떨어지기 전에 둘을 향해 아이만이라도 던져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찰나의 시간 동안 수혁은 추락했다.
‘늦었어!’
30㎏가량의 무게.
만약 있는 힘껏 던진다면 둘에게 닿을 수도 있겠지만…….
너무 위험했다.
자칫 잘못했다간 지금보다 더 위험한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었다.
수혁은 순식간에 판단하고는 유예은을 던지는 대신 품에 꼭 안았다.
그리고…….
쿠웅-!
정신이 아득해졌다.
등이 박살 나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지만, 그보다는 머리가 더 문제였다.
최대한 고개를 앞으로 숙여 충돌을 피하려 했지만, 추락의 충격은 그 노력을 비웃었다.
뒤통수가 깨지기라도 한 것인지 축축하게 젖어왔다.
하지만 수혁은 애써 통증을 의식하지 않으며, 품속에서 벌벌 떨고 있는 유예은을 먼저 살폈다.
“괘, 괜찮니?”
수혁이 물었지만, 유예은은 대답할 상황이 아니었다.
하긴, 7층 높이에서 떨어졌으니, 고작 열 살 먹은 아이가 얼마나 무서웠겠는가?
“이젠 괜찮아.”
수혁은 유예은의 등을 다독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기증이 일어나며 몸을 휘청거렸지만, 간신히 균형을 잡은 수혁은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이곳은 안전하지 않다.
폭발의 여파로 무너져 내린 자잘한 돌들이 떨어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수혁은 유예은이 그것들에 맞지 않게 보호하며 빌라 앞쪽을 향했다.
“김수혁!”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꾸만 감기려는 눈에 힘을 줘 쳐다보자, 박상태가 빠르게 달려오고 있었다.
그를 쳐다보며 미소를 지으려던 수혁은, 문득 뭔가를 떠올리곤 헛웃음을 지었다.
‘이 멍청한 놈. ‘실드’를 썼으면 안 다쳤을 거 아니야.’
너무 갑작스럽게 벌어진 상황에 스킬을 사용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수혁은 자신의 멍청함을 탓했다.
“인마! 김수혁!”
그사이 다가온 박상태가 수혁의 품에서 유예은을 건네받았다.
“일단 애부터.”
자신의 몰골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박상태가 머뭇거리는 것을 본 수혁이 손을 내저었다.
그러자 박상태는 고개를 끄덕이곤 바깥을 향해 달려나가며 다른 대원들을 불렀다.
그 소리를 들은 누군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지만, 수혁은 끝내 그게 누구인지 확인하지 못했다.
눈앞이 깜깜해지며 그대로 정신을 잃었기 때문이다.
* * *
“크게 걱정하진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의사의 말에 최은송은 얼굴을 감싸 안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정도 높이에서 아이를 한 명 안은 채 추락한 것치고는, 정말 양호한 상태입니다. 뼈에 금이 가거나 부러진 곳도 없고, 머리 쪽 역시 피부가 상해서 출혈이 좀 일어났을 뿐, 두개골은 멀쩡합니다.”
“하지만 아직 정신을…….”
“멀쩡하다곤 해도 뇌진탕을 피할 순 없었으니까요. 조만간 정신이 들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다행히 수혁은 크게 상한 곳이 없었다.
긴급 후송된 수혁을 본 의료진들이 의아해할 정도로 말이다.
출혈이 조금 있긴 했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타박상과 뇌진탕 정도가 전부였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뭘요. 제가 한 거라곤 머리 꿰맨 것밖에 없는데.”
의사는 허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며칠 입원해서 상태를 좀 지켜보도록 하죠.”
최은송은 의사를 향해 연신 감사 인사를 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뭐라고 합니까?”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박상태가 안절부절못하는 기색으로 물었다.
“괜찮대요. 크게 상한 곳도 없고. 며칠 정도만 입원하면 될 것 같아요.”
최은송의 말에 박상태가 의자에 주저앉았다.
“……다행이네요.”
떨리던 몸이 차츰 진정되었다.
이수열을 잃은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수혁마저 또 잃을까 무서웠다.
‘그놈은 내가 가만있으라고…….’
생각하던 박상태가 고개를 저었다.
만약 자신의 말대로 옥상에서 가만히 앉아 사다리차를 기다리고 있었다면, 지금보다 더 좋지 않은 상황이 펼쳐졌을 수도 있었다.
지어진 지 20년이 넘는 그 오래된 빌라는, 가스 폭발의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붕괴했다.
완전히 건물이 무너져 내린 것은 아니었지만, 옥상을 비롯한 계단과 일부 세대가 폭삭 주저앉아 버린 것이다.
만약 수혁이 움직이지 않고 그곳에 가만있었다면, 그 붕괴에 휘말렸을 수도 있었다.
결과적으론 수혁의 말이 옳았다는 뜻이었다.
그 끝이 조금 좋지는 못했지만…….
“그나저나, 계속 이렇게 다치기만 해서 큰일이네요.”
벌써 몇 번째 입원인 걸까?
최은송이 수혁을 만난 이후, 신일서의 구조 3팀에서 입원한 사람은 단둘뿐이었다.
수혁과 박정우.
그마저도 박정우는 단 한 번이었는데…….
수혁은 벌써 수차례 병원 신세를 졌다.
이건 분명 정상적이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박상태는 최은송을 향해 사과했다.
그간 수혁이 다친 것이 그의 탓은 아니었지만, 수혁은 구조 3팀의 대원이다.
그 말은 팀장인 박상태의 책임하에 있다는 뜻이었다.
“아니에요. 이건 다 수혁 씨가…….”
잘못한 것이라고 말을 하려던 최은송이 말끝을 흐렸다.
수혁은 그저 사람을 살리려 했을 뿐이었다.
그것을 잘못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수혁에게도, 그가 구한 사람에게도 무례한 말이었다.
“제수씨 말이 맞습니다. 그놈이 잘못한 거죠.”
박상태는 조금이라도 최은송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수혁을 씹었다.
“하여간 몸 좀 사리라니까 그렇게 말을 안 듣습니다, 그놈이. 현장에서 구해야 할 건 요구조자뿐만이 아니라, 자신도 포함되어 있다는 걸 왜 모르는지.”
박상태는 최은송의 눈치를 살짝 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너무 뭐라고 하지는 마십쇼. 그놈이 백번 잘못한 건 맞지만……. 그래도 그놈 덕분에 목숨을 구한 사람도 많으니까.”
“물론이에요.”
욕하는 척하며 은근슬쩍 수혁의 편을 드는 박상태의 모습에, 최은송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그 모습에 반했는데요.”
최은송은 수혁과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폭주하는 트럭에 달려들어 멈춰 세우고는, 그 안의 운전자를 구하던 모습.
아무리 소방관이라 한들, 그런 상황에 직접 나서는 것이 두렵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수혁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움직였다.
‘그러니까 저렇게 계속 다치는 거겠지.’
이러다 정말 언젠가는 수혁이 잘못되는 날이 올지도 몰랐다.
하지만 최은송은 그런 수혁을 말릴 생각이 없었다.
사람을 구하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내던지는 사람.
수혁은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그런 사람한테 반한 게 잘못이지.’
최은송은 무거운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