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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큐 시스템-95화 (95/425)

레스큐 시스템95화

“슬슬 더워지네.”

아직 6월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후끈후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벌써 이러면 7, 8월에는 아주 쪄죽겠다.”

30도가 넘는 날씨에 방화복을 입을 생각하니, 그것만으로도 땀이 흐를 것 같았다.

“어째 점점 더 더워지는 것 같냐.”

박상태는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신경질적으로 닦아냈다.

“그래도 겨울보단 낫지 않아요?”

그런 박상태를 보며 수혁이 웃으며 말했다.

“뭐, 그건 그렇지.”

여름도 힘들었지만, 겨울은 정말 더 힘들었다.

일단 화재 출동 수가 어마어마하게 많았으니까.

게다가 그 뜨거운 현장에서 땀을 흠뻑 흘리고 밖에 나오면, 뼛속까지 시린 찬바람이 기다리고 있다.

감기에 걸릴 수 있는 최적화된 환경인 것이다.

덕분에 겨울내내 감기를 달고 다니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고작 감기 정도로 병가를 내고 쉴 수는 없으니, 괴롭더라도 일을 하는 수밖에.

“난 여름이 더 싫더라고.”

반대로 김강식은 고개를 저었다.

여름이라고 해서 편한 것은 아니었다.

폭염에 괴로운 것도 있지만, 더 무서운 건 그로 인한 탈진이다.

통풍이 되지 않는 방화복 특성상, 그 내부 온도는 40도를 넘어간다.

불길 속에 진입하지 않아도, 그저 입고만 있는 것만으로 땀이 비 오듯 쏟아지며 체력을 갉아먹는다.

그렇게 몇 시간이고 구조 작업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탈진에 이를 수 있었다.

“그래도 저는 겨울이 좀 나은 것 같더라고요.”

“넌 인마, 아직 여름에 제대로 일도 안 해본 놈이 그걸 어떻게 알아?”

수혁의 말에 박상태가 핀잔을 주었다.

“아…….”

깜빡하고 있었다.

이번 생에서 수혁은 아직 여름을 겪어보지 않았다.

자기도 모르게 이전 생에서의 경험을 말해 버렸다.

“그, 그 푸켓에서! 거기 엄청 덥잖아요. 거기서 구조해 보니까, 겨울이 낫다… 그 말이에요.”

수혁은 재빠르게 대처를 한 자신의 입을 칭찬했다.

“하긴, 거기도 덥긴 하지.”

어색한 변명이었지만, 다행히도 잘 먹힌 것 같았다.

“그나저나, 오늘 지원 나온다면서요?”

“조금 있으면 올 거야. 연락받았다.”

“……이번엔 정말 괜찮은 놈이겠죠?”

김강식이 미심쩍은 눈으로 박상태를 쳐다봤다.

“몇 번을 물어봐? 걔 데리고 있는 팀장한테 직접 물어봤다니까. 괜찮은 놈이라고 칭찬이 자자하더라.”

박상태가 안심하라며 설명해 주었지만, 김강식은 여전히 불안한 표정이었다.

진지한이라는 인간에게 크게 데인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탓이었다.

“이번에도 그런 놈이면 내가 직접 쫓아낼 테니까, 걱정 좀 그만해라.”

박상태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면, 뭐…….”

김강식은 알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 했다.

“그런데 요즘 지원 나오는 애들은 원래 이렇게 늦게 출근합니까? 아니, 나 때는…….”

“나 때는 무슨, 너 지원 나가본 적 있어?”

박상태가 픽- 하고 웃으며 묻자, 김강식이 입을 다물었다.

“우리 서가 지원 나갈 수 있을 정도로 한가하면 소원이 없겠다, 인마.”

“안녕하십니까!”

그때, 누군가 크게 소리를 치는 것이 들렸다.

셋의 시선이 그쪽을 향했다.

수혁과 비슷한 나이에 어깨가 떡- 벌어진 건장한 체구의 청년이었다.

“이번에 지원을 오게 된 유지환입니다!”

“어이구, 기차 화통을 삶아 먹었나?”

“어, 그래. 왔냐?”

김강식은 살짝 얼굴을 찌푸렸고, 박상태는 그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시간도 됐으니까 이제 들어가자고.”

박상태는 유지환을 데리고 먼저 사무실 쪽으로 들어갔다.

“……어떠냐?”

“뭐가요?”

“유지환인지 유고환인지 하는 놈. 어때 보여?”

김강식이 뒤를 따라 들어가려던 수혁을 붙잡고 물었다.

“방금 처음 봤는데, 제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너 촉 좋잖아.”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김강식의 말에 수혁이 헛웃음을 지었다.

“내가 무슨 점쟁이도 아니고…….”

“일단 첫인상은 나쁘지 않지? 진지한 같은 놈이랑은 다르게.”

“뭐, 그렇긴 하네요.”

외모부터가 달랐다.

얼굴이 반반하니, 뺀질거리게 생긴 진지한과 다르게, 유지환은 사내다운 느낌이 물씬 풍겨왔다.

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유지환에게는 절도가 있었다.

마치 갓 제대를 한 군인을 보는 것 같은…….

“아, 특채 출신일지도 모르겠네요.”

수혁의 말에 김강식이 동의했다.

“특채면 사고는 안 치겠네.”

구조 특채는 군 특수 부대 출신들이다.

예전에 수혁이 소방 기술 경연 대회에서 만난 김철중이 그런 특채 출신이었다.

그리고 보통 그들은 상명하복에 익숙하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큰 사고를 치지 않았다.

김강식은 다행이라는 듯 웃으며 수혁을 데리고 사무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사무실로 들어가자 유지환은 다른 대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쟤가 김수혁이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박상태가 수혁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유지환은 눈을 반짝이며 곧장 수혁에게 다가왔다.

“방금 전 보고도 몰라뵈었네요. 유지환입니다.”

“아, 김수혁입니다.”

진지한과는 다르게 꽤 호감이 가는 사람이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하하하.”

수혁이 어색하게 웃었다.

아무래도 BBC에서 방영했던 뉴스를 보고 아는 척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우리 시애를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우리 시애라니?

수혁은 혹시 유지환이 시애의 가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착각이었다.

“기사 봤습니다. 촬영 중에 시애가 다친 걸, 수혁 씨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다고.”

유지환은 시애의 팬이었다.

그것도 시애가 속한 걸그룹 버블걸스의 팬클럽 임원이란다.

“수혁 씨는 저희 버블리에서도 유명인사이십니다.”

“버… 블리가 뭡니까?”

“아, 저희 팬클럽 이름입니다. 버블과 러블리를 합쳐서 그렇게 지었다는데, 심플하긴 하지만 저는 참으로 마음에 드…….”

말이 너무 많았다.

사내다운 느낌이 물씬 풍긴다고 했던가?

아니었다.

수혁은 유지환이 사내보단 아줌마가 더 잘 어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이런.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흥분해서…….”

한참 동안이나 버블걸스와 버블리에 대해 떠들던 유지환이 ‘앗!’ 하며 정신 차리고는 사과를 했다.

“아, 아니요. 죄송할 것까진.”

수혁은 당황한 얼굴로 손을 내저었다.

“아무튼 반갑습니다.”

유지환이 씨익-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도 사람은 좋아 보였다.

우락부락한 외모와는 달리, 순수한 면도 있는 것 같았고.

수혁은 왠지 유지환이 마음에 들었다.

“진입합니다!”

커다란 외침과 함께 유지환이 팔을 휘둘렀다.

콰직- 콰직-!

그의 손에 들려있는 도끼가 문짝을 순식간에 걸레짝으로 만들어놓았다.

“돌입!”

콰앙-!

유지환이 너덜너덜해진 문을 발로 걷어차자, 그대로 뜯겨져 나갔다.

시뻘건 불길이 앞을 가로막았지만, 유지환은 개의치 않았다.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불 속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 뒤를 수혁과 박상태가 따랐다.

“요구조자 발견!”

수혁이 들어간 지 10초도 되지 않아 유지환이 요구조자를 발견했다.

“의식 없습니다!”

유지환은 순식간에 요구조자의 얼굴에 마스크를 씌우고는 수혁의 도움을 받아 등에 업고 밖으로 빠져나갔다.

“저희도 나가죠.”

‘생명 감지Ⅱ’로 더 이상의 요구조자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수혁이 박상태와 함께 복귀했다.

구조 작업을 시작한 지 5분도 지나지 않아, 모두 끝난 것이다.

“……괴물이 하나 더 늘었네요.”

요구조자를 구급대에 인계하고 있는 유지환을 보며, 이재한이 중얼거렸다.

“그러게, 요즘 애들은 다 저렇게 괴물이냐?”

“진지한이 있잖아요.”

“하긴, 저놈들 두 명이 이상한 거겠지?”

김강식은 이재한과 대화를 나누며 머리를 긁적였다.

수혁은 말할 것도 없었고, 유지환도 괴물의 범주에 들어가기에 충분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힘과 체력적인 부분에선 박상태조차 능가할 정도였다.

“수혁이랑 싸우면 누가 이길까?”

“글쎄요, 겉으로 보이는 스펙만 따지면 유지환이 압승일 것 같긴 한데, 수혁이놈이 워낙 사람 같지도 않아서.”

“그래도 특전사 출신이 더 유리하지 않을까?”

“아, 그러네요. 그럼 유지환이 이기려나?”

“이기긴 뭘 이겨! 니들이 애야?”

언제 온 것인지, 박상태가 뒤쪽에서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둘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 팀장님은 안 궁금해요?”

“궁금할 것도 많다, 새끼들아. 그렇게 노닥거릴 시간 있으면 뒷정리나 해!”

박상태는 둘을 향해 버럭- 하고는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확실한 건 상태 형은 못 이긴다는 거다.”

“싸움도 안 될걸요?

둘은 소리 죽여 웃고 있는데, 수혁이 다가왔다.

“뭐가 그렇게 재밌으세요?”

수혁은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피며 물었다.

화재 현장 앞에서 소방관들이 이렇게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이면, 그리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유지환이 얘기 좀 하고 있었다.”

“아……. 이번엔 괜찮은 사람이 온 거 같아요.”

성격도 성격이지만, 구조 실력이 발군이었다.

“SSU(해군 해난 구조대) 출신이라서 그런지 운동 신경이 엄청나고, 일단 겁 자체가 없어요.”

UDT와 더불어 우리나라 최강의 특수 부대 중 하나인 SSU는 그 훈련의 강도가 상상을 초월한다.

평범한 사람은 일주일도 채 버티지 못하고 줄행랑을 칠 정도였다.

그런 곳에서 생활한 유지환이었으니, 신체 능력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라이벌 생긴 소감이 어떠냐?”

이재한이 장난스럽게 물었다.

“에이, 사람 구하는 데 라이벌이 어딨습니까?”

“없긴 왜 없어. 그리고 라이벌이 나쁜 게 아니야, 선의의 경쟁! 알지? 서로 자극도 되고, 도움도 되고.”

이재한의 일장 연설에 수혁이 헛웃음을 지었다.

라이벌이란 존재가 도움이 된다는 걸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스포츠에선 라이벌이 성장의 발판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 구하는 일은 스포츠가 아니지.’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기만 한다면 모르지만, 분명 경쟁 구도는 뜻하지 않은 결과를 만들 수도 있었다.

“저는 라이벌 같은 거 필요 없어요.”

그런 것에 신경 쓸 시간에, 사람을 한 명이라도 더 구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어, 그래. 너도 수고 많았다.”

그때, 요구조자 인계를 마친 유지환이 다가왔다.

“이야, 너 일 잘하대?”

“잘하긴요, 뭘.”

이재한의 칭찬에 유지환이 머리를 긁적이며 쑥스러워했다.

확실히 순수한 면이 있는 사람이었다.

“수혁 씨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유지환은 묘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수혁을 발견하고는, 웃으며 말했다.

“수고는 지환 씨가 다 하셨죠. 저야 그냥 뒤따라 들어갔다, 나온 것밖에 없는데.”

“수혁 씨가 뒤에서 버티고 계신 덕분에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겁니다. 믿음직한 동료가 아니면 그렇게 못 해요.”

첫 만남 때도 느낀 거지만, 유지환은 수혁에게 한없는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둘의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김강식과 이재한이 미소 지었다.

수혁은 라이벌이 필요 없다고 말했지만, 둘이 보기엔 수혁과 유지환은 이미 라이벌이었다.

아직 그 두 사람은 인지하고 있지는 못하는 것 같았지만 말이다.

김강식은 수혁과 이재한이 서로에게 좋은 자극을 받아, 더욱 뛰어난 소방관이 되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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