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94화
진지한은 복귀했다.
그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복귀 명령이 떨어져 그대로 돌아가 버렸다.
지원 나온 지 일주일 만이었다.
수혁에게 얻어맞고 엉망진창이 된 그의 얼굴 때문에 소란이 조금 생기긴 했지만, 다행히 별다른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박상태의 말에 겁을 먹은 것인지, 아니면 다른 생각이 있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진지한은 고소도 하지 않았다.
“고소 안 할 줄 알았으면 그냥 더 패게 말리지 말 걸 그랬나?”
김강식이 씁쓸한 미소와 함께 농담했다.
“아마 더 팼으면 앞으로 죽만 먹으면서 살아야 했을 걸요?”
이재한이 김강식의 농담을 받아주었다.
“수혁이가 그렇게까지 했겠냐? 푸켓 영상 봤지? 사람보다 큰 돌땡이도 혼자 번쩍번쩍 드는 놈인데. 그때도 많이 봐주면서 때린 거야.”
김강식의 말은 사실이었다.
수혁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오른 와중에도, 힘 조절을 하며 팼다.
있는 힘껏 주먹을 휘두르면, 진지한의 얼굴이 완전 박살 나버릴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하긴, 그 괴물 같은 놈한테 맞고도 그 정도면 다행이네요.”
이재한은 찐빵처럼 부풀어 오른 진지한의 얼굴을 떠올리고는 피식- 했다.
“그나저나, 괜찮으세요?”
“뭐가?”
“그… 영상이요.”
그날 찍힌 영상이 고작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는데, 꽤 많이 퍼져 나갔다.
영상 속의 주인공 중 한 명이 수혁이었기 때문이었다.
영상의 댓글은 대부분 영화에서나 볼 법한 모습과 수혁의 피지컬에 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비판의 댓글도 많았다.
소방관들의 미숙한 대처로 한 사람이 죽을 뻔했다는 둥, 저런 사람들을 믿을 수 없다는 둥.
김강식이 봤다면 상처를 입을 만한 내용이었다.
“안 괜찮을 건 없지. 틀린 말들도 아니고.”
“말은 바로 해야죠. 욕을 먹어야 되는 건 진지한이에요. 형님까지 싸잡아서 욕먹을 일은 아닌데.”
“그놈 레펠 타는 걸 허락한 게 나야. 너도 알잖아.”
“그건 그 새끼가 협박을 해서…….”
“무시하려면 얼마든지 무시할 수 있었어.”
진지한이 위에 보고하든, 말든, 레펠을 타지 못하게 해야만 했다.
“에휴, 사람이 속도 좋아 정말.”
이재한이 고개를 내저었다.
“무슨 얘기 중이냐?”
박상태가 피곤한 얼굴로 다가오며 물었다.
“별거 아니에요.”
김강식은 말을 하려던 이재한을 막고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 모습에 박상태는 뭔가를 눈치챈 기색이었지만, 그것을 굳이 내색하진 않았다.
“다음 근무 때 지원 내려올 거다.”
“또요?”
이재한의 얼굴이 구겨졌다.
진지한이 사고를 치고 쫓겨나듯 돌아간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지원이란 말인가?
“그럼 어쩌냐, 보내준다는데.”
“솔직히 지원 없어도 상관없지 않아요? 수혁이 놈이 2인분 이상을 해내는데.”
“위에선 그걸 모르지.”
박상태는 자판기에서 커피 한 잔을 뽑아 한 모금 마시고는 말을 이었다.
“그래도 이번엔 좀 괜찮은 놈을 보내준다더라. 평판도 좋고, 실력도 뛰어나다고 소문이 자자해.”
“……그래요?”
그렇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지원이 필요 없다고는 말했지만, 솔직히 사람 한 명이 더 늘어나면 그만큼 체력적 부담이 덜하니 말이다.
그 지원이라는 게 진지한 같은 놈만 아니라면 얼마든지 환영이었다.
“그보다, 내일이 수혁이 이삿날이었지?”
“아, 그러네요.”
“마침 비번이니 좀 도와주러 갈까?”
“안 힘드시겠어요?”
“요즘은 그래도 좀 널널해서 체력이 남네. 너희도 할 일 없으면 같이 가든지.”
박상태의 제안에 김강식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이재한은 잠시 고민하다 그러기로 결정했다.
“효상이는?”
“걔가 그런 거 따라다니는 거 봤어요?”
“그래도 말이나 해봐. 괜히 왕따시킨다고 오해할라.”
“그럼 물어나 볼게요.”
박상태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다시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번에 오는 녀석은 좀 괜찮을까요?”
“팀장님이 걱정 말라고 하시잖아. 그럼 괜찮겠지.”
“진지한 때문에 영 믿음이 가질 않아서…….”
이재한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커피를 원샷 했다.
* * *
“……여기가 네 집이라고?”
“제집은 아니고, 월세요.”
“아니, 그러니까. 여기서 산다고? 네가?”
박상태는 눈앞에 있는 커다란 집의 위용에 눈을 끔뻑였다.
그것은 다른 두 명도 마찬가지였다.
“너희 집 잘살았냐?”
“원래 고시원 산다고 하지 않았어?”
김강식과 이재한은 입에서 침을 흘릴 뻔했다.
이런 집이라면 월세로 산다고 해도 백만 원 이상은 줘야 할 것 같았다.
“월세 10만 원이에요.”
“10만 원!”
“그게 말이 되냐!”
수혁의 말에 경악한 세 사람이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너 그거 사기 아니냐? 계약서 한 번 다시 잘 확인해 봐라.”
“아니면 집에 큰 하자가 있다던가. 전에 살던 사람이 어떻게 됐는지 내가 좀 알아봐 줄까?”
“어휴, 문제없는 집이니까 그만들 좀 해요.”
수혁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는 분이 세 주신 거예요.”
수혁은 장영수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하게 설명했다.
“운 좋은 놈은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그거 반대 아니요?”
“어쨌든, 인마.”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게 된 박상태는 걱정을 접었다.
“역시 사람이 선행하면, 이런 식으로 보답을 받게 되어 있다니까?”
“저도 좀 받아봤으면 좋겠네요, 그 보답이라는 거.”
셋은 질투 섞인 축하를 해주고는 짐을 옮기기 시작했다.
“야, 근데 짐이 이게 다냐?”
수혁의 짐은 조촐하기 짝이 없었다.
솔직히, 도와주러 온 것 자체가 민망할 정도였다.
“그래서 제가 안 오셔도 된다고 했잖아요. 괜히 와가지고.”
이삿짐인데도 가구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고, 컴퓨터나 옷가지, 책 정도가 전부였다.
“이 큰 집에서 꼴랑 이것만 놓고 살려고?”
이 무슨 공간 낭비란 말인가?
“가구는 따로 사서 이미 다 들여놓은 상태거든요? 지금 집 안은 쫘악- 풀세팅 되어 있어요.”
“그래?”
셋은 그다지 기대하지 않는 눈치였다.
혼자 사는 이십대 남자가 사봐야 뭘 그렇게 많이 샀을까?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생각은 집에 들어가는 순간 사라져 버렸다.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에, 그와 너무도 잘 어울리는 가구들이 들어서 있었다.
“……너 진짜 부자지?”
“웬만큼 돈이 없으면 이렇게 못 살 텐데?”
가구들은 한눈에 봐도 비싸 보이는 것들뿐이었다.
거실 한복판에 놓여 있는 TV만 해도, 한 달 월급을 갖다 바쳐도 못 살 것 같았다.
“제가 무슨 돈이 있어요. 다 은송 씨가 마련해준 거예요.”
수혁의 말에 셋의 움직임이 딱- 하고 멈췄다.
“……제수씨가 마련해 준 거라고?”
“혼수야? 이거 혼수야?”
“언제 사이가 그렇게 발전했냐?”
아저씨 셋은 언제 그랬냐는 듯, 놀란 표정을 지우고 능글맞게 웃기 시작했다.
“네, 혼수랍니다. 됐죠?”
하지만 수혁이 그런 아저씨들의 수작에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
틀린 말도 아니었기에, 대충 인정해 주고는 짐을 옮겼다.
“재미없는 놈.”
“제수씨는 저런 놈이 뭐가 좋다고 이런 걸 다 사줬대?”
아저씨들은 투덜거리며 얼마 없는 짐들을 옮겼다.
하지만 워낙 짐이 적었는지라, 정리가 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이사가 뭐 이리 싱거워?”
자고로 이사란, 힘들게 짐을 나르고 땀을 뻘뻘 흘린 뒤, 점심에 맛있게 짜장면 한 그릇을 먹는 게 예의 아닌가?
그런데 점심은커녕, 아침 먹은 게 소화도 되지 않았는데 이사가 끝나 버렸다.
“집 구경이나 하자.”
수혁의 말대로 정말 괜히 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뻘줌해졌던 그들은, 이내 아무렇지도 않게 집 안을 활보했다.
“이야, 집 좋네.”
“제수씨가 감각이 있어.”
“정말 땡잡았네요, 수혁이 놈.”
셋은 연신 감탄을 터트렸다.
집이 좋아도 너무 좋았던 것이다.
게다가 최은송이 사줬다는 가구들은, 집의 인테리어와 마치 한 몸처럼 어울렸다.
“젠장, 누구는 20년도 넘은 20평대 아파트에서 전세로 사는데…….”
이재한이 억울하다는 듯 울상 짓자, 박상태가 그런 이재한의 뒤통수를 때렸다.
“인마, 그럼 너도 수혁이처럼 해보든지.”
“……그냥 거기서 계속 사는 게 낫죠.”
수혁은 언제나 자신의 목숨도 내놓을 것 같은 모습으로 구조했다.
옆에서 보고 있으면 심장이 벌렁거릴 정도였다.
그런 수혁처럼 해보라고?
이재한은 목숨이 몇 개라도 모자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건 수혁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대충 구경 끝났으면 뭐라도 좀 마실까요?”
수혁이 계단에서 내려오며 말했다.
“지하에 있는 바에서 마시는 거냐?”
“개시해야죠.”
“콜!”
“그럼 뭐 먹을 거라도 좀 시킬게요.”
네 명은 아직 점심도 되지 않은 시간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즐겁게 웃고 떠들던 그들은 결국 저녁이 될 때까지 술자리를 이어갔다.
그러다 수혁이 찍은 예능 이야기가 나왔다.
“언제 방송한다고 했더라?”
“다음 주였나? 아마 그럴걸요?”
수혁도 정확한 날짜는 까먹었다.
그런 것에 신경을 쓰기엔 그간 너무 많은 일이 벌어졌다.
“연예인들은 어떻디?”
김강식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뭐, 그들도 사람인데요. 다 똑같죠.”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던 수혁이, 뭔가를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예원이라는 친구가 밥 한번 먹자고 연락을 해왔던데…….”
“예원? 그게 누구냐?”
아이돌에 별 관심이 없는 박상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남자 아이돌이라고 하더라고요.”
수혁의 대답에 박상태가 눈을 끔뻑였다.
“아이돌이 너랑 왜 밥을 먹어?”
수혁은 어떻게 설명을 할까 하다가, 그냥 대충 둘러댔다.
“그때 시애라는 애가 다쳤을 때, 예원이 어느 정도 원인 제공했거든요. 그래서 죄송하다면서 밥 한번 먹자고 하더라고요.”
수혁은 딱히 그와 밥을 먹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몸이 회복된 시애가 꼭 보고 싶다고 하는 바람에 고민 중이었다.
“출세했네, 출세했어. 아이돌이 먼저 밥도 먹자고 연락하고.”
“그런 거 아니에요.”
수혁이 손사래를 치며 부정하는데, 위층에서 갑자기 수혁을 부르는 음성이 들려왔다.
“수혁 씨?”
수혁이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은송 씨가 오기로 했었는데. 까먹고 있었네요.”
수혁은 곧장 1층으로 올라가 최은송을 데리고 다시 내려왔다.
“뭐야, 벌써 한잔하신 거예요?”
최은송은 바 위에 놓여 있는 빈 술병들을 보고는 헛웃음을 지었다.
“우리끼리 먼저 시작했습니다. 으하하!”
불콰하게 취한 김강식이 최은송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안주는 또 이게 뭐고. 조금 기다리시지. 밥해 드리려고 재료도 사 왔는데.”
최은송이 아쉽다는 표정을 짓자, 셋은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얼마 안 먹었어요, 제수씨.”
“제수씨가 직접 해주는 요리면 배가 터져도 먹어야지.”
지금까지 최은송이 한 요리 중 맛이 없던 것이 없었기에, 그들은 한껏 기대하는 표정이었다.
“드실 수 있겠어요?”
“물론입니다!”
이재한이 격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최은송이 배시시- 웃었다.
누군가 자신의 요리를 이렇게 좋아해 주는 모습이 싫을 리가 없었다.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금방 만들어서 가지고 올게요.”
최은송은 기분 좋게 주방으로 향했다.
“복받은 놈이야, 너는.”
“동의합니다.”
수혁이 미소 지었다.
자신이 칭찬을 받는 것보다, 최은송이 칭찬받는 게 왠지 더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