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98화
아직 인수인계도 하지 않은 이른 아침부터, 구조 3팀에 힘겨루기 대회가 열렸다.
“팔씨름! 팔씨름으로 하자.”
타이밍 좋게 출근한 김강식이 의견을 냈다.
“저는 그냥 씨름도 괜찮은데요.”
유지환은 잘 끼워지지도 않는 팔짱을 끼고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씨름을 여기서 어떻게 하냐? 생각을 좀 해라. 넌 뇌도 근육으로 만들어졌냐?”
박상태는 은근슬쩍 유지환을 견제하는 기색이었다.
“어? 지금 뭐 합니까?”
뒤늦게 출근한 이재한이 그 모습을 보고는 재밌겠다는 듯 달려들었다.
“종목은 팔씨름으로. 오케이?”
박상태는 김강식의 의견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팔씨름은 따로 준비할 것도 없었고, 가장 직관적이면서도 빠르게 승부를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저는 빠질게요.”
수혁이 손을 들고 기권을 선언했다.
“어, 그래. 넌 빠져.”
“너도 끼면 반칙이지.”
“그럼 하려고 그랬냐?”
그러자 유지환을 제외한 모두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수혁 씨는 안 합니까?”
유지환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쟤는 규격 외야.”
“수혁이가 끼면 게임이 안 되니까.”
박상태와 김강식의 말에 유지환이 뺨을 긁적였다.
방금 전 일로 수혁의 힘이 강하다는 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취급할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에이, 그래도 같이해야죠. 그래야 누가 더 힘이 센지 알 수 있을 거 아닙니까?”
유지환이 반대하고 나서자, 박상태가 수혁을 쳐다보았다.
“어떻게 할래?”
수혁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유지환의 힘이 생각보다 강하긴 했지만, 수혁과 비교할 바는 아니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아무리 힘이 세다고 하더라도, 수혁과 같은 괴력은 낼 수 없었으니까.
그러니 수혁이 참가하면, 우승자가 결정된 상태로 시합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제가 거기 낄 수준은 아니죠.”
“아오, 이 괴물 새끼.”
생각을 끝낸 수혁이 오만한 표정으로 말을 하자, 박상태가 주먹을 쥐며 부들부들 떨었다.
하지만 수혁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기에, 딱히 대꾸할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들었지? 쟤랑 붙고 싶으면 번외 경기로 해.”
박상태는 그것으로 결정 났다는 듯, 뭔가 말을 더하려는 유지환의 입을 막았다.
“수혁이 넌 심판 보고.”
“옙!”
수혁은 제비뽑기를 만들기 위해 재빨리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사무실 안에는 언제 출근한 것인지, 강효상이 앉아 있었다.
“효상 선배, 우리 지금 팔씨름 대회할 건데, 같이하실래요?”
“……생각 없다.”
강효상은 언제나 그렇듯, 어울릴 생각이 없어 보였다.
괜스레 민망해진 수혁은 종이를 북북- 찢어 제비뽑기를 만들어 밖으로 나갔다.
“같은 번호 뽑으시는 분들끼리 붙는 겁니다.”
사람이 네 명밖에 없었으니, 대진표는 순식간에 결정이 났다.
“1경기는 상태 형이랑 강식 선배. 2경기는 재한 선배랑 지환 씨.”
네 사람은 기선제압을 하기 위해 서로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럼 1경기부터!”
수혁이 작은 책상 하나를 가지고 와, 경기장을 마련했다.
그 모습을 본 화재 진압대와 구급대의 대원들이 낄낄거리며 모여들기 시작했다.
“자, 준비하시고……. 시작!”
수혁의 신호와 함께 손을 마주잡은 박상태와 김강식의 팔에 힘줄이 솟아났다.
“으아아아압!”
김강식이 기합을 외치며 혼신의 힘을 다하기 시작했지만, 박상태의 팔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표정을 보아하니, 아직 여유가 넘치는 것 같았다.
“넌 인마, 아직 나한테 안 돼.”
김강식을 향해 한번 웃어준 박상태가 그대로 팔을 넘겨 버렸다.
쿵-!
“아이고, 내 팔!”
승부는 싱겁게 끝나 버렸다.
박상태의 말대로, 김강식은 그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1경기는 박상태 선수 승리!”
수혁이 승자를 선언하자, 구경하던 대원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바로 2경기 들어갑니다.”
유지환과 이재한이 어깨를 풀며 서로 손을 붙잡았다.
“안 봐드립니다.”
유지환의 도발에 이재한이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길 자신이 없었다.
김강식 정도면 어떻게 비벼볼 만했는데, 유지환이나 박상태는 자신이 생각해도 좀 무리인 듯싶었다.
하지만 이런 재미로 하는 경기에 기권할 수도 없었으니, 이재한은 전의를 다졌다.
“준비, 시작!”
쾅-!
수혁의 신호와 동시에 이재한의 손등이 책상에 찍혔다.
“유지환 승!”
1초도 걸리지 않아 패배한 이재한은 저릿한 통증에 손을 부여잡고 울상을 지었다.
질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빠를 것이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이재한도 힘깨나 쓰는 편이었는데, 유지환은 그런 수준을 넘어서는 육체의 소유자였다.
“으하하! 제가 이겼습니다!”
유지환이 크게 웃으며 기뻐했다.
“이야, 힘이 장사네.”
“근데 누구야?”
“구조대에 지원 나온 애.”
“쟤가 사고친 놈이야? 자살 현장에서?”
지원 나온 인력이라는 말에, 진압대의 대원이 물었다.
“아니, 걔는 이미 돌아갔고. 이번에 새로 왔다더라고.”
유지환은 팔씨름 한 번으로 신일서 대원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그럼 이제 결승입니다.”
박상태와 유지환이 긴장한 얼굴로 서로 마주 보고 섰다.
“이번에도 안 봐드립니다.”
“까불지 마라, 인마.”
구경하는 사람들 역시 흥미진진한 표정이었다.
“그럼… 시작!”
“흐읍!”
“윽!”
방금 전과 다르게 승부는 바로 나지 않았다.
유지환은 박상태가 자신의 힘을 버티자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반면 박상태는 그런 표정을 지을 여유도 없어 보였다.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고, 관자놀이에 핏줄이 솟아난 것이, 당장에라도 혈압으로 쓰러질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박상태는 버텼다.
팽팽하던 균형이 무너진 것은 30초쯤 지나서였다.
후배에게 질 수 없다는 자존심 하나로 버티던 박상태의 팔이 조금씩 뒤로 넘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어, 어! 넘어간다?”
사람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고, 이내 박상태의 손등이 책상이 닿았다.
쿵-!
아쉽게도 패배한 박상태가 팔을 주무르며 유지환을 노려봤다.
“이 괴물 같은 놈.”
“하하,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유지환이 우쭐한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그럼 이제 괴물 대 괴물이 붙는 건가?”
“오, 김수혁이랑 붙어?”
사람들의 눈에 다시 흥미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수혁은 자타가 공인하는 신일서의 괴물이었다.
솔직히 사람이 맞는지 의심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으니까.
반면 유지환은 새로운 괴물이었다.
대원들은 둘 중 누가 더 괴물인지 궁금해졌다.
“야, 둘이 붙어봐.”
유지환은 승부욕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수혁을 쳐다보았다.
지금 당장 한번 붙어보고 싶다는 뜻이 그대로 전해져 왔다.
수혁은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팔씨름하는 걸 옆에서 보고 있으려니 재미도 있어 보였고, 솔직히 수혁도 궁금하긴 했다.
물론 그 궁금증이라는 게, 과연 누가 더 센지에 관한 것은 아니었다.
그건 보나마나 수혁의 승리일 테니까.
그저 ‘유지환이 얼마나 강한지 궁금하네’ 정도였다.
수혁이 살짝 웃으며 말했다.
“조금 쉬어야 하지 않겠어요? 벌써 두 번이나 했는데.”
“이 정도는 뭐, 가뿐합니다.”
유지환은 상관없다는 얼굴로 팔을 움직여 보였다.
박상태의 힘이 조금 놀랍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팔에 부담이 갈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럼 바로 할까요?”
수혁이 팔꿈치를 책상에 가져다 댔다.
하지만 그때,
[구조 출동, 구조 출동.]
출동 명령이 떨어졌다.
모여 있던 대원들은 언제 구경했었냐는 듯, 곧장 각자의 위치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수혁과 유지환 역시 마찬가지였다.
유지환은 아쉽다는 표정이 역력했지만, 지금은 그런 것에 신경쓸 때가 아니었다.
사무실에 있었던 강효상이 가장 마지막에 도착하고 나자, 구조차가 곧장 출발했다.
“상황 부탁드립니다.”
언제나처럼 박상태가 무전기를 잡고 상황실과 연락을 취했다.
[빌딩 건설 현장에서 승강기가 고장이 났다고 합니다. 안에 갇힌 사람은 네 명으로, 그중 한 명이 가슴에 통증을 호소하며 호흡 곤란 증세가 있다고 하니, 서둘러 주시기 바랍니다.]
가슴 통증이라는 말에 대원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가슴에서 통증이 발생할 수 있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호흡 곤란을 동반하고 있다면, 심장일 확률이 높았다.
만약 정말 심장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면, 1초라도 빨리 도착해야만 했다.
“들었지? 서둘러.”
박상태가 구조차 기관사에게 말을 하자, 기관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발에 힘을 주었다.
다행히 현장은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기에,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구조차가 서자 마자, 대원들이 뛰어내리듯 차에서 내렸다.
“이거…….”
승강기 고장이라기에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떠올렸는데, 그런 것이 아니었다.
“공사장 승강기였네.”
네 명의 사람을 태우고 있는 승강기는, 한 20층 정도의 높이에서 멈춰 있었다.
“설마 저거 하나만 있는 건 아니죠?”
이재한이 현장 관계자에게 물었다.
하지만 불안한 예감은 오늘도 틀리지 않았다.
“저것밖에 없습니다.”
관계자의 대답을 들은 박상태가 곧장 소리쳤다.
“김수혁, 유지환, 뛰어!”
박상태는 일단 가장 체력이 좋은 두 사람부터 위로 올리기로 결정했다.
나머지 대원은 구급대원들과 함께 장비를 챙긴 후에 올라가기로 했고.
수혁은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지체하지 않고 유지환과 함께 계단으로 달렸다.
20층의 높이.
아무리 장비를 메고 있지 않다고는 하지만, 한 번에 올라가기엔 쉽지 않은 높이였다.
하지만 수혁과 유지환에게는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둘의 체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하고도 남았다.
수혁은 한 번에 계단을 두세 개씩 건너뛰었다.
유지환 역시 그런 수혁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따랐다.
덕분에 두 사람은 20층까지 도착하는데 2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수혁은 일단 요구조자부터 찾았다.
‘생명 감지Ⅱ’를 통해 위치를 특정하고, ‘미니 맵’을 사용해 그곳까지 이르는 길을 찾았다.
“이쪽!”
분명 같이 달렸고, 같이 도착을 했음에도 아직 쌩쌩해 보이는 수혁을 보며, 유지환이 혀를 내둘렀다.
지금 자신은 숨이 차서 제대로 대답도 하지 못할 지경인데 말이다.
지친 몸을 억지로 이끌고 수혁의 뒤를 따르자, 건물 외벽에 매달려 있는 승강기가 보였다.
하지만 승강기는 정확히 20층이 아니라, 그보다 약간 아래에 멈춰 있었다.
덕분에 장비도 없는 지금은 요구조자들을 구조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환자 상태는 어떻습니까?”
수혁이 아래를 보고 소리쳤다.
그러자 안에 갇혀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위를 쳐다보았다.
“가슴이 답답하고 쥐어짜는 듯한 통증이 느껴진다고 하는데요!”
그중 한 명이 환자의 상태를 알려주었다.
‘심장마비?’
그럴 확률이 높았다.
수혁은 지체하지 않고 다시 한 번 소리쳤다.
“제가 내려가겠습니다!”
다행히 아직 의식을 잃지는 않은 것 같았으니, 한시라도 빨리 내려가서 CPR을 진행해야만 했다.
“저 먼저 내려갈 테니, 따라오세요.”
수혁은 뒤에서 숨을 헐떡이고 있는 유지환을 향해 그렇게 얘기하고는, 그대로 뛰어내렸다.
그 모습을 본 유지환이 헛웃음을 지었다.
“와……. 진짜 괴물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