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111화.
수혁은 단숨에 6층까지 올라갔다.
걸린 시간은 고작해야 눈을 몇 번 깜빡일 정도에 불과했다.
불길과 연기 따위는 수혁의 앞길을 막을 수가 없었다.
세계 소방관 경기에서 마지막 4단계였던 계단 오르기 경기를 치를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속도였다.
유지환이 확보되지 않은 시야와 불길에 가로막혀 3층밖에 오지 못한 사이, 수혁은 6층에 도달할 수 있었다.
‘생명 감지Ⅱ’를 이용해 요구조자가 있는 집을 찾아낸 수혁은, 일단 현관에 귀를 가져다 댔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잠시 장갑을 벗고 손잡이에 손을 가져다 대봤다.
열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됐어.’
박정우에게 부상을 입힌 백 드래프트 현상의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이 집까지는 아직 화재가 번지지 않은 것 같았다.
그것을 확인한 수혁은 망설이지 않고 손잡이를 발로 찼다.
콰앙-!
쇠로 된 손잡이는, 한 번의 발길질도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박살이 나며 떨어져 나갔다.
수혁은 그대로 현관문을 잡아 뜯듯 열어 재꼈다.
집 안에 가득 들어차 있는 연기 사이로 사람의 실루엣이 보였다.
‘요구조자!’
어째서 화장실에 있어야 할 요구조자가 밖에 있는 것일까?
“괜찮으십니까!”
수혁은 기겁하며, 요구조자를 향해 쏜살처럼 달려갔다.
요구조자는 퀘스트에 나왔던 엄마였다.
그녀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물에 젖은 수건으로 코와 입을 막고 있었다.
수혁은 재빨리 보조 마스크를 꺼내 그녀의 얼굴에 씌웠다.
그러면서 다급히 물었다.
“딸은 어디 있습니까?”
그녀가 제정신이었다면 수혁의 질문에 의문을 가졌을 테지만, 지금은 그럴 정신이 아니었다.
그저 손을 들어 바로 옆에 있는 문을 가리켰다.
수혁은 곧바로 그 문을 열었다.
그녀가 가리킨 곳은 화장실이었다.
욕조 한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울고 있는 딸의 모습이 보였다.
화장실에 혼자 남아 울고 있던 딸은, 갑자기 나타난 수혁의 모습에 잔뜩 겁을 먹은 듯, 몸을 움츠렸다.
“안녕? 아저씨는 소방관이야.”
수혁은 아직 열 살 정도밖에 되지 않아 보이는 딸이 놀라지 않게 조심히 다가갔다.
“괜찮아, 엄마 여깄어.”
수혁의 뒤쪽에서 송미라가 나타나, 자신의 딸을 안심시켰다.
엄마의 모습이 보이자, 딸은 더 큰 울음을 터트렸다.
수혁은 보조 마스크를 꺼내 딸의 얼굴에 가져다 댔다.
딸은 겁을 집어먹었지만, 수혁의 행동에 저항하지는 않았다.
다행히 안전하게 마스크를 씌운 수혁은 딸을 안아 들었다.
“여기 있습니까?”
그제야 도착한 유지환이 열려 있는 현관으로 들어오며 수혁을 불렀다.
“이쪽입니다!”
수혁이 대답하자, 유지환이 빠르게 화장실로 다가왔다.
“요구조자 두 명 확보했습니다.”
송미라와 그녀의 딸을 확인한 유지환이 무전기를 들어 보고했다.
“계단으로는 못 내려갑니다.”
유지환은 요구조자들이 듣지 못하게, 작은 음성으로 수혁에게 속삭였다.
지금 계단은 연기와 불길이 가로막고 있었다.
마스크를 착용했으니 연기는 괜찮았지만, 불은 아니었다.
불을 피해 밖으로 대피하던 사람들이 문을 활짝 열어 놓고 나가는 바람에, 불길이 계단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방화복을 입은 유지환조차도 여기까지 올라오는데 꽤나 애를 먹을 정도였다.
그러니 방화복은커녕 반팔, 반바지를 입고 있는 두 모녀는 절대로 계단으로 이동할 수 없었다.
최선의 방법은 사다리차로 내려가는 건데…….
“상태 형, 사다리차 준비 됐어요?”
수혁은 유지환에게 모녀를 맡기고는 한쪽으로 가서 박상태에게 무전을 했다.
[사다리차 없다. 길이 너무 막혀서 오는 데 시간이 걸린단다. 요구조자들 상태는 어때?]
그리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요구조자들은 아직 괜찮습니다. 그런데 나갈 방법이 없어요.”
오래된 빌라였으니, 완강기도 설치가 되어 있지 않을 것이다.
설사 있다 하더라도 아래층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는 불길 덕분에 안전하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서두르라고 연락해 두마. 그때까지 조금만 버텨봐.]
“일단 알겠습니다.”
수혁은 무전을 끊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박상태는 버티라고 했지만, 솔직히 버틸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산소의 양에도 한계가 있었고, 언제 불길이 여기까지 번질지도 알 수가 없었다.
‘위험 감지Ⅱ’가 발동되지 않는 것으로 봐선 아직 시간이 있는 것도 같았지만, 그것도 확신할 순 없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미뤄봤을 때, ‘위험 감지Ⅱ’는 오직 수혁이 위험할 경우에만 발동이 되었으니까.
만약 요구조자들은 위험한 상황이라도, 수혁에게 별다른 위험이 없다면 발동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렇기에 수혁은 ‘위험 감지Ⅱ’ 스킬을 전적으로 신뢰하진 않았다.
잠시 고민하던 수혁은 유지환을 불렀다.
“옥상으로 올라가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은 그것이 가장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렇게 하죠.”
유지환 역시 수혁의 말에 동의했다.
수혁과 유지환은 다시 화장실로 돌아갔다.
“지금 당장은 탈출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 그럼 어떻게 하나요?”
소방관들이 왔으니 이제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못 나간다니 겁이 덜컥 났다.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얼마 안 있어 사다리차가 올 테니까요. 그때까지는 옥상으로 피신해 있는 것이 좋겠습니다.”
수혁이 안심하라는 듯 웃으며 담담히 말하자, 송미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혁은 송미라의 품에 안겨 있던 딸을 안아 들었다.
“아저씨만 믿어. 금방 구해줄게.”
딸은 겁을 먹어서인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수혁의 목을 안은 팔에 힘을 줄 뿐이었다.
“갑시다.”
수혁은 딸을 안은 채 앞장서 계단을 올랐다.
유지환은 송미라와 함께 그 뒤를 따랐다.
“……잠겨 있네요.”
옥상 문은 잠겨 있었다.
슬쩍 유지환의 눈치를 살핀 수혁이, 발을 들어 문을 박찼다.
콰드득-!
문고리가 박살이 나며, 너무도 쉽게 문이 열렸다.
그 모습을 본 유지환이 허! 하고 헛웃음을 내뱉었다.
수혁이 괴물이란 건 잘 알고 있었지만, 한 번의 발길질로 잠겨 있던 철문을 열어버릴 줄이야.
‘아니, 생각해 보면 이 정도는 별거 아니지.’
전에는 추락하는 승강기를 한 손으로 붙잡아 멈춰 세운 적도 있지 않던가?
그때에 비하자면 발로 차서 철문을 박살 내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옥상으로 올라가자, 환한 빛이 그들을 맞이했다.
“아직 벗지 마세요.”
밖이라는 생각에 마스크를 벗으려던 송미라를 수혁이 제지했다.
아무리 안쪽보다 연기가 드물다고는 하지만, 옥상에도 연기가 퍼져 있었다.
질식은 하지 않겠지만, 몸이 상할 수가 있었다.
수혁이 말리자 송미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내렸다.
그리곤 딸이 쓰고 있는 마스크도 다시 한 번 점검했다.
“이제 어떡하죠?”
유지환이 수혁에게 물었다.
하지만 수혁이라고 뾰족한 수가 있을 리가 없었다.
사다리차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수혁은 유지환을 향해 잠시 기다리라고 말한 뒤, 난간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아래를 내려다봤다.
빌라 주변에는 두 대의 펌프차가 있었고, 거기에 연결되어 있는 호스를 통해 조연서의 화재 진압대가 열심히 물을 뿌리고 있었다.
하지만 고작 그 정도만으론 불길을 잡기엔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두 대 중 한 대는 옆 빌라로 화재가 번지지 않게 하기 위해 방수를 하고 있었으니, 더욱 그랬다.
‘우리 펌프차는 언제 도착하는 거지?’
전의 현장에 있던 펌프차들도 곧장 이곳으로 출동할 것이라고 했었다.
그런데 아직까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봐선, 그들 역시 길이 막혀 시간이 걸리는 듯했다.
“음…….”
수혁은 심각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폈다.
‘빠져나갈 곳이 아예 없진 않은데.’
옆 빌라와의 거리는 고작해야 2m 남짓이었다.
이 정도라면 충분히 건널 수 있는 거리였다.
하지만 그것은 수혁이나 유지환에게나 충분했지, 두려움에 몸이 굳어 있는 요구조자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뭔가 받칠 것이 있으면 좋겠는데.’
고작 2m.
만약 빌딩 사이를 연결할 수 있는 받침대가 있다면, 요구조자들도 건널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옥상에는 그럴 만한 것이 눈에 띄지 않았다.
하다못해 작은 벤치라도 하나만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수혁은 옆 빌라의 옥상도 한번 살펴보았다.
“어?”
수혁의 눈에 뭔가 들어왔다.
‘사다리다.’
옥상 한쪽 구석에 놓여 있는 작은 사다리.
한동안 사용을 하지 않았는지, 녹이 잔뜩 슨 것 같았지만, 사람 한두 명을 지탱하기엔 충분해 보였다.
그것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던 수혁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저건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두자.’
아직 옥상은 안전했다.
봄베의 산소도 많이 남아 있었고, 불길이나 연기도 지금까진 괜찮았다.
사다리차도 오고 있었고.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변하게 될지는 알 수 없었지만, 굳이 위험하게 이 방법을 사용할 필요는 없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사다리를 염두에 두고는 요구조자들을 향해 돌아갔다.
“여기서 기다리죠.”
“저희 괜찮은 건가요?”
송미라는 여전히 불안에 몸을 떨었다.
“네. 지금 길이 좀 막혀서 사다리차가 오는 데 시간이 걸리고 있긴 한데, 도착하면 곧바로 그걸 타고 여기서 내려갈 겁니다.”
하지만 송미라는 수혁의 말에도 안심이 되지 않는 듯했다.
하긴, 이런 상황에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나저나 상황대처를 아주 잘하셨던데요?”
수혁이 웃으며 그녀를 칭찬했다.
수혁은 그녀의 집 안 곳곳에서 그녀가 취한 조치를 확인할 수가 있었다.
수건과 테이프를 이용해 연기를 막고, 물에 적신 수건으로 호흡기를 보호하는 등의 행동 말이다.
수혁이 도착할 때까지 송미라와 그녀의 딸이 살아 있을 수 있었던 건, 그 덕분이었다.
“예전에 TV에서 본 적이 있어서…….”
“잘하셨어요. 어머니가 따님을 살린 겁니다.”
수혁은 딸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었다.
수혁의 칭찬이 부끄러웠는지, 송미라는 살짝 몸을 비틀었다.
이래서 재난 대비 교육이 중요했다.
만약 송미라가 이런 대처방법을 몰랐다면, 십중팔구는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집 안에서 어쩔 줄 몰라 갈팡질팡하다 사망했던가, 무리하게 빠져나가려다 계단에서 사망하던가.
그것도 아니면 패닉 상태에 빠져 빌라 밖으로 뛰어내렸을 수도 있었다.
수혁은 그녀가 기특했다.
“남편분은 지금 출근을 하셨나요?”
수혁은 그녀의 주의를 돌리기 위해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네, 네. 지금 회사에…….”
“어떤 일을 하세요?”
“디자인 쪽 일을 하고 있어요.”
대화가 이어질수록 송미라는 조금씩 진정이 되는 것 같았다.
“남편분이 퇴근하면 많이 놀라시겠네요.”
수혁의 말에 송미라가 쓴웃음을 지었다.
뉴스나 영화에서나 봤던 일이 자신에게 일어났다는 것이, 아직도 실감이 나질 않았다.
“너는 이름이 뭐니?”
수혁은 이번엔 딸을 향해 물었다.
“예은이요. 유예은.”
유예은은 송미라의 품으로 파고들며 작게 대답했다.
“그래, 예은이. 아직도 무서워?”
수혁이 묻자 유예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화장실에 혼자 남겨 있을 때보다 낫긴 했지만, 무서운 건 여전했다.
“아저씨가 금방 구해줄 테니까, 너무 무서워하지 않…….”
콰광-!
수혁의 말을 끊고, 갑작스럽게 폭발음이 들렸다.
동시에 옥상 전체가 흔들릴 정도로 강한 진동이 느껴졌다.
‘……가스폭발?’
서로 시선을 마주친 수혁과 유지환의 얼굴에 다급함이 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