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 107화.
대회와 함께 축제도 계속됐다.
소방관 요리 대회, 소방 동요 대회, 페인트볼 서바이벌 게임, 오리엔티어링 같은 이색적인 대회도 있었고, 맥주 축제나 소방 산업 엑스포 같은 볼거리들도 많았다.
그 외에도 ‘세계 소방관 올림픽’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농구, 당구, 럭비, 레슬링, 마라톤 같은 기본적인 종목들도 계속해서 열렸다.
수혁은 최은송과 함께 남은 기간 동안 그것들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먹거리도 많고, 볼거리도 많았기에, 노잼 도시라는 대전의 명성과 어울리지 않게 즐거웠다.
하지만 그 즐겁고 한가롭던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대회의 끝이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남은 일정은 폐막식밖에 없었다.
“아쉽네요, 벌써 끝나다니.”
“그러게요.”
최은송은 아쉬움 가득한 눈동자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바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수많은 노점들과 사람들로 북적이던 곳이, 이제는 조금 한산해 보였다.
“폐막식 끝나면 좋은 데 가서 밥 먹고 올라갈까요?”
수혁은 최은송의 아쉬움을 눈치채고는 제안했다.
“그럼 저야 좋죠.”
최은송의 눈이 부드러운 호선을 그렸다.
“시애도 조금 더 놀다 갔으면 좋았을 텐데.”
“뭐, 요즘 워낙 바쁘다니 어쩔 수 없죠.”
수혁의 응원차 왔던 시애는 스케줄에 밀려 밥 한 끼 먹지 못하고 다시 서울로 올라가 버렸다.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내서 응원을 와준 것이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다음에 집에 다시 초대해야겠어요. 맛있는 거 해 먹여야지.”
수혁은 최은송의 마음씀씀이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은 들어갈까요?”
폐막식 시간이 다가왔다.
수혁은 잠시 최은송과 떨어져 안쪽으로 들어갔다.
오늘 폐막식에는 수혁이 참가했던 최강 소방관 경기의 시상식도 있기 때문이었다.
수혁이 대기실로 들어가자, 소방관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세계 소방관 경기 대회의 수많은 종목 중 꽃이라 불리는 최강 소방관 경기의 우승자이자, 세계 신기록을 경신한 사람이니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율리안이 손을 들어 아는 척하자 수혁은 어색하게 웃으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오늘은 통역해 줄 진태용도 없었기에, 수혁은 그냥 한쪽에 앉아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주위의 소방관들이 자신을 쳐다보며 수군거리는 것이 들렸지만, 딱히 신경쓰진 않았다.
분위기로 봐선 욕을 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간간이 수혁을 향해 엄지를 들어 보이기도 했으니까.
그렇게 뻘쭘하게 대기하고 있던 시간이 얼마나 됐을까?
관계자 한 명이 들어와 최강 소방관 경기의 입상자들을 불렀다.
수혁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시상대는 화려했다.
‘무슨 영화제 시상식 같네.’
수혁이 생각해 왔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
시상대라기보단, 음악방송 스테이지가 더 어울릴 것 같았다.
“이제 이번 대회의 꽃! 최강 소방관 경기의 시상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수여에는 충청남도 행정부지사님, 소방청 차장님, 대전 시장님, 충남 소방본부장님. 네 분께서 순차적으로 소개해 주시겠습니다.”
깔끔하게 차려입은 사회자는 박수를 유도하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통합순위는 전체 급을 통틀어 기록이 가장 우수한 한 명에게 명예 챔피언 벨트를 드리고, 다음 순위 세 분께는 각각 1, 2, 3위 트로피가 수여됩니다.”
최강 소방관 경기는 연령 별로 그룹을 나누어 시행했다.
그중 수혁이 참가한 그룹은 18~29세까지인 오픈 그룹이었다.
“자, 발표하겠습니다. 최강 소방관 통합순위 3위는! 러시아의 안드레이 루블료프! 축하드립니다!”
3위는 바로 율리안과 함께 경기를 치렀던 안드레이였다.
소방관으로선 큰 영광의 자리였지만, 안드레이는 왠지 표정이 좋지 못했다.
율리안과 함께 경기를 치르며, 그의 속도에 놀라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계속해서 인상을 구기고 있을 순 없었는지라, 안드레이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트로피를 받아 들었다.
“통합순위 2위는, 독일의 필립 노먼! 축하드립니다!”
이번에는 필립이 만면에 환한 웃음을 머금고 시상대로 나갔다.
솔직히 그는 잘해야 3위 정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2위를 했으니, 기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엔 1위입니다. 최강 소방관 경기 통합순위 1위는, 바로 독일의 율리안 드락슬러!”
“우와아아!”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율리안은 이번 경기에서 수혁과 함께 가장 뛰어난 기량을 선보인 소방관이었다.
수혁에게 묻힌 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세계신기록을 40초나 단축시킨 주인공이기도 했고.
당연히 사람들의 반응이 뜨거울 수밖에 없었다.
율리안은 담담한 표정으로 시상대 위로 올라섰다.
화려하게 생긴 트로피를 받은 그는, 그제야 얼굴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마침내 발표할 때가 됐습니다. 영예롭고, 자랑스러운 최강 소방관 경기 통합 챔피언. 그 주인공은 대한민국의 김수혁!”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함성과 함께, 우레와 같은 갈채가 쏟아졌다.
수혁은 어색하기 그지없는 표정을 지으며 시상대로 걸어 올라갔다.
“축하드립니다!”
사회자와 함께 챔피언 벨트를 수여하러 나온 충남 행정부지사가 수혁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수혁은 벨트를 받아 들며 고개를 숙였다.
“한 번 차보시죠.”
사회자의 말에 수혁이 잠시 망설였다.
벨트를 받는 것까진 좋았지만, 왠지 착용하는 건 부끄러웠던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초를 칠 수는 없었기에, 내키지 않는 표정을 감추고는 벨트를 허리에 찼다.
그러자 다시 한 번 박수가 쏟아졌다.
“그럼 기념 촬영이 있겠습니다.”
수혁은 율리안의 옆에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고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밑으로 내려갔다.
새삼 느끼는 거지만, 수혁은 이런 행사가 너무도 부담스러웠다.
‘다음부턴 절대 참가하지 말아야지.’
내심 속으로 그렇게 다짐했다.
“수혁.”
떨떠름한 표정으로 벨트를 벗고 있는데, 율리안이 다가오며 수혁을 불렀다.
수혁이 돌아보자, 율리안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See you soon.”
그 말은 아무리 영어가 짧은 수혁이라도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한 문장이었다.
‘곧 보자고?’
전에 율리안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분명 그때도 조만간 독일에서 보자고 했던 것 같았다.
왜 계속 이런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수혁은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율리안은 만족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수혁은 그런 율리안의 뒷모습을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다, 이내 관심을 접고 최은송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렇게 세계 소방관 경기 대회가 막을 내렸다.
“왔냐, 챔피언.”
“다녀왔습니다.”
오랜만에 출근한 수혁을 가장 먼저 반겨준 것은 박상태였다.
박상태는 대견하다는 듯, 수혁의 어깨를 두들겼다.
“내 살다살다 우리나라에서 세계 챔피언이 나올 줄은 몰랐다야.”
“별거 없던데요?”
“허, 이 미친놈.”
수혁의 능청에 박상태가 헛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 말에 반대할 생각은 없었다.
수혁이라면, 정말로 그의 말대로 별거 아니었을 수도 있었으니까.
“제수씨랑은 좋은 시간 보냈고?”
“다행히요. 평소엔 어떤지 모르겠는데, 대회가 열려서인지 꽤 재밌는 걸 많이 하더라고요.”
“아, 나도 갔으면 좋았을 텐데…….”
박상태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비번에 가족들이랑 한 번 내려오지 그랬어요? 가족 단위로 구경 온 사람들 많던데.”
“나라고 그 생각을 안 했을까? 와이프가 귀찮으시단다. 매일 보는 소방관을 대전까지 내려가서 또 봐야 되냐고.”
수혁이 고소를 지었다.
그가 직접 박상태의 아내를 본 것은 딱 한 번뿐이었다.
바로 이전 생에서 순직한 박상태의 장례식장에서.
그때의 수혁은 그녀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박상태가 순직한 이유가 자신 때문이었으니, 도저히 볼 면목이 생기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 죄송하다고 한마디라도 했어야 했는데…….’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아, 그 한마디조차도 할 수가 없었다.
수혁은 괜히 답답해지는 마음에 한숨을 내쉬었다.
“갑자기 웬 한숨이냐? 무슨 고민 있어?”
“아무것도 아니에요.”
걱정스러운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박상태를 보며, 수혁은 다짐했다.
절대로 그때와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말이다.
“다른 사람들은 다 어디 갔어요?”
“글쎄다? 강식이는 아까 치즈 간식 준다면서 나갔고, 다른 놈들은 잘 모르겠네. 뭐, 단련실에서 운동이나 하고 있겠지.”
구조대원들이 업무를 끝마치고, 할 일이 없을 때 가장 많이 하는 것이 바로 운동이었다.
자리에 없다면, 운동을 하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럼 전 인사나 하고 올게요.”
오랜만의 출근이었으니 가서 인사라도 하고 올 생각이었다.
하지만 박상태가 그런 수혁을 붙잡았다.
“일단은 서장님한테 먼저.”
“아…….”
신일서의 서장은 명예욕이 많았다.
그런데 자신의 부하가 세계 대회에서 우승한데다, 세계 신기록까지 세웠으니, 당장에라도 얼굴을 보고 싶어 안달이 나 있을 것이 뻔했다.
괜히 떨떠름해진 수혁이 서장실로 향했다.
똑똑-
노크하자, 서장이 기다렸다는 듯 문을 열었다.
“오, 우리 수혁이 왔네?”
대체 언제부터 ‘우리’ 수혁이었는지 모르겠다.
“오늘 복귀했습니다.”
“그래그래, 수고 많았어. 아, 일단 안으로 들어와.”
서장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수혁을 안쪽으로 데리고 들어가더니, 소파에 앉혔다.
“뭐 마실래?”
“저는 괜찮습니다.”
“가만있어 보자……. 뭐가 있더라?”
수혁은 거절했지만, 서장은 그걸 듣지도 않는 모습이었다.
‘결국은 믹스커피면서.’
서장이 수혁에게 내준 것은 봉지커피 한 잔이었다.
“어서 마셔.”
흐뭇한 표정으로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서장의 모습에, 수혁은 어쩔 수 없이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내가 요즘 너 때문에 살맛이 난다.”
서장은 진심으로 기쁜 얼굴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중앙119구조본부장부터 소방청장까지 축하 전화가 연달아 왔으니 말이다.
평소에는 전화는커녕 목소리 한 번 듣기도 어려운 분들이었다.
그러니 서장의 기분이 날아갈 듯이 좋을 수밖에.
“청장님께서도 연락하셔서 너한테 축하한다고 전해달라 하시더라.”
그 말에 수혁은 놀랐다.
설마하니 청장까지 연락을 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수혁은 이번 대회에서 국가의 위상을 크게 높여주었다.
세계대회 첫 우승과 함께 세계 신기록을 보유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앞으로 대회에 참가하는 소방관들은 모두 대한민국과 수혁이라는 이름을 절대 모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좀 아깝네.”
서장은 손에 들고 있던 커피잔을 내려놓고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뭐가 말입니까?”
“네 진급 말이야. 이 정도면 진급 한 번 더 시켜도 좋을 정도인데……. 아쉽게도 그건 안 된다고 해서 말이지.”
서장은 진심으로 아쉬운 듯했다.
“그렇다고 성과상여금으로 퉁 치기에는 네가 보여준 게 너무 많고.”
“저는 괜찮습니다만?”
수혁은 정말로 괜찮았다.
성과상여금만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서장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서장이 뭔가를 떠올렸는지, 손뼉을 짝- 쳤다.
“너 휴가 갈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