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93화
당혹감에 빠져 어쩔 줄 몰라 하던 김강식이, 뒤늦게 정신 차리고는 수혁과 김주현을 끌어올렸다.
김주현은 수혁이 붙잡은 발목 쪽에 통증을 호소하기는 했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다행히 무사했다.
심장이 떨어져 내린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던 박상태가 그녀를 데리고 집 밖으로 나갔다.
“……미안하다, 수혁아.”
바닥에 앉아 한숨 돌리고 있는 수혁을 향해 김강식이 사과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수혁은 정신을 잃은 채 쓰러져 있는 진지한을 노려보며 물었다.
“내 잘못이야.”
진지한이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든, 그냥 무시했어야만 했다.
하지만 김강식은 자신이 상황을 컨트롤 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고, 결과적으론 그 생각이 틀렸다.
진지한의 잘못?
물론 그가 잘못하기는 했다.
그렇지만 김강식은 진지한의 잘못 역시 자신의 탓이라 여겼다.
“밑에서 상황 다 지켜봤어요. 이건 강식 선배 잘못이 아니라, 명백하게 저 새끼가 실수한 거예요.”
수혁은 김강식에게 위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두 들은 뒤, 그렇게 말했다.
솔직히 지금 진지한이 의식을 잃지 않고 있었다면, 수혁은 그의 얼굴을 뭉개놨을지도 모른다.
수혁은 그만큼 진지한에게 열이 받은 상태였다.
“으으음…….”
그때, 진지한이 신음 소리를 흘렸다.
몸도 움찔거리는 것이, 이제야 정신 차리는 것 같았다.
그 소리를 들은 수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진지한의 뺨을 몇 대 쳤다.
“뭐, 뭐야?”
얼굴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진지한이 깜짝 놀라 눈을 떴다.
“정신 드십니까?”
수혁이 걱정스럽다는 음성으로 말을 걸었다.
하지만 표정은 음성과는 정반대였다.
“아, 어떻게 된 거죠?”
진지한은 머리를 문지르며 상체를 일으켰다.
“기억 안 나세요?”
“음, 그게 그러니까…….”
방금 정신을 차린 터라 조금 몽롱한 상태인 것 같았다.
기억을 뒤적거리던 진지한은 잠시 후 정신을 잃을 때의 상황을 떠올렸는지, 눈을 크게 떴다.
“아!”
“이제 기억 나셨어요?”
수혁은 여전히 차갑게 굳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진지한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구하려고 했는데.”
말을 하던 진지한이 잠시 얼굴을 찌푸리더니 김강식을 가리켰다.
“저분이 방해했죠. 그래요, 맞아! 저 사람 때문에 내가 구조를 못 했어. 젠장, 일이 이렇게 된 건 내 잘못이 아니라, 저기 저 사람 잘못이야!”
수혁과 김강식은 어이가 없어도 너무 없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재수가 없으려니까. 왜 방해하고 난리야? 당신만 아니었으면 내가 구했을 텐데. 아무튼, 하나 확실히 하고 넘어가죠. 구조 못 한 건 내 책임 아닙니다. 아시겠죠?”
죄송하다는 말한마디면 그냥 넘어가려고 했다.
어쨌든 김주현은 무사했으니까.
그래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김강식에게 사과했으면, 더는 이 일을 문제삼지 않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진지한은 그럴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어 보였다.
아니, 정말로 자신이 전혀 잘못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야.”
수혁이 진지한을 불렀다.
“……야? 지금 야라고 했어요?”
진지한은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 이 X새끼야. 지금 내가 장난하는 것 같냐?”
진지한은 살벌한 수혁의 모습에 잠시 당황하는 것 같더니, 이내 픽- 하고 웃었다.
“이 친구가 예의를 밥 말아 먹었나? 신일서에선 신입 교육을 이딴 식으로 해요? 하긴, 그러니까 중요한 순간에 방해나 하…….”
“아가리 싸물어.”
수혁이 더는 참지 않았다.
말을 하는 진지한의 머리채를 붙잡고는, 그대로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빠악-!
“아아아악!”
설마 수혁이 자신을 때릴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한 진지한이 비명을 터트렸다.
“아주! 입만! 살아가지고! X발 새끼가! 뭐? 누가 잘못했다고?”
빠악- 빡- 빠악-!
수혁의 주먹질은 한 번에 그치지 않았다.
“야, 야야! 김수혁! 이 미친놈아!”
뒤에서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던 김강식이 경악하며 수혁을 막았다.
“아, 놔봐요, 선배. 이런 새끼는 뒈지게 맞아봐야 돼.”
김강식이 혼신의 힘을 다해 붙잡았지만, 그가 수혁의 힘을 당해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니가 소방관이야? 니가 구조대야, 이 새끼야? 방금 너 때문에 사람 한 명이 죽을 뻔했어! 근데 뭐? 니 책임이 아니라고? 그게 구조대원이 할 소리냐!”
수혁은 진지한의 얼굴과 몸통을 가리지 않고 미친 듯이 주먹을 휘둘렀다.
진지한은 구조대원의 자격이 없었다.
김주현은 운이 좋아 구조할 수 있었지만, 다음에 또 이런 상황이 생긴다면?
그때도 구조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할 수 있을까?
수혁이 보기에 진지한은 살인자와 다름없었다.
이대로 계속 소방관을 하며 요구조자와 구조대원의 생명을 위협하게 두느니, 패서라도 그만두게 하는 편이 세상에 더 나았다.
“뭐 하는 거야, 이 새끼들아!”
그때, 뒤에서 거친 호통이 들려왔다.
수혁이 숨을 몰아쉬며 뒤를 돌아보자, 박상태가 화가 잔뜩 난 얼굴로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아주 가관이다, 응?”
김주현을 경찰에 인계하고 돌아와 봤더니, 이런 폭행의 현장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한 새끼는 사람을 죽일 뻔하고, 또 한 새끼는 동료한테 주먹을 휘두르고. 너네 미쳤냐?”
싸늘한 박상태의 말에 수혁이 심호흡을 하며 진지한에게서 떨어졌다.
“죄송합니다.”
수혁은 자신이 너무 흥분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박상태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런 수혁을 아무런 말도 없이 노려보던 박상태가, 김강식에게 턱짓했다.
“쟤 데리고 여기서 나가. 계속 같이 뒀다간 크게 사고 칠 것 같으니까.”
“알겠습니다.”
김강식은 박상태의 말대로 수혁의 팔을 붙잡고는 집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수혁은 순순히 그런 김강식의 뒤를 따라 나갔다.
그러면서도 몸을 떨고 있는 진지한을 노려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수혁과 김강식이 밖으로 나가자, 집 안에는 박상태와 진지한만이 남았다.
진지한은 수혁의 모습이 보이질 않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피를 닦아냈다.
“고, 고소할 겁니다. 이건 폭행이에요. 감히 선배를 때리다니, 절대 그냥 못 넘어갑니다.”
어지간히 화가 난 모습이었다.
박상태가 짙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러곤 진지한의 옆에 가서 쪼그려 앉았다.
“진지한.”
“저 설득할 생각하지 마세요, 팀장님. 뭐라고 말하던 간에, 전 절대로 그냥 넘어갈 생각 없으니까.”
그 말에 박상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설득할 생각 없다. 고소? 하고 싶으면 해야지.”
박상태의 행동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자, 진지한은 눈을 살짝 크게 떴다.
설마 박상태가 자신의 팀원을 고소하는 것을 말리지 않을 줄은 몰랐다.
하지만 박상태의 말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런데 말이야.”
박상태가 속삭이듯 말을 이었다.
“너는 내가 어떻게 해서든 엿 먹일 거다. 네가 저지른 일을 위에 정확하게 보고할 거야. 사람을 구해야 할 구조대원이, 반대로 사람을 죽일 뻔했어. 공무원? 철밥통? 넌 이제 그딴 거 없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써서 너 파면시킬 거니까. 고소해 봐, 이 새끼야. 누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
박상태의 음성에는 감정이 담겨 있지 않았다.
그저 정말로 그렇게 만들 수 있다는 확신만이 가득했다.
진지한은 코에서 흐르는 피를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저 박상태의 말을 듣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내, 내 잘못이 아니…….”
“그럼 누구 잘못인데? 김강식이? 웃기지 마, 이 X발놈아. 니가 삽질한 거 찍은 영상이 한두 개인 줄 아냐? 지금 당장 밑에 내려가서 물어보면 수십 개는 나올 거다. 정말로 누가 잘못한 건지 한번 보여주랴?”
실제로 아래에서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이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찍었다.
그것을 보면 진지한이 얼마나 병신 같은 행동을 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동영상이라는 말에 진지한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떨리는 눈동자로 박상태를 쳐다볼 뿐이었다.
“넌 수혁이한테 고맙다고 엎드려서 절이라도 해야 돼. 걔 아니었으면 너 때문에 사람 한 명 죽었을 테니까.”
진지한은 그제야 김주현이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살아 있습니까?”
“그래, 떨어지는 걸 밑에서 수혁이가 받았다. 자칫 잘못했으면 둘 다 죽을 뻔했어.”
진지한은 고개를 숙였다.
“그러니까 잘 생각해라. 네가 지금 진짜로 해야 할 행동이 뭔지.”
박상태는 그 말을 끝으로 몸을 돌려 밖으로 나왔다.
“후우…….”
두통이 몰려왔다.
사실 박상태가 다시 올라온 것은 진지한을 반쯤 죽여놓기 위해서였다.
아쉽게도 수혁이 그를 대신해 얼굴을 묵사발 내놨지만…….
정말로 진지한이 수혁을 고소할까 걱정이 되었다.
‘엄포를 놓긴 했는데, 워낙 또라이 같은 놈이라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
진지한이라면 같이 죽자며 그냥 고소할 수도 있었다.
박상태는 제발 진지한이 그런 선택을 하지 않길 빌며 1층으로 내려왔다.
“죄송합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수혁이 허리를 숙이며 사과했다.
“제가 너무 흥분한 것 같아요.”
수혁은 진지한에게 폭력을 휘두른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그가 죄송한 건, 이 행동으로 인해 박상태에게 불똥이 튈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네가 안 팼으면 내가 팼을 거다. 그러니까 나한테 사과할 필요는 없어.”
박상태는 수혁의 어깨를 한번 토닥여 주었다.
“그냥 나중에 연고나 하나 사다가 던져 줘.”
“호랑이 연고 같은 거요?”
“아니, 인마. 요즘 좋은 거 많잖아.”
둘은 피식- 거리며 아파트 밖으로 나왔다.
“수고하셨습니다.”
“정말 멋졌어요!”
아직 흩어지지 않고 있던 구경꾼 중 일부가 수혁에게 다가와 엄지를 치켜들었다.
“가, 감사합니다.”
“이거 영상 너튜브에 올려도 돼요?”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학생 한 명은, 자신이 찍은 영상을 보여주며 허락을 구했다.
“아, 그건 좀…….”
수혁은 난색을 표했다.
자신만 나온다면 상관없었을 것이다.
어차피 팔릴 대로 팔린 얼굴이었으니까.
하지만 영상 속에는 김강식과 진지한의 모습도 찍혀 있었다.
만약 진지한이 삽질해서 자살자가 죽을 뻔한 상황이 알려진다면, 소방관 전체의 신뢰도가 떨어질 수도 있었다.
수혁은 그런 상황을 바라지 않았다.
“올리셔도 됩니다. 단, 얼굴만 좀 가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박상태가 허락했다.
“형?”
수혁이 깜짝 놀라며 박상태를 불렀다.
“안 된다고 막아도 어차피 올라갈 거다. 영상 찍은 사람이 몇 명인데, 그게 안 알려질 거 같냐?”
허락을 맡으러 온 사람은 한 명이었지만, 영상을 찍은 사람은 십여 명이나 되었다.
영상이 안 퍼질 수가 없다는 뜻이었다.
“와, 감사합니다! 모자이크는 꼭 해드릴게요.”
학생은 환하게 웃으며 허리를 꾸벅- 숙이고는 신나게 달려갔다.
“괜찮겠어요? 이거 알려지면 좀…….”
“어쩔 수 없지. 우리가 잘못한 건 사실이니까.”
잘못을 저지른 것은 진지한이다.
하지만 그것은 김강식과 박상태의 잘못이기도 했다.
진지한의 협박에 못 이기는 척, 레펠을 타게 내버려 둔 것은 자신들이었으니까.
박상태는 그 책임을 피할 생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