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스큐 시스템-106화 (106/425)

레스큐 시스템 106화.

“음…….”

수혁은 자신의 기록을 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생각보다 좀 늦었네.’

수혁의 목표는 4분 40초였다.

그런데 그 목표에서 3초 정도 늦어버렸다.

‘팔이 다 안 나아서 그런가?’

경기를 치르며 팔의 통증을 느끼긴 했지만, 그것이 기록에 영향을 줄 정도인 줄은 몰랐다.

“뭐, 이 정도면 됐지.”

기존 세계 기록을 53초나 단축시켰다.

율리안의 기록보다는 13초가 앞섰고.

앞으로 경기가 남은 소방관들은 많았지만, 이 기록을 넘어서진 못할 것이다.

수혁은 나름대로 만족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딘가에서 자신을 보고 있을 최은송을 찾는 것이었다.

그런데 구경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저쪽에 앉아 있겠다고 했는데…….”

아무리 찾아도 최은송의 모습은 보이지가 않았다.

수혁은 일단 옷을 갈아입은 뒤 그녀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옷을 갈아입으러 가는 길은 쉽지가 않았다.

수혁의 기록을 기자들이 모두 그에게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김수혁 씨!”

“이쪽 한 번만 봐주세요, 김수혁 씨!”

보통이라면 이런 경기에서 우승한다고 해도, 이런 식의 열기는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열린 경기에 한국인이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는 점.

그리고 그 주인공이 수혁이라는 사실에 기자들은 흥분했다.

수혁은 우리나라 소방관 중 가장 유명한 사람 아니던가.

가뜩이나 요즘 예능을 통해 그 이름이 대중에게 더욱 잘 알려졌기 때문에, 기자들은 앞뒤 재지 않고 달려들었다.

“어, 어…….”

하이에나처럼 달려드는 기자들의 모습에 당황한 수혁이 뒷걸음질을 쳤다.

하지만 기자들은 그런 수혁을 놓치지 않고 계속 따라붙었다.

“잠시만요! 경기에 방해되니까 조금 물러나 주세요! 아니, 대체 여기까지 어떻게 들어온 거야!”

보다 못한 관계자들이 기자들의 앞을 막아섰다.

수혁을 취재하는 건 좋다.

그들도 흥분할 정도의 기록을 세운 주인공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로 인해 경기 진행에 방해가 되는 것은 원치 않았다.

국내 대회도 아니고, 전 세계 사람들이 함께하는 대회에 이런 무질서한 모습을 보여줄 순 없었다.

관계자들이 기자들을 억지로 끌어냈다.

“김수혁 씨, 이쪽으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멀뚱히 서서 눈만 깜빡이고 있던 수혁을, 한 관계자가 안쪽으로 안내했다.

“아, 감사합니다.”

“힘드시겠습니다. 안 그래도 방금 경기를 마쳐서 지치셨을 텐데.”

관계자는 안쓰러움과 경의를 담아 수혁을 쳐다보았다.

“괜찮습니다.”

그제야 수혁의 표정이 풀어졌다.

“그럼 안쪽에서 쉬고 계십시오. 아직 경기는 많이 남아 있으니까.”

“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수혁은 관계자에게 꾸벅- 고개를 숙인 뒤 안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경기를 마친 소방관들이 그런 수혁을 감탄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하지만 다행히 다가오는 사람은 없었다.

“대단하더군.”

……방금 전까진 말이다.

수혁이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낯익은 사람이 서 있었다.

“율리안?”

수혁에게 말을 건 사람은 바로 율리안이었다.

그는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필립과 함께 수혁의 곁으로 다가왔다.

“인상 깊은 실력이었다.”

율리안은 수혁에게 손을 내밀며 영어로 말했다.

독일어가 일반적으로 사용되지 않는 한국이었기에, 배려해서 영어를 사용한 것이지만, 수혁이 못 알아듣는 건 마찬가지였다.

수혁은 율리안이 자신을 쳐다보는 눈빛이 호의적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곤 손을 마주잡았다.

“아이 캔트 스피크 잉글리시.”

수혁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을 하자, 율리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쪽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수혁도 낯익은 사람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경기 잘 봤습니다, 수혁 씨.”

바로 진태용이었다.

그는 왠지 자랑스럽다는 표정으로 수혁에게 인사를 건넸다.

“율리안이 인상 깊은 실력이었다며, 대단하다고 하네요.”

“아, 고맙다고 전해주세요.”

진태용이 율리안과 수혁 사이에서 통역해 주었다.

“대체 어떻게 훈련했기에 그런 실력이 나오는지 궁금하군.”

율리안의 물음에 수혁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퀘스트를 열심히 깨서 레벨 업을 했다고 대답할 순 없었으니까.

“그냥 열심히……?”

왠지 소극적인 대답에 율리안이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다행히 그것에 대해 자세하게 물어볼 생각은 없어 보였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독일에 한번 와줄 수 있나? 우리 대원들에게 네 실력을 한번 보여주고 싶다. 거기엔 너의 활약을 믿지 않는 놈들이 대부분이거든. 이 녀석을 포함해서 말이야.”

율리안이 10유로를 잃고 뚱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필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럴 시간이 있으려나 모르겠습니다만…….”

“시간이야 내면 그만이지.”

수혁은 율리안이 한국의 소방관들이 어떤 근무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걸 알고 있다면 저렇게 쉽게 시간을 내면 된다는 말을 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렇다고 열악한 근무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진 않았기에, 수혁은 대충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율리안은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조만간 독일에서 보도록 하지.”

율리안은 다시 한 번 수혁과 악수를 하고는 돌아갔다.

생각보다 주변이 복잡해지자, 수혁은 차라리 적당히 기록을 내고 입상이나 노릴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고맙습니다, 수혁 씨.”

갑자기 뜬금없는 진태용의 말에 수혁이 그게 무슨 말이냐는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이런 대회에 나가면 아시아권 사람들은 은연중에 무시를 당하곤 하거든요.”

동양인의 기본적인 신체 능력이 서양인에 비해 부족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대놓고 무시하지는 않지만, 조금 얕보는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했다.

그런데 수혁이 압도적인 실력으로 세계신기록을 세워버렸으니, 앞으로는 자신들을 보는 시선이 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진태용은 그것에 대해 감사를 한 것이었다.

“아, 그렇다고 모두가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소방관들도 사람이다 보니… 어딜 가나 그런 사람들 있지 않습니까? 수혁 씨한테 까불었던 올리버라던지.”

수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방관이라고 해서 모두가 고결함을 품고 사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 역시 사람이었고, 감정이 있었으며, 살아온 환경이 모두 달랐다.

그러니 율리안 같은 사람도 있는 거고, 올리버 같은 사람도 있는 것이다.

“아무튼 수혁 씨 덕분에 괜히 저까지 어깨가 으쓱해지네요.”

진태용은 웃으며 수혁에게 인사를 하고는 돌아갔다.

분에 넘치는 칭찬에 민망해진 수혁이 머리를 긁적였다.

진태용의 말을 듣자, 조금 전 했던 후회가 눈 녹듯 사라져 버렸다.

최은송을 위해 경기한 것이었지만, 그것을 진태용같이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 주는 사람도 생겼다.

열심히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차, 은송 씨 찾으러 가야지.”

수혁은 급히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켰다.

그러자 부재중 전화가 열 통이 넘게 와 있었다.

그중 대부분은 박상태를 비롯한 구조 3팀의 대원들이었고, 마지막에 걸려온 전화는 최은송이었다.

수혁은 다른 사람들의 전화는 무시하고 일단 최은송에게 가장 먼저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잠시의 신호가 흐른 뒤, 최은송이 전화를 받았다.

왠지 주변이 웅성거리며 시끄러운 듯 하자, 수혁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아, 은송 씨. 어디에요?”

[아, 지금 누구 왔는데……. 잠시 밖에 나와 있어요. 사람들이 너무 몰려서.]

횡설수설하는 최은송의 말에 수혁이 더욱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대체 누가 왔기에 사람이 몰렸단 말일까?

“일단 어디에요? 내가 그쪽으로 갈게요.”

[여기가 4번 게이트 쪽에… 아니, 그냥 제 차 주차한 곳으로 와줘요, 수혁 씨.]

“금방 갈게요.”

수혁은 전화를 끊고, 바로 짐을 챙겨 최은송이 차를 주차시켜 놓은 곳으로 향했다.

밖으로 나가 주차장이 있는 곳으로 간 수혁의 눈이 동그래졌다.

사람이 몰렸다기에 그냥 그렇구나 했는데…….

많아도 너무 많았다.

“이게 무슨 일이야?”

수십 명의 사람이 한쪽에 모여 있었다.

수혁이 빠르게 그곳으로 다가가자, 잘 아는 얼굴이 보였다.

“어?”

바로 버블걸스의 시애였다.

그녀는 당황한 기색이었지만, 밝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수혁 씨!”

그 옆쪽에 있던 최은송이 수혁을 발견하고는 반색하며 불렀다.

“수혁?”

“김수혁이지?”

“와, 진짜 김수혁이야!”

시애에게 향했던 관심이, 순식간에 수혁에게로 옮겨왔다.

“아, 하하하. 안녕하세요.”

수혁이 어색하기 그지없는 미소로 최은송을 쳐다봤다.

그러자 그녀는 자신도 이렇게 될 줄 몰랐다며 울상을 지었다.

“죄송하지만 조금 물러나 주세요! 지금은 개인적인 일로 온 거라, 사인이나 사진 요청은 받지 않습니다!”

시애의 매니저로 보이는 건장한 남성이 비지땀을 흘리며 사람들을 몰아냈다.

“부탁드립니다! 죄송합니다!”

그의 노력 덕분일까?

사람들은 아쉬워하면서도 더는 민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듯 뒤로 물러섰다.

그제야 수혁은 최은송과 시애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오빠!”

그제야 수혁을 발견한 시애가 활짝 웃으며 인사를 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수혁이 묻자 최은송과 시애가 동시에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냥 응원하러 온 건데… 어떻게 다들 알아보시고 이렇게 됐어요.”

둘 다 이렇게 복잡해질 줄은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주변이 조금 조용해지자, 세 사람은 시애의 차량으로 이동해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경기는? 봤어요?”

혹시 이 난리통에 경기도 못 본 게 아닐까 싶어 물었다.

“아, 경기는 당연히 봤죠.”

최은송이 걱정 말라는 듯,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진짜 대단했어요! 와,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빨라요?”

시애 역시 경기를 본 듯 잔뜩 흥분한 얼굴로 방방 뛰었다.

“아, 그런데 아쉽게도 기록은 확인 못 했어요. 그전에 시애가 걸리는 바람에 밖으로 나와야 했거든요.”

최은송이 아쉽다는 듯 혀를 찼다.

“오빠, 몇 등이에요?”

시애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직은 모르지, 경기도 다 안 끝났는데.”

“그럼 기록은 몇 분이에요? 아까 보니까 세계 신기록이 새로 나왔다면서 엄청 시끄럽던데. 그 사람이랑 차이 많이 나요?”

율리안의 경기를 본 것 같았다.

“음, 차이가 조금 나긴 하지.”

그 말에 시애가 살짝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왕이면 수혁이 더 잘했으면 했는데…….

“뭐, 세계 대회니까 어쩔 수 없죠. 소방관 올림픽이나 다름없잖아요.”

그런 시애의 모습을 보며 최은송이 미소를 지었다.

아직 시애는 눈치채지 못한 것 같지만, 그녀는 수혁의 얼굴을 보고 알 수 있었다.

분명 수혁의 기록은 율리안보다 좋다는 것을 말이다.

“기록이 얼마나 나왔어요?”

최은송은 웃는 얼굴로 수혁에게 물었다.

그러자 수혁이 씨익- 하고 웃으며 대답했다.

“4분 43초.”

수혁의 대답에 시애가 잠시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아까 그 무섭게 생긴 독일 아저씨가 4분 55초였으니까… 어?”

시애의 눈이 동그래졌다.

“13초면 차이가 좀 나지?”

수혁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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