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큐 시스템92화
“진정하세요, 김주현 씨.”
“오지 마! 오지 말라 했다! 나 뛰어내린다, 진짜!”
박상태는 김주현의 예민한 반응에 일단 제자리에 멈춰 섰다.
그러곤 안심하라는 듯 손을 들고 말했다.
“도와드리러 온 겁니다.”
“필요 없어! 나가!”
하지만 김주현에게는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박상태는 긴장으로 입이 바짝 마르는 것 같았다.
솔직히 박상태는 김주현을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
1년에 한 번, 자살 예방 대응에 대한 교육을 받긴 하지만, 그건 고작 이틀간 열 시간에 불과했다.
한마디로 1년에 열 시간 동안 교육받는 것이 전부란 뜻이었다.
겨우 그 정도의 교육을 받은 것으로 자신감을 가지기엔 너무도 부족했다.
심지어 박상태의 성격은 이런 종류의 설득을 잘하는 쪽과는 거리가 멀었다.
‘차라리 경찰 쪽에 맡길 걸 그랬나?’
그것도 아니면 여성 구급대원에게 맡기는 편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내친걸음이다.
이제 와 자리를 비우고 다른 사람을 데려오기엔 늦었다.
자칫 잘못했다간 김주현이 더욱 동요할 수도 있었다.
박상태는 섣불리 다가가지 않고 그 자리에 선 채로 말을 이었다.
“김주현 씨, 진정하고, 한번 말해보세요. 왜 이러시는 겁니까?”
일단은 왜 자살을 하려고 하는지, 그 이유부터 알아내야 했다.
이유에 따라 박상태가 설득할 수 있을지, 없을지 윤곽이 드러날 테니까.
만약 박상태가 도저히 공감할 수 없고, 해결도 할 수 없는 이유라면…….
‘애들이 잘해내길 바라는 수밖에 없지.’
박상태는 부디 김주현이 자신이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들을 지니고 있길 바랐다.
“살기 싫어, 그냥 살기 싫어.”
박상태가 다가올 기미를 보이지 않자, 조금은 진정한 김주현이 그렇게 대답했다.
‘망할!’
답이 없었다.
그냥 죽고 싶다는데 뭘 어쩌란 말인가?
물론 자살을 결심한 동기가 따로 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김주현이 말을 하지 않는 이상, 박상태가 그것을 알 방법은 없었으니, 답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러지 말고, 속 시원하게 한번 얘기나 해보세요. 혹시 압니까? 제가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박상태는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끌어 나갔다.
말주변이 별로 없는 그로선, 다시 한 번 똑같이 말해보라고 해도 못 할 게 분명했다.
웬일인지 술술 나오는 말에 자신감이 붙은 박상태가 그 후로도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그러다…….
“지금 밑에 김주현 씨 동생분이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동생을 생각해서라도…….”
“동생이?”
박상태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김주현의 눈빛이 순식간에 돌변했다.
그것을 본 박상태가 속으로 ‘아차!’ 했지만, 한 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가 없었다.
‘이런 멍청한 놈!’
아까 김주용의 태도로 봤을 때, 남매지간이 그리 좋지 않았다.
아니, 나빠도 매우 나빴다.
동생이 누나에게 그냥 죽으라는 말을 할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좋은 말로 진정을 시켜도 모자랄 판에, 멍청하게도 동생 얘기를 꺼내 버렸다.
“아, 아니. 김주현 씨, 그게 아니라 제 말은…….”
“나가, 이번엔 진짜야. 안 나가면 뛰어내릴 거라고.”
처음 비명을 지르던 모습과는 달랐다.
차갑게 가라앉은 음성이 박상태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김주현은 정말로 뛰어내릴 생각이었다.
‘역시 다른 사람이 왔어야 했다.’
박상태는 후회했다.
그러곤 더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알겠습니다, 김주현 씨. 나가겠습니다. 그러니까 섣불리 움직이지 마세…….”
박상태는 일단 자신이 물러서고, 곧바로 다른 사람을 투입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박상태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는 김주현의 뒤쪽으로 김강식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쉿!’
김강식은 머리만 빼꼼- 내민 채로 박상태에게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요. 나쁜 마음을 먹지도 말고.”
박상태는 김강식을 위해 잠시 시간을 끌기로 했다.
“어이쿠!”
조심히 뒷걸음질을 치던 박상태가, 뭔가에 걸린 것처럼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오버하며 꽤나 요란스럽게 넘어졌기에, 김수현은 그쪽에 온 신경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지금!’
김강식은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
발로 벽을 박차고 김주현을 향해 떨어져 내리며 손을 뻗었다.
‘됐다.’
김강식은 자신이 김주현을 붙잡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설령 붙잡지 못한다 하더라도, 집 안쪽으로 몸을 밀어 넣기에는 충분했다.
그다음엔 박상태가 알아서 그녀를 막을 것이다.
김강식의 손이 김주현의 몸에 닿기 직전.
생각지도 못한 사태가 벌어졌다.
“어, 어? 비켜!”
김강식의 옆에서 진지한의 다급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진지한은 김강식이 몸을 날리자, 자신도 행동해야겠다고 마음먹고는 다급히 몸을 날렸다.
그리고 레펠에 그리 익숙하지 못했던 진지한은, 김주현이 아닌, 김강식을 향해 그대로 몸을 갖다 박았다.
퍼억-!
“크윽!”
김강식은 그 와중에도 다리를 들어 진지한의 돌진을 막았다.
머리와 무릎이 충돌하며 짜릿한 통증이 몰려왔다.
덕분에 김강식은 김주현을 붙잡지 못했고, 그사이 김주현이 뒤를 돌아보며 시선이 마주쳤다.
‘미, 밀어야……!’
한발 늦게 김강식의 손이 그녀에게 닿았다.
하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아, 말 그대로 툭- 건드린 것에 불과했다.
김강식은 김주현의 눈빛에 독기가 서리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것은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김주현이 몸을 베란다 바깥쪽으로 향했다.
“안 돼!”
김강식은 그런 그녀를 붙잡기 위해 손을 뻗었지만, 머리를 부딪치며 정신을 잃은 진지한이 그의 손을 막아버렸다.
‘이 개X끼가!’
늦었다.
김주현의 육체는 이제 김강식의 손이 닿지 않는 곳까지 멀어졌고, 더는 그녀의 추락을 막을 어떠한 방법도 없었다.
김강식의 표정에 절망이 차올랐다.
그리고 그때였다.
“으아아압!”
밑에서 낯익은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김수혁!’
수혁은 긴장 한 점 없는 기색으로 집 안에 들어섰다.
“이거 죄송합니다.”
“죄송은요, 호호.”
집주인은 손으로 입을 막으며 웃었다.
“우리 소방관님들 일하시는데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감사합니다.”
수혁은 꾸벅- 고개를 숙여 고마움을 표시하고는 베란다 쪽으로 다가갔다.
“어디, 잘하고들 계신가?”
슬쩍 고개를 내밀어 위쪽을 확인했다.
“응?”
레펠을 준비하고 있는 대원들이 보였다.
그런데 그중 한 명이 진지한인 것을 확인한 수혁이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쟤 레펠 탈 줄 아나?”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하나같이 똑같은 의문을 품었다.
물론 진지한은 레펠을 타본 적이 있을 것이다.
소방관을 하면서 한 번도 안 타봤다는 건 말이 안 되니까.
하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타본 것에 불과할지도 몰랐다.
이런 상황에 그런 사람이 레펠을 타고 구조 작업에 나선다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았다.
“뭐, 선배들이 알아서 잘했으려고.”
위에는 김강식, 이재한, 강효상이 함께 있었다.
그들 셋이 있음에도 진지한이 레펠을 탄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퀘스트도 안 떴는데, 별일 없겠지.’
모든 출동에 퀘스트가 뜨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퀘스트가 뜨지 않는 현장이 더욱 많았다.
그리고 그런 출동의 대부분은 손쉽게 해결이 가능한 것이거나, 허위 신고였다.
그렇기에 수혁은 그리 걱정하지 않았다.
진지한 옆에서 레펠을 준비하고 있는 김강식이라면, 충분히 상황을 해결할 능력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완전히 마음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요근래 두 번의 출동에서, 수혁은 안일하게 대처했다가 큰 사고를 맞닥뜨렸다.
한 번은 유조차 사고, 또 한 번은 박정우의 부상.
둘 모두 수혁의 잘못이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수혁은 자신이 조금만 더 신경을 썼으면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자책했다.
그랬기에 이번에도 긴장이나 걱정은 하지 않았지만, 방심도 하지 않았다.
한참을 위쪽에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데, 박상태의 음성이 들려왔다.
‘상태 형이 올라갔나?’
하긴 남는 사람도 없었으니, 박상태가 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예상대로 자살자는 비명을 지르며 박상태를 거부했다.
그러다 이야기가 조금 잘 진행되는 모양인지, 잠잠해졌다.
‘잘하고 계신가?’
대화가 잘 들리지 않아 조금 궁금해진 수혁이 다시 고개를 내밀어 위를 쳐다봤다.
‘어?’
김강식과 진지한이 레펠을 타고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었다.
자살자는 아직 그 둘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이제 됐네.’
저 정도 접근했으면, 박상태가 설득하지 못했더라도 충분히 구해낼 수 있었다.
수혁이 그렇게 안심하고 있을 때였다.
‘어, 어?’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갑자기 균형을 잃은 진지한이 자살자를 향해 손을 뻗고 있던 김강식과 충돌했다.
“뭐야!”
수혁의 눈이 커졌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상황이란 말인가?
수혁이 어이가 없어 헛바람을 집어삼키는 그 순간!
자살자가 몸을 베란다 밖으로 던졌다.
김강식이 그녀를 잡으려고 손을 뻗었지만, 닿지 않았다.
수혁은 본능적으로 팔을 앞으로 뻗었다.
다른 대원들을 피해 오랜만에 꿀 좀 빨아볼까 해서 핑계를 대고 여기에 온 것이었는데, 정말로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조금만!’
위에서 떨어지는 사람을 밑에서 손을 뻗어 잡을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될까?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그리 높지 않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수혁은 그 적은 확률에 모든 것을 걸었다.
‘안 닿는다!’
사고(思考)가 가속되며, 주변의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것처럼 보였다.
덕분에 수혁은 자신의 손이 닿기엔 조금 짧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 수가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자살자는 이대로 추락하고 말 것이다.
거기에 생각이 미친 수혁은 망설이지 않고 베란다 밖으로 몸을 던졌다.
“꺄아악!”
수혁에게 차라도 한 잔 대접하려고 주방에 갔다가 나온 집주인은, 창문 밖으로 몸을 내던지는 수혁을 발견하곤 비명을 질렀다.
마치 수혁이 자살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수혁에게 그런 오해를 풀어줄 시간적 여유 따윈 없었다.
몸을 던지며 한 손으론 베란다 난간을 붙잡고, 다른 한 손은 자살자를 향해 뻗었다.
몸이 밖으로 나온 덕분에 이제 거리는 충분했다.
수혁은 떨어져 내리는 자살자에게서 단 0.1초도 눈을 떼지 않고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덥석-!
운이 좋았던 것인지, 아니면 수혁의 동체 시력이 좋았던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수혁은 그녀의 발목을 가까스로 붙잡을 수 있었다.
“으아아압!”
수혁이 붙잡고 있던 난간이, 악력을 버티지 못하고 우그러졌다.
혹시나 난간이 떨어지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들었지만, 다행히 난간은 두 사람의 몸무게도 버텨주었다.
‘젠장…….’
수혁은 난간에 매달린 채, 자살자를 붙잡고 허공에 떠 있었다.
수혁은 순간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회귀한 다음 날.
갑작스런 가스폭발로 인해 죽을 뻔했던 기억.
그때는 온몸이 찢겨 나가는 듯한 고통을 느꼈지만, 지금은 멀쩡했다.
그만큼 수혁의 신체 능력이 상승한 것이다.
수혁은 자신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는 자살자를 무시하고, 위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진지한을 노려보는 수혁의 눈빛에는 살기마저 감돌고 있었다.