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112화.
수혁은 재빨리 유예은을 품에 안았다.
‘위험 감지Ⅱ’가 발동하지 않은 것으로 봐선 건물이 무너지지는 않을 것 같았지만, 예상치 못한 다른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유지환 역시 송미라를 감싸 안았다.
“…….”
그 상태로 몇 초가 흘렀다.
다행히 더 이상의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다.
품에 안고 있던 유예은을 유지환에게 넘긴 수혁이 난간으로 다가가, 아래의 상황을 확인했다.
“이런…….”
밑은 아수라장이었다.
한순간 건물이 크게 진동할 정도의 폭발.
그 충격을 코앞에서 맞이한 소방관들은 모두 쓰러졌고, 주변에 주차되어 있던 차들은 모두 유리가 박살나며 경고음을 울려대기 시작했다.
[김수혁!]
무전기에서 박상태의 다급한 음성이 들려왔다.
“저흰 괜찮아요.”
간신히 안정을 되찾아가던 요구조자들이, 다시 겁을 집어먹고 불안해하기 시작한 것만 제외하면 말이다.
“그보다 사다리차는 대체 언제 와요?”
수혁이 물었지만, 대답은 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자 수혁은 뭔가 일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수혁이 빌라에 진입한 지 10분이 넘었다.
화재가 일어나고, 최초 신고가 들어간 건 그보다 훨씬 전이란 소리다.
15분, 아니, 20분이 넘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아직까지 사다리차가 도착하지 않았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문제가 생겼다.]
수혁의 예감은 적중했다.
[너무 급하게 오는 바람에, 사고가 났단다.]
수혁이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그래서 지금 다른 사다리차를 불렀는데…….]
“얼마나 걸린대요?”
[……최소한 10분.]
“너무 늦어요!”
그때쯤이면 산소도 간당간당하다.
게다가 불과 연기는 점점 더 위로 향할 것이고, 그러면 아무리 옥상이라 해도 절대 안전하지 못하다.
게다가 또 가스 폭발이 일어난다면?
[그게 가장 빨라.]
“그동안 못 버텨요.”
수혁의 말에 무전기 너머에서 침묵이 흘렀다.
수혁이 못 버틴다고 말했다.
웬만한 현장은 혼자서도 뚝딱뚝딱 해결해 왔던 놈이 못 버틴다면, 그건 진짜 힘들다는 이야기였다.
“헬기는요? 헬기는 수배 못 해요?”
[그쪽도 알아봤는데, 지금 조연산 쪽에 부상자가 생겨서, 그쪽으로 출동 나갔단다.]
“하아…….”
계속해서 악재가 겹치고 있었다.
이러다 정말 수혁이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 찾아올지도 몰랐다.
수혁은 잠시 고민하다 뭔가를 결심한 듯,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탈출할게요.”
[뭐? 어디로 탈출하려고? 계단은 안 돼. 거긴 지금 사람이 못 지나가.]
“다른 방법이 있어요.”
수혁의 시선이 한쪽을 향했다.
“옆 빌라로 건너갈 생각이에요.”
[……이 미친놈이.]
박상태의 어이없다는 음성이 들려왔다.
“사다리가 있어요. 옆 빌라 옥상까지 충분히 닿을 수 있는 크기고요. 건물 사이가 고작 2m 정도밖에 안 되니까, 그리 어렵진 않을 거예요.”
[너한테나 안 어렵지, 이 새끼야!]
박상태가 소리를 질렀다.
요구조자는 평범한 주부와 그녀의 열 살 먹은 딸이었다.
아무리 가깝다고는 하지만, 그들이 6층 높이에서 사다리 하나에 의지해 건널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사다리가 못 버티면? 그대로 추락이야! 그래, 너나 지환이라면 거기서 떨어져도 죽지는 않을 거야. 그런데 애는? 애는 어떡하려고.]
박상태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지금은 가만히 이곳에서 사다리차를 기다리는 것이 최선이었다.
수혁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불안했다.
‘위험 감지Ⅱ’ 스킬은 발동하지 않았지만, 수혁은 당장에라도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안 좋은 불안함이 들었다.
그것은 감이었다.
스킬이 아닌,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구조대원으로 활동해 오며, 수많은 사지를 경험한 수혁의 감.
“형 설득하려는 거 아니에요. 그냥, 저 믿고 기다려요.”
그 말을 끝으로 수혁은 무전기를 껐다.
뒤늦게 박상태가 뭐라고 말하는 것이 들렸지만, 애써 무시했다.
“지환 씨.”
수혁이 뒤를 돌며 유지환을 불렀다.
이미 수혁의 말을 모두 들은 그는 정말로 할 거냐는 눈빛을 보냈다.
“사다리는 옆 빌라에 있어요. 제가 넘어가서 설치할 테니, 지환 씨는 단단히 고정해 줘요.”
“뭐로 고정합니까?”
난간 위에 놓인 사다리를 고정할 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수혁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손으로 잡으라고요.”
“아.”
유지환은 고개를 끄덕이다, 퍼뜩 정신을 차리며 물었다.
“그런데 정말 하실 겁니까? 이건 제가 봐도 좀 위험한 것 같은데.”
박상태가 말했듯이, 송미라라면 몰라도 유예은은 절대 혼자선 건너지 못할 것이다.
혼자 건너도록 둬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누군가 같이 움직이는 것도 안전한 것은 아니었다.
혼자라면 모를까, 둘의 무게를 사다리가 버텨줄지 알 수 없었으니까.
“저한테 생각이 있어요.”
처음 사다리를 발견했을 때부터 머릿속에 계획을 세워둔 수혁이었다.
유지환이 걱정하는 바는 잘 알고 있었지만, 수혁은 따로 생각해 둔 바가 있었다.
“뭐, 그렇게 말하신다면야…….”
사실 유지환도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았기에,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조금 위험해 보이기는 했지만, 자신이 인정한 수혁이라면 뭔가 방법이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수혁은 유지환에게 동의를 얻자 송미라에게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다.
“저, 저길 건넌다고요?”
송미라의 눈에 두려움이 가득 차올랐다.
“네. 아무래도 여기서 빨리 벗어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까는 사다리차가 오니까 기다리면 된다고…….”
“……조금 늦을 것 같아서요.”
수혁이 미안함에 시선을 살짝 돌리며 대답했다.
그라고 해서 사다리차를 사용하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일부러 위험한 방법을 택하고 싶어서 택한 것도 아니었고.
하지만 지금은 자신의 감을 믿어야 했다.
“하, 하지만.”
송미라는 딸을 안은 손에 힘을 주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소방관이 하는 말이지만, 저기를 사다리 하나에 의지해서 건넌다는 건 정말 말이 되지 않았다.
수혁은 떨고 있는 송미라의 손을 붙잡았다.
‘여기에 있으면 위험합니다.’
‘언제 또 폭발이 일어나 여기를 덮칠지 모릅니다.’
‘예은이의 안전을 생각하신다면, 지금 당장 여기서 벗어나야 합니다.’
머릿속에 떠오른 말들은 많았다.
모두 송미라를 설득시킬 수 있는 말들이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두려움을 심어줄 수도 있는 말이기도 했다.
그래서 수혁은 그것들을 입밖에 꺼내지 않았다.
그저…….
“저를 믿어주세요.”
이렇게 말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반드시 구해 드리겠습니다.”
고작 이런 말로 송미라의 두려움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손의 떨림도 여전했고, 얼굴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하지만 눈빛이 변했다.
당황과 긴장으로 얼룩져 있던 그녀의 눈빛에 신뢰가 서렸다.
그것은 수혁이란 사람을 향한 것이라기보단, 소방관에게 보내는 신뢰였다.
송미라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수혁이 괜찮다는 듯, 따뜻한 미소를 지어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먼저 건너가겠습니다.”
수혁이 발목을 돌리며 심호흡을 했다.
그러곤 숨을 가득 들이마시며 땅을 박찼다.
“아니, 잠깐!”
그 모습을 본 유지환이 기겁하며 소리를 질렀다.
지금 수혁은 장비를 모두 착용한 상태였다.
두터운 방화복과 면체 마스크.
그리고 등에 메고 있는 봄베까지.
총 20㎏이 넘는 무게다.
저것들을 메고 2m 거리를 뛰어넘는다?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당연히 장비를 벗고 뛸 것이라 생각했던 유지환이 기겁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수혁은 유지환의 외침을 들었음에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속도를 더 내며, 난간을 발로 밟고 날아올랐다.
“흐읍!”
유지환은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20㎏이 넘는 장비?
2m 이상의 거리?
그것은 수혁에게 아무런 장애가 되지 못했다.
수혁은 너무도 손쉽게 허공을 가로지르고, 옆 빌라의 옥상에 착지했다.
“……미친.”
유지환은 구조 3팀의 대원들이 왜 수혁을 향해 미친놈이라고 부르는지 알 것 같았다.
‘괴물, 아니, 미친 괴물이야.’
저게 정말로 사람이 해낼 수 있는 행동인지 의심이 되었다.
유지환은 어느 날 갑자기 수혁이, ‘난 사실 외계인이었습니다’ 하고 고백해도 믿을 자신이 있었다.
유지환과 송미라가 도저히 믿기지 않는 장면에 멍하니 있는 사이, 수혁은 사다리를 살폈다.
‘좋아.’
처음 봤던 것처럼 녹이 잔뜩 슬어 있는 낡은 사다리였다.
하지만 한 사람이 건너기엔 충분해 보였다.
사다리를 챙긴 수혁은 그것을 쭉 펴고 길이를 가늠해 보았다.
2m는 훌쩍 넘어 보였다.
‘이 정도면 됐다.’
수혁은 망설이지 않고 사다리를 챙겨 난간으로 갔다.
“지환 씨!”
수혁이 부르자, 멍하니 서 있던 유지환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난간으로 다가왔다.
“이거 받아요!”
빌라 사이로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었지만, 다행히 시야를 확보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수혁이 사다리 한쪽을 건네자, 유지환이 그것을 받아 난간 위에 놓았다.
그러곤 몇 번 힘을 줘 내려쳐 봤다.
캉캉-!
잔뜩 녹이 슨 외형과는 달리, 꽤나 튼튼해 보였다.
“그쪽 꽉 붙잡고 있어요!”
유지환은 수혁의 말대로 사다리를 온몸으로 단단히 붙잡았다.
그것을 본 수혁은 자신의 장비를 모두 벗어 던지고는 사다리 위로 올라갔다.
“뭐 하는 겁니까!”
그것을 본 유지환이 깜짝 놀라 소리쳤지만, 수혁은 아랑곳하지 않고 사다리를 통해 건너왔다.
“마스크를 벗으면 어떡합니까!”
무사히 건너온 수혁을 향해 유지환이 소리를 질렀다.
이수열이 마스크를 벗었다가 사망한 것이 바로 며칠 전이다.
그런데 눈앞에서 수혁이 마스크를 벗고 연기를 뚫고 오자, 화가 치솟아 올랐다.
“진정하고, 마스크 줘요.”
수혁은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담담하게 말했다.
유지환은 어이가 없었지만, 이대로 가만둘 수도 없었기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보조 마스크를 건넸다.
마스크를 쓴 수혁이 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무게를 조금이라도 더 줄여야 돼요. 장비를 메면 사다리가 못 버틸 수도 있으니까.”
안전해 보이기는 했지만, 수혁은 만약을 대비해 장비를 벗은 것이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지금은 구조에 집중합시다.”
뭐라고 말을 하려던 유지환의 입을 막았다.
“지환 씨는 장비 벗고 건너가서 사다리 좀 잡아줘요.”
수혁의 말에 유지환이 황당한 듯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냥 수혁 씨가 저쪽에서 잡고 있으면 될 일 아닙니까?”
시간도 없는데 굳이 자리를 바꾸는 이유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수혁에게도 나름대로의 이유는 있었다.
유지환의 능력을 믿긴 하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유지환보단 자신이 있는 편이 훨씬 대처하기가 수월했기 때문이었다.
유지환은 떨떠름한 얼굴로 사다리를 통해 반대편으로 건너갔다.
“됐습니다!”
유지환이 사다리를 잡고 있는 것을 확인한 수혁이 송미라를 향해 손짓했다.
“이쪽으로 오세요.”
송미라는 딸과 함께 쭈뼛거리며 수혁을 향해 다가갔다.
“혼자 건너실 수 있겠어요?”
수혁이 묻자 송미라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욱하게 퍼져 있는 연기 덕분에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송미라는 무섭긴 하지만, 이 정도는 건널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찮을 겁니다.”
수혁이 웃으며 그녀를 안심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