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110화.
예상했던 대로 화재는 처음 신고가 들어 왔을 때보다 훨씬 심각한 상태였다.
6층짜리 빌라 건물이 통째로 타오르고 있었다.
건물 사이가 그리 넓지 않은 빌라촌의 특성 때문에, 조연서에서 출동한 화재 진압대는 불길이 옆 건물로 옮겨붙지 않게 하는 것에 사활을 걸고 있었다.
현장을 지켜보던 수혁은, 기다렸다는 듯 눈앞에 떠오른 퀘스트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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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 요구조자들을 모두 구조하라.
*내용 : 부주의로 인해 사람들의 보금자리에 화재가 발생했다. 다행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밖으로 탈출하는 것에 성공했지만, 6층에서 잠을 자고 있던 모녀는 불길에 가로막혀 빠져나갈 수가 없는 상황이다. 아직은 생존해 있지만, 시간이 많지 않다. 모녀가 생명을 잃기 전, 구조하라.
*보상 : 경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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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구조자는 두 명.’
상황실에서 알려온 것과 일치했다.
수혁이 퀘스트에서 가르쳐 준 6층을 쳐다보았다.
베란다 쪽을 통해 시커먼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저 속에서 아직 살아 있다고?’
화재로 인한 연기는 그 자체로 유독가스다.
한 모금만 들이켜도 정신이 혼미해지고, 만약 정신을 잃는다면 그대로 목숨을 잃을 정도로 말이다.
그런 연기가 저렇게 심하게 피어오르는 곳에서 생존해 있다는 말은…….
‘화장실이다!’
저만한 연기를 피할 만한 곳은 거기밖엔 없었다.
“상태 형.”
조연서 화재 진압대의 팀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박상태가 말을 멈추고 수혁을 돌아봤다.
“올라가야 돼요.”
“무슨 소리야? 일단은 이쪽이랑 얘기해서 길을 열어야…….”
“그럴 시간 없어요, 형.”
말을 하는 수혁의 표정에는 다급함이 서려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박상태가 이야기를 나누던 팀장에게 잠시 양해를 구하고는, 수혁과 함께 자리를 옮겼다.
“왜 그래, 갑자기?”
박상태가 이상하다는 듯 수혁에게 물었다.
“말 그대로예요. 시간이 없어요. 지금 당장 올라가야 해요.”
“……서둘러야 한다는 건 나도 알아. 근데 지금 방법이 없잖아.”
불길은 빌라 전체를 불태우고 있었다.
당연히 계단은 화염과 연기로 가득 들어차 있을 것이다.
화재 진압대의 지원이 없다면, 아무리 장비를 착용한 상태라고 해도 진입하는 건 무리였다.
“그래도 들어가야 돼요.”
수혁이 오랜만에 고집을 부렸다.
그리고 박상태는 수혁이 이렇게 나올 땐,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하지만 박상태는 망설였다.
예전이었다면 수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겠지만, 지금은 그런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이수열의 모습이 박상태의 뇌리를 스쳐지나갔기 때문이었다.
수혁을 믿긴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잘못된다면?
박상태는 또다시 동료 대원의 장례식에 참가하고 싶지 않았다.
“위험해.”
“알고 있어요.”
박상태의 진지한 표정에 수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위험한 상황이다.
불길은 전혀 잡히지가 않았고, 연기는 시야를 가렸으며, 화재로 인해 약해진 콘크리트가 무너져 내릴지도 모른다.
위험천만한 상황인 건 수혁도 인정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가야 돼요.”
수혁의 표정은 단호했다.
“지금 가지 않으면, 요구조자들 다 죽습니다. 시간 없어요.”
박상태는 그런 수혁을 잠시 쳐다보다,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설사 자신이 허락하지 않는다 해도, 수혁은 혼자서 움직일 것이 뻔했다.
그런 표정이었다.
“그럼 유지환이랑 준비해서 같이 올라가.”
수혁은 대답하는 대신 몸을 돌려 달렸다.
박상태를 설득하는데 이미 많은 시간을 낭비했다.
더는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다.
“지환 씨!”
수혁은 준비된 장비를 빛의 속도로 착용을 하며 유지환을 불렀다.
“올라갈 준비해요, 지금 바로!”
유지환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지만, 수혁의 말대로 빠르게 준비를 끝마쳤다.
“갑시다!”
“지, 지금 말입니까? 우리 둘만?”
“설명할 시간 없으니까 따라와요.”
수혁은 유지환을 기다려 줄 생각이 없는 듯, 그대로 빌라 입구를 향해 다가갔다.
“어, 어?”
갑작스런 수혁의 행동에 조연서의 소방관들이 눈을 크게 떴다.
“아니, 아직 진입하면 안 됩니다!”
그중 한 명이 수혁을 붙잡기 위해 움직였지만, 수혁이 한발 빨랐다.
“가죠.”
수혁은 머뭇거리는 유지환을 한번 쳐다보고는, 그대로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
유지환은 그런 수혁의 뒷모습을 보며 잠시 머뭇거리다, 이내 입술을 깨물며 뒤를 따랐다.
밖에 남겨진 사람들은 멍하니 둘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
***
송미라는 자꾸만 흘러내리려는 눈물을 억지로 참아냈다.
지금 자신이 울면, 딸은 더욱 불안해할 것이 틀림없었으니까.
“엄마…….”
송미라 품 안에서 오들오들 떨던 딸이 그녀를 불렀다.
“우리 죽어?”
“죽긴 누가 죽는다고 그래? 조금만 있으면 소방관 아저씨들이 구하러 올 거야. 밖에 소방차 소리 들리지?”
“응.”
송미라는 딸을 안심시키려 노력했지만, 사실 그녀도 무섭기는 마찬가지였다.
‘대체 왜 이렇게 된 거지…….’
오늘은 평소와 다름없는 날이었다.
딸의 몸이 조금 좋지 않아 학교를 쉰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평소처럼 청소하고, 빨래도 한 뒤, 잠을 자고 있는 딸의 옆에 누워 잠시 눈을 붙였다.
그렇게 얼마나 잤을까?
딸이 다급히 몸을 흔드는 바람에 눈을 떴더니, 이런 상황이었다.
밖으로 도망쳐 보려고 했지만, 이미 계단 쪽은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을 만한 곳이 아니었다.
고작 열 살밖에 되지 않는 딸을 데리고 창문 밖으로 뛰어내릴 수도 없었다.
결국 그녀가 선택한 것은 집 안에 머무는 것이었다.
일단은 화장실로 달려가 수건들을 모두 꺼내왔다.
그러곤 수건에 물을 적셔 현관과 창틈을 모두 막기 시작했다.
불이 어디서 시작되고, 어디까지 번진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아직 자신의 집까지 불이 옮겨붙진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럼 연기만 막으면 된다.
예전에 TV를 통해 봤던 것을 이렇게 써먹게 될 줄은 정말 상상도 해보지 못했다.
눈에 보이는 모든 틈을 수건으로 막고 나니, 어느 정도 안심이 됐다.
이제 집 안에서 소방관들이 구하러 올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은 그렇게 쉽게 풀리지 않았다.
아래층에서 불길이 치솟아 오르기 시작했고, 열기를 버티지 못한 거실창이 깨져 버리고 만 것이다.
그러자 창문 틈을 막은 것이 무색하게도 검은 연기가 집 안으로 밀려들어 오기 시작했다.
“안으로 들어가!”
송미라는 기겁하며 딸을 화장실 안쪽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자신은 남은 수건과 테이프를 챙기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욕조에 들어가 있어.”
송미라는 다급히 딸을 향해 소리치고는 수건에 물을 적셔 화장실의 문틈을 막았다.
“엄마, 여기!”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딸이 손가락으로 천장을 가리키고 있었다.
천장에 달려 있는 환풍구에서 연기가 스멀스멀 들어오고 있었다.
송미라는 재빨리 테이프를 뜯어 환풍구를 막았다.
그러곤 욕조 안으로 들어가 딸을 품에 안았다.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그녀의 몸은 사시나무 떨듯 떨리고 있었다.
“이제 괜찮아, 이제 괜찮아.”
딸의 등을 쓰다듬으며 그렇게 되뇌었다.
딸을 진정시키기 위해 하는 말인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이 정도면 안전하다고.
이제 위험하지 않다고.
송미라는 애써 그렇게 자신을 안정시켰다.
“소방관 아저씨들은 언제 와?”
화장실에 들어온 지 10분 남짓 지나자, 딸이 물었다.
밖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는 것으로 봐선, 소방관들이 출동한 것이 분명했다.
“곧 오실 거야.”
하지만 그로부터 10분이 더 지났는데도 자신들을 구하러 올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아차!’
송미라는 자신이 뭔가를 잘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신들이 이곳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소방관들이 알 리가 없었다.
화장실로 대피한 후, 가만히 기다릴 것이 아니라, 119에 신고를 했어야 했다.
송미라는 그제야 자신의 스마트폰을 찾았다.
‘없어?’
이 난리통에 스마트폰을 챙길 정신이 어디 있었을까?
그녀는 스마트폰을 낮잠을 자던 안방에 두고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떡하지?’
화장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스마트폰을 가지고 온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두렵기도 했지만, 연기로 가득 차 있는 밖은 너무도 위험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는 말인데…….
대체 언제 구조하러 올 줄 알고 가만히 기다린단 말인가?
‘만약 구하러 오지 않으면 우린 어떻게 되는 거지?’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다.
그런 불안해하는 송미라의 얼굴을 본 딸이 결국 ‘으아앙!’ 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송미라는 딸의 울음소리에 깜짝 놀라며 팔에 힘을 줘 더 강하게 안아주었다.
“뚝! 울지 마. 울긴 바보처럼 왜 울어? 조금 있으면 소방관 아저씨들이 구하러 올 텐데. 너 이렇게 우는 거 그 아저씨들이 보면 울보라고 놀릴 거야.”
딸을 진정시키는 그녀는, 긴장과 두려움으로 인해 입안이 바짝 타들어가고 있었다.
‘조금만 기다리면 돼. 반드시 구하러 올 거야.’
자신과 딸이 이곳에 갇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송미라는 소방관들이 분명 자신들을 구하러 올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 믿음은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약해졌다.
지금 당장에라도 문을 뚫고 시뻘건 불길이 이곳을 덮칠 것만 같았다.
1분, 1초가 흐를 때마다 그런 두려움이 더욱 커져만 갔다.
‘반드시 구하러 올 거야’라는 생각이, ‘과연 구하러 올까?’로 변하는 것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대로 가만있다가는 구조되기 전에 죽을 것만 같았다.
자신은 몰라도, 딸은 절대 여기서 죽어선 안 된다.
아직 채 피지도 못한 인생이다.
조금 더 인생을 살며,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남자친구도 만나보고, 즐겁게 여행도 다녀야 했다.
“여기서 움직이지 말고, 엄마 기다리고 있어.”
“어, 어디 가게?”
딸이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송미라를 쳐다봤다.
“금방 올 거야. 걱정하지 말고, 여기서 꼼짝 말고 있어야 돼. 알았지?”
송미라는 빠르게 안방으로 가서 스마트폰을 들고 올 생각이었다.
자신들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조금이라도 더 빨리 구조를 해줄 것 같았다.
위험하긴 하겠지만…….
딸을 살리기 위해선 그깟 위험쯤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다.
심호흡을 하며 굳게 마음을 먹은 송미라는 물에 적신 수건을 입에 가져다 대고는, 천천히 화장실 문을 열었다.
아주 조금만 열었음에도, 검은 연기가 안쪽으로 쏟아지듯 들어왔다.
‘빨리 나가야 돼!’
연기가 화장실 안으로 들어오면 들어올수록, 딸이 위험했다.
송미라는 재빨리 문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때.
콰앙-!
굳게 닫혀 있던 현관문이 박살 나는 소리와 함께, 활짝 열렸다.
검은 연기 사이로 환하게 빛나는 불빛.
그리고 그토록 애타게 기다렸던, 소방관의 음성이 들려왔다.
“괜찮으십니까?!”
수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