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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99화 (99/425)

레스큐 시스템99화

쿵- 하는 진동과 함께 수혁이 승강기 위로 떨어졌다.

“문에서 좀 떨어지세요.”

수혁은 혹시 모를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위쪽에 있는 통로 문을 열었다.

그러곤 승강기 안으로 들어갔다.

네 명 중 누가 환자인지는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파리해진 안색으로 가슴을 부여잡고 있는 사람은 한 명뿐이었으니까.

아직은 의식이 있었지만, 곧 쓰러질 것이 분명했다.

“상태 형, 혹시 사다리차 오고 있어요?”

수혁이 무전을 들어 박상태에게 연락을 취했다.

[차가 막혀서 시간이 조금 더 걸릴 것 같단다.]

수혁이 한숨을 내쉬었다.

한시가 바쁜데…….

“일단은 여기에 똑바로 누우세요.”

박상태가 장비를 가져오거나, 사다리차가 오지 않는 이상, 이곳에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유지환 씨!”

수혁이 위를 쳐다보며 부르자, 잠시 고민하던 유지환이 눈을 질끈- 감고는 뛰어내렸다.

쿠웅-

유지환이 서 있는 곳과 승강기까지의 거리는 고작해야 1m 남짓이다.

하지만 20층 높이에서 바라보니, 심리적 공포심이 훨씬 컸다.

이런 곳을 로프도 묶지 않고 아무렇게나 뛰어내리는 수혁이 이상한 것이었다.

“어우.”

유지환은 심장이 벌렁거리는 느낌에 마른침을 삼키며 승강기 안으로 들어오려고 했다.

“아니, 거기서 대기해 주세요.”

하지만 수혁이 막았다.

“상태 형이 로프 가져오면, 거기서 요구조자 좀 받아주세요.”

아무래도 사다리차보다는 박상태가 더 빠를 듯싶었기에, 수혁은 유지환을 중간지점에 놓고 활용하기로 했다.

유지환은 수혁의 뜻을 알아차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혁은 환자와 다른 요구조자들을 보며 고민했다.

과연 누구를 먼저 옮겨야 할 것인가?

환자는 아무래도 함부로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기다릴 수도 없는 게, 심장이다.

만약 타이밍을 놓치면, 그대로 심장이 멈춰 버릴 수도 있었다.

그때였다.

“상황 어때!”

위쪽에서 박상태의 외침이 들려왔다.

“환자는 아직 의식이 있습니다!”

수혁 대신 유지환이 대답했다.

“로프! 최대한 서둘러 주세요!”

수혁은 박상태에게 재촉했다.

다급한 그 음성을 들은 박상태는 재빨리 대원들에게 명령해서 레펠을 준비했다.

빌딩 내부는 아직 공사가 끝나지 않아, 로프를 묶을 만한 곳이 많았다.

덕분에 순식간에 레펠 준비를 끝마친 박상태가, 직접 승강기 쪽으로 내려왔다.

“환자부터 옮겨야 할 것 같아요.”

수혁은 고민 끝에, 아직 환자에게 의식이 있을 때 옮기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박상태는 수혁의 판단을 믿고, 승강기 안으로 들어왔다.

“조금 불편하실 수도 있는데, 조금만 참으세요. 금방 끝나실 겁니다.”

박상태의 말에 환자는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혁과 박상태는 순식간에 환자에게 하네스를 채우고는, 로프를 연결했다.

“조심, 조심…….”

준비가 끝나자, 수혁이 소리쳤다.

“당겨요!”

그러자 위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김강식과 이재한이 로프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지환 씨는 받아주고.”

승강기 천장에 있던 유지환은, 요구조자가 안전하게 올라갈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붙잡았다.

“됐어!”

환자는 손쉽게 승강기를 빠져나와 빌딩 안으로 들어갔다.

“강효상! 구급대 올 때까지 상황 지켜보다가, 안 좋으면 심장마사지 바로 들어가!”

“알겠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업고 뛰라고 하고 싶었지만, 환자에게 최대한 충격이 가지 않게 해야만 했다.

아쉽지만 구급대원들이 들것을 가지고 올라올 때까진 조금 기다려야 했다.

“그럼 다음 분.”

가장 큰 산은 다행히 쉽게 넘었다.

이제 남은 세 명만 이곳에서 빠져나가면 된다.

그런데 요구조자들은 선뜻 나서지 않고 있었다.

이 높은 곳에서 밧줄 하나에 매달려 올라가야 한다는 것에 겁을 먹은 것이다.

“아, 아까 얘기 들어보니 사다리차도 온다는 것 같은데, 그냥 그거 타고 내려가면 안 됩니까?”

셋 중 한 명이 민망한 표정으로 그렇게 물었다.

수혁이 박상태를 쳐다보았다.

조금 늦긴 했지만, 사다리차는 이제 곧 도착할 것이다.

너무 늦지만 않는다면, 로프 대신 사다리차를 이용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었다.

“어떻게 할까요?”

수혁의 물음에 박상태가 잠시 고민했다.

확실히 사다리차를 이용하는 게, 로프보다야 안전하고 공포심도 덜하다.

게다가 거의 도착을 했다니, 사다리차를 이용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그렇게 판단한 박상태가 입을 열려고 할 때였다.

“로프로 가죠.”

갑자기 수혁이 안색을 굳히고는 그렇게 말했다.

“뭐?”

박상태가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사다리차가 더…….”

그러곤 수혁에게 말을 하려다 말끝을 흐렸다.

수혁이 저런 모습을 보일 땐, 언제나 이유가 있었다.

‘젠장.’

박상태의 생각은 맞았다.

지금 수혁은 갑자기 떠오른 퀘스트를 보곤 속으로 욕설을 내뱉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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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 승강기가 추락하기 전에 요구조자들을 모두 구조하라.

*내용 : 승강기가 고장을 일으켰다. 원인은 비용 절감을 위한 부실설치 때문. 지금까지는 문제가 없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승강기가 추락하기 전까지 모든 요구조자를 구조하라!

*보상 : 경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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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왜 이제야 뜨는 거야!’

항상 한발 먼저 정보를 알려주던 퀘스트가, 이제야 떴다는 사실에 수혁은 당황했다.

“로, 로프로 가자고요?”

사다리차로 가면 안 되냐는 질문했던 요구조자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다시 물었다.

“네, 아무래도 빨리 여기서 빠져나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수혁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웃으며 대답했다.

“하, 하지만…….”

“조금 무섭긴 하겠지만, 30초도 걸리지 않을 겁니다.”

아직 ‘위험 감지Ⅱ’가 발동하지 않고 있었으니, 당장 떨어져 내리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퀘스트가 나온 이상, 그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은 분명했다.

“그렇게 무서우시면, 일단 다른 분들이 하는 걸 보고 마지막에 이동하시죠.”

수혁은 옆에서 아무런 말도 없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박상태에게 눈짓했다.

박상태는 수혁의 감을 믿었다.

“진짜 별거 아니니까, 그렇게 겁먹으실 필요 없습니다.”

박상태도 요구조자들을 안심시키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환 씨, 하네스랑 로프 좀 받아주세요.”

위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유지환은 수혁의 말에 퍼뜩- 정신 차리며 김강식에게 말을 전했다.

그러면서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생각하기에는 사다리차를 기다리는 편이 훨씬 나은 선택이었다.

분명 박상태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런데 수혁의 말 한마디에 생각을 바꾸었다.

‘왜? 고작해야 근무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후배의 말인데?’

수혁이 대단하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푸켓에서도, 라오스에서도.

그리고 그 외 수많은 국내 재난 현장에서도.

수혁은 1년 차 풋내기 소방관과는 거리가 먼 활약을 보였다.

하지만 박상태는 10년이 넘게 일한 베테랑이다.

그런 그가 수혁의 말을 듣는다는 것 자체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

의문스럽긴 했지만, 유지환은 일단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지난 며칠 동안 그가 봐온 수혁은 허튼소리 할 사람이 아니었고, 박상태 역시 아무런 이유 없이 행동할 사람이 아니었다.

잠시 생각에 빠진 사이, 김강식이 하네스와 로프를 준비해 아래로 던져 주었다.

수혁은 그것을 받아 요구조자들 중 한 명에게 착용시켰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분이 같이 가주실 테니까.”

수혁이 박상태를 가리키며 말했다.

“같이 올라가는 겁니까?”

“네, 위까지 안전하게 모셔다드릴 겁니다.”

“그런데 아까 김 씨는…….”

환자를 말하는 것 같았다.

“그분은 조금 급히 올려야 해서요.”

기계가 아닌 사람의 힘으로 끌어올려야 하는 상황에,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을 한 번에 옮기는 건 시간이 오래 걸렸다.

수혁이 웃으며 말하자, 요구조자는 한결 편해진 표정을 지었다.

“자, 됐습니다.”

박상태는 장비 착용을 끝낸 요구조자를 조심스럽게 붙잡고는 위를 향해 엄지를 들었다.

동시에 로프가 끌어올려지기 시작했다.

요구조자는 벌벌- 떨었지만, 그 시간은 짧았다.

수혁이 말한 것처럼 30초나 걸렸을까?

두려움에 떨던 것이 민망해질 정도로 쉽고 빠른 이동이었다.

“보셨죠?”

수혁은 정말 별거 아니라는 표정으로 그에게 장비를 착용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준비가 끝날 무렵, 박상태가 다시 내려왔다.

앞서의 모습을 봐서일까?

이번 요구조자는 그리 겁을 먹지 않은 것 같았다.

박상태는 처음과 똑같이 요구조자와 함께 승강기에서 빠져나갔다.

하지만 마지막 요구조자는 여전히 겁에 질린 상태였다.

수혁은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먼저 가신 두 분 보셨잖아요. 정말 안전해요.”

“나, 나는 도저히 안 되겠어요. 사다리차를 기다리겠습니다.”

갑자기 멈춰선 승강기.

20층 높이의 아찔한 장소.

갑작스런 동료의 고통 호소.

겁을 먹을 만도 했다.

아니, 무섭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의 상황이었다.

평소였다면 수혁은 그의 심정을 이해하고, 사다리차가 올 때까지 같이 기다려줬을 것이다.

하지만 이 승강기는 곧 추락한다.

유조차 때의 상황을 아직 기억하고 있는 수혁은, 시간을 헛되이 쓰고 싶지가 않았다.

“좋습니다. 그럼 일단은 장비만 착용해 주세요. 그다음에 사다리차를 기다리든, 로프를 타고 올라가든 결정하는 겁니다.”

“꼭 그래야 합니까?”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요구조자는 수혁의 말에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수혁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그에게 하네스를 착용시켰다.

하지만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됐다.

덜컹-!

갑자기 승강기가 진동하며, 밑으로 1m 정도 뚝- 떨어졌다.

“으아아악!”

요구조자는 그야말로 자지러졌다.

그리고 수혁과 유지환 역시 심장이 덜컥- 하고 떨어질 뻔했다.

“뭐, 뭐야! 김수혁! 괜찮냐?”

이상 현상을 감지한 박상태가 위에서 소리쳤다.

“괜찮아요!”

사실은 괜찮지 않았다.

이명과 함께 조금씩 승강기 전체가 붉게 물들고 있었으니까.

“로프 좀 내려줘요!”

수혁이 외치자 박상태는 곧장 로프를 아래쪽으로 던졌다.

“지환 씨는 지금 당장 위로 올라가세요.”

“수혁 씨는?”

“저는 걱정하지 마시고.”

수혁은 유지환이 올라가는 것을 확인하고는 로프를 자신에게 연결했다.

그러곤 천장의 통로를 통해 위로 올라가 요구조자를 향해 밑으로 손을 내밀었다.

“제 손 잡으세요.”

요구조자에게까지 로프를 채워줄 시간이 없었다.

“나, 나는…….”

“어서!”

수혁은 요구조자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미안하지만, 지금은 배려해 줄 때가 아니었다.

윽박을 질러서라도 이곳에서 탈출해야만 했다.

“지금 안 나오면 이거 떨어집니다! 시간이 없어요!”

수혁이 다급하게 소리치자, 요구조자는 그제야 수혁에게 손을 뻗었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지체됐다.

키기기기긱-!

쇠가 갈리는 소리와 함께 승강기가 밑으로 뚝 떨어져 내렸다.

“안 돼!”

수혁은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승강기를 붙잡았다.

우드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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