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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102화 (102/425)

레스큐 시스템 102화

“아, 제일 먼저 오셨었구나.”

수혁은 모르고 있었지만, 촬영은 수혁이 차에서 내릴 때부터 되고 있었다.

작가인 유예림과 잠시 대화를 나누고 공항 안으로 들어간 수혁은 어색하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어색한 표정과 어색한 행동.

마치 갓 서울로 상경한 시골 청년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런 순박한 이미지는 이내 사라졌다.

수혁에 대한 자료화면들이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에서 온 영웅.]

[100명 이상을 구조한 소방관.]

[슈퍼 히어로 김수혁.] /글/

에밀리와 조쉬가 촬영한 BBC 뉴스의 화면과 푸켓에서 찍힌 수많은 사진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것들은 어딘지 모르게 어리바리하게 보였던 모습과 대조되어, 묘한 매력을 자아냈다.

“영웅이란다, 영웅.”

“새끼, 출세했네.”

하지만 대원들은 민망한 표정을 짓고 있는 수혁을 놀리기 바빴다.

수혁은 TV에 나오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민망하면서도 신기한 감정을 느꼈다.

TV에 나오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사실, 자주 나왔다.

하지만 그때는 모두 뉴스에서나 짤막하게 나왔을 뿐, 지금처럼 오롯이 직접 출연한 것은 아니었다.

때문에 기분이 좀 이상했다.

사람들이 수혁을 보며 대화를 나누는 사이, 다른 사람들이 도착했다.

간단한 오프닝이 끝나고, 드디어 라오스로 이동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정글의 모습.

“저때 진짜 더웠어요.”

시애가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울상을 지었다.

“저놈만 멀쩡하네.”

다른 사람들은 거친 숨과 함께 흘러내리는 땀으로 인해 짜증이 가득한 모습인 반면, 수혁은 뒷산 산책을 나온 듯해 보였다.

“저야 뭐, 단련되어 있으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수혁은 라오스에서 별로 힘들다는 느낌을 받진 못했다.

시애를 업고 뛰었을 때를 제외하면 말이다.

조금 덥기는 했지만, 크게 불편할 정도는 아니었고, 사람을 무는 벌레들도 수혁의 피부를 뚫지 못했기에 더욱 그랬다.

즐길거리만 조금 없었을 뿐, 최은송과 태국에 여행을 갔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TV에서는 PD가 이번 촬영의 콘셉트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팀이 나눠지고, 첫 번째 미션이 주어졌는데…….

“역시 괴물이다.”

“이놈은 정글이 아니라, 사막 한가운데 떨어뜨려 놔도 살이 쪄서 나올 놈이야.”

“너 소방관 말고, 생존전문가 같은 거 해도 잘하겠다.

구조 3팀은 나무를 수수깡 부러뜨리듯 패는, 수혁의 모습에 그리 놀라지 않았다.

저것보단 평소 현장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훨씬 더 충격적이니까.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달랐다.

직접 수혁의 모습을 옆에서 본 시애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혀를 내둘렀다.

“나무를 저렇게 쉽게 팬다고?”

“……저러니까 우리가 졌지.”

“말도 안 돼.”

효진과 제스는, 그곳에서 자신들이 했던 고생을 떠올리며 헛웃음을 지었다.

나무들을 베는 것도 뚝딱뚝딱.

집을 짓는 것도 뚝딱뚝딱.

생존 예능이 아니라, 자연인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았다.

그 이후로도 방송은 수혁을 집중 조명했다.

편집도 괜찮아서, 한 시간 30분이라는 방송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재미가 있었다.

“우리 수혁이 스타 되겠다.”

“스타는 무슨 스타예요.”

김강식의 말에 수혁이 손사래를 쳤다.

“왜? 이참에 소방관 때려치우고 방송 쪽 일하는 게 낫지 않겠냐? 돈도 많이 벌 테고, 위험하지도 않고. 소방관보단 백배 낫지.”

“됐거든요?”

수혁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하자, 박상태가 낄낄거렸다.

“그나저나 방송 재밌네. 수혁이 이거 더 유명해지는 거 아니야?”

김강식의 말에 수혁이 가당치도 않은 소리라며 고개를 저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조금 다른 듯했다.

“아니에요, 오빠. 이거 보세요. 벌써 유명해졌거든요?”

시애가 자신의 스마트폰을 수혁에게 내밀었다.

액정에는 실시간 검색어가 떠올라 있었다.

“……2위?”

“네, 오빠 이름이 실시간 검색 2위에요.”

1. 7일간의 서바이벌.

2. 김수혁.

3. BBC 영웅.

4. 시애 머리 부상.

5. 신일역 붕괴사고. /글/

10위권 내에 수혁과 관련 있는 검색어가 무려 네 개나 있었다.

심지어 시애가 다치는 장면은 방영되지도 않았는데, 검색어에 올라가 있었다.

수혁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세상에 살면서 자신의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에 올라갈 줄은 꿈에서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아마 내일이 되면 더 시끄러워질걸요?”

시애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 신일서 스타다.”

“이야, 연예인이야, 연예인!”

출근한 수혁에게 쏟아진 말들이었다.

“제발 그만 좀!”

마주치는 대원들마다 수혁을 부르며 아는 체를 했다.

오죽하면 서장이 직접 서장실로 불러 대화 좀 하자고 할 정도였다.

가시방석도 이런 가시방석이 따로 없었다.

수혁은 민망함을 감추지 못하고 사무실로 곧장 들어가 버렸다.

하지만 사무실이라고 덜할까?

“아이고, 우리 대스타님 오셨습니까?”

이재한이 장난기 어린 웃음을 얼굴 가득 지으며 허리를 숙였다.

“아, 쫌!”

수혁이 인상을 팍- 구겼다.

“수혁이 좀 그만 놀려라, 새끼들아.”

책상에 앉아 있던 박상태가 이재한에게 핀잔을 주었다.

수혁을 놀리는 것을 보는 건 박상태에게도 즐거운 일이었지만, 이곳은 일터였다.

때와 장소는 구분할 줄 알아야 했다.

“죄송합니다.”

이재한이 머리를 긁으며 자리로 가서 앉았다.

수혁은 조금 조용해지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피곤하시죠?”

그때, 언제 나타난 것인지, 유지환이 캔커피를 들고 수혁에게 건네며 물었다.

“아, 피곤하다기보단, 조금 민망해서… 이거 잘 마실게요.”

“이해합니다.”

유지환은 수혁의 심정을 잘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연예인의 삶이란 고단…….”

“누가 연예인이야!”

수혁은 하마터면 손에 든 캔커피를 유지환에게 던질 뻔했다.

유지환은 와하하- 하고 웃으며 밖으로 도망을 쳐버렸다.

“어휴, 이 개진상들.”

박상태가 머리를 부여잡았다.

예전에는 팀장의 명령 한 마디면, 죽는시늉도 하던 때가 있었는데…….

언제부터 이런 분위기가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야, 김수혁.”

박상태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수혁을 불렀다.

“……왜요?”

수혁은 혹시 박상태도 자신을 놀리려들지 않을까? 하는 의심의 눈초리로 그를 쳐다봤다.

“따라 나와, 담배나 한 대 피우게.”

수혁은 담배를 태우지 않았지만, 알았다며 따라 나갔다.

“몸은 좀 어떠냐?”

“많이 좋아졌어요.”

수혁이 어깨를 돌리며 대답했다.

욱신거리는 통증이 밀려왔지만, 수혁은 그것을 내색하지 않았다.

“너는 뭐, 낫는 것도 괴물이냐.”

“그러게요.”

수혁이 씨익- 하고 웃었다.

“대회가 언제였지?”

“다음 주 금요일요.”

“원래 이번 주 아니었나?

“그런 줄 알았는데, 연기가 됐다나 봐요.”

“그날은 근무 날이라 응원도 못 가겠네.”

박상태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은송 씨가 오기로 했으니까, 괜찮아요.”

“그래서 아쉽다고, 제수씨가 싸 온 도시락 못 먹는 게.”

수혁이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트렸다.

“네놈이야 뭐, 굳이 응원 같은 거 안 가도 알아서 잘할 놈이니까.”

박상태는 자판기에서 커피 한 잔을 뽑아 호호- 불며 한 모금 마셨다.

“우승할 자신은 있고?”

“잘 모르겠네요. 그리 어렵진 않을 것 같은데…….”

아직 팔이 완전히 다 낫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자신은 있었다.

오히려 이 정도는 핸디캡이라고 생각해도 될 정도였다.

“네가 잘할 건 알고 있는데, 그래도 방심은 하지 마. 세상은 넓다. 거기에 너 같은 괴물이 또 없으리란 법도 없어.”

수혁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세상이 아무리 넓다고 하지만, 자신 같은 사람이 또 있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뭐, 아무튼 내가 하려고 했던 말은 이게 아니고.”

솔직히 말을 꺼낸 박상태도 수혁이 누군가에게 질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방심하다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을 염려해서 말을 한 것일 뿐이었다.

진짜 본론은 지금부터였다.

“네 진급이 정해졌다.”

“……진급이요?”

“그래, 전국대회에서 우승한 거. 진급 날 정해졌어.”

솔직히, 지금까지 수혁이 보여주었던 활약을 생각하면, 1계급이 아니라 2계급 이상의 특진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수혁은 임용된 지 1년도 되지 않은 신입인 데다, 너무 단기간에 여러 번 진급시킬 수도 없었기에 1계급 진급만 결정이 되었다.

“대신 성과상여금을 두둑이 챙겨주기로 했다니까, 너무 실망 말고.”

딱히 실망하진 않았다.

1계급 특진만으로도 수혁에게는 충분히 만족스러웠으니까.

거기에 성과상여금을 꽤 얹어준다니, 더할 나위가 없었다.

“이번 대회 끝나면 바로 진급식이 열릴 예정이니까, 그렇게 알아둬.”

“고마워요, 형.”

“고맙긴 뭐가 고마워?”

“이번 진급도 형 덕분이잖아요.”

수혁이 이 경기에 나가게 된 것은, 박상태 덕분이었다.

수혁이 징계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 방도를 찾던 그가 별건한 것.

대회에서 우승한 것은 수혁의 능력이었지만, 박상태가 아니었으면 애초에 대회에 나갈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고마우면 밥이나 사.”

박상태는 괜히 낯부끄러워졌는지 퉁명하게 내뱉고는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어? 연예인!”

그 소리에 수혁 역시 재빨리 박상태의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수혁의 주변은 점점 더 시끄러워졌다.

이제 대원들은 식상해졌는지 더는 놀리지 않았지만, 다른 곳이 문제였다.

“와, 김수혁이다!”

“수혁 그릴스다, 수혁 그릴스!”

현장에 도착한 구조차에서 수혁이 내리자, 그를 알아본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방송이 나가면 나갈수록, 수혁을 알아보는 사람은 점점 더 많아졌고, 그로 인해 사인을 요청하는 사람까지 생길 지경이었다.

“저 사인 좀 해주세요!”

“사진도! 여기 봐주세요!”

고등학생쯤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수혁에게 몰려와 소리를 질렀다.

“비켜주세요.”

그 모습에 수혁이 얼굴을 굳히며 차갑게 말했다.

다른 곳이라면 모를까, 여기는 화재가 일어난 현장이었다.

사람을 구조하러 온 사람의 앞길을 막으며 사인과 사진을 요청하는 사람들은 대체 어떤 정신머리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의 모습에 수혁은 화마저 날 지경이었다.

“헐, 김수혁 X나 싸가지 없어.”

“야, 가자. TV 몇 번 나오더니 지가 진짜 연예인인 줄 아네.”

“월클병 걸린 놈 실제로 보긴 처음이다.”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지금 누가 누구에게 욕을 하는 건지…….

“신경 쓰지 말고 장비부터 챙겨.”

그런 수혁의 모습을 본 박상태가, 수혁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수혁은 박상태에게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이고는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불길 속에 갇혀 있는 요구조자가 다섯 명이다.

이런 일로 지체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돌입 준비!”

박상태의 말에 대원들이 긴장한 얼굴로 불길을 노려봤다.

“돌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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